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187)

가족들을 찾아야 되고, 무엇보다도 활과 석궁을 구해야 돼.

종말이 찾아 온 세상에서 살아나갈려면 어떻든 저 좀비들을 처리할 준비를 온 몸에 갖추고 있어야 된다.

...그런데...

내가 떠나면 할매나 다른 여자들은 뭐...

내가 없어지면 좀 곤란하긴 하겠지.

하지만 수현이는...

좀 아까운데.

기계공학 지식도 있고 배터리를 비롯해 여러가지를 다룰 수 있는 여자다.

현재 상황도 꽤나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고.

쓸모가 많아.

...수현이는 데리고 갈까.

그런 고민을 밥을 먹으면서 했다.

아직 고민에 대한 답을 내놓을 때는 아니다.

난 충분히 강하지 못해.

식사 후, 옥탑방에 돌아와 내 무기들을 펼쳐놔 봤다.

토마호크 두개.

대형 도끼 하나.

진검 두개.

그리고 삼단봉.

제법 모아놨네.

음... 뭘 가져가지?

검 하나를 들어 벨트에 꽂고, 보조무기로 토마호크를 반대쪽 허리에 꽂아놨다.

대형 도끼는 파괴력은 확실한데 너무 느려.

가방을 메고 내려가니 수현이가 주인집 창문에 나무를 덧대고 있다가 날 돌아봤다.

"이제 가요?"

"어. 철사랑 못이라고 했지? 딴거도 뭐 쓸만한거 있으면 갖고 올게."

"오빠."

계단을 내려가다 뒤돌아봤다.

수현이가 난간에 기대 날 보고 있었다.

"밤에 보기로 한거 잊지 마요. 조심해요."

...쌍년.

존나 따먹어주지.

피식 웃고는 계단을 내려가 하숙집을 나섰다.

자, 렙업하러 가보자.

철물점에 가기 전에 먼저 편의점에 들렀다.

카운터 옆 창고 앞에 시체들이 언덕을 이루고 있다.

이게 다 몇놈이야... 진짜 존나 죽였네.

...냄새.

시체썩는 냄새가...

무슨 상한 식초냄새 같기도 하고, 썩은 생선냄새 같기도 하고, 역겹게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난다.

난 코를 틀어막고 창고를 바라봤다.

이 창고, 꽤나 쓸만하단 말이야.

...다시 유인해볼까.

하지만... 철문이...

경첩이 벽에서 거의 뽑히다시피 되어있다.

...안돼.

저 문짝 상태 보니까 불안하다.

난 뒤돌아 멀리 철물점을 바라봤다.

철물점 자체는 별 문제가 없다.

안에 있던 두사람도 시체로 만들어놨고, 들어가서 집어오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철물점 옆 미용실이다.

주상복합건물 - 맥도날드 - 미용실 - 철물점으로 이어지는 길. 참으로 씨발스럽게도, 철물점에서부터 점점 좀비들이 많이 들어차 있다.

주상복합건물은 거의 뭐 끝판왕급이다.

아니, 대형마트가 끝판왕인가?

비슷한 것 같은데.

저기를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가 되면 별 문제 없겠지만, 그정도의 실력을 갖추기까지 갈 길이 너무 멀다.

편의점 창고는 문짝이 거덜나버려 유인책을 또 쓰기도 어렵겠고.

난감한데... 제길.

...그래.

그렇게 하자.

난 검 손잡이에 손을 얹고 편의점을 나와 도로로 걸어갔다.

도로엔 차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여길 건너가면 바로 주상복합건물이다.

나는 몸을 숙이고 차와 차 사이로 엄폐해가며 중앙선을 따라 쭉 걸어갔다.

맥도날드를 지났다.

차가 없다.

바로 옆엔 미용실.

적어도 열마리가 저 안에 들어있다.

눈만 빼꼼 내밀어 미용실을 바라보니, 디자이너로 보이는 아저씨 한명을 빼고는 직원과 손님 전부가 여자다.

이젠 직원도 손님도 아니지만.

서있는 놈만 열마리.

엎어져 있는 놈도 있겠지.

차 옆에서 미용실을 가만히 바라봤다.

대낮이라 여기서 움직이면 대번에 들킨다.

난 그저 차 옆에 엄폐하고 미용실을 바라봤다.

이따금씩 저 놈들이 고개를 돌린다.

몸을 돌릴 때도 있다.

그저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건 아닌 모양이다.

십분쯤 기다렸다.

땅에 댄 한쪽 무릎이 슬슬 아프다.

...마침내 여자 좀비 움직였다.

옆을 돌아본다.

...좋아.

가속!

[자동시전 : 가속]

난 즉시 차에서 뛰쳐나와 철물점으로 달려갔다.

미용실 안에 있던 놈들은 말 그대로 마네킹처럼 일체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철물점으로 들어서며 문을 붙잡았다.

"하아, 후우."

-띠르릉-

...!

차임이!

난 뒤돌아보며 검을 뽑아들었다.

쉬링!

제기랄, 문을 왜 잡았지?!

씨발, 이렇게 멍청할수가!

이미 차임이 있는건 요전에 겪어봤는데!

기다렸다.

또 기다렸다.

밖을 노려보며, 계속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차임 정도로는 자극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아..."

씨발.

...조심해야지.

난 문 위를 노려보곤 천천히 차임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검을 대고 줄을 쓱쓱 잘라내버렸다.

차임 씨발것.

조심스레 카운터 위에 올려놓곤 철물점을 바라봤다.

좀비 혹시 안에 들어와 있는건 아니겠지.

조심해야 된다.

항상 조심해야 돼.

즐겨봤던 좀비영화나 공포영화를 보면, 멋모르고 나대는 놈, 부주의한 놈들이 항상 물어뜯기고 찔려 죽는다.

그런 꼴이 될 순 없어.

한 번 와봤던 곳이지만, 난 경계를 늦추지 않고 검을 겨누며 한바퀴를 돌아봤다.

...바닥에 엎어진 시체 두 개가 전부다.

"...후우..."

좋아.

아무것도 없다.

철물점을 뒤져서 못과 철사, 그리고 망치와 톱 따위를 적당히 챙겼다.

철물은 무겁다.

많이 챙길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일 때문에라도 무겁게 다니면 안된다.

아디다스 백팩의 3분의 1 정도만 적당히 채운 후 등에 메고 앉았다.

아줌마와 아저씨 시체가 눈앞에 있지만, 그래도 여기가 비교적 어두워서 쉬기는 딱 좋다.

...냄새가 고약하네.

편의점에서도 그랬지만 시체썩는 냄새가 진짜...

중세시대 어디에선 시체 때문에 전염병도 돌고 그랬다고 했던것 같은데.

...병...이라.

...흐음...

다음번엔 약국을 좀 들러봐야 되겠는걸.

그나저나 냄새 씨발.

아, 시체썩는 냄새.

적응 안되네 진짜.

문 닫혀있었으면 숨막혀 뒤졌을지도 모른다.

"쯧."

코를 막고 기다리길 두시간.

...가속이 회복되었다.

가속, 3회.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철물점을 나섰다.

철물점 바로 옆이 미용실 출입구다.

유리문이 바로 코앞이다.

통유리 문과 통유리벽에서 절반은 반투명한 코팅지가 붙어있고, 안이 들여다 보이는건 위쪽 절반이다.

몸을 최대한 굽히고, 가방을 내려놨다.

그리고 검을 천천히 뽑아들었다.

슈릉-

둥근 아치형의 문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당겼다.

문이 서서히 밖으로 열린다.

나를 보는 놈이 없어야 돼.

없어야 돼.

없어라!

검을 쥔 채, 온 신경을 다 써 문을 계속 당겼다.

디잉 하는 느낌과 함께 문이 완전히 열렸다.

"...하아..."

소리내지 않게 숨을 가다듬었다.

밖에서 봤을땐 손님 대부분이 아줌마들이었고, 젊은 여자들은 직원들이었다.

꽤나 큰 미용실이다.

...토마호크...

꺼내둘까.

왼손엔 검.

오른손엔 토마호크를 움켜쥐었다.

난 숨을 힘껏 들이키곤, 미용실로 뛰어들었다.

"흡!"

입구!

바로 코앞에 좀비!

난 힘껏 토마호크를 내리찍었다.

퍼걱!

"크롸락?!"

대가리 찍힌 놈이 쓰러지려는 것과 동시에, 모든 좀비들이 나를 홱 돌아봤다.

가속!

[자동시전 : 가속]

"카-아--아---"

입이 서서히 벌어진다.

팔이 서서히 올라온다.

잡고있던 토마호크를 놔버렸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좀비들에게, 두 손으로 검을 움켜쥐고 뛰어들었다.

퍼걱!

아줌마, 대가리 하나!

바로 옆에 있던 여직원!

퍼걱!

대가리 둘!

바닥에서 일어나려는 아줌마!

머리에 꼴사납게 덮어쓰고, 파마중이었군!

퍼걱!

대가리 셋!

"--아-롸락!"

가속!

[자동시전 : 가속]

거울 쳐다보고 있는 아줌마!

퍼걱!

대가리 넷!

핏방울이 사방으로 슬로우 모션이 되어 불꽃놀이처럼 퍼져나가는 공간.

너무나 느릿해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그 공간 속에서, 나는 검을 거두고 밖으로 내달렸다.

가방을 움켜쥐고 일어서려는 찰나,

"--카-아악!"

씨발, 가속!

[자동시전 : 가속]

"--롸---아----"

난 가방을 멜 생각도 못하고 든 채 힘껏 내달렸다.

차들 사이로 즉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부리나케 앞으로 달려나갔다.

제기랄, 허리 숙이고 뛰는거, 너무 힘들어!

허리 나갈 것같다, 씨발!

등 뒤에서 괴성이 들린다.

"--아-롸롹!"

챙그랑!

유리 박살나는 소리.

난 아랑곳 없이 앞으로, 또 옆으로, 차와 차 사이를 넘나들며 뛰었다.

아반떼, 제네시스, 5톤 트럭!

[레벨이 5 올랐습니다.]

우르르, 발소리.

으르렁대는 포효.

등 뒤에서 울려퍼진다.

그러나, 멀어진다.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멀어진다.

놈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쿠쾅쾅, 탕탕! 하며 차에 부딪히고 차에 뛰어드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난 이미 편의점 근처까지 도달해 있었다.

"하아, 하아! 헉! 하아!"

씨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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