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187)

여자들이 헉하며 숨소리가 가빠졌다.

"이...이걸 혼자 다 했다고요? 혼자서?"

뒤에 있던 여자가 경악에 물든 얼굴로 물었다.

씨발, 뭘 자꾸 똑같은걸 묻고 난리야.

이것들은 뭔데 사람 붙잡고 쓸데없는거나 묻고있냐.

난 끄덕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여섯사람은 서로 돌아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나와 내 뒤쪽의 시체들을 번갈아보며 연신 탄성을 내지른다.

"어떻게 혼자서 저 많은걸 다 죽였습니까?"

...아 씨발 귀찮네 점점.

"소드마스터니까."

믿던가 말던가 씨발.

그렇게 말해주곤 난 한걸음 나와있는 포니테일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뭔데."

니들 귀찮아 씨발아.

인라인 스케이트 줄줄이 타고 와서 쓸데없는거나 묻고 있고 사람 붙잡고 뭐하는거야.

여자가 말했다.

"아, 저 실은... 저 앞에 편의점 하나 털면서 요 며칠 버텼거든요. 그런데 여섯이서 먹으니까 금방 동나더라고요. 음료수나 술 같은건 좀 남아있는데..."

"그래서?"

꽤나 무뚝뚝하다.

여자는 움찔했다.

여자가 마트를 힐끗 바라보더니 말했다.

"저, 그, 그쪽이 저... 것들 다 하신건 아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도 필요한거 좀 가져갈 수 없을까 해서요..."

으음...

난 눈 앞의 여섯사람들과 마트를 힐끗 바라봤다.

여자가 말했다.

"저희가 도울 수 있는건 도와드릴게요. 같이 좀 나눠 쓰시면 안될까요?"

흐음...

마트...

저 안에 꽤나 많긴 하지.

솔직히 말해서 마트 안에 얼마나 많은 식량과 기타등등이 있는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나한테 중요한건 안에 바글바글한 것들이지.

난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럼 안에 시체만 좀 치워요. 가져가든가는 알아서 하고."

인라인 동호회 여섯명이 환해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제야 들고있던 검을 검집에 넣었다.

슈르릉- 착.

"더 볼일 있습니까?"

몸을 반쯤 돌리며 물었다.

포니테일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뇨, 고맙습니다. 마트는 저희가 정리해둘게요. 감사합니다."

"예에."

난 여섯사람을 뒤로하고 털래털래 걸어갔다.

아, 그렇지.

뒤돌아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기저귀는 웬만하면 그냥 둬요."

여자가 놀라며 날 보더니 웃었다.

"아, 저희는 기저귀 쓸 일이 없어서...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 눈빛...

혹시 내가 애아빠라고 생각한거 아니야?

...몰라 씨발.

설명하기도 귀찮다.

난 기저귀를 들고 하숙집을 향해 슬슬 걸어갔다.

뒤에서 쿠르르 하며 인라인 굴러가는 소리들이 들린다. 아마 문 앞에 시체들을 들어다 나르려 하는 거겠지.

인라인 타고는 저 문을 못 지나가.

시체들이 너무 쌓였다.

자기들 필요해서라도 알아서 정리해둘거다.

흠...

그나저나...마트라...

이제 우르르 들어있는데가 어디어디있지?

주상복합건물, 그리고...

...대형마트...

...좋아.

다음 목표는 대형마트다.

그 전에 철물점 가는 길 좀 청소해놓고.

세네집, 네다섯집 건너 한집씩 으르렁댄다.

이따금 들려오는 나직한 으르렁을 들으며, 한가로운 골목을 지나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슈퍼 앞에 저 시체들 좀 어떻게 해야겠는데.

...내가 하긴 귀찮아.

대문 열고 들어가니 마당이 한가롭다.

수현이는 어디갔지? 집에 있나?

들어보니 위에서 뭔가 재잘대는 소리가 들린다.

통통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옥탑방 쪽인것 같은데?

내 방 근처에서 뭐하는거야?

기저귀 갖다주고 올라가보지 뭐.

똑똑.

새댁 문을 두드리니 잠시 후 인기척이 들렸다.

문이 열리고, 애기 안은 유부녀가 나왔다.

"아... 안녕하세요."

"예, 여기요."

기저귀를 불쑥 내민다.

유부녀가 놀라더니 기저귀를 받아들었다.

표정이 약간 환해진 것 같은데?

"고맙습니다."

"예. 남편분 안계세요?"

"아, 네에. 샴푸가 없다고 했더니..."

"그래요. 오면 어디 가지말고 있으라고 좀 전해주세요."

그렇게 말해주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새댁 집 안을 문틈으로 슬쩍 보니 뭐가 제법 많이 들어차있다. 어디서 구했는지 간이 선반 같은데 옷도 걸려있고, 애기 장난감에, 과자와 초콜릿, 라면 따위도 제법 쌓여있었다.

아재, 열심히 하나보네.

그러고보니 오늘 아침에 반찬이 꽤 괜찮았어.

주인집에도 열심히 갖다주고 있겠지.

옥상에 가보니 여자들 셋이서 쭈그려 앉아있다.

빨랫줄 걸려있는 옥상 바닥에 나무들이...

분해해놓은 가구같은데?

"아, 오빠."

수현이가 날 발견하곤 손을 흔들어왔다.

예은이와 소은이도 날 돌아보곤 꾸벅 인사해온다.

얘들도 하도 봐서 그런지 내 몸에 피가 묻어있어도 이젠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물었다.

"어. 뭐하냐?"

"오빠 옥탑방 창문에 붙일려고. 예은이랑 소은이가 나 도와주는 중. 이거 소은이 방에 있던 옷장이야."

"그래?"

예은이와 소은이가 날 보고있다.

표정이 꽤 밝은데.

편의점에서 봤던 그 표정은 온데간데 없다.

며칠간 안정적으로 지내다 보니 꽤나 괜찮아진 모양이다. 밖에도 거리낌 없이 나와있고.

"근데 오빠 일찍왔네? 볼일은 다 봤어?"

수현이가 끙 하며 일어나더니 말했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마트 다 정리했어."

"벌써?"

"어. 좀 쉬었다가 철물점 쪽 좀 청소해놓고, 대형마트까지 깨끗하게 쓸어놔야지."

으아아아악-

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예은이와 소은이가 그쪽을 홱 돌아본다.

얼굴엔 긴장이 묻어있다.

하지만 수현이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우와... 혼자서 그렇게 막 다니면서도 안무서워?"

"뭘 무섭냐."

난 피식 웃고는 옥탑방으로 들어갔다.

"나 좀 쉰다."

"응, 점심때 부를게. 오늘 점심때 예은이 언니가 치킨카레 해준대."

오, 카레 좋지.

난 예은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주곤 옥탑방으로 들어갔다.

몸에 묻은 피를 샤워하며 씻어내곤 이부자리에 털푸덕 드러누웠다.

가속은 5회 남았다.

그런데 힘이 후달려.

현재 이 집에서 가장 도움되는 사람은 수현이다. 그 다음이 덩치 큰 아재.

덩치 아재야 성실하게 짐꾼노릇 하며 집안을 풍족하게 채워주고 있으니 데려온건 꽤나 잘한 일이다.

안그랬으면 내가 그것들을 죄다 들고 왔다갔다 해야했겠지.

수현이는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집은 거의 물샐틈이 없을 정도다.

날이 갈수록 이 집은 요새화 되고있다.

이젠 예은이와 소은이도 거들어준다니 그냥 아예 맡겨놔버리면 된다.

내가 할 일은 렙업.

빠르게 렙업해서 강해진다.

그게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다.

강해지는 과정에서 수현이가 편하게 작업할 수 있게, 아재가 물건을 열심히 나를 수 있게 길을 터주는 정도야 해줄 수 있지.

철물점을 안전하게 만들어둘려면 그 옆 미용실과 맥도날드 정도는 완전히 정리해놔야 된다.

맥도날드까지 오늘 끝낸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대형마트 레이드.

누워있다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언제까지 렙업할 수 있을까.

만렙이 몇이지?

다른 스텟들은 다 뭐하는거지?

각자 나름의 용도가 있을거다.

나는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누워있다보니 힘이 8까지 회복되었다.

흠, 좋아.

이정도면 미용실은...

그러며 일어나려는데, 똑똑 하고 노크가 들렸다.

일어나 열어보니 덩치 큰 아재다.

아침부터 열심히 다녔는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다.

"서, 선생님. 저, 기저귀 갖다주신거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으음.

꽤 기뻐보인다.

아재가 말했다.

"저 찾으셨다고요, 선생님?"

"아, 예."

난 말할려다가 옆을 힐끗 돌아봤다.

여자들 셋이 망치를 뚱땅거리며 재잘대고 있다.

...흐음...

"잠깐만요."

그러고 아재한테 오라고 손짓하고는, 여자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여자들이 날 돌아본다.

난 말했다.

"마트 가자."

여자들이 서로 돌아보며 의아해한다.

예은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나가도 되나...요?"

"괜찮아. 전부 죽였어. 그리고 거기 시체들도 누가 열심히 치우고 있고."

수현이가 눈 동그래져서 물었다.

"시체를? 누가?"

난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인라인 동호회라는데, 여섯명이야. 마트 안에거 좀 나눠쓸 수 없겠냐고 하길래 그러라고 해줬지. 걔들이 시체 치우고 있어."

여자들은 서로 돌아보며 대답할 말을 못 찾았다.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걱정 마. 거리는 안전해. 딴 사람들이 다 가져가게 둘거야? 일어나."

그러며 계단을 내려가자 여자들이 호다닥 일어나서 나를 따라왔다.

예은이와 소은이가 주인집에 들어가더니 할머니 하며 찾는다.

아마 다녀온다고 말할려는 거겠지.

"걱정 마. 금방 올게."

아랫층 마당에서 기다리니 예은이와 소은이가 집에서 나오는게 보인다.

덩치 큰 아재가 불안한듯 여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 지, 집은... 안전하겠죠...?"

수현이 아재의 등을 탁, 쳤다.

"저 창문하고 다 막아놓은거 보면 몰라요? 안 열어주면 아무도 못 들어가요. 얼마나 꽉 막아놨는데."

"아, 예."

아재가 그래도 걱정되는지 자기 집 문을 빼꼼 열고는 고개를 디밀었다.

"자기야. 나 좀 다녀올게. 나 말고 문 아무도 열어주지 마. 알았지?"

안에서 응 다녀와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확실히 목소리가 밝아졌다.

며칠 전에 비하면 정말로 장족의 발전이다.

"갑시다."

사람들 데리고 골목을 들어가는데 늙은 양아치 씹새끼 네마리가 뒤져서 길거리에 누워있다.

"...우웁."

소은이가 입을 막는다.

수현이가 말했다.

"아, 이게 이 냄새였구나. 누가 어디 근처에 똥 싸놓은줄 알았는데."

난 양아치들 시체를 바라보며 코웃음쳤다.

"그냥 병신들이야. 신경쓰지마."

"...우웁."

소은이 아무래도 토할려는 것같다.

덩치 큰 아재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제, 제가 언제 이것들 안보이게 치워두겠슴다."

...으음.

그건 좀 고맙네.

방금 한 말 꽤 맘에 든다는 뜻으로 아재의 어깨를 한번 툭, 쳐주고는 골목을 돌아 마트로 향했다.

5분쯤 걸어가자 주차장이 나왔다.

그리고, 쿠르르- 쿠르르- 하며 인라인 굴러가는 소리와, 사람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오징어 점포 쪽으로 꺾어 들어가보니 여섯명이 바닥에 주저앉아있다.

옆엔 음료수와 에너지바 포장지 따위들이 널려있다.

입구가 토해놓은 것같던 시체들이 없어졌다.

이 사람들이 치운거다.

열심히 일하고 이제 쉬는건가본데.

포니테일 여자가 우릴 발견하곤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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