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검술 교수, 아델 루이스플 (2)
* * *
‘근데…, 어떡해야 하지.’
강현은 고민에 빠졌다.
학생들 앞에서 진행되는 아델과의 대련.
경지만 보더라도 실력은 강현이 아델보다 몇 수는 앞서 있는 상황.
학생들 앞에서 망신시킬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도 교수이자 공작가의 장남인 그를.
그러면 힘 조절을 해야 할까.
정당한 대련에서 힘 조절을 하며 적당히 상대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있어서 엄청난 모욕이다.
오히려 그게 더 망신일 수도 있겠지.
전력을 다해도 상처 하나 입히는 게 고작이었던 브룩과의 대련과는 상황이 아예 달랐다.
전력으로 대련하실 거죠?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중,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제 내 생각도 읽는 거야?
계약을 맺은 신살자의 검과는 오직 감정만 공유한다.
생각을 공유한다는 이야기는 듣도보도 못했다.
아뇨, 지금 주인님이 할 고민이 그거밖에 더 있겠어요.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 그저 강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상냥해도 탈이에요.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어. 학생이 봐줬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그게 더 망신일 걸요?
역시 그렇겠지.
그러니까 전력으로 싸워요. 보니까 아까 전부터 강현 씨랑 대련할 생각에 엄청 기대 중인 거 같은데.
기대감 서린 눈빛을 여러 번 마주했다.
엘리스의 말 대로겠지.
“그럼 선공은 양보받아도 괜찮겠습니까?”
학생들과의 대련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항상 학생들에게 선공을 넘겨왔던 아델이 물었다.
“… 물론이죠.”
아델의 물음과 반짝이는 두 눈동자를 본 강현은 깨달았다.
그는 승패에 연연하고 있지 않다.
망신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한 명의 검사로써 강자와의 대련을 기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 봐요. 제 말 맞죠?
응, 내가 잘못 생각했네.
이래서 루이 수플 공 작가의 사람들을 싫어할 수가 없다.
강현은 검을 고쳐 쥐었고.
“그럼 가겠습니다.”
“네, 오시죠.”
아델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흠…!”
그와 동시에 직선으로 내지른 검.
강현은 몸을 돌려 아델의 검을 피해냈다.
하지만 애초에 피할 것을 상정해둔 움직임였을까.
허공을 가른 오른팔.
그는 몸을 이용해 강현의 시야에서부터 교묘하게 가린 왼팔로 오른 팔의 바깥 방향으로 밀췄다.
왼팔을 이용한 찰나의 정지조차 없이 매끄러운 방향 전환의 힘의 보충.
더욱 강한 힘과 속도가 실린 단검은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강현은 왼손으로 그의 팔을 위로 쳐올렸으다.
가벼운 단검을 다루는 적비검은 힘보다 속도에 치중한 검술.
단검의 무게와 팔에 실린 힘은 적었으며 강현이 쳐내기에 충분했다.
그와 동시에 아델의 몸이 뒤로 기울어져 중심을 잃었다.
“제 차례입니다.”
신살자의 검에 붉은 기운이 맺혔다.
생력의 검기.
제1식, 굽이치는 적화.
보법을 밟으며 검을 휘두른다.
굽이치는 파도와 같은 움직임.
검날이 지나간 궤적 위로 피어난 붉은 호선들이 마치 한 송이의 장미를 연상시킨다.
그 검은 아델의 목을 노렸으며.
“한번.”
왼 가슴을 노리고.
“두 번.”
오른쪽 옆구리를 놀렸다.
“세 번 죽으셨습니다.”
“하…, 하하…. 과연 브룩님께 상처를 입히셨다 들었는데, 엄청난 실력이시군요. 상처까지… 입히시고.”
그는 자신의 목을 손으로 한번 훔치고 확인해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대련이 끝나려면 1분 30초는 남았다.
아델은 나와 마주 본 채로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다시 그 둘이 격돌했다.
∴
“하아…, 하아…. 수고했습니다. 강현 학생.”
아델이 10번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대련이 끝났다.
거친 숨을 몰아내 쉬며 아델이 말했다.
과연 소드마스터의 경지는 쉬이 넘볼 게 아니라는 걸까.
“교수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대련이 끝난 지금, 그는 호흡조차도 안정적이기에.
“그럼 들어가서… 하아, 쉬도록 하세요. 수업이 끝나면 점수를 받으러 잠시 따라오고요.”
“네, 알겠습니다.”
쉬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어 보였지만, 강현은 자리로 돌아가 다른 학생들의 대련을 관람하기 위해 자리를 앉았다.
그리고 느껴지는 시선들.
그들의 시선엔 경악과 감탄이 섞여 있었다.
그들 중 딱 한 명.
“흐음.”
브라이언의 눈빛에서만 호승심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
검술 수업까지 끝나고 드디어 하교 시간이 찾아왔다.
하나의 학과만 선택한 학생이라면 이미 하교하거나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가졌겠지만 두 개의 학과를 선택한 탓에 꽤나 피곤했다.
“에휴.”
원래였다면 부푼 가슴을 끌어안고 아멜리아의 기숙사 방으로 몰래 찾아갔어야 했으나, 지금은 통신 스크롤에 글자를 적어내리는 중이었다.
아멜리아에게 아델이 찾아간다로 한 탓에 못 갈 거 같다고.
“많이 아쉬운가 봐요?”
“… 뭐.”
강현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고 맞다고 대답하기도 뭐했기에.
“그럼 그 아쉬움을 제가 달래줄까요?”
의자에 앉아 아멜리아에게 연락을 보낸 뒤, 엘리스가 뒤에서부터 목에 팔을 두르고 끌어 앉았다.
등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두 덩이의 가슴.
잠시 고개를 돌려 보자 어느새 옷을 벗은 그녀는 검은색의 화려한 무늬가 달려 성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고 있었다.
유두와 음부.
중요한 두 부위만 가리고 있는 시스루 속옷.
“… 지금은 안돼.”
엘리스의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왜요?”
“황녀님 뵈러 가야지.”
“아, 맞다.”
강현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목적을 찾아오겠다고 말한 황녀, 릴리.
그녀는 월요일, 오늘까지를 기한으로 정해 두었다.
“어디서 만나기로 하셨어요?”
“저번에 봤던 음료점.”
“그럼 다녀오고 나면… 어때요?”
“일단… 상황 좀 보고 정하자.”
아델이 아멜리아의 방에 하루 종일 있는 게 아니니 중간에 가야 할 수도 있다.
“알겠어요. 근데 주인님은 오늘 하루 동안 여자랑 약속을 몇 번이나 잡는 거예요?”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엘리스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해 보이잖아.”
“두 개는 이상한 거 맞지 않아요?”
“… 하나는 너랑 한 약속인데.”
“후후, 농담이에요. 잘 다녀와요.”
“응, 다녀올게.”
강현은 기숙사에서 나와 황녀와 만나기로 한 음료점에 도착했다.
잘게 간 바나나와 섞은 우유를 주문한 뒤 조금씩 홀짝이며 기다리니 황녀가 도착했다.
아침에 봤던 대로 초췌한 얼굴.
어딘가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안녕하….”
“도대체 뭐예요?”
강현이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황녀가 물었다.
“예?”
“도대체 뭐냐고요. 강현 님께서 아카데미에 입학하신 목적이. 도무지 알 길이 없었어요. 엄청난 재산을 모으신 상태고 제국민이라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명예도 있어요. 귀족들을 그다지 달가워 하시지도 않아 인맥이 목적도 아닐 테고.”
“음…, 일단 앉으시죠.”
“… 하아.”
메이드가 빼준 의자에 릴 리가 털썩 주저앉았다.
“시간을 조금만 더 주세요. 1주일만 더 기다려 주시면 그때 답을 가져오든 포기하든 할 테니까요.”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 그건 함께 조를 할 생각이 없어졌단 뜻인가요?”
“아뇨, 직접 알아보시려 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제 목적은 그리 거창하지고 고상하지도 않으니.”
“… 그럼 뭔가요?”
“열람권입니다.”
“열람권… 도서관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제 목적은 7급까지의 열람권을 얻고 도서관에 보관된 마법과 검술을 전부 익히는 것입니다.”
살짝 입을 벌린 릴 리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넋이 반쯤 나간 것 같기도 하고.
“진작에 말씀드리려 했는데, 그때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신 탓에 미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알아내겠다고 하시는데 말리기도 뭐했죠.”
“아, 아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7급 열람권을 얻으려면 얼마나 많은 점수가 필요한 지 모르시는 건가요?”
“알고 있습니다.”
현재 강현의 개인점수는 아델에게 받은 것까지 해서 총 20009.
7급까지의 열람권을 얻기 위해선 총 300만 정도의 점수가 필요하다.
“역대 졸업자들 중 가장 많은 점수를 얻고 졸업한 선배의 점수가 300만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그것도 얻은 점수만 계산한 거지 졸업할 당시 점수는 50만 점 내외였죠.”
“저도 압니다. 열심히 모아야겠죠.”
100만의 점수를 모으는 것부터 엄청나게 절약해야지 가능할까 말까 하다.
그렇기에 하도 담담한 탓에 엄청난 자신감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강현의 모습은 어이가 없을 수준을 넘어서 해탈할 수준이었다.
“… 졸업 등수는 포기하시는 건가요?”
“아뇨, 가능하면 1등으로 졸업할 생각입니다.”
“열람권을 전부 얻는 걸로 모자라서 1등까지 하신다고요?”
“네.”
열람권을 얻기 위해선 그만큼의 개인 점수가 소모된다.
개인 점수가 줄어든다면 졸업 성적 또한 떨어져 버리고.
“자신감인가요 무모함인가요?”
“확신입니다.”
열람권을 전부 얻고도 1등의 성적으로 졸업한다는 확신이 강현에게 있었다.
“황녀님이 같은 조를 제안해주신 것도 한몫했죠.”
“… 그렇다는 말씀은 함께 조를 꾸리실 거란 말씀이신가요?”
“예, 황녀님께서 받아만 주신다면.”
“좋아요. 이해할 수 없는 목적이긴 하지만 결국 많은 점수를 얻는다는 목적 하나만큼은 같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강현에게 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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