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그러니까…."
참을 수 있다.
"또 그렇게 억지로 당해보고 싶다고… 변… 바보야……."
참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네가 왜?"
참아야한다.
가능한 만큼.
"꼭…. 설명해야 해…?"
"이해가 안 되잖아."
폭우가 내리기 시작한 바깥.
나무 냄새가 가득 들어찬 검술 도장에 갇힌 남녀.
일련의 상황에 흥분해, 이상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주의해서 나쁠 건 없다….
…라고.
억지로 그리 생각하려 했지만.
내 머리는 이미 성욕으로 가득 차올라 있었다.
내 손에 머리를 붙잡힌 채 열심히 자지를 빨아대는 카엔.
머리맡에 있던 베개를 가져와 얼굴을 가린 채 마구 신음소리를 질러댔던 카엔.
실신한 채 엎드려서 쑤셔박히던 와중, 몇 번이고 스팽킹 당하며 움찔움찔 거리던 카엔.
절대 그녀의 앞에서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기억들 모두가, 눈앞에서 지그시 날 바라보는 카엔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귀축 야설 작가 카엔이 아닌,
마조히스트 카엔의 얼굴 위로 말이다.
"이해라니? 난 그냥…. 너랑, 그, 이렇게, 저렇게…."
"그 야설, 절대 네가 썼을 리 없으니까."
"다, 당연하지! 애시당초 네가 가지고 있던 걸 내가 우연히…."
"네 필체가 엉망진창이란 말을 성녀에게 전해 들었거든."
입술을 막은 손바닥 너머로 느껴지는 카엔의 따스한 뺨.
그것이 조금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엉망은 아니야……!"
"얼마나 못 쓰는지는 상관없어. 그 노트에 적혀있던 것만큼 잘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니까."
카엔이 버럭 화내는 걸 잘라낸 나는, 이 와중에 슬쩍 벨트를 풀어내려 드는 그녀의 손을 막아 세웠다.
하지만 확실히 조금 전보다 자제력이 약해져 있는 게 느껴졌다.
조금 전이었다면 아예 옆으로 밀어버렸을 텐데, 지금은 고작 카엔의 손을 꽉 쥔 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게 전부였다.
카엔은 야설 작가일 수 없다.
그러니, 절대 카엔을 또 강간해선 안 된다.
이 허술한 제어 장치가 방금 전 카엔의 발언으로 완전히 고장 나버렸기 때문이리라.
카엔은 야설 작가일 수 없다.
그러나, 카엔은 다시 한 번 어제처럼 강간당하고 싶어한다.
지금의 상태는 이것.
이렇게 되어버리면 이야기가 사뭇 달라진다.
'도대체 왜 지금껏 꾹 참고 있었던 거지?' 라고.
발정제에 잡아먹혀 엄한 사람에게 실수하지 않으려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충동적인 욕망을 모조리, 마음껏 쏟아내도 될만한 사람이 앞에 있는데.
병신처럼 꾹 참고만 있었던 게 되니까.
"…매일매일 노력해도 안 고쳐지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어쨌든, 네가 쓴 건 절대 아니란 뜻이잖아."
여전히 입을 가린 내 손에다가 끄덕, 얼굴을 비비는 카엔.
"카엔. 너도 기억하고 있겠지만, 난 네가 작가일거라 생각하고 저지른 거야."
"…바보."
"맞아. 고작 네가 내 방에 찾아온 것 가지고 '카엔이 작가일까?' 라고 생각할 만큼 멍청해."
"……."
"네가 꽉 끌어안아 달라고 한 것 가지고 베개에 얼굴을 짓누르고 실신할 때까지 강간해버릴 만큼 병신이고."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던 성욕이 점점 목소리에 이리저리 뒤섞여 새어나왔다.
혼란스럽다.
하지만 카엔은 그런 내 목소리를 듣고도 여전히 내게 꼭 들러붙은 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루크."
조심스럽게.
내 손바닥에 가로막힌 입술을 꼼지락 꼼지락 여닫을 뿐이다.
"그래도, 하고 싶어…."
무엇을.
반사적으로 새어나가려던 질문을 꿀꺽 삼켰다.
방금 전 꽉 붙잡아 멈춰 세웠던 손끝으로 틱, 틱, 바지를 건드리고 있으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나, 나도 지금 내가 변태 같은 거 잘 알아…."
내 침묵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결국 내 손바닥에서 입술을 떼어내곤 횡설수설 말을 내뱉기 시작한 카엔.
"귀족씩이나 되어서 그런 부끄러운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니, 나도 평생 몰랐다가 어제 처음 알았단 말야…."
"내, 내가 이 말을 네 앞에서 꺼내기까지 얼마나 고민했는 줄 알아?"
"너한테 강간당하며 기분 좋았다고 솔직히 말할 수도 없고, 그냥 숨긴 채로 지내자니 어제 있었던 일이 자꾸 생각나서 미칠 것 같고."
"어젯밤만 해도 너랑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잔뜩…. 으으……. 이런 얘길 하려던 게 아닌데…."
도장 안의 등이 어슴프레해서 일까.
아니면 바깥에서 장대비가 내리는 탓에 먹구름이 잔뜩 껴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도를 넘은 흥분에 이성이 날아가기 일보 직전이라 그런 걸까.
바로 눈앞에 있는 카엔의 얼굴이 이상하리만치 희미하게 보였으나,
그럼에도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다는 것 정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쭉 그래 왔잖아. 그 이상한 야설, 내가 쓴 글인 줄 알고 그랬다고…."
"……."
"네가 써놓고 왜 그러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그러니까아…."
말끝을 흐리던 카엔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 이상한 핑계 대지 않아도 나한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대로 해도 돼. 야설… 에 나와 있는 거."
"……."
"나도…… 엄청 기분 좋았으니까…."
조금 전까지의 쭈뼛 쭈뼛하는 느낌을 넘어, 아예 땅바닥 밑으로 기어들어가겠다는 듯한 목소리.
"해, 해주세요? 아마 주인공이라면 그렇게 말하……."
****
"웁?! 츄읍… 하아…! 으읍……!"
숨막힐 것 같은 열기로 가득 들어찬 입속.
나는 이대로 가다간 질식할지도 모르겠단 생각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말캉말캉 축축하게 물든 무언가가 혀끝에 끊임없이 얽혔다.
그리고 카엔을 향해 뻗은 손아귀 안에선 땀에 잔뜩 젖은 털 같은 게 만져지지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위치로 봐선 아마 머리카락인 듯하다.
아니면 뭐, 꼬리의 끄트머리일지도 모르고.
"푸하아…! 학……. 하…. 루크, 숨 막히니까, 잠깐만, 쉬어…."
언제 이렇게 된 거지.
침투성이가 된 입술을 떼어내자 바닥에 드러누운 채 혀를 내빼고 헥헥 숨을 내쉬는 카엔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녀는 이미 어느 정도 만족한 듯 몽롱한 미소를 띠며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꼴깍, 꼴깍, 꼴깍
"헤엑… 헤에……. 목구멍에, 침이, 가득……."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카엔이 내 위에 걸터앉아 있었을 텐데.
조금 전에 흥분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 때와 똑같이 몸을 일으켜 카엔을 바닥에 눕혀버린 걸까?
…모르겠다.
저번처럼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서.
혀를 따라 이어지는 반짝이는 실타래들을 바라보던 나는, 이미 단추 몇 개가 뜯어진 카엔의 제복을 막무가내로 열어젖혔다.
"……! 푸, 풀어! 바보야! 계속 뜯으려 하지 말고!"
카엔은 그리 말하면서도 내 손을 막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픽, 튕겨오른 단추가 내 몸에 부딪힌 뒤 바닥으로 사뿐사뿐 떨어져 앙증맞은 소리를 냈다.
다음으론 활짝 젖혀진 제복 안쪽으로 드러난 셔츠.
카엔의 새카만 묵빛의 머리카락과 잘 어울리는 하얀 셔츠 또한, 단추와 단추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막무가내로 뜯어냈다.
당황한 카엔은 밑에서부터 열심히 단추를 풀어내며 올라왔으나, 그보다는 내가 훨씬 더 빨랐다.
결국 카엔이 지킨 것은 셔츠 단추 3개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전부 엉망진창으로 뜯어진 상태.
말로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제 몰골과 나를 번갈아 보며 꼴깍꼴깍 군침을 삼켜대는 카엔 탓에,
머리가 과열되다 못해 새까맣게 타버릴 것 같다.
"힉…!"
나는 먼저 제복 속 카엔의 아담한 가슴부터 움켜쥐었다.
크기보다는 예쁜 모양이 자랑인 젖가슴이 내 손안에서 마구잡이로 모양을 바꿔나갔다.
저번엔 어떻게 했었더라.
어딜 어떻게 건드려야 좋아했더라.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았다.
이미 탱탱하게 솟은 카엔의 조그마한 젖꼭지를 꾸욱 비틀며,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으극…. 으……."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이곳에 없는 베개대신 제 양팔로 열심히 얼굴을 가리려 드는 카엔.
저건 습관인 걸까.
어쨌든 반응이 좋다.
의외로 젖꼭지가 약하구나.
아니면, 내게 만져지면 어디든지 좋은 걸지도.
"……."
어디든지, 라.
벌써부터 이상한 숨소리를 내뱉는 카엔을 보고 있으려니, 음습한 궁금증이 차오른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게….
도대체 어디까지의 의미일지.
"히얏……?!"
이미 속살을 드러낸 상체.
그 허리에 예쁘게 달라붙은 바지춤에 손가락을 걸자, 곧장 카엔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잠깐 아직 거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쑥, 바지와 팬티 사이로 침입한 내 손가락이 카엔의 소중한 곳을 꾸욱 짓누른 직후의 일이었다.
"……."
꾹.
꾹.
그리고, 팬티 위로 손가락을 움직이던 중 맞닿은 콩알처럼 조그맣게 튀어나온 부위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처음 만져본다만, 들은 대로라면 아마 이곳이 클리토리스일 것이다.
팬티에서 살짝 손가락을 떼어낼 때마다 끈적하게 늘어지는 이것은,
내게 덮쳐진 카엔이 변변찮은 애무조차 없이 벌써부터 잔뜩 애액을 내고 있단 증거일테고.
"……. ……."
신기한 일이었다.
내 손가락이 이토록 요령없이 거칠게 움직이고 있는데도,
이런저런 소리를 내느라 바빴던 카엔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반응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응은 격하다고 보는 게 맞겠지.
손 끝이 클리토리스에 스칠 때마다 움찔움찔 튀어 오르는 허리만 봐도, 지금 그녀가 어떤 상태에 빠져 있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카엔."
"……."
목소리로 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양팔로 눈을 가린 카엔은 꽉 깨문 입가로 침을 주륵 흘리며, 무릎을 열심히 오므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아마 기분 좋다는 뜻일 것이다.
그 탓에 카엔의 가랑이 사이에 들어가 있던 손이 그녀의 허벅지에 꽉 조이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손을 움직이는 데엔 별문제 되지 않았다.
"계속 목소리 참을 거야?"
"……."
"창피해서 그래?"
"……."
수치심을 살살 건드리는 질문.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지금까지 잔뜩 부끄러운 소리를 늘어놓고도 아직 창피할 만한 단어가 남았나.
평소 어린 폭군처럼 굴더니 며칠 새 이런 꼴이 되어 부끄러운 탓에 그런 거겠지.
대충 넘겨짚은 나는 계속해서 손가락을 집요하게 움직였다.
"~~……."
처음이긴 했지만 그래도 요령이 생기자 금방 어떻게 손가락을 움직여야 할지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나 반응을 살펴보니 카엔은 굳이 균열 사이를 꾸욱 짓눌러주는 것보단, 닿을 듯 말듯 클리토리스를 애태우는 걸 훨씬 좋아하는 모양이다.
내게 거칠게 대해지는 것 말고 이런 방식으로도 느끼는구나.
점차 카엔의 목구멍에서 섞여나오는 쥐어짜는 듯한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방해되는 바지를 벗겨 내 도장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힉……. 으극………."
마침 허리도 들어 올리고 있겠다, 카엔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내 손에 바지를 벗겨지고 말았다.
꽁꽁 숨기고 있던 새하얀 팬티는 이미 애액으로 잔뜩 얼룩져 옅은 회색에 가까운 색으로 물든 상태다.
혹시 이미 몇 번인가 가버린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이런 경험이 없다보니 확신하진 못했다.
"응……. 으읏… 오………."
처음부터 끝까지 바들바들 떨기만 하던데, 설마 그때마다 절정했을리는 없고.
그 중 특히나 반응이 좋을 때마다 가버렸다고 짐작하더라도, 내겐 아직 그걸 구별할만한 눈썰미가 없으니까.
"~~………?!"
다시 애액으로 푹 젖은 손 끝이 클리토리스 위를 몇 번 스치자, 카엔은 전기라도 통한 듯 허리를 튕겨대며 바들바들 떨었다.
동시에 조용하게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무릎이 서로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럴리는 없지만, 어째 이대로 카엔을 계속 몰아붙였다간 쾌락에 잠겨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래. 고향에 있을 때 친구들에게 주워들은 지식이긴 하나, 여자는 잠깐 쉬게 해줘야 할 때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좀 의식이 돌아와 괜찮긴 해도, 나중에 또 이성이 훅 날아가게 되면 단편적인 기억만 남을 정도로 카엔을 몰아붙일지도 모른다.
온전히 내 의지대로 카엔을 괴롭힐 수 있게 되기 전까진 조금 자제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처음보다 카엔의 팬티에 습기가 더욱 흥건해진 것을 느낀 나는, 식은땀이 잔뜩 배어 나온 그녀의 허벅지에 끈적해진 손가락을 닦으며 몸을 낮추었다.
"…괜찮아?"
의미없는 질문이었다.
딱 봐도 괜찮지 않은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해봐야 좋은 답이 돌아오진 않을 테니까.
그냥 저번과 같은 이유의 자기만족일 뿐이다.
하지만 상대는 카엔.
이제 우리 사이에 이 정도 짓궂음 정돈 괜찮으리라 여겼다.
누가 갑인지는 조금 헷갈리지만….
그래도 먼저 카엔의 본심을 실토하게 한 내가 갑이지 않을까?
"후……. 후……."
카엔은 여전히 대답 대신 가쁜 숨만 내쉬었다.
주룩주룩 내리는 봄비 때문에 날씨가 쌀쌀해진 탓인지, 어째 카엔의 입 앞에 뽀얀 김이 서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털썩, 힘겹게 들어올리고 있던 허리가 바닥에 닿는 것을 시작으로, 카엔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팔을 머뭇머뭇 치우기 시작했다.
뺨부터 콧등까지 이어진 붉은 홍조.
잠깐새 촉촉함을 잊고 말라가기 시작한 입술.
그 위로 질척질척한 욕정으로 가득한 연보라빛 눈동자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 냐고?"
아직까지도 가슴을 들썩이며 가쁜 숨을 내쉬는 카엔.
"진짜… 바보……."
평민이랑 변태는 어디로 갔는지, 그것들만 쏙 빼놓고 말한 카엔은 다시 팔로 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잖아…. 야설에 쓰여 있는 것처럼."
꼴깍, 침을 삼키는 소리.
"저, 저항하고, 싫어하는데 강제로 한다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