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아프지 마, 도롱아. (2)
* * *
“죽은 육체는 살리는데, 영혼은 못 돌린다라….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이야?”
“영혼의 존재에 대해선 이미 알고 계시지요.”
“당연하지.”
이 세계엔 분명히 ‘영혼’이란 게 존재한다.
푸스탄트의 검술인 ‘수호의 검’은 검으로 사람을 벨 수 없다는 속박을 영혼에 새겨 넣어 그만큼의 힘을 얻는다.
레이를 조종했던 놈도, 레이의 영혼에 속박을 새겨 그녀를 조종했었고.
“그럼 일단 생력과 영혼의 관계부터 설명드려야겠군요.”
“관계?”
“네, 그렇습니다. 영혼의 그릇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설명해봐.”
“영혼의 그릇이란 생명체의 육신에서부터 영혼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고정시켜주는 일종의 장치입니다. 영혼은 그 그릇 안에 담기지요.”
그래서 ‘그릇’이라고 칭하는 건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영혼의 그릇은 곧, 생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영혼의 그릇이? 그럼 영혼의 그릇을 구성하는 게 생력 그 자체라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서클의 중심에 존재하는 심장이 품은 생력 안에, 영혼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호오….”
이거 생력과 아주 작은 연관이라도 있는 학회들은 전부 발칵 뒤집어지고도 남을 엄청난 정보였다.
“그래서 그다음은?”
“일단 방금 말씀드린 것을 기억해주시고.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면 본인이 지니고 있던 생력이 불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으음…, 추상적인 표현이야, 아니면 말 그대로 불탄다는 거야?”
사람이 죽는다면 그가 품었던 마나와 생력은 당연히 사라지게 돼있다.
그렇기에 불탄다는 표현이 그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추상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다만, 말 그대로 ‘불탄다’는 표현 자체가 중요할 경우, 추상적인 의미라고 받아들였다가 실수할 위험이 있다.
“말 그대로 불타오르는 겁니다. 마나가 자연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그래, 그 생력이 불타면 어떻게 되는데?”
“불타면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닌, 어째서 불타는지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려야 합니다.”
“흐음…, 그래?”
학계에선 생력의 행방에 관한 많은 가설이 존재한다.
마나와 마찬가지로 자연으로 환원된다는 자연회귀 설이 가장 유력하여 정설로써 받아들여졌으나 아무래도 이젠 아닌 듯 보였다.
“예, 생력은 죽어가는 육체를 살리기 위해 불타오릅니다. 마치 등잔에 에 넣는 기름처럼 말이죠.”
“뭐, 생명의 불씨를 유지한다. 그런 느낌인가?”
“에, 맞습니다. 생명체가 지닌 모든 생력은 육체를 복구하려 합니다. 다만, 성공률은 한없이 0에 수렴합니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사람들이 죽을 이유도 없겠지.
“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예, 맞습니다. 총 3가지의 경우가 있습니다.”
“말해봐.”
“첫 번째는 생력이 무한해져 지속적으로 육신을 회복하는 경지, 즉 인간들이 반신이라 부르는 경지입니다. 대표적으로 왕의 스승인 푸스탄트가 그런 경우죠.”
생력이 무한하다는 건 단순하게 영생과 연결된다 생각했다.
생력은 곧 생명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었다.
생력은 생명 그 자체가 아닌 생명을 유지하는 에너지, 즉 기름과 같은 것이었다.
‘… 이거….’
생명을 관장하는 신, 가이아를 섬기는 대지신교의 성경엔 이런 내용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다음은?”
“두 번째는 말 그래도 기적 그 자체입니다. 흔히들 죽다 살아났다고 하는 것이죠.”
“그럼 마지막 세 번째가…, 도롱이냐?”
“네, 맞습니다. 생력의 드래곤인 라드 삭스의 심장에 담긴 생력은 죽어가는 육체를 살릴 수 있습니다.”
“흐음… 그렇구나.”
그렇다면 도롱이의 생력이 빠져나간 것은 분명, 뭔가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볼 수밖에 없겠지.
“그럼, 영혼을 못 돌린다는 건 뭐야?”
“말씀드렸다시피, 육신을 살리기 위한 생력의 연소가 끝나는 순간, 첫 번째 죽음인 ‘육체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럼 두 번째도 있다는 거겠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 여쭙겠습니다. 영혼을 담고 있던 그릇은 생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력들이 전부 육체를 살리기 위해 연소되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영혼에 무슨 이상이 생기겠지.”
아무래도 창의력을 기대한 것 같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잘못되었다.
완벽한 냉정을 유지 중인 강현에겐 오로지 객관적인 사실만이 판단의 근거가 되어주었으니 답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림잡아 말한 정답은 도움이 안 된다.
“그, 그렇군요…. 확실히 괜한 것을 물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나 화난 거 아니니까 빨리 말해봐.”
“네, 머물 곳을, 고정시켜줄 생력을 잃은 영혼은 육신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다른 곳이라…, 천국이나 지옥 같은 곳이냐.”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사후세계라 칭하는 곳은 확실하겠지요. 그곳의 정체가 천국, 지옥, 극락, 낙원, 약속의 땅, 불역의 성지, 등등 그 무엇인지 알 순 없지만.”
“그건 왜 몰라?”
“당연히 안 가봤기 때문입니다.”
“음, 그렇네.”
그거까지 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부터 종교를 미리 정해두면 죽고 나서 안심할 수 있을 테고.
“그래서 그 영혼이 어디론가 떠나면 도롱이의 생력을 사용해도 소용이 없단 뜻인 거지?”
“네, 그렇습니다.”
“흐음…, 그럼 그 영혼이 떠나는 데까지 얼마나 걸리는 건데?”
“사람마다 다릅니다 얼마나 생력이 오랫동안 불타고 영혼이 언제 떠나는지는.”
그렇게 브루노스의 설명이 끝났다.
엄청난 정보들을 얻은 것은 굉장한 소득이지만, 당장 도롱이를 회복시켜줄 방법을 찾는 데는 별 쓸모가 없었다.
“흐음… 그럼 내 회귀랑 연관이 있으려나.”
강현도 죽었다 다시 살아놨다.
하우로스 백 작가 기사들에게 살해당한 뒤, 과거로 돌아왔으니.
어쩌면 심장에 있던 생력과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봤다.
“역시, 과거로 돌아온 거랑은 연관시킬 수 없겠지? 그때 나한테 심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누가 빼내어 갔을 확률이 가장 높겠죠.”
그럼 누가 빼내어 간 걸까.
아무래도 또 한 번 문헌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했다.
고룡의 심장에서 생력을 빼낼 정도의 무력을 지님과 동시에 기적처럼 죽음에서 돌아온 누군가를.
‘영웅신화는 과장이 심하긴 한데….’
적절히 대조해보면서 찾아봐야겠지.
아마 꽤 귀찮아질 것으로 보였다.
“브루노스, 그러면 생력을 빼낸 거잖아. 심장에 구멍 같은 걸 뚫어서.”
“네.”
“그럼 내가 흡수했던 심장은 어떻게 멀쩡했던 거야? 자가 수복이라도 하는 건가?”
“으음…, 일단 심장에 그런 능력은 없었습니다만….”
“다만?”
“생력을 품은 심장은 만큼, 스스로 수복했을 가능성은 충분하겠군요. 물어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도롱이가 최초이자 최후의 생력의 드래곤이었기에 저도 그거까진 모릅니다.”
“알겠어.”
강현은 다시 둥지에 누운 도롱이에게 다가갔다.
웬만한 성만큼 거대했던 풍채는 어디 가고 대형견 정도 크기의 헤츨링이 된 도롱이.
“다 들었지? 어때?”
“괜찮냐고 걱정부터 좀… 해달라고… 끄응….”
“음.”
확실히 아픈 사람…, 아니 드래곤한테 일단 괜찮냐고 묻는 게 먼저인데 지금 가지 전혀 묻지 않고 있었다.
“미안하다. 지금 내 상태가 누굴 걱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이해 좀 해줘. 몸은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그럼.”
“수복돼. 생력이니까….”
내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그럼 누가 빼갔는 지도 알 수 있나?”
절레절레.
힘없이 머리를 저으며 도롱이가 대답했다.
역시, 이것까진 알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럼 네가 브루노스처럼 성체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
“생력을… 다시 흡수하면 돼….”
“다시 회복하는 건 생력 하고 상관없고?”
“응…, 생력의 양이 줄은 걸 모르고 너무 세게 흡수해서 그런 거라….”
그건 다행이네.
성체가 되는 건 지금 당장 없으면 안 될 정도로 급한 건 아니지만 도롱이를 계속 아픈 상태로 둘 수 없으니까.
지금은 별 감흥 없지만, 분명 내면세계에서 벗어나면 분명 슬퍼질 거다.
그리고 이건 아직 예상일 뿐이지만.
“혹시 지금 이 상태면 현실의 나한테도 영향이 생기는 건가?”
어제, 푸스탄트와 대련했을 때, 용언을 사용했다.
그로 인해 모든 마나가 소비되었고 내면세계에서 사는 드래곤들에게도 영향이 갔다.
그렇다면 분명 반대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네, 그렇습니다.”
아픈 도롱이 대신 브루노스가 대답했다.
“그래? 등교날 전에는 깨어나야 하는데.”
그 순간이었다.
브루노스와 다른 드래곤들에게서부터 당황한 감정이 전해져 왔다.
“뭐야, 왜 그래?”
“그게 실은 말입니다….”
“설마 이미 등교시간 지난 거야?”
“그건 아닙니다.”
“그럼 뭔데.”
무슨 문제든 간에 등교시간 전에는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괜히 다른 학생들보다 불리한 시작을 하고 싶진 않으니까.
“지금…, 엘리스가 주인님의 상태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성녀를 데려온 상태입니다.”
“그래? 용케도 눈치채 줬네? 어떻게 알았데?”
척 보기에도 상태가 안 좋았던 걸까….
“그게….”
말하기를 머뭇거리는 브루노스.
“뭔데, 왜 그래.”
“아침인데 그… 남성기가 서질 않는다고.”
“발기 말하는 거야?”
“예, 그렇습니다.”
“이유가 이상하긴 한데, 어쨌든 잘 됐네. 근데 왜 갑자기 안서는 거야?”
“도롱이가 저 상태라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브루노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도롱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응? 그게 무슨 상관인데.”
“생력이 강할수록 정력이 강합니다. 그로 인해 영웅호색이란 말도 생겼지요.”
“그래?”
이건 딱히 알아봤자 쓸모없을 정보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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