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야설을 주웠다-15화 (15/66)

15

따스했다.

따뜻했다.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했다.

덥다.

뜨겁다.

침대 옆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제복과 달리, 카엔과 꼭 닿아있는 부위마다 체액이 방울방울 솟아나왔다.

어느새 힘껏 끌어안고 있는 매끄러운 배에서도.

내 품 안에서 쌔액쌔액 조그마한 숨소리를 뱉어내는 카엔의 등에서도.

일부러 이러는 건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건지, 카엔이 엉덩이로 꾹꾹 눌러대고 있는 내 고간에서도.

"읏…."

들릴듯 말 듯한 자그마한 한숨을 뱉는 카엔.

평소 장난스러운 목소리는 이미 어디론가로 멀리멀리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우습게도, 나는 그 목소리에 조금씩 더 흥분하고 있었다.

어젯밤 내 방을 찾아와 무릎을 꿇었을 때도 이렇게까지 조용해지진 않았는데.

포식자에게 붙잡힌 초식동물처럼.

카엔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힉…."

그 탓에 자꾸만 나쁜 생각들이 머릿속에 퍼져 나갔다.

누군가의 야설 속에 이대로 덮쳐버리는 플레이가 있었던가.

기억 속을 마구 헤집어 보았으나 아쉽게도 나오는 것은 없었다.

애당초 이런 부드러운 교감 따윈 야설 속에 하나도 적혀있지 않았던 까닭이다.

시작부터 여주인공을 실신할 때까지 강간하는 것으로 흘러가는 소설인데, 이런 포옹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결국 카엔의 정체가 더욱 모호해진다.

그녀는 정말 작가일까?

아니면,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

"……."

궁금하다.

뜨거운 체온 속.

흐리멍텅해진 의식 탓에 나는 깊은 생각 없이 말을 뱉고 말았다.

"카엔 님."

"……어, 어?"

"계속 이렇게만 있을 거에요?"

늦게나마 반응했던 처음과 달리 카엔은 그 후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내 품속에 안겨 고개를 푹 떨구고 있을 뿐이다.

내 눈앞에 있는 늑대 귀를 움찔움찔 거리면서.

이것 만으론 추리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조금 더 제대로 된 증거가 필요하다.

카엔이 작가인 증거.

카엔이 작가가 아니란 증거.

가장 쉽게 확인하는 법은 당장 이 자리에서 카엔을 강간하는 것이다.

못이기는 척 침대에 파묻힌 뒤, 내가 자궁 끝까지 박아댈 때 마다 실금해대면 그녀가 작가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고.

손을 대자마자 내 손목이 종잇장처럼 잘려나간다면, 아닐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물론 이 방법은 쓰지 못한다.

제대로 된 확신이 없는 이상, 조금 더 리스크가 적은 방법이 필요하다.

가령….

카엔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낼 수 있을만한 방법.

딱 하나.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쓰기 힘든, 그런 아이디어.

"대답 없으시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천천히 손을 옮겼다.

그동안 어찌나 땀에 들러붙어 있었는지 카엔의 배와 내 팔 사이에 조그마한 공간이 생기자마자 시원한 공기가 파고들어 와 체온을 앗아간다.

나중에 메이드가 내 옷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런진 모르겠으나 굳이 걱정해야 할 일은 아니다.

그녀는 고작 카엔의 메이드일 뿐이니까.

이 침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바깥에 퍼뜨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제가 카엔 님의 애인 역할 맞죠?"

"애, 애인…?"

"로맨스 소설에 나온 걸 해보고 싶다고 하셨으니까."

"……애인…."

확인차 묻자 제대로 된 대답 하나 없이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카엔.

내가 알아서 해도 괜찮다는 대답은 받지 못했지만, 이미 나는 그런 것까지 신경 쓰기엔 너무 멀리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이성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 말라는 대답이 없었으니 괜찮겠지.

카엔의 반응을 멋대로 해석한 나는 계속해서 손을 옮겼다.

위쪽으로.

무언가가 손에 닿아올 때까지.

"……아."

애인이란 단어와 함께 자꾸만 침을 꼴깍꼴깍 삼켜대던 카엔의 입에서 짧은 숨결이 토해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예상보다 단단한 브래지어의 감촉에 신기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뭔가 퍼석퍼석한 느낌이라 해야 하나.

차라리 카엔의 배를 꽉 끌어안고 있을 때가 더 기분 좋은 감촉이었지 싶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카엔에게서 험악한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질 수 없도록 내 팔을 꽉 짓눌러버린다든가, 미친 새끼냐며 욕을 해오지도 않았다.

"……."

그냥,

가만히 있었다.

─딸꾹!

갑작스런 딸꾹질을 시작하면서.

"읏…. 히끕! 잠깐, 힉…!"

지금껏 내 품속에 가만히 놓여있던 몸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빠져나가기 위한 몸부림은 아니었다.

단지 갑작스레 튀어나온 딸꾹질을 도로 집어삼키려 노력하고 있을 뿐.

카엔은 여전히 내 움직임을 저지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굴곡을 스치며 지나가, 봉긋 솟아오른 끄트머리에 도달할 때 까지.

그녀는 그저 제 입을 틀어막곤, 고개를 숙여 내 손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히끅…. 흣…. 히끕……."

하지 말라는 말은 없다.

내 품에서 도망가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도리도리 젓지도 않는다.

결과.

아주 조금은, 카엔이 작가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확률로 따지면 대충 10% 정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목숨을 건 강간을 하기엔 아직 한참이나 부족한 확률이었다.

"……."

하지만.

강간이 아니라면.

이미 가슴에 손을 댄 거, 이대로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는 것 정도라면.

그 정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확인차 운을 띄웠다.

지금이라도 카엔이 건드리지 말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면 포기할 생각이었다.

"끅…. 히끗……."

그러나 5초가 지나고, 10초가 지나도.

카엔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규칙적인 딸꾹질 소리만이, 그녀의 목구멍에서 새어나왔다.

잠시 더 눈치를 보던 나는 조심스레 카엔의 셔츠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똑, 똑, 똑

"……힉…. 으극…"

가장 위부터 3개.

카엔의 머리가 시야를 가린 탓에 볼 수 없었기에, 손끝의 감각만을 의지해 단추를 풀어나갔다.

지금까지도 아무런 말이 없다는 게 신기할 노릇이다.

평소의 카엔이었다면 내 옆구리를 향해 마구마구 주먹을 날려댔을 텐데.

새카만 브래지어가 전부 드러날 때까지 제 입을 꾹 틀어막고선 온순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정말 고작 로맨스 소설을 보다 생긴 궁금증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걸까.

작은 의심이 피어났지만, 카엔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아니고서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벗기겠습니다."

"히끕…… 끅…."

여전히 대답이 없는 카엔.

적어도 부정은 하지 않았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평범함과 야릇함,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브래지어 후크를 붙잡아 당겼다.

처음 만져본 탓에 손놀림이 어색했으나 풀어내는 데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결국 카엔의 아담한 가슴이 그녀의 어깨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살결과 퍽 어울리는 예쁜 벚꽃색의 젖꼭지.

한 손으로 꽉 쥐면 간신히 손끝이 명치에 닿을 정도 크기의 가슴.

평소 제복에 감춰진 모습만 보다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커다랬지만, 그뿐이었다.

거유라 부르기엔 부족한.

미유라 부르기엔 커다란.

예쁜 모양의 가슴 끝에,

손가락을 살짝 걸쳤다.

"……."

살짝.

살짝.

정말,

살짝.

****

저질렀다.

루크를 침실 안으로 들인 뒤 카엔이 떠올린 생각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처음 저택 앞에서 그를 발견 했을 땐, 두근거림이 가장 컸다.

주변을 보아하니 청소 중이었던 모양.

하지만 딱 그녀의 집 주변만 나뭇잎투성이인 걸 보곤, 분명 어젯밤 일을 신경쓰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내가 당황한 탓에 침대에 거꾸로 꽂아버렸으니 어떻게든 이 관계를 풀어내야 한다.

그리 생각한 카엔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루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루크가 땅바닥에 엎드리려는 듯 뒤로 가기에, 일부러 그에게 바짝 다가가 사과할 틈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이후엔 루크가 부담을 느낄 어젯밤 일을 아예 없었던 일로 치부하기까지.

카엔은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완벽하다고 자부했다.

루크가 쓴웃음을 지으며 멀어지려 하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큰일났다!

왜?

이 방법이 틀렸나?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기도 전, 카엔은 막무가내로 루크를 붙잡아버리고 말았다.

지금 이렇게 루크를 보냈다간 영영 예전 같은 사이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탓에.

카엔은 급하게 만들어낸 변명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네가 먼저 내 몸을 마음대로 만졌으니, 나도 네 몸을 마음껏 만져야 직성이 풀리겠다고.

"힉……? 아, 으……?"

고작 5초도 안 되어 만들어낸 변명이 이토록 이상하게 흘러가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자, 잠까……?!?"

양 손으로 꾹 틀어막은 입.

목구멍 안에서 토해지던 목소리가 손바닥에 가로막혀 안으로 되돌아간다.

이런건 모른다.

혼자 젖꼭지를 툭, 툭, 건드리며 자위할 때만 해도 이렇게 된 적은 없었는데.

좋아하는 사람의 손에 닿으면 이렇게 된다곤 그 누구도 알려준 적 없었으니까.

"기다, 기다려…주…. 읏…."

카엔은 여전히 입을 틀어막은 채 제 귀에나 들릴법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조금만 더 부드럽게 해달라고.

조금만 더 천천히 해달라고.

분명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는데, 한 마디를 내뱉는 것조차 불가능한 탓에 악순환이 반복된다.

집요하게 가슴 끝을 괴롭히는 손가락이 미웠다.

엄지와 중지로 꾹 고정시키곤, 툭, 툭, 마음껏 튕겨대는 저 검지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 번씩 병을 주고 약을 주듯 부드럽게 쓸어내려주는 저 악독함에 목덜미를 콱 깨물어주고 싶었다.

이렇게 몸을 배배꼬며 벗어나려 하는데, 조금도 봐주지 않고 괴롭혀오는 루크에게 꿀밤을 때리고 싶었다.

잠깐만. 딱 30초 만이라도. 제발 쉬는 시간을 주었으면.

그렇게 헐떡이던 카엔의 눈동자에 똑딱똑딱 흘러가는 시계가 비쳤다.

남은 시간 15분.

지금부터 그때까지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이런저런 상상이 한꺼번에 몰려든 탓에.

그녀는 다시 한 번 천장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히으──? ──?!"

기분 좋아.

짜증나.

더 하고 싶어.

때리고 싶어.

혼란스러운 감각에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잔뜩 띄우던 카엔.

그 사이에서 '더 하고 싶어'를 유심히 쳐다보던 그녀는 허벅지를 벌벌 떠는 채로 루크의 품에 온몸을 맡겼다.

"헥…. 헥……."

쇄골에 닿던 포니테일은 어느새 그의 가슴팍 아래를 꾸욱 짓누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머리를 쓰다듬던 와중 루크의 손가락에 걸려 이리저리 망가진 상태였는데.

15분이 지난 뒤엔 돌멩이처럼 구겨져 있을 게 뻔했다.

키아라에게 들키기 전에 다시 제대로 묶어놔야지.

금방 잊혀질 계획을 세운 카엔은 멍하니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학…. 헤으……."

잠시 제정신이 돌아온 탓일까?

가쁘게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는 자신의 가슴이 무척 부끄러웠다.

루크의 손끝에서 잔뜩 솟아오른 젖꼭지 또한,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래서야 제발 만져달라고 아양 떠는 꼴이지 않은가.

검술 명가 단델리온 가문의 외동딸인 나, 카엔 폰 단델리온이 고작 평민의 품에서 암컷 늑대가 되었다는 뜻이지 않은가.

루크를 향한 마음과는 별개로 치욕스러웠다.

적어도 언제나 흐트러지지 않는 귀족다운 모습을 보였어야 했는데, 고작 젖꼭지를 몇 번 튕겼다고 해서 이렇게 되어 버리다니.

그래.

마치, 루크가 쓴 야설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으으……."

그냥 루크에게 이리저리 쓰다듬어져 보고, 루크의 품에 꼭 안겨보고, 마지막엔 마주 본 채로 한 번 안겨볼 생각이 전부였는데.

순식간에 가슴 애무까지 진도를 빼버리다니 얼굴에서 김이 펄펄 나는 것 같다.

왜 허락했지?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했으면 이런 꼴을 보이지도 않았을 거 아냐.

냉수.

이럴 땐 냉수가 필요한….

"…카엔 님."

"으햑?!"

갑작스런 루크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카엔.

황급히 루크의 품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호다닥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루크의 다리 사이에 쏙 들어갔다.

10분 가까이 애무 당하며 잔뜩 탱탱해진 젖꼭지가 셔츠에 쓸려 이상한 소리가 나왔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미 이상한 소리를 잔뜩 낸 탓에 그리 부끄럽진 않았다.

"왜, 왜, 왜, 왜??"

"혹시나 해서 그런데…. 더 궁금한 건 없으십니까?"

"없……."

없어! 여기까지만 해!

하고 곧장 내뱉으려던 카엔은 그제서야 엉덩이뼈에 닿는 어떤 물체 하나를 눈치챘다.

"없으시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

"제가 또 어젯밤처럼 카엔 님께 실수할지도 모르고."

"……."

"청소할 곳도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

뜨겁다.

단단하다.

게다가 길이가…. 상당하다.

어림잡아 배꼽까지 닿을듯한 길이.

"자, 잠깐만."

"네."

"15분…. 남았었지?"

"네. 카엔 님."

잘은 모르겠지만.

엄청 괴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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