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새로운 의상 (1)
* * *
이제 다 끝났다는 아리아의 말과 동시에 도롱이가 안정됐음이 느껴져 왔다.
심한 감기몸살에 걸린 사람처럼 빌빌거렸던 도롱이는 몸을 웅크린 채로 편안히 누워있는 상태였다.
“몸은 좀 어때?”
“실력 좋은데? 생력이 전부 회복됐어. 거기에 조금 더 강해졌고.”
“다행이네, 수고 많았어. 덕분에 살았어.”
그녀가 없었다면 등교 전에 깨어나지 못했으리라.
“에이 뭘요. 용사님을 돕는 건 성녀의 의무랍니다.”
아리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면서도 어딘가 기뻐 보이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용사인 게 확실한 것도 아닌데 뭘.”
“후후, 저는 이미 확신하고 있답니다.”
용사의 절대적인 무력의 원천이자 상징.
자색의 힘.
아직 그 힘이 생길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아리아는 확신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증거들이 그가 용사임을 알리고 있었으니.
“뭐, 네 생각이 맞으면 좋겠네. 어쨌든 이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난 이제 가 볼 테니까 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아프지 마, 도롱아.”
발기부전에 걸리면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많을 테니까.
“응.”
∴
내면세계에서 벗어난 후, 강현이 눈을 떴다.
아직은 낯선 기숙사 숙소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고 자신의 오른쪽에서부터 인기척을 느꼈다.
“가, 강현 씨! 괜찮으세요!?”
곧장 강현을 끌어안으며 레이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짙은 안도의 감정과 걱정이 절절하게 전해져 왔다.
“난 괜찮아. 많이 걱정했지.”
“다, 당연하죠. 못 깨어나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다고요…!”
“그래그래. 깨어났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후우… 정말. 놀라게 하시지 말아 주세요. 강현 씨가 없으면 저 어떻게 살라고요.”
우울한 표정을 지은 레이가 말했다.
그녀의 말이 기꺼워 강현은 절로 웃음을 흘렸다
“하하, 응…, 저번에도 그렇게 이번에도 미안하게 됐다.”
분명 브루노스의 심장을 흡수하고 정신을 잃었을 때도 이랬었는데.
또다시 걱정시켜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저는 괜찮아요. 강현 씨만 괜찮으면.”
“응.”
“에휴, 내가 잘못된 걸 알아서 겨우 깨울 수 있던 건데. 좋은 건 다 레이만 하네.”
그리고 그 뒤편에 서 있던 엘리스가 말했다.
“나도 알아. 안에서 다 보고 있었거든. 알아채 줘서 고맙다.”
“후훗, 매일, 매 순간마다 주인님과 함께 있던 저라서 눈치챌 수 있었던 거라고요.”
다른 애들이었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했겠지.
아침 발기가 되지 않는다고 신경이나 썼겠는가.
매일 아침마다 아랫배를 찌를 단단한 남근을 느꼈던 자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은근슬쩍 다른 여자들한테 그와의 관계를 강조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기에 엘리스는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조금 이상한 방법이긴 했지만.”
도대체 아침 발기를 이유로 문제를 눈치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엘리스는 매일 아침마다 발기되어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는 걸까.
“그래도 덕분에 일어난 거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
그로 인해, 레이와 엘리스는 물론이거니와 아델리아와 아리아, 라비에게까지 성기를 보이고 말핬다.
강현에게 다소 수치스러운 이유였지만, 깨어날 수 있었으니 투정 부릴 건 아니겠지.
“안에서 다 보고 있었다니, 그게 무슨 소린데?”
라비가 물었다.
“말 그대로지. 엘리스가 너희 데리고 오고 아리아가 치료해준 것들.”
“….”
내 말에 라비의 동공이 점차 확장되기 시작했다.
“나, 난 아무것도 안 봤다? 그냥 옆에 서 있었을 뿐이라고, 아리아의 호위니까.”
“자, 잠시만요, 라비! 혼자서!?”
강현과 함께 강현의 내면세계에서 나온 아리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본 건 다 같이 봤으면서 자기 혼자 빠져나가려고 하다니.
“저, 저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었어요”
아리아가 말했고.
“저, 저는….”
직접 주무르기까지 한 아멜리아가 입을 열었다.
“뭐, 뭐를 그렇게 봤다는 건지…. 저저, 저는 전혀어…! 모르겠네요오…. 호호호….”
“아델리아님….”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려는 아멜리아의 모습이 어째서인지 안타깝게 보일 뿐이었다.
엄청나게 떨리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말을 더듬고 웃음소리 조차도 심히 어색했으니.
차라리 제 손으로 성기 좀 주물렀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편이 더 믿기지 않으리라.
강현은 생각했다.
그녀가 지금 자신 앞에 서서 말하는 게 아니었다면 분명 감쪽같이 속였을 거라고.
“저는…, 괜찮으니 너무 신경 써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의식이 없을 때 전해 들은 게 전부라 직접 느끼지 못해 아쉽다고 해야 할까.
강현도 결국 남자였다.
“서, 설마…. 그, 그거까지….”
아멜리아의 표정은 천천히 굳어지기 시작했고.
“네…, 하하. 어쩌다 보니.”
제철을 맞이한 9월 중순의 새빨간 사과처럼 붉게 물들어갔다.
“… 저, 저는 강현 님이 깨어나신 것도 봤으니 이만 가볼게요오…!!”
그리고 곧장 등을 돌린 아멜리아는 자신의 방으로 서둘러 도망쳤다.
∴
작은 소동이 끝났다.
강현을 덮쳤던 수치심은 점점 옅어졌고, 어느새 하루가 지났다.
“어때?”
아카데미의 교복을 차려입은 강현이 엘리스에게 물었다.
“멋져요. 벗겨서 침대에 눕히고 싶을 정도로.”
역시,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온 강현의 몸은 그 어떤 옷을 입더라도 좋은 느낌이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길쭉한 길이.
척 보기에도 너무 맛있어 보여 엘리스는 입가에 침이 고일 정도였다.
“그냥 멋지다고만 하지 그건 또 뭐냐.”
그런 그녀의 대답이 어이없었지만 어쨌든 칭찬인 만큼 좋은 기분이었다.
처음 입어 보는 옷이 안 어울릴까 봐 걱정했었으니.
“후후, 그만큼 멋지다는 거예요. 여학생들한테 인기 많으시겠네.”
“참나, 그냥 시비만 안 걸리면 좋겠다.”
인기가 있든 말든 전혀 상관없다.
강현이 여자에 목마른 사람도 아닐뿐더러 그럴 일도 없으니까.
그저 괜히 신분으로 인한 문제만 안 생기길 바랄 뿐이었다.
“레이랑 아리아는 언제 온데요?”
레이는 강현의 사용인으로써 함께 등교해야 한다.
아리아는 같은 반 학생이기에 같이 가기로 했고.
참고로 강현이 말하길 아멜리아는 어제 방에서 나간 순간부터 연락을 해도 답장이 없다 하더라.
‘아깝게 왜 그런담.’
차라리 그걸 이용해서 어떻게든 해볼 생각을 해야지.
아무리 공녀라고 해도 순수한 처녀는 어쩔 수 없네.
엘리스가 생각했다.
“음, 슬슬 도착하겠네.”
시계를 확인해본 강현이 말했다.
오늘부터 아리아도 교복을 입을 거다.
레이와 라비 또한 사용인이라는 신분에 걸맞은 의복을 착용할 것이고.
벌써부터 그녀들의 모습을 볼 생각에 강현은 꽤나 기대 중이었다.
“우리 주인님, 엄청 기대 중이시네?”
그리고 그 감정은 엘리스에게도 전해졌다.
“하하, 뭐 그렇지. 첫 등교잖아.”
“흐응…, 정말 그래요? 애들 메이드복이랑 교복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적당히 얼버무리려 했지만 엘리스한테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족집게가 따로 없네, 강현은 감탄했다.
“그것도 있긴 하지.”
메이드복을 입은 레이와 라비, 교복을 입은 아리아.
그녀들 모두 아름답다고 입이 닳도록 말해도 부족할 정도의 미녀들이다.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겠지, 남자라면.
“나도 주인님이 원하면 얼마든지 입어드릴 수 있는데, 평범한 것도, 야한 것도.”
“그럼 다음에 기대할게.”
“후후, 그래요. 다음에는 메이드복 말고 교복으로 입어드릴까요?”
“… 혹시 그것도 야하게 바꿔 입을 생각이야?”
“물론이죠. 변태 주인님이 좋아하시도록.”
솔직히 야한 것을 싫어하는 남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변태라는 오명이 조금 억울하긴 했지만 굳이 반박하진 않았다.
야하게 바꿔 입을 거란 엘리스의 대답에 더 기대가 되기 시작한 것은 부정 못할 사실이니까.
똑똑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드디어 왔구나.
“나가요.”
곧장 일어난 강현은 대답하고 방 문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강현 씨….”
그리고 방 문을 열자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단정한 메이드복을 입은 레이가 서 있었다.
검은색 셔츠와 어깨에서부터 쭉 내려오는 앞치마.
하늘거리는 스커트까지.
완벽한 메이드 그 자체였다.
“왜,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세요.”
처음 입어보는 옷이 부끄러웠던 레이는 잔뜩 몸을 움츠린 상태로 강현의 시선을 피하며 부끄럽게 물었다.
물론 그가 자신을 넋 놓고 바라본다는 사실을 너무 기뻤지만 치마의 하늘하늘함이 너무 어색한 것이 문제였다.
“… 너무 예뻐서.”
“읏…, 저, 정말… 강현 씨도 차암….”
아름다웠다.
솔직히 레이가 무슨 옷을 입든 아름답지 못할 수가 없다.
외모와 몸매.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으니.
“어, 어색하지 않으신가요…?”
“전혀, 그냥… 와, 뭐라 해야 할 질 모르겠다. 너무 아름다워서 무슨 말이든 제대로 표현 못할 거 같아.”
“부, 부끄럽게 왜 그러시나요오…. 헤헤….”
레이는 부끄러웠지만 너무나도 기뻤다.
물론 다른 여자애들이 오기 전까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