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황녀의 제안 (2)
* * *
“어떤가요, 구미가 당기시지 않나요?”
확실히 구미가 당길 만도 하다.
황녀로써의 카리스마의 자신감 그 자체로도 조원이 될 이유는 충분했으니.
또한 그녀의 인맥과 권위. 실력까지 어디 하나 부족한 곳이 없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은 황녀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겠지.
그렇기에, 릴리는 자신감을 가진 채, 강현에게 물었다.
“으음….”
‘역시 쉽게 넘어오진 않는다는 건가요.’
침음을 흘리며 입가를 가린 강현의 모습에 릴리가 생각했다.
살짝 간을 보려는 걸까.
확실히,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타당한 방법이겠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충분히 여유였다.
“황녀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전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직 여쭤봐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신중하시네요.”
“1년 동안 함께할 조가 아니겠습니까. 신중하게 생각해야지요.”
“그래요, 뭐든지 편하게 물어봐주세요.”
여유로운 릴리의 대답.
강현은 머릿속으로 떠올린 질문들을 다시금 정리하여 입에 담았다.
“일단 첫 번째로 저 이전에 찾아간 학생이 있으십니까?”
“아뇨, 강현 씨가 첫 번째랍니다. 다른 학생들에게 빼앗길까 봐 서둘렀거든요.”
강현은 제일 먼저, 황녀인 릴리가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를 부여했는지 확인해봤다.
교섭에서 자신이 가진 것들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결과는 첫 번째.
그저 사탕 발린 말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입학식이 바로 어제였단 사실을 떠올려봤을 때 아마 그녀의 말은 사실이리라.
“릴리님께 첫 번째로 선택받다니, 엄청난 영광이군요.”
“강현 님께는 그만한, 아니. 그 이상의 가치가 있죠. 어느 정도 생각이 있는 학생들은 벌써부터 강현 님을 노리고 있을 거랍니다.”
릴리는 안다.
귀족들의 행동 원리는 근간은 결국 자신의 이득이란 사실을.
혈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것도 결국엔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강현이라는 존재는 그들에게 어떤 상대일까.
눈에 가시.
정확한 표현이다.
권의 주위적인 귀족들의 성격 상, 강한 발언권을 가진 강현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할 잠재적 위험 요소기에.
하지만 그와 동시에 최우선 포섭 대상이다.
푸스탄트의 제자.
스승의 뒤를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생력을 치유하는 약제학 명장.
소드마스터이자 대마법사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는 실력자.
5천 명의 경쟁자들 중에서 당당히 1위의 자리를 차지한 수석 입학생.
적이 됐을 때 위험한 존재라는 뜻은 그 무엇보다 든든한 아군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니까.
사회의 축소판인 아카데미의 구조 상, 강현의 가치는 더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귀족들이 그러했듯, 학생들 또한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강현에게 접촉할 수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후후, 겸손도 너무 과하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도 있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강현님는 그런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드네요.”
얘 봐라. 어디서 꼬리를….
꼬리는 무슨, 그냥 말만 그런 거지.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뜬금없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엘리스의 목소리에 강현이 대답했다.
릴리는 현재 자신을 포섭하기 위한 입장이기에 호감을 살 만한 말들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질문이 벌써 끝인 건 아니시겠죠?”
“아…, 네. 제가 처음이라 하셨는데, 남은 두 자리는 어떤 학생으로 하실지 생각해두셨습니까?”
“네, 물론이죠.”
“그렇다면 그 두 명이 누군지 알고 싶습니다.”
총 100명의 입학생.
20명으로 이루어진 5개의 반은 4명이 모여 만들어진 5개의 조가 형성된다.
현재 릴리와 강현이라 하면 두 자리가 남는 상황.
그 두 자리가 누구인가에 따라 릴리의 제안을 거부해야 되는 상황이 오겠지.
“아리 님과 벨라님이랍니다.”
릴리스는 성녀, 아리아가 사용중인 가명과 칸트루스 자작가의 장녀, 벨라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 죄송합니다만 한 번만 더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네, 아리님과 벨라님을 조원으로 구성할 생각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강현에 반응에 릴리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과하군요. 꽤나 신경 써주신 모양입니다.”
강현에게 있어선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조원이었다.
아리아와는 오랜 시간 동안 유대관계를 쌓으며 합을 맞춰왔으니.
벨라 같은 경우에는 학생들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하고 편한 상대였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포섭이란 본디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렇군요.”
벨라 같은 경우, 칸트 루스 자 작가와 강현의 관계는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상태.
아리아는 황성 바로 밑에 존재하는 수도, 페론에서 동거하고 있기에 황녀인 릴리가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건가 싶군요. 황녀님께선 완벽함을 추구하신다 하셨지만 저와 벨라님에게 완벽함을 바라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텐데요.”
“어느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일단 사교적인 부분입니다.”
강현과 벨라는 귀족들에게 이미 미운털이 잔뜩 박힌 상태였다.
인간관계.
즉, 정치도 시험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강현과 벨라는 디메리트를 들고 있을 수밖에 없다.
“확실히 그렇겠죠. 학생들이 강현 님과 벨라님을 반기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걸 왜 걱정하냐는 듯, 우아한 미소를 입가에 띤 릴 리가 말했다.
“하긴…,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습니다.”
강현과 벨라가 아무렴 어떻겠는가.
자신을 포섭하려고 하는 릴리는 황녀다.
5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대륙의 절반을 차지한 제국의 황위 계승 서열 1순위.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었다.
“그리고 강현 님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인기가 있다니.
대다수가 귀족, 명문가 출신인 학생들이 자신을?
듣도보도 못한 금시초문이었기에 강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 모르셨나요?”
“전혀 모르겠습니다. 신분 때문에 미움받는 걸로 알고 있었기에.”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신분 이전에 전부 한 명의 여자일 뿐이랍니다. 능력 있고 외모가 뛰어난 이성에겐 당연히 끌릴 수밖에 없죠.”
확실히 맞는 말이긴 하지만…, 왠지 와닿지는 않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벨라님 또한 마찬가지죠.”
“그렇군요.”
벨라로 얘기하니까 확실하게 이해됐다.
남자로 태어난 이상 벨라처럼 아름다운 여인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벨라님의 마법 실력은 릴리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벨라는 0 서클 마법인 매직 미사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듣기로는 벨라님과 함께 마법 시험을 치르셨다고 들었는데 맞을까요?”
“네, 맞습니다.”
“그럼 직접 보셨겠죠?”
아마 고룡의 심장을 사용해서 진행한 마나 측정을 말하는 거겠지.
강현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벨라님은 지금 당장의 실력으로 보고 선택한 게 아니랍니다. 강현 님은 물론이거니와 저 조차도 감히 가늠하지 못할 잠재력을 지니신 분이시죠.”
“흐음…, 하지만 고룡의 심장은 학장님의 모조품이 아녔습니까.”
벨라에게는 한 가지 소문이 있다.
고룡의 심장으로 측정한 그녀의 마나가 잘못 측정된 것이라고.
물론 온전히 그녀의 마나였으나 소문이란 건 진실을 우선시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강현은 그 점을 이용해 릴리를 떠보기로 했다.
그녀의 말투가 뭔가 알고 있는 거 같았기에.
“아뇨, 그건 분명 벨라님의 것이 맞아요. 말씀해드릴 순 없지만 제가 확신하는 근거 또한 분명 존재하죠.”
역시 7대 용사와 칸트 루스 자 작가의 관계를 알고 있는 듯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그 점임 문제긴 했으나, 더 이상 그녀를 떠보기란 불가능했다.
“그럼… 조장은 릴리님께서 맡으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그렇기에 주제를 돌려 릴리에게 물었고, 다행이다.
강현은 생각했다.
임시 반장과 달리 조장은 상당이 귀찮은 자리였기에.
“그럼 마지막으로 여쭤보겠습니다.”
“그래요.”
“릴리님께선 제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목적이 뭔지 알고 계십니까?”
“그야 당연히….”
릴리의 말이 중간에 끊겼다.
왜 이러지?
강현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간단한 질문인데 릴리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으니.
“후후….”
그러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뭐야, 무섭게 왜 이래.’
강현은 그녀의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었다.
“제가 그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니. 어이없는 실책이네요.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게 문제였을까요?”
“… 예?”
“좋아요.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어요. 질문에 대한 답은 월요일까지 생각해볼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뭐…. 알겠습니다.”
갑자기 대화에 흐름에서 튕겨져 나간 기분이었으나, 진지한 릴리의 말에 강현은 적당히 대답했다.
“오늘 만나서 즐거웠답니다. 다음엔 교실에서 뵙도록 해요.”
“예, 살펴 들어가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