소설리스트

110화 (110/187)

그 말에 박대위와 김대위도 나직이 한숨을 내쉰다.

난 고개를 갸웃했다.

"...연료 한 박스? 무슨 말입니까?"

"옥테인 부스트 말입니다."

송규태 중사가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헬기와 경비행기는 항공연료를 넣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냥 휘발유로 날고 있어요. 이 동네에 스포츠카가 많은건지 모르겠는데, 인근 주유소에 다행히도 옥테인 부스트가 몇 박스 있었습니다. 그걸 섞어서 급유하고 있는겁니다. 억지로 날개를 돌리고 있는거죠."

송규태 중사가 대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도 이제 한 박스밖에 남지 않아서 기껏해야 세네번 급유하면 끝입니다. 그보다도, 위험해요. 정말로 이제 비행하면 안 됩니다. 어느 순간 추락할 겁니다."

난 놀라서 중사와 대위들을 바라봤다.

"...사실입니까?"

박 대위는 과묵하게도 대답하지 않았다.

김 대위가 허공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날아야 될 때는 날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추락하는 날이 오면, 그 땐 그저 제 차례가 온 겁니다. 요즘 어디 죽는 사람 한 둘이랍니까."

...장난 아니네 진짜.

무기만 없는 줄 알았더니, 식량과 의약품도 없고. 헬기와 경비행기가 있는데 그냥 휘발유에 첨가제 넣어서 급유하고 있고.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고 있다, 이 사람들.

난 사람들을 돌아봤다.

이 사람들은 바퀴벌레가 아니다.

뭔가를 해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대답했다.

"이제 대원들이 무장하고 나면 앞으로 나아질 겁니다. 우선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와야겠지요. 그 후에, 평택 미군기지를 공격할 겁니다."

"...평택?"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른 국군부대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만, 평택 미군기지가 가장 효율이 높은 기지입니다. 항공기부터 폭발물, 활주로까지. 단일 규모로는 거의 모든걸 갖춘 국내 최대의 군사기지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더구나 용산기지가 이전하면서 더 좋아졌죠. 우리의 최우선 목표입니다."

...평택 미군기지라.

안준규 비서실장이 말했다.

"그 뒤엔 원자력 발전소, 상수도정화시설 등으로 진출해 나가야 합니다. 다소 포기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국가 유틸리티가 무너지면 모든게 끝입니다. 전기와 물이 없으면 안 돼요."

난 팔짱을 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행기와 헬기.

운용할 순 있으나, 위험하다.

모든 것이 부족하다.

그리고, 발전소와 물.

...겨우 손에 무기가 들어 온 상황이다.

난 나직이 한숨을 내쉬곤 사람들을 돌아봤다.

대통령 민정우가 내게 물었다.

"성훈씨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대답했다.

"...한 번에 하나씩 합시다."

난 리프팅벨트와 백팩을 집어들고 일어섰다.

그리곤 특임대장 성규혁에게 말했다.

"대원들 모아주세요. 더플백 비우고. 마트에 갑시다."

"그러죠."

성규혁이 미소짓더니 일어난다.

비서실장 안규혁이 놀라며 물었다.

"지, 지금 바로 간다고요? 도착하자 마자?"

"기다려서 뭐 합니까? 갔다 오겠습니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모텔 정문 앞에 서서 리프팅벨트와 백팩을 착용하는 동안, 특임대장 성규혁이 2,3,4,5팀을 전부 모았다.

다 모으니 15명이나 된다.

큼직한 가방을 둘러멘 체격 건장한 남자 열다섯이라...

다들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띠를 메고 있는것이 꽤나 폼이 좋다.

무기를 손에 쥐게 되어 기쁜 것 같은데.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난다.

난 턱을 만지며 미소지었다.

"갑시다."

모텔을 나와 특임대장 성규혁이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걸었다.

열다섯의 장정들이 따라오는 발소리가 제법 듬직하다.

"팀이 많군요. 다섯팀이나."

성규혁이 끄덕이곤 대답했다.

"3,4팀은 주유와 급유를 담당합니다. 5팀은 3,4팀을 보조하고요. 1팀은 무기수급, 2팀은 통신, 정찰 등이 주임무입니다."

...오오.

꽤나 체계적인데.

"모텔에서 본게 다는 아니겠죠? 전부 몇명입니까?"

"35, 아니, 32명입니다. 1팀에서 세명이 전사했고, 구조한 민간인 9명을 포함한 인원입니다."

난 살짝 놀라며 그를 돌아봤다.

"구조임무를 하긴 했군요?"

"그렇습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은 고개를 끄덕이곤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헬기와 경비행기를 확보하고 나선 더이상 구조활동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요. 저 쪽입니다."

안내해주는 성규혁은 거리의 규칙을 거의 나만큼 잘 알았다.

도로 한가운데 중앙선을 걸어가면서도, 길가의 점포들과 건물들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말한다.

그러며 주위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으아아아악-

멀리,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자그마한 메아리가 들려온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앞뒤좌우로 고도로 훈련된 무장병력이 걷고 있으니 꽤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군이 함께 있는게 이런 느낌이지.

그나저나...

서른 두 명이라.

라면을 먹어도 한 끼에 한 박스 이상 날라가는 인원이다.

이 상황을 헤쳐나가기 쉽지 않았을텐데.

틀림없이 이 남자들이 목숨걸고 주위를 파밍해왔겠지. 말 그대로 생존자들 죽지 않게 멱살 잡고 끌고 간거다.

훌륭한 대원들이다.

트럭 옆.

성규혁이 주먹을 들어올린다.

우린 모두 제자리에 앉았다.

난 성규혁의 옆으로 가 그가 가리킨 목표물을 쳐다봤다.

유리가 완전히 개박살나버린 편의점이다.

...많다.

저 작은 편의점에 최소 스무마리 이상은 바글바글 모여있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헬기에 의해 발생한 작은 좀비 웨이브. 거기서 흩어지고 기어들어간 놈들인거다.

대교 위에서 성규혁이 말했던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편의점이잖습니까. 대형마트는요?"

성규혁이 말했다.

"에브리데이나 익스프레스같은 중형마트는 제법 있습니다. 대형마트를 털려면 서초까지 가야 됩니다. 저 길을 따라 도보로 대략 한시간쯤 입니다."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힐끗 돌아보니 도열해 앉아있는 대원들이 보인다.

눈빛이 살아있다.

하지만 안색은 그렇지 못하다.

하루 한 끼?

그나마도 제대로 챙겨 먹은건지 의심스럽다.

난 다시 끄덕이곤 성규혁과 대원들에게 말했다.

"오늘 밤엔 좀 바쁘게 움직여 봅시다. 잠 안자고 밤새 움직여야 될 텐데, 괜찮겠습니까?"

대원들이 피식 웃는다.

성규혁이 미소지으며 끄덕였다.

"잠 안자는 정도는 문제 없습니다."

다들 특수부대 출신이라 역시.

난 미소짓고는 말했다.

"방식은 이전과 동일합니다. 나 혼자 들어갑니다."

그러며 검을 뽑아들었다.

화장실에서 확인했을 때 스텟은 거의 풀충전 되어있었다.

시간당 12점씩 회복하는게 확실히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

스르릉-

검 두 자루를 양 손에 들고 나는 트럭을 나와 걸었다.

성큼성큼, 거침없이.

나를 봐라.

라는 태도로, 나는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반쯤 살아남은 벽유리.

대원들이 각자 일어서서 나를 보고있다.

"크롸륽?!"

한 놈이 나를 발견했다.

이내, 모든 좀비들이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짖었다.

"크아아아앍!"

난 한 발을 크게 내딛었다.

몸을 굽혔다.

"캬아아아악!"

놈들이 괴성을 지르며 뛰쳐나온다.

와장창!

유리가 깨진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나는 휘몰아쳤다.

피가 사방으로 분출한다.

뚫리고 잘린 머리통이 팝콘처럼 널뛴다.

후드득.

눈가에 튄 피 때문에 눈이 살짝 감긴다.

"컭!"

우르르, 콰당탕!

뛰쳐나오던 놈들이 자기 속도에 못 이겨 그대로 앞으로 엎어졌다.

"후우..."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오. 렙업했네.

편의점 내부.

밝은 조명 아래에서 숨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숙인다.

귀를 기울여 본다.

...이 편의점은 비었다.

나는 시체 사이를 밟고 편의점을 나왔다.

검을 내리쳐 피를 빼낸다.

촤륵!

그리고, 집어넣었다.

스르릉- 착.

고개들어보니 특수부대 대원들의 얼굴이 보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둥그렇게 뜨고 있다.

몇 번인가 봤던 성규혁도 웃는듯 놀란듯한 얼굴로 후, 하며 숨을 내쉰다.

난 피식 웃고는 손짓했다.

들어와.

대원들이 일어난다.

성규혁이 다가와 나를 본다.

그렇지 않아도 피칠갑인데 더 피를 뒤집어 써서 머리칼에서 뚝뚝 흘러내리고 있다.

그가 내 어깨를 툭, 짚고 들어간다.

다른 대원들도 내 곁을 지나가며 내게 눈빛을 보내곤, 어깨를 짚고는 들어간다.

와중엔 꽤 감동한 얼굴의 대원도 있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힘 좋은 남자 열다섯이 털자, 단 두번 왕복에 편의점 창고까지 텅 비어버렸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그들이 편의점을 터는 동안, 나는 성규혁에게 인근 약국과 철물점 위치를 알아낸 뒤 하나씩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다시 1렙업.

현재 레벨 15.

힘 60.

약국과 철물점까지 모조리 털고 나자 새벽 세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스텟도 슬슬 회복해야 되고.

묵직한 철물을 가방 한가득 담아 짊어멘 특임대원들에게 말했다.

"이거 갖다놓고 좀 쉽시다. 몇시간 쉬고 해 뜨면 또 나갑니다."

대원 하나가 내게 물었다.

"몇시에 대기하면 됩니까?"

미소짓고 있네.

나도 미소로 화답하며 말했다.

"다섯시간이면 충분하겠죠. 아침 아홉시에 모텔 앞에서 봅시다."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여 온다.

모텔로 돌아가는 동안 성규혁이 말했다.

"일사천리로군요. 원래 계시던 곳에서도 이렇게 물자를 수급했습니까?"

음.

비슷하긴 한데, 이렇게는 아니었지.

한 두번 왕복해서 가게 하나를 완전히 털어버리진 못했는데. 확실히 힘 좀 쓰는 남자들이 많으면 일이 수월해진다니까.

난 뒤를 힐끗 돌아보곤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해두죠."

새벽녘까지 밖에 있다가 이제 겨우 모텔로 돌아왔다.

체인을 벗겨내고, 문을 연다.

사람들이 보였다.

응접실엔 과자며 음료수며 온갖 먹을 것들이 쌓여있고, 그 사이에, 또 계단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다.

그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작게 박수쳤다.

할머니, 젊은 여자, 아줌마, 아저씨, 비서실장과 두 대위들, 정비사, 그리고 대통령까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치고있다.

큰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함에도 기쁨을 감출 수 없는거다.

다들 그래도 상식이 있어서 우렁차게 박수치진 않네.

난 피식 웃고는 대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대통령 민정우가 내게 다가와 피가 뚝뚝 흐르는 내 손을 붙잡았다.

"총소리 한 번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나. 정말 훌륭합니다."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물건들 재어 놓을 자리나 넉넉하게 마련해 두십쇼."

비서실장 안규혁이 다가와 말했다.

"이미 방 대여섯개를 창고로 쓰기로 했습니다. 첫 날부터 이렇게나 활약하실 거라곤 미처 생각치 못했습니다. 대단합니다, 성훈씨."

으음...

칭찬받았네.

난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 말씀을요."

내 옆, 응접실 소파엔 에너지바 상자가 놓여있었다. 거기서 에너지바 두 개를 집어들곤 말했다.

"저와 대원들은 아침에 다시 나갑니다. 저희는 잠깐 눈 좀 붙이겠습니다."

대통령 민정우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쉬셔야지요. 오늘 정말 수고했습니다. 고생 많이 했어요."

비서실장 안준규가 손짓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1층 요 옆에 방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오시죠, 성훈씨."

대통령은 그제서야 내 손을 풀어주었다.

난 대통령을 지나 사람들 사이를 걸어 비서실장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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