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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야설을 주웠다-21화 (2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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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일이 이렇게 흘러갔지, 라는 당황스러움과는 별개로.

다행히 아직 내 이성은 멀쩡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카엔에게 처음 펠라치오를 받았을 때도, 카엔의 자그마한 몸을 뒤에서 꽉 끌어안아 주었을 때도.

조그마한 자제력도 없이 곧장 달려들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 시한폭탄 같은 몸에 손을 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지.

가슴을 만지는 것만으론 만족하지 못하고, 유즈가 허락하지 않은 곳까지 강제로 탐하려 할 게 뻔했다.

저런 가벼운 옷차림 따윈, 내가 힘을 주어 잡아당기는 것만으로 손쉽게 찢어버릴 수 있으니까.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지금은 유즈가 작가라는 오해를 하고 있지 않다만, 과연 내 본능만 남았을 때도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진 의문이었다.

어젯밤 카엔을 작가라 생각하며 대한 뒤 이성이 돌아왔을 때, 그 어이없는 사고 흐름에 경악하지 않았던가.

공동 집필… 이라든가.

그따위의 핑계를 대며 유즈를 몰아붙일지도 모른다.

정작 노트에 적혀있던 필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았는데도.

그나마 카엔은 정말 작가였고 강간 페티쉬를 가지고 있었다는 우연이 겹쳤기에 좋은 결과로 이어졌지만.

유즈는?

아직 이성이 남아있는 지금, 유즈를 설득해 이 위험한 짓을 멈춰야 한다.

조금 뒤 새카만 재가 되어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안 됩니다."

"괜찮아."

"제가 안 괜찮습니다."

"내가 괜찮아."

이어지지 않는 대화가 허공을 맴돈다.

흥분한 제가 유즈 님을 개처럼 박아대면 어떡합니까, 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유즈 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예의 없어질 겁니다."

"그런 사소한 문제 정돈 상관없어."

"…그냥 가볍게 가슴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 힘을 담아 꽉 짓누를지도 모르고요."

"마음대로 해."

"가슴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곳까지 손을 뻗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일반인도 아니고. 너한테 제압당할 것 같진 않은데."

네가 예의 없고 거칠어지는 것보다 검증이 중요하다는 태도.

이 가슴을 마음껏 쥐어짜도 상관없다는 허락.

내가 고작 너한테 제압당하겠느냐, 라는 자신감.

유즈는 자그마한 비웃음 하나 없이 무뚝뚝한 표정 그대로 입술을 달싹였다.

"피곤하니까. 빨리해."

"……."

혀를 꾹 깨물었다.

아까 유즈가 스스로 가슴을 만질 때부터 든 생각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던 탓이다.

카엔을 덮치고 마음껏 자궁을 찍어 눌렀을 때도 정확히 이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내 의지와 달리, 시선은 자꾸만 살짝 구겨진 유즈의 가슴골로 향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살짝 가슴을 내밀어 주는 유즈.

아무래도 가슴을 만지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만약 카엔에게 잔뜩 성욕을 풀지 않았더라면 벌써 저 첨단을 꾹, 꼬집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껏 핥아 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기엔, 그 전에 유즈에게 타죽을 것 같고.

"그럼, 하나만 약속해 주세요."

"말해."

"제가 선을 넘으면, 유즈 님이 적절하게 컨트롤 해 주시기로."

"…그래."

짧고 간결한 대답.

이것으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두었다.

이러면 잿더미가 아니라 어디 화상을 입는 정도로 끝낼 수 있겠지.

어차피 성녀를 찾아가면 모두 치료받을 수 있으니, 아무래도 목숨을 붙여두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실례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나게 유즈의 몸을 즐기는 것은 금물이다.

유즈는 흥분했을 때 내가 어떤 식으로 이성을 잃는지 확인하고 싶어하긴 하지만, 말마따나 이성을 잃게 되면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지 걱정이니 말이다.

혹시 모르니 최대한 침착하자.

가능하다면 이성을 잃은 '척' 하는 게 최선.

후, 떨리는 한숨과 함께 약물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나는, 조심스레 유즈를 향해 손을 뻗었다.

"……."

가장 먼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부드러운 촉감이 손끝에 닿는다.

아직은 젖가슴을 쥐고 있다기보단, 그걸 둘러싸고 있는 옷을 손끝으로 매만지는 느낌.

벌써부터 '이건 좀 위험할 것 같은데' 라고 뇌가 경고를 보냈으나,

당황스러운 내 마음과 달리 유즈의 가슴에 닿은 손가락은 조금씩 그녀의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위에서, 아래로.

양옆에서, 안쪽으로.

육체가 먼저 움직이고 나서야 의식이 뒤늦게 따라붙었다.

"아, 죄, 죄송합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유즈의 옷에 당황스러울 만큼 거칠게 짓눌린 자국이 남는다.

암막 커튼이 쳐져 있는 연구동.

그 안을 희미한 푸른 불꽃으로만 가득 채웠기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살짝 짓눌렀을 뿐인데,

찰나 동안 옷 위에 생겨났던 그림자 크기는 마치 내가 유즈의 가슴을 힘껏 쥐어짰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커다랬다.

"죄송할 거 없어. 계속해."

"……네."

언제나의 차가운 목소리로 용서하는 유즈.

일단 여기까진 괜찮다는 뜻이구나.

침착하자. 제발.

나는 속으로 자기 세뇌를 마친 뒤, 다시 한 번 유즈의 가슴을 부드럽게 짓이겼다.

"……."

다시 한 번 유즈의 가슴 위로 거친 그림자들이 생겨나고.

유즈의 젖가슴을 쥔 내가 무언가 익숙하고도 멍한 감각에 푹 빠져 헤엄치고 있던 와중.

"루크."

유즈 특유의 딱딱한 목소리가 귓가를 채웠다.

"신경 쓰지 말고 조금 더 세게 해도 괜찮아."

"……."

여인이 함부로 꺼내선 안 될 문장을 차곡차곡 담아서.

"…그, 혹시 모르니까 천천히 강도를 올리겠습니다."

"왜?"

"왜… 라뇨."

"흥분하려면 이런 가벼운 자극은 의미 없잖아."

불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강하게 했다… 간…?"

사르륵, 아름답게 흘러내리는 잿빛 머리카락.

거기에 잠시 시선을 뺏긴 순간, 유즈의 조그마한 손이 내 손등을 단단히 붙잡았다.

몇 시간 전 카엔의 손톱때문에 생긴 상처가 아릿했다.

"이렇게."

"유즈 님, 잠깐…."

황급히 내뱉어 보았지만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동시에 유즈의 가슴을 쥐고 있던 손가락에서 모조리 힘을 뺐으나,

그 또한 큰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유즈가 제 손가락을 꾹 짓누르면 자연스레 내 손가락도 움직이게 될 테니까.

손가락을 쫙 펴고 저항하는 선택지도 있었다만.

어째서인지 그 선택지는 고르지 못했다.

결국 유즈에게 제압된 손가락이 살결을 깊숙이 파고든다.

이렇게 강하게 짓눌러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사고가 정지된 듯 손가락 끝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러나 양손 가득 부드러운 감촉으로 가득 찼단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 정도까진 괜찮아. 안 아파."

"……."

"여기서 더 세게 짓누르면 아프긴 한데, 일단은 참아볼게. 검증이 우선이니까."

"……."

잠잠하게 울려 퍼지는 유즈의 목소리.

젖가슴.

달리 생각해보면 여자의 지방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흥분할 필요 없다.

평정심만 되찾자.

이대로 사고를 쳤다간, 수습할 방법이 없다.

쌓이는 성욕은 나중에 카엔에게 모조리 풀어내면 된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온갖 핑계가 머릿속에서 들끓었다.

"네 마음대로 만져 봐."

한계, 였다.

"이 정도면 흥분할 수 있겠어?"

"…유즈 님. 저희 여기까지만…."

"역시 이거론 부족한가?"

그녀가 '연구' 만 관련되면 미묘하게 말이 많아지는 것쯤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어차피 혼잣말을 몇 마디 중얼거릴 뿐, 대화의 상대가 되는 일은 없었기에 딱 그 정도 감상이 전부였는데.

유즈의 젖가슴을 양 손 가득 거머쥔 채로 유즈의 상대를 하려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무슨 말을 뱉든 간에, 위험한 결과로 흘러갈 것 같아서.

"루크. 옷 밑으로 만지면 흥분할 수 있을 것 같아?"

위험한 제안.

다른 건 몰라도, 저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경고가 머릿속에서 미쳐 날뛴다.

"아, 아뇨. 이대로도 충분합니다. 잠깐만 시간을 주시면…."

"…그래. 그럼, 알아서 해."

이미 흥분했다는 거짓말은 악수 중의 악수다.

그럴 때 이성이 끊어진다는 말을 이미 해놓았다 보니, 흥분한 척 연기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적당히 유즈의 눈썹이 찡그려질 만큼 가슴을 꽉 쥐고,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툭, 툭, 튕겨 올리면 적당한 신체 부위 하나에 화상을 입는 정도로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흥분하지 않을 수 있냐는 역설에 머리가 아파 오긴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가슴을 쥐고 있던 손 중, 한쪽 손목을 살짝 비틀었다.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무언가를 꾹 붙잡을 수 있도록.

생각할 시간을 줘선 안 된다.

똑똑한 여인이니, 무언가 이상한 걸 눈치채는 데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빠르게, 음란한 형태의 곡선을 따라 젖꼭지가 있을 첨단으로 향했다.

여자의 몸에 익숙하지 않은 나였지만, 몇 시간 전 카엔의 몸으로 이것저것 해본 덕에 금방 젖꼭지를 찾을 수 있었다.

"……."

유즈는, 조금도 흥분하고 있지 않았다.

어느 정도 단단한 느낌이 있긴 한데 카엔의 것을 만졌을 때와 비교하자면 한참이나 말랑말랑한 상태였다.

당연한 결과다.

유즈에게 있어서 이건 '실험'의 연장선.

이해할 수 없는 부작용을 직접 확인해보기 위한 행위였으니까.

야한 생각을 갖고 움직이는 건 오로지 나뿐이다.

'미치겠네….'

일단 유즈에게 들키지 않도록 흥분한 척 하려면 최소한 선은 넘어야겠지.

강간은 절대 안 될 것이고.

내가 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즈가 헷갈릴만한 아슬아슬한 곳에서 멈추려면 역시….

유즈의 젖꼭지를 엄지 끝으로 긁듯이 자극하던 나는, 결심을 마치곤 있는 힘껏 손 끝에 잡히는 것을 쥐어짰다.

지금까지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던 건가? 하는 뒤늦은 의문은 한참 뒤에 푱, 머릿속을 스쳤다.

"……읏."

쾌락이라기보다는 고통에 훨씬 더 가까운 숨소리.

그것에서 억지로 눈을 돌리곤, 계속해서 유즈의 젖꼭지를 옷 너머로 짓이겼다.

일단은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싶긴 하나 경험이 부족한 탓에 내가 봐도 심각한 수준의 어설픈 손놀림이었다.

카엔이 젖꼭지로 절정할 땐 도대체 어떻게 만졌더라.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니 그땐 흥분해서 마구 젖꼭지를 쥐어짜고 있을 때라 아무것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취향은 내게 강제로 당하는 것이니까.

테크닉이고 뭐고, 가학적인 고통만으로도 기뻐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계속해서 유즈의 몸을 적당히 괴롭히는 것뿐이었다.

카엔에게 했던 것과 비교하자면 무척이나 심심할 정도로.

"…아파……."

숨결처럼 흐릿하게 목소리를 내뱉는 유즈.

잠깐 손에서 힘이 빠졌으나, 이내 내 역할을 깨닫곤 억지로 유즈의 몸을 괴롭혔다.

저런 목소리에 현혹되면 안 된다.

흥분한 척, 유즈의 말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움직여야 한다.

잠깐 주저하던 나는 결국 있는 힘껏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한 손에 담아냈다.

단단하다 느껴질 만큼 꽉 쥐어버린 탓에, 손가락 사이로 살결이 마구 삐쳐나간다.

지방 덩어리.

지방 덩어리.

주문처럼 속으로 되뇌이던 도중, 희미하게 들려오는 여인의 숨소리.

"흐읏……."

여전히 쾌락과는 관련 없는 고통에 찬 신음이었다.

사실 팔뚝이 화염에 지져지는 것까진 각오하고 저지른 행동이었으나,

아프다는 듯 내 손등을 손가락으로 긁다가, 반응이 없으니 슬그머니 제 가슴 위에다가 양 손을 올리는 유즈.

그녀의 입에서, 의미 모를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루크."

"……."

"루크."

"……."

"…루크."

"……."

대답을 바라듯이.

반복해서.

혹시라도 내 대답에서 어색함을 눈치챌까봐 아무말 않고 있었는데.

이대로 무시하고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기에 적당한 대답을 해 주려던 찰나.

─꼴깍

"루크… 님…."

잘못 들은 듯한 이상한 단어가.

내 이름 뒤에 다소곳이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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