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187)

[00 : 00 : 57]

난 방바닥에 드러누워 눈 앞의 메세지창을 쳐다보고 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60이었다.

3초가 지나 57이 되었다.

아, 이제 56이다.

이게 시간을 가리킨다는걸 처음 깨달았을 때는 10살 무렵이었다.

왜냐하면 시간을 보는 법을 그때쯤 배웠으니까.

내 또래중에선 나보다 먼저 시간 보는 법을 깨우친 녀석도 있긴 했지만, 뭐.

난 그때쯤 배웠다.

[131,306 : 32 : 04]

이게 그때 봤던 숫자다.

13만 1천 306시간.

시간을 배운 10살 무렵에서야 이게 시간을 뜻하는 숫자이며, 카운트다운 되고있음을 깨달았다.

언제부터 이게 보였느냐고 정신과 의사가 내게 물어본 일이 있다. 7살땐가 8살땐가.

아마 태어났을 때부터 보였을 거라고 얘기했더니 내게 약을 줬다.

먹으면 존나 몽롱해지는 약을.

그 약을 먹기 싫어서 이젠 안 보인다고 거짓말 했더니 부모님이 기뻐하셨고, 할배 할매도 기뻐했으며, 정신과 의사도 흐뭇해 했다.

이후로 메세지창이 보인다는 소릴 누구에게도 한 일이 없다.

메세지창이 보인다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정신과를 드나들었으므로 마냥 나쁘기만 했는가 하면?

꼭 그렇진 않다.

이게 시간만 카운트다운 되는건 아니었으니까.

이따금 학교에서 장난기 심한 놈이 내 뒤에서 날 밀치려 들거나 발을 걸거나 하는 장난을 칠 때면 메세지창이 새로이 눈 앞에 나타나곤 했다.

[뒤에서 누군가 당신을 밀치려 합니다.]

그걸 보고 쓱 피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별명이 닌자였다.

메세지창덕분에 학교에서 나대고 싶은 놈들이 싸움을 걸어와도 져본 일은 없다만, 싸움은 영 취향에 안 맞는다.

이겨도 메세지가 알려주니 이긴거지, 내가 싸움을 잘해서 이긴것도 아니고, 이겨도 져도 기분은 더럽고, 여러가지로 싸움은 영 내 취향이 아니다.

난 그냥 게임하고 만화나 소설같은거나 보고 즐기면서 사는게 좋단 말이지.

흠......

중학교땐가, 초딩 6 때였나?

이 카운트다운이 언제부터 시작해서 언제 끝날지를 계산해본 일이 있었다.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게 내 눈 앞에 떠 있었으니, 그냥 태어났을 때부터였다고 치고.

태어난 시점에서 21만 9천 시간.

내가 만으로 25세가 되는 해에 정확히 0으로 떨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를 나오고 재수하고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를 제대하면서 점점 25세가 다가왔다.

시간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점점 더 신경쓰였다.

그래서 지난달부터는 복학 기다리면서 하던 알바도 관뒀다.

0이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건가.

혹시, 내 수명인건가?

나... 죽나?

그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알바같은걸 하고있을 수 있었겠냐고.

그런 이유로, 난 내 대학교 근처에 얻어놓은 고시원 침대 위에 누워 메세지를 보고 있다.

[00 : 00 : 06]

6초 남았다.

0초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죽는걸까?

[00 : 00 : 03]

3초 남았다.

죽는다면...

아프지 않게 죽었으면 좋겠네.

2초.

1초.

[00 : 00 : 00]

카운트다운이 끝났다.

시간창이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메세지가 떴다.

[선택받은 자의 보호가 끝났습니다.]

...?

선택받은 자?

어. 메세지가 사라졌다.

새로운 메세지가 떴다.

[종말이 시작되었습니다.]

......뭐라고?

......종말?!

[종말이 시작되었습니다.]

?!

조...

종말?!

난 눈을 부릅뜨고 메세지를 쳐다봤다.

도대체 내가 뭘 보고있는지 모르겠다.

종말이라고?

그 종말?!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그거?!

눈으로는 보고 이해했지만, 머리로는 언듯 납득이 되질 않는다.

내 고시원 좁은 방, 침대.

내가 누워 있는 침대.

침대 옆엔 창문.

새가 날아다니고, 평화롭게 지저귀는데?

차들은 차선 잘 지키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태연한, 혹은 무료한 얼굴로 그저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종말이라고?

빨간 불에 섰다가, 파란 불에 출발하는 차들을 창문 너머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웬지 허탈해진다.

......장난하나......

난 털썩, 드러누웠다.

"......"

방금 전까지 당황했던 심정이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아니, 차선 지키면서, 신호등 잘 보고 다니는 종말이 세상에 어디있냐고.

......아니.

내가 왜 이러지?

뇌가 맛탱이가 가버렸나.

그럴리가 없잖아.

왜 갑자기 현실도피냐고.

지금까지, 여지껏 평생을 살면서 메세지가 나한테 한 번이라도 거짓말한 일이 있었냐고!

난 벌떡 일어나 폰을 찾았다.

제기랄, 꼭 이럴땐 어디다 놔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침대 주위를 뒤적거리다 노트북 놔둔 책상을 살펴보다 옷 쟁여놓은 상자도 뒤적거렸다.

없다!

"아, 씨발! 어딨는거야!"

옆방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고시원은 방음이 보장되는 시설이 아니다.

그래서 속삭이며 외쳤다.

방 안을 세바퀴쯤 뱅뱅 돈 이후에, 나는 노트북 뒤에 가려져 있던 내 폰을 찾아냈다.

꼭 이런건 씨발 찾아봤던 데서 나오더라.

일단 엄마한테 전화했다.

과일 파느라 바쁘나?

가게에 손님이 많나?

젠장! 안 받잖아!

아버지한테 전화해봤다.

안 받아!

과일 배달 하고있나? 운전중인가?

좀 받으라고, 좀!

할 수 없이 씨발년에게 전화했다.

[씨발년]

통화버튼을 누르자 몇 초 안돼서 씨발년이 내 전화를 받았다.

"왜 오빠새끼야. 왜 전화는 하고 지랄이야, 드디어 고자됐냐?"

아 이 씨발년이 받자마자.

여보세요는 어디갔냐고.

뉘집 딸년인지 씨발.

녹음해놨다가 쌍년 시집갈때 결혼식장에서 대형 스피커로 틀어버릴라.

...참자. 후우.

"야, 어디냐. 집이냐?"

"니가 알아서 뭐하게요, 이 새끼야. 전화 왜 했냐고?"

이 웬수년이 진짜.

딱 잡고 궁디를 씨발 오백대를 줘 차버려 버릇을 고쳐놔야지 씨발.

"아, 이 씨발년아. 질문이 가면 답변이 와야할거 아니야. 집이냐고!"

"친구랑 놀러나왔다. 아, 감사합니다. 야 오빠새끼야, 떡볶이 나왔어. 왜 전화했는지 말 안하면 끊는다."

친구랑 떡볶이?

......별 일 없는건가?

"엄마하고 아버지는? 괜찮으셔?"

"아, 몰라 이 새끼야! 가게에 있겠지! 끊어!"

틱.

전화가 끊겼다.

역시 씨발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하아..."

난 전화를 내려놓곤 창 밖을 내다봤다.

......진짜 괜찮은건가?

메세지는 진작에 사라졌다.

종말이 시작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뜻이지......?

무슨 종말......?

"......안 되겠다."

메세지가 나한테 거짓말 했다고는 도저히 못 믿겠다.

25년 평생을 살면서 나한테 온갖걸 다 보여줬지만, 그 중 단 한번도 거짓이거나 허언이었던 적은 없었다.

평생을 나한테 옳은 메세지만 보여주다가,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마자 구라를 친다?

그럴리가.

그럴리 없다.

난 서둘러 청바지를 주워입고 가방을 메고 고시원을 나섰다.

방 안에 있는건 복학할 때 쓸 교재와 컵라면, 생수 정도가 전부다.

저런거 그냥 놔둬도 도둑 들 일은 없겠지.

내 최애 아디다스 백팩.

안에 든 건 지갑 뿐이지만 이 가방만큼은 어디 놔두고 다닌 일이 없다.

아무것도 든 거 없이 헐렁하고 가벼운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계단을 토토토 내려갔다.

고시원 앞 도로.

...버스?

...아니.

"택시!"

난 저 위에 주차되어 있던 택시에 손을 들어보이며 오르막을 올랐다.

"어서오세요. 어디까지 갈까요?"

택시에 타자 아재 기사가 친절하게 물어온다.

집 주소를 알려주자 택시가 출발했다.

창 밖을 내다본다.

내 고시원 건물과 편의점, 그리고 아파트로 이어지는 골목이 여유롭게 지나갔다.

......종말이라고?

진짜?

차들은 차선을 지키고, 건너편 삼겹살집엔 때늦은 점심을 즐기는 커플들이 웃으며 고기를 쌈싸먹고 있는데?

그 때였다.

메세지가 눈 앞에 나타났다.

[선택받은 자의 각성을 위한 튜토리얼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튜...

튜토리얼?!

뭐......

뭔데 씨발.

뭔데?!

난 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택시는 이제 막 주유소 쪽으로 꺾어들어가며 큰 도로로 들어가는 중이다.

차들은 차선 잘 지키고, 빨간 신호받은 차는 서있고, 파란 신호받은 우리쪽은 차들이 우르르 이동하고 있다.

뭐가 튜토리얼인데?

난 지금 택시 안이라고!

"...차가 왜 밀리지? 밀릴 시간이 아닌데..."

택시 기사가 중얼거리더니 라디오를 켰다.

교통방송이다.

"-래서, 사연자분께서 보내주신 사연은 재밌게 읽어봤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게 사는 분들의 사연을 읽으면 마음이 참 푸근해진다고 해야할까요... 아, 지금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아, 아저씨.

소리 좀 너무 큰데, 줄이지.

"병원에서 환자가 탈출했다는군요. 현재 환각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인도와 도로 상관 없이 뛰어다니고 있답니다. 그래서 현재 서울 일부 구간이 정체되고 있네요."

...아니, 줄이지 마. 아저씨.

"현재 경찰이 출동한 상황입니다. 우리 교통방송에서 지속적으로 운전자 여러분께 추가적인 상황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사연 읽어보겠습니다."

......환각상태의 환자......

난 멀리 앞을 내다봤다.

차가 제법 밀려있다.

미친놈이 뛰어다니는건 일단 안 보인다.

......이 근처는 아닌가본데.

라디오 진행자는 재미없는 사연을 읽어주며 지들끼리 낄낄거리고 있다.

난 폰을 들어봤다.

튜토리얼이 시작됐다고 했다.

뭔가 더 있다.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를 켜봤다.

실시간 뉴스 채널.

뭐 없나?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광주에서 심각한 폭력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취객으로 추측되는 50대 남성이 행인을 붙잡고 손목을 물어뜯었다고 하는데요,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경찰은 마약 검사를-"

......손목을 물어뜯었다고?

다른 뉴스채널.

"이어서 부산 소식입니다. 해운대의 한 카페에서 20대 여성이 남성의 어깨를 깨무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사건 직후 여성은 2층에서 뛰어내렸는데요, 놀랍게도 여성은 아무런 부상도 없이 현장에서 도주했다고 합니다. 현재 경찰이 출동해-"

......물......

물었다고......?

자......

잠깐만......

유튜브를 끄고 포털 뉴스탭으로 들어가봤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온갖 뉴스들이 주르륵 나열된다.

다이어트 뉴스, 연예인 뉴스, 정치 뉴스 따위를 주르륵 내리다 보니, 눈에 띄는게 있었다.

-극도로 높은 감염성을 보이는 신종 전염병 발생.

...2초 전에 업데이트 된 뉴스다.

뉴스를 눌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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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버스 정류소에서 노숙자로 추정되는 60대 여성이 버스를 기다리던 20대 여성을 공격.

피해자는 가해자와 같은 증상을 보이며 다른 사람을 덮쳤음.

현재 사람들 대피중.

경찰과 구급요원들 현재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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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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