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화 (108/187)

다시.

핏.

쒸우웃-

또 넘어진다.

볼링공에 맞은 핀처럼 우르르 넘어진다.

뒤섞여 달리던 와중에 앞에서 한 놈이 넘어지면 저렇게 되지.

마지막 한 발.

핏.

...젠장. 이번엔 넘어지지 않았어.

"후우."

그래도 시간은 벌었다.

난 옥상을 짚고 뛰어내려 땅으로 내려섰다.

두 팔을 뒤로 돌려 각궁을 활집에 집어넣고 창고를 살펴본다.

성가연과 눈이 마주쳤다.

"방금 쏜 화살은...?"

난 가볍게 대답하며 창고 안을 들여다봤다.

"저격한겁니다. 다섯마리 죽여놨으니 좀 여유가 생겼어요. 이봐요. 서두릅시다."

창고 안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이제 다 됐습니다."

발소리가 들려온다.

진짜 다 됐나보다.

"...다섯명을 저격했다고 하셨습니까?"

성가연이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본다.

그러며, 내 뒤의 거리로 시선을 옮긴다.

주택. 그리고 나무들.

도저히 뭐가 보일 만한 환경이 아니다.

아무리 창고 위에 올라서 있다고 해도, 나무 너머, 게다가 밤이라 거의 보이지도 않는 저 어딘가를 향해 활로 저격한다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것도 정확히 머리를.

난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다.

잉그램으로 긁어서 몇 초만에 100여 마리를 원샷원킬한걸 눈 앞에서 본 여자한테 그냥 우연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창고에서 남자들이 나왔다.

각자 두툼한 더플백을 어깨에 메고있다.

꽤 묵직한 것같다.

게다가 각자 손에 소총을 들고있다.

좋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저 쪽으론 막혔습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이곤 동생을 부축하며 걸었다.

"네. 애초에 그 쪽은 퇴각로도 아니었습니다. 갑시다, 성훈씨."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을 따라 나는 걸었다.

"어디로 갑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우리 임시정부 거처요."

"그게 어디죠?"

더플백을 두 개 메고있던 대원에게 하나를 건네받아 메며 물었다.

임시정부 거처라?

특임대장 성규혁이 대답했다.

"반포요."

...반포.

난 눈에 힘주고는 과연, 모든게 단숨에 납득되었다. 라는 제스쳐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어딘데 씨발.

난 서울 사람이 아니라고.

크롸라라아아-

뒤에서 멀리 짖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미군기지를 벗어나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 * *

반포대교엔 차가 가득 들어서서 제대로 러시아워를 이루고 있었다.

운전자도 없이 방치된 차량들이지만.

서로 들이받아 삼중 사중 추돌을 실감나게 이루고 있는 여러 차들을 지나, 대교 한 가운데에 들어서서야 우리는 겨우 숨을 돌렸다.

"하악, 하악."

성가연은 몹시 힘들어 보인다.

발목에서 올라오는 통증도 그렇고, 거의 며칠간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게 크다.

창백한 안색으로 식은땀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는게 안쓰러울 정도다.

특임대원들도 땀을 상당히 흘리고 있다. 지쳤다기 보다는, 묵직한 더플백을 메고 달렸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나는?

...땀 한방울 흘리지 않는다.

몸이 좀 따뜻해졌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체력 업적 스킬 덕분에 몸이 전체적으로 강화된 덕분이다.

좀비 웨이브가 짖어대는 소리는 이제 들려오지 않는다.

놈들은 소음의 발생지인 미군기지 안에서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성가연이 통증을 참으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기 때문에 놈들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었다.

강인한 여자다.

난 백팩에서 500밀리 생수를 꺼내 땄다.

사람들이 전부 나를 쳐다본다.

난 물을 성가연에게 내밀었다.

"마셔요."

"괘, 괜찮습니다."

"마시라고."

성가연이 오빠와 대원들을 돌아본다.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서 물을 받아 동생에게 내밀었다.

내 백팩에 들어있는 하나 남은 물.

난 나머지 물을 꺼내 따서는, 한 모금 마시고 다른 대원들에게 내밀었다.

나를 향해 고맙다는 목례를 해 온다.

물을 나눠마시는걸 보면서 좀 황당한 기분이 든다.

이 자들.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어.

물도, 식량도.

내가 임무에 실패할 거라 여기고 금새 귀환할 것으로 판단했거나, 혹은, 가져올 만한 물도 식량도 없거나.

둘 중 하나다.

...후자일 것이라 본다.

대통령조차 초췌한 몰골이었다.

물자가 풍족할 리 없다.

그저 뜻 있는 사람들이 모였을 뿐이다.

난 주저앉아 백팩에서 에너지바를 한 웅큼 꺼내 대원들과 성가연에게 하나씩 던져줬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

난 괜찮지만 이 사람들은 아닐걸.

특히 성가연은.

종말이 닥치면 가장 먼저 필요한건 삶의 의지다. 그리고, 먹을 것과 마실 것.

이 세가지가 모두 충족되지 않으면 죽는다.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고강도 훈련을 받아 온 자들이라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달픈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내 짐작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있다 돌아가면 라면이나 좀 끓여주시죠. 계란이야 요즘 뭐 없다지만, 치즈 같은거 몇 장 얹어서 먹으면 맛있을 것 같군요."

에너지바를 한 입씩 깨물고 숨을 돌리던 특임대원들이 서로 쳐다본다.

...눈빛 꽤 난처하네.

...대충 알겠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라면은 죄송하지만 다 떨어졌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른것도 다 떨어지고 없는거죠. 물은 아마 수돗물 받아먹고 있을거고. 그것들 구할려면 무기가 있어야 되는데 빈 손이고. 그래서 무기를 구하려 들어갔다가 1팀 궤멸된 것이고. 맞습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여동생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거기 전투원은 몇 명이나 됩니까?"

"5팀입니다. 1팀은 이제 없으니 4팀입니다."

전투원 스무명 가량에 대통령 등 민간인들.

무장은 겨우 권총 두 정에 소총 두정.

총을 쏘면 주위를 도발하게 된다.

그렇다면 화망을 형성할 필요가 있는데 겨우 네 정에 몇백발론 그럴 만한 여력이 없다.

총이 있으나 슈퍼 하나 털 수 없었다.

혹은, 슈퍼를 털러 나갔다가 몇몇 대원이 당했다. 그래서 무기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게 되었다.

어떻든, 이들에겐 무기를 구하는 것이 1순위였다.

...그렇게 된 거겠군.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지금 뭘 먹고 사는거냐.

그런건 묻지 말자.

수돗물에 박스 적셔서 뜯어먹고 있다 라는 소리를 들을 것같다.

아, 하지만 궁금한걸.

궁금한걸 참고 있는데 특임대장 성규혁이 물었다.

"그 쪽은 좀 어떻습니까? 그 쪽도 수십명씩 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상황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으음.

쉽지 않다라?

난 잠시 생각해봤다.

좀비 웨이브를 제외하고는 딱히?

난 어깨를 으쓱하곤 말했다.

"별로요. 어제 아침에 햄치즈 토스트에 커피를 먹었는데 꽤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돌아가면 다시 해달라고 할까 생각하는 중입니다."

대원들과 성가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성가연이 말했다.

"...햄치즈 토스트요? 햄치즈...는 그렇다 쳐도, 이젠 빵을 어디서 구할 수가 없을텐데 어떻게...?"

"우리쪽에 빵 만드는 애가 있습니다. 아직 어리긴 한데, 그런 재주가 있더라고요. 아랫층 대형마트에 밀가루라든가 버터 같은건 질리도록 있으니까, 거의 뭐 매일 빵파티 열죠."

난 한 손으로 턱을 괴고 하늘을 살짝 올려다봤다.

별 예쁘네.

"반찬이 좀 부실해지긴 했는데, 옥상에서 고추랑 배추 상추 같은거 키우고 있으니까 좀 기다리면 그것도 싱싱한걸로 먹을 수 있을테고, 뭐... 나쁘진 않습니다."

대원들이 서로를 돌아본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대형마트라면, 그... 놈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요. 어떻게 처리한 겁니까?"

난 피식 웃었다.

"동영상 보셨잖습니까."

대원들이 아, 하며 탄성을 뱉는다.

이 자들 모두,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봤다.

특히 성가연은 뭐...

이제와서 못 믿을리가 없지.

"마트 정리하고, 셔터 내리고, 셔터에다 용접해놓고 또 뭐 하고 뭐 하고, 그러느라 우리쪽 사람들이 애를 많이 썼죠. 덕분에 좀비 웨이브가 왔어도 꽤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었죠. 아, 우리쪽 사람들이 헬기로 놈들 다 쓸어가준거 고맙답니다."

그렇게 말하며 미소지었다.

우린 꽤 잘 지내고 있어.

당신들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군.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성가연이 허공을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햄치즈 토스트... 맛있겠다..."

거의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나보다.

혼자 깜짝 놀라더니 오빠와 대원들을 쳐다본다.

특임대장 성규혁의 얼굴이 씁쓸해졌다.

...아...

참 나...

갑자기 마음이 또 움직일려고 하는데.

일단 좀 생각해보자.

이 사람들.

싸울 줄 아는 전사들이다.

헬기와 경비행기도 보유하고 있다.

일단 장비적인 측면에선 꽤 나쁘지 않다.

이제 무기까지 얻었으니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세력이 지금보다 좀 더 커진다면.

어쩌면 종말을 이겨내는 데에 좀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아니, 도움이 될 거다.

이 자들이 바퀴벌레들처럼 굴까?

글쎄.

지금까지 겪어본 바에 의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사람들을 구조하는게 목적이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이 구해낸 자들 중에 또다른 바퀴벌레가 있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들은 아니다.

그래.

그럼 뭐.

난 턱을 괸 채 물었다.

"반포에도 대형 마트가 있겠지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울 겁니다."

"왜죠?"

성규혁은 대원들을 돌아보다 고개를 돌렸다. 반포대교 너머를 가리킨다.

멀리 보이는 둥그런 건물.

밝은 조명.

난 갸웃했다.

뭔데 저기가?

성규혁이 말했다.

"우리 헬기 착륙지, 세빛둥둥섬이 저기에 있습니다."

어? 헬기?

난 괴었던 턱을 들어 멀리 바라봤다.

"세빛둥둥섬입니까? 저기가?"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건물 위에 착륙시키고 있어서 사실 불안한 상태입니다. 꽤 튼튼한 건물이라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앞으로도 없을거란 보장은 없으니까요. 서둘러 착륙지를 새로 만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규혁이 동생에게서 물을 받아 한모금 마시곤 말했다.

"헬기로 인근의 괴물들을 몰아다 치우고, 또 착륙시킬 때도 강을 따라 유인해 수몰시킨 후에 착륙하곤 합니다만, 문제는 헬기를 가동시킬 때마다 과천에서, 동작구에서 놈들이 계속 몰려온다는 겁니다. 동네가 비질 않아요."

...아아.

헬기소리로 유인해 치워놓으면 주변에서 몰려들어 채워지고, 또 치워놓으면 또 몰려들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건대, 멀리서 몰려들어 웨이브 비스무리하게 된 놈들은 잠잠해져도 다시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다.

멀리 왔으니 그냥 자리 잡아 버리는건가.

...난감하겠네 그거.

그러면 편의점이나 다른 가게들이 비는 타이밍이 거의 없겠는데.

오히려 꽉꽉 들어차겠지.

놈들은 한가해지면 어디론가로 기어들어가 버리니까.

성규혁이 말했다.

"유인한다고 돌아다닐 때마다 그쪽 부근 놈들도 같이 도발당해 몰려드니 결국 떼어낼 수가 없는거죠. 지금 한강 밑이 놈들로 바글바글하다면 믿겠습니까?"

...믿는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헬기가 몇 번이나 떴는진 몰라도, 뜰 때마다 좀비 웨이브가 발생했을거다.

"강 밑에 깔려있던 놈들도 시도때도 없이 뭍으로 올라오고. 지금 밤이라 보이지 않습니다만, 놈들은 지금도 반포로, 용산으로 기어올라가고 있어요. 물 속이라 속도가 느려 티가 안 날 뿐이지."

성규혁은 들고있던 에너지바 포장지를 옆으로 휙 던지며 말했다.

"헬기를 가동할 때마다, 경비행기를 띄울 때마다 몰려듭니다. 지금까지는 전부 수몰시키고 있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우르르 뛰쳐나오게 되지 않겠는가. 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으음...

가능성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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