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야설을 주웠다-5화 (5/66)

5

"우와…."

당근의 의미에 대해 해석하기도 잠시.

카엔의 나지막한 감탄사가 방 안애서 흘러나왔다.

고장 난 문고리에 고무줄을 걸던 나는 슬쩍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혼자 살기에도 빠듯할 정도로 좁은 공간.

방 안이라 해봤자 기껏해야 현관에서 세 발자국 정도 떨어진 가까운 위치다.

그 덕에 카엔의 뒷모습쯤은 현관문 앞에서도 훤히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천진난만한 성격마냥 살랑살랑 흔들리는 묵색의 포니테일이 눈에 밟혔다.

그 뒤로 보이는 것은 옷.

한 마디로 감상평을 줄이자면, 가벼웠다. 무척이나.

그도 그럴게 평소 카엔이 즐겨 입는 옷가지는 하나같이 제복에 가까운 것들뿐이었으니까.

뜻모를 외국의 언어가 대각선으로 감싸듯 휘갈겨진 검은색의 박시한 후드티.

최근 제국의 남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에 오르내린다는 허벅지를 거의 드러내는 짧은 바지까지.

한 명의 여왕에서 여자아이가 된 카엔.

그녀는 제 팔을 활짝 벌린 뒤 방의 크기를 재어보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작아?"

카엔은 그리 중얼거리곤 사람이 이런데서 살다니, 하고 덧붙였다.

하긴 그녀에게 이 정도 방 크기는 화장실보다도 못할 테니까.

서민의 삶에 조그마한 동정심이라도 느낀 모양이다.

형식뿐인 잠금장치를 걸어놓은 나는 대접할만한 것을 찾기 위해 찬장을 뒤졌다.

역시나 일국의 북부대공녀에게 대접할 수 있을만한 물건은 없었다.

그런 값비싼 물건을 준비해놓을 여유도 없고.

그저께 저녁을 대신해 먹다 남은 과자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탐색을 포기하곤 조심스레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침대 앞. 카엔은 가만히 서서 생각에 빠져있었다.

팔짱을 낀 채 침대 머리맡에서 발이 닿을 위치까지 주욱 시선을 옮겼다가, 갸우뚱 고개를 기울인 뒤 내게 들릴 정도의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쉰다.

왜 남의 방 침대를 보며 저러는 걸까?

도통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 의문이다.

그냥 저러고만 있을 거면 잠 좀 자게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끼어들 타이밍을 보던 나는 입을 꾹 다문 카엔의 볼이 살짝 부풀었을 때 말을 건넸다.

"카엔 님."

"어."

평소보다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

그래도 대답은 빨랐다.

"그래서, 그…. 말씀하신 당근이라는 게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기다려 봐. 마음의 준비를…좀 하고."

마음의 준비?

어째 갈수록 더 이해가 안 된다.

카엔은 그리 말한 뒤, 후우, 후우, 소리를 내며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고작 포상을 쥐여주는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오히려 심호흡에 독이 될만한 과장스런 몸짓이 퍽 그녀다웠다.

곁에 서 있으면 방해될 것 같아 멀찍이 떨어져서 카엔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조심스레 그녀가 준비한 당근이 뭘지 짐작해보자면, 저렇게 몸을 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료 안마권'같은게 아닐까 싶다.

열심히 두들겨 맞았으니 한 번쯤은 직접 몸을 풀어주겠다는 의미로.

물론 그런 건 어린애가 부모님께 줄법한 선물이긴 하다만,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가.

평소 20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행동하던 카엔이었기에 무심코 그런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잠시 뒤.

요란한 심호흡이 끝났다.

"변태. 아니, 잠깐만, 다시."

뒤를 돌아보며 나를 불렀던 카엔은 고개를 붕붕 휘두르곤 후드를 푹 뒤집어썼다.

그녀의 머리 위에 달린 주먹크기의 늑대 귀가 그 안에서 곱게 접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은 상당히 귀찮았지만, 가끔 볼 수 있는 저런 수인 특유의 행동들은 확실히 귀엽긴 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으면서도 죽어도 말 안 듣는 여동생이 있다면 아마 카엔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뭐, 형제자매가 없으니 추측일 뿐이다.

"루크."

"네. 카엔 님."

카엔은 다시 날 부르곤 내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녀의 연보랏빛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 눈동자를 좇는다.

고작 이런 유치한 눈싸움을 하려 내 방을 찾아온 건 아닐 테고.

이제 그만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슬슬 억지로 짓고 있던 미소가 흐트러질 무렵.

"……벗어."

카엔이 쥐어짜듯 내뱉은 명령에.

나는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

뒷걸음질치는데 3초.

카엔의 손에 이끌려 침대에 던져지는데 3초.

도합 6초.

상황 종료.

"카엔 님. 벗으라니 도대체 뭘…."

옷.

당연히 옷이겠지.

하지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마침 낮에 그렇고 그런 사건이 벌어진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나보고 옷을 벗으라니.

당장 떠오르는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잖은가.

─감히 네가 귀족을 상대로 그런 생각을 해?

─넌 나한테 혼 좀 나야겠다.

그리고 남자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은…….

안 돼.

남성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선 절대 잃을 수 없는 물건이다.

팔 하나쯤 내준다는 마인드로 호쾌하게 포기하는 것보다, 악착같이 지키려는 것이 훨씬 더 남자다운 행동일 것이다.

"옷. 벗어."

"자, 잠깐, 잠깐만요!"

당근이라며.

채찍질 대신 이번엔 당근을 주겠다며.

어쩌다보니 자연스레 양팔로 몸을 가리는 형태가 되었다.

무슨 귀족가 망나니에게 잡혀간 시골 처녀도 아니고.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꼴이 참 우스웠다.

"왜? 네가 좋아하던 거잖아?"

"제가요? 제가 이런 걸 좋아한다고요?"

혹시 그 소설에 남자 주인공이 매도해달라고 부탁하는 파트가 있었나?

모르겠다.

새벽에 한번 죽 읽었을 때 그런 묘사는 못 봤는데.

그런 내용이 나올만한 야설도 아니었고.

카엔은 의아하다는 듯 내뱉었다.

"소설에 다 써놨었잖아. 그, 막, 아무튼 그거."

"저는 당연히 모르죠. 제가 계속 그거 제 소설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아직도 그 소리야? 부끄러워서 그래? 다른 사람한텐 이야기 안 하겠다고 약속해줬잖아. 이젠 좀 솔직해져."

"애초에 제 소설이 아니……."

"됐어.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넌 조용히 있어."

알아서? 뭘 알아서 한다는 거야?

추리가 결론에 다가갈수록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아까 잠깐 연습도 해왔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

미친년.

과연 나는 내 소중한 자지를 저 미친년에게서 지켜낼 수 있을까.

피로에 찌든 뇌를 불태우듯 혹사시켰으나 나오는 것은 없었다.

체크메이트.

그렇게 카엔의 손이 내 허리춤에 닿아왔다.

"…잠깐만 있어 봐. 이거 반대쪽에서 풀려니까 생각보다 어색하네."

자연스레 카엔과 거리가 가까워졌다.

몸에 닿아오는 부드러운 살결이 옷 너머로 흐릿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코끝에 카엔의 달큰한 체향이 감겨들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 내겐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음미할 여유가 없었다.

틱, 틱, 조막만 한 손으로 벨트를 푸는 소리가 밑에서 들려왔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저 손목을 붙잡아 카엔을 제압하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간 카엔이 약속을 철회하고 나를 재판장에 세울지도 모른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애초에 내 힘으로 그녀를 제대로 제압할 수 있을 가능성도 희박하고.

반항할 것인가.

체념할 것인가.

어느쪽이든 내 쪽이 무조건 불리한 상황이었다.

"카엔 님…. 제발……."

"…? 왜 이래? 네가 좋아하는 거라니까?"

알쏭달쏭한 소리를 하며 손을 움직이는 카엔.

허리를 감고 있던 벨트가 카엔의 손을 따라 뽑혀나가며 내 허리를 간지럽혔다.

순식간에 허리를 꽉 조이던 압박감이 사라지고, 카엔의 따뜻한 손가락이 바지춤에서 아둥바둥 움직인다.

고작 바지 단추를 푸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결국 방 안의 차가운 공기가 가장 은밀한 곳에 스치기 시작했다.

"……읏."

카엔이 숨을 삼키는 소리,

그와 동시에 후드티 안에서 접혀있던 카엔의 귀가 눈앞에서 움찔거렸다.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귀엽다는 감상은 잠시 제쳐놓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애써 외면하고 있던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풀어헤쳐진 바지.

카엔의 오른손 손가락 두 개가 꾹 걸쳐진 팬티.

그리고.

그 두 장의 천에 감춰져 있던 자지가, 카엔의 연보랏빛 시선을 배부르게 독차지하고 있었다.

"……."

"……."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자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울끈불끈 발기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아주 살짝 힘이 들어간 정도다.

고작 카엔의 체향과 손길 때문에 완전히 발기해버렸다면 정말 돌이킬 방법이 없었는데 말이다.

아직까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카엔을 설득해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입을 열려던 찰나, 팬티에 걸쳐져 있던 카엔의 손이 예고도 없이 내 자지에 닿았다.

"이렇게 하는거랬나…."

카엔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 이리저리 자지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젠 기어이 내 자지를 세운 뒤 형벌을 내릴 생각인가보다.

참아야한다.

절대 세워선 안 된다.

하지만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열기는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야. 변태. 말 좀 해 봐. 이거 맞아?"

차갑고 조그마한 카엔의 손.

고작 그뿐이던 감상에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것들이 덧씌워져갔다.

언제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웃음 짓던 카엔의 손이라고.

평민인 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여왕처럼 대우받길 원했던 카엔의 손이라고.

감히 나 따위가 함부로 닿을 수 없던 손이라고.

그런 카엔의 손이, 지금 내 자지에 봉사하고 있다고.

"마, 맞나보네. 점점 딱딱해지는걸 보니."

머릿속을 헤집는 뜨거운 열기.

나쁜 상상으로 가득한 그 열기를 떨쳐내러다, 무심코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힉……?"

"……."

좆됐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죽고 싶다.

살고 싶다.

모순되는 두 감정.

그것에 혼란을 느끼면서도 확실한 것은.

카엔 정도의 미모를 앞에 두고 돌기 시작한 혈액은 내 마음대로 멈춰 세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혈액이 내 마음도 모르고 자지를 무럭무럭 키워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멍하니 내 자지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 카엔.

나는 그런 카엔을 바라보며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자지는 카엔의 조그마한 손안에서 움찔움찔 커져 나갔다.

그 움직임에 당황했는지 카엔 본인의 몸도 덩달아 움찔거린다.

나와 카엔은 약속한 것처럼 그 순간 하나하나를 숨죽인 채 바라보았다.

밤 9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둘뿐인 공간.

하필 눈앞의 상대가 카엔이 아니었더라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3분가량이 흘렀다.

"제, 제대로 섰네. 말로는 싫다고 하더니…. 역시 다 거짓말이었구나."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카엔이 완전히 단단해진 자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정도면 소설에서 본 묘사랑 거의…라는 말이 들려왔으나, 생사의 갈림길에 선 내 귀엔 닿지 않았다.

카엔의 손가락이 자지 이곳저곳을 스칠 때마다 여기 썰고, 저기 썰고, 그렇게 견적을 내보는 것 같아 소름 끼칠 뿐이다.

어떡해야하지.

어떡해야 이 미친년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결국 벼랑 끝에 몰린 내가 선택한 것은.

"…잘못했습니다."

사죄였다.

진심따윈 티끌조차 없는 말뿐인 사죄.

설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문장 한 줄을 반박하려면 수십 줄의 문장과 증거가 필요하다 했었나.

카엔의 머릿속에서 내가 야설작가라 확정된 이상, 지금 당장 하나하나 열심히 설명하는 것보단 몇 마디의 사죄가 더 효과 있을 것 같았다.

"잘못했다고? 그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 다시 안 그러면 돼."

의외로 그럴싸한 대답을 해오는 카엔.

하지만 자지에 닿는 손길은 여전했다.

그나마 상황이 악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뭐라 계속 이야기해보려던 나는 뒤이어 들려오는 카엔의 목소리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천박한 글을 읽고도 화내지 않고 참아주다니. 나만큼 좋은 주인이 어딨어."

"…하하……."

개소리 집어치우란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온 걸 억지로 삼켜냈다.

카엔의 비위를 맞춰줄 겸도 해서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니 네 훌륭한 주인으로서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는 법도 정확히 알아야겠지."

당근과 채찍.

사실 카엔에게 있어 당근이란 채찍의 또 다른 말이 아닐까?

아니면 저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거듭 말하지만, 그래도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아무래도 사죄를 선택하길 잘한 것 같다.

이제 어떻게 해야 카엔을 제 기숙사로 돌려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았다.

동방의 유서깊은 사죄법.

알몸 도게자정도면 카엔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해보자.

"야. 변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넙죽 엎드리려 하기 직전.

카엔이 양손으로 내 자지를 쥐며 말했다.

"이상하면 말해? 낮에 글로만 읽어본 거라 어떻게 하는건지 잘 모르니까."

"……?"

"시작할게?"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엔의 얼굴이 밑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막을 새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카엔의 얼굴이 내 자지 가까이 다가갈 이유.

물어뜯으려 그러나? 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굳이 그런 귀찮고 더러운 일을 선택하진 않을 것이다.

그보단 카엔이 소설 속에서 '무엇을' 읽었는지가 툭,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라마치오.

또는

펠라치오.

들 증 히나.

그리고, 카엔이 주겠다고 했던 당근.

그 당근의 의미는 혹시.

"…큭……?"

자지 끝에 무언가 축축한 것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간다.

두 번째. 이번엔 휙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닦아내듯 느릿하고 꼼꼼하게 지나간다.

그제서야 삐걱거리던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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