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123화 (123/148)

〈 123화 〉 황녀의 제안 (1)

* * *

“강현아, 그 힘은 최대한 감추는 게 좋겠구나.”

잠시간의 고민 끝에 푸스탄트가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용언은 분명 좋은 능력이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용하기에 적합한 능력은 아니다.

일단 흡수된 고룡의 심장과의 연광성을 의심당할 수 있다.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상황을 타파할 비장의 수 하나 정도는 감춰두는 게 좋을 테고.

그렇기에 강현은 브룩에게 여러 개의 대련장들 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던 것이었다.

“근데 할아버지가 진짜 엄청나긴 하네. 고작 1초 정도 썼다고 기절해버릴 정도면.”

푸스탄트에게 오래 사용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하긴 했지만 기존에 상정해뒀던 시간에 한참이나 못미췄다.

잘하면 5분 정도 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반신이라는 벽은 강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며 높았다.

“네게 그런 말을 들어도 말이지, 흐음….”

강현의 감탄에 푸스탄 트는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20일 만에 용언을 익히고 사용할 정도의 재능을 지닌 그가 감탄해봤자 크게 와닿진 못했다.

“어찌 됐건 2년 동안 꽤나 성장했구나 마법사로서의 경지도 올랐으니.”

“뭐, 열심히 했으니까. 근데 중간에 기절해버린 탓에 검술을 못 보여줬는데, 괜찮으려나.”

레이에게 전수받은 ‘핏빛 칼날’을 선보이지 못했지만 본 목적이었던 ‘용언’은 보여줬기에 딱히 미련이 남진 않았다.

검술 보여주자고 주말에 브룩을 찾아가 대련장을 빌리기도 뭐하고.

“아쉽긴 하다만…. 브룩경에게 전해 들었다. 검술 시험에서 브룩경의 볼에 상처를 입혔다고. 그 정 도면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거 같구나.”

푸스탄 트는 원래, 강현과의 대련이 끝나면 다시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예상치 못한 강현의 기절로 인해 시간이 지체된 상황.

강현의 성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푸스탄트에겐 그만한 여유가 없었다.

브룩에게 전해 들었던 말로 2년간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대력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으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지.

푸스탄 트는 생각 했다.

“뭐…, 어떤 거 같아?”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 내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물론 용언은 푸스탄트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흐흐, 다행이네. 그런데 할아버지,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야?”

“이제 강현이, 네가 일어난 것도 확인했으니 슬슬 출발할 생각이었다.”

“벌써 가려고?”

강현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짙은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그래, 안 그래도 시간 내서 온 거 란다. 원래는 어제 돌아갈 예정이었지.”

“으음….”

마음 같아서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기 전인 내일까지 있다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의 계획이 틀어지게 만든 강현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서둘러서 가야 하는 거야?”

“내가 여기 있어봤자 무엇을 하겠느냐. 지금은 여행 중인 몸이라 해도 이런저런 일로 바쁘단다.”

나긋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달래듯, 푸스탄트가 말했다.

“알겠어. 그럼 나 씻고 나올 때까지만 기다려줘. 배웅해줄 테니까.”

“그래, 알겠다.”

“잘 지내고 있거라.”

“할아버지도 잘 다녀와. 연락도 좀 자주 하고.”

아카데미의 정문 앞.

푸스탄트와 마주 본 강현은 아쉬움을 삼키며 푸스탄트를 배웅해줬다.

“그래, 방학 때는 한번 찾아올 테니 그때 다시 보자꾸나.”

“응,”

방학까지 앞으로 4달은 남았지만…, 2년 만의 재회 후라서 그런지 그렇게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며늘아가, 강현이를 잘 부탁한단다.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아이니 네가 옆에서 지탱해준다면 안심할 수 있을 게야.”

“당연하죠. 저는 강현 씨의 검이니까 믿고 맡겨주세요.”

“그래, 공녀님과 아리, 라비도 잘 부탁드립니다.”

푸스탄 트는 레이와 아멜리아, 아리아, 라비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그녀들의 대답을 들은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여행 길레 올랐다.

“다시 가셨네요. 많이 아쉬우시겠어요.”

멀어지는 푸스탄트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강현에게 아리아가 말했다.

“뭐…, 아쉽긴 하지. 2년 만에 만났는데 벌서 가버렸으니까. 그래도 평생 못 봇 것도 아니니까 괜찮아.”

대답과 동시에 강현은 머릿속으로 오늘의 일정을 정리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황녀와 만나야 했다.

여인들과 점심식사를 한 강현은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챙겨 온 옷들을 숙소에 정리해두었다.

최대한 단정해 보이고 적당한 옷을 고른 뒤, 황녀와 연결된 통신 스크롤에 연락을 보냈다.

대략 30분 정도 흘렀을까.

황녀, 릴리에게서부터 답장이 도착했다.

그녀는 아카데미 부지 내에 위치한 음료점의 이름과 함께 10분 내로 도착할 수 있냐는 답장을 보내왔고 강현은 곧바로 가능하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났을까.

“황녀님께서 무슨 용무 때문에 부르신 걸까요?”

일찍 음료점에 도착한 후, 자리를 잡고 앉아있던 중 레이가 물었다.

“으음…, 짚이는 부분이 몇 개 있긴 한데 일단 들어봐야 알겠지. 일단 황녀님과 호의적인 관계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강현의 말에 레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의적인 관계인만큼 걱정할 필요 없다.

하지만 호의적인 관계이기에 뭔가 경계심이 느껴지는 레이였다.

“벌서 와계셨네요, 강현 님.”

페론티아 황족 특유의 연갈색의 머리카락.

황족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오드아이의 눈동자는 오른쪽, 왼쪽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

아름다운 외모를 더욱 빛내는 여유로운 미소와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고급스러움까지.

제국의 황녀이자 황위 계승 서열 1순위에 빛나는 릴리였다.

“황녀님의 존안을 뵙습니다.”

강현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왼쪽 가슴 위로 올리고 허리를 숙이며 릴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황성에서 제 저주를 해결해주신 뒤로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네요. 그간 평안하셨나요?”

“황실의 은덕과 스승님의 은혜 덕에 더할 나위 없이 생활해왔습니다.”

“후후, 너무 격식 차리실 필요 없답니다. 저는 지금 황녀 릴리가 아닌 한 명의 학생에 불과한 릴리니까요.”

아카데미에 입학한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은 학생이라는 신분 아래에 평등한 위치가 된다.

신분 차이로 인한 차별을 막기 위한 교칙이지만 그것도 적당히가 있다.

황녀를 상대로 편하게 행동하는 미친 짓을 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안도록 할까요. 강현 님께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릴리를 따라온 메이드는 익숙한 듯, 의자를 빼내어 앉을자리를 마련해주었고 그 자리에 릴리가 앉았다.

강현도 그녀를 따라 자리에 앉았고.

“메이드분께서 긴밀한 이야기라고 하셨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릴리에게 물었다.

“한 가지 제안을 드리려고 해요, 강현 님께도 절대 불만스러운 제안을 아닐 거랍니다.”

“제안… 말씀입니까.”

제안이라, 강현은 잠시 곰곰이 생각해봤다.

지금 이 시점에서 릴 리가 자신에게 건넬 제안이라.

“혹시 조에 관한 제안입니까?”

“어머, 바로 알아차리셨네요.”

“뭐…, 그것 말고는 딱히 없잖습니까.”

아카데미는 3가지의 유형으로 시험을 진행한다.

그중 하나가 조별 시험.

학생들은 자신들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조를 짜 조별 시험을 치르게 된다.

“그렇다면 말이 빠르겠네요. 저는 함께 조를 꾸리자는 제안을 하기 위해 만남을 청했답니다.”

“흐음…, 그렇군요.”

황녀와 함께하는 조라.

장점은 확실했다.

그렇만큼 단점 또한 확실했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가 말한 대로 불만스러운 제안은 아니란 거였다.

“혹시 미리 조를 약속해둔 학생이 따로 있으신가요?”

“아뇨, 아직 없습니다.”

“그럼 잘 됐네요. 저는 저의 조가 1학년 전체에서 1등 조로 만들 생각이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수석으로 입학한 강현 님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겠죠. 그러니 저와 함께 하시지 않겠나요?”

강현은 그녀의 제안에 답을 주기 위한 고민을 시작하기 전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었다.

“일단 황녀님의 조가 추구하는 형태는 어떤 겁니까?”

아카데미의 시험은 여러 개의 형태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조마다 잘 맞는 시험이 있는 반면, 상성이 좋지 못한 시험 또한 존재한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에서 조를 짤 때는 조의 형태를 정하고 짜는 것이 대다수다.

전투나 지식 같은 것이 특화된 조를.

“완벽이랍니다. 전투, 지휘, 지식. 전술, 사교, 그 외 여러 가지 부분들까지 전부 다른 조들보다 앞서 나가는 완벽함 그 자체랍니다.”

“… 창대한 목표군요. 황녀님께선 정말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기에 하시는 말씀입니까?”

“물론이죠.”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즉답.

사람이 저렇게 자신감으로 가득 찰 수 있는 걸까.

황녀라는 위치에 존재한 인물인 만큼 패기부터가 달랐다.

“저는 자신 있답니다. 황녀로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경험 속에서 실패와 패배를 경험해왔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대처해야 하고 풀어내야 하는 지를 배웠고요.”

황녀라는 직위는 그녀의 자신감을 납득시킬 신뢰하게 하는 근거 그 자체다.

그녀의 말은 단순한 야망이나 객기가 아닌 확신.

“어떤가요, 구미가 당기시지 않나요?”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