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뭔가 잘못된 성과 (1)
* * *
거의 2년 만에 하는 대련인 만큼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호기롭게 불러오긴 했는데….’
반신인 푸스탄트 앞에선 그저 재롱 잔치에 불과해질까 봐.
‘뭐, 괜찮겠지.’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다.
2년이라는 시간은 자신감의 근거가 되어주었고, 푸스탄트이기에 미묘한 차이라 할지라도 분명 알아봐 주리라.
“그럼 시작할게? 혹시 어디 하나 긁힐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강현은 마나를 끌어들이며 말했다.
“그래 보여주거라.”
과연 2년 간이라는 시간과 브루노스의 심장을 흡수한 강현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기대감을 담아 푸스탄트가 대답했다.
“쏟아지는 화염이여.”
[6 위계 화염 속성 마법, ‘레인 오브 파이어볼’이 시전 되었습니다.]
가진 모든 것들을 쏟아붓기로 작정한 이상, 강현은 시작부터 사용할 수 있는 마법들 중 가장 강력한 마법을 선택했다.
강현이 뻗은 왼 손에 술식이 새겨진 붉은 마법진이 형성된 후, 푸스탄트의 머리 위를 기준으로 4m 크기의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쾅, 콰앙, 퍼엉!
그리고 푸스탄트에게 쏟아지기 시작한 수십 개의 화염구.
플부피아 이그니스, 불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발 당 3 위계 마법인 기본 화염구를 상회하는 파괴력을 지닌 만큼, 폭발로 인한 검은 연기와 황색의 흙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푸스탄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다.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
하늘을 향해 펼쳐진 강현의 왼쪽 손바닥 위로 자색의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중력이여.”
마법진 위로 떠오른 반투명한 정육면체.
“짓눌러라.”
주먹을 쥔 오른손으로 정육면체를 내려찍었고.
[6 위계 화염 속성 마법, ‘그레비티 컨트롤’이 시전 되었습니다.]
마법진과 정육면체의 소멸과 동시에 푸스탄트가 서있던 장소 위로 자색의 마법진이 재생성되었다.
뭉개 뭉개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와 흙먼지가 곧바로 가라앉았고.
“이야, 멀쩡하네.”
푸스탄트는 따사로운 햇살 아래 산책 나온 노인이라도 된 것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제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검술은 아니고…, 배리어?’
0 위계 무 속성 마법 배리어.
비록 0 위계 마법일 지라도 시전자의 위계에 비례하여 배리어의 강도는 더욱 강해진다.
시전자가 푸스탄트인 만큼 배리어의 강도는 굳이 입 아프게 말할 것도 없겠지.
검강, 9 위계의 마법이 아닌 이상 저 배리어에는 흠집조차 낼 수 없을 거다.
“벌서 끝인 게냐?”
“그럴 리가.”
당연한 사실이고 상식이나 마찬가지지만, 그 압도적인 차이를 직접 목도하니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 대련이지 죽자고 싸우는 건가.
강현은 곧장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근데 그거 좀 반칙이지 않아?”
“흐음…, 확실히 배리어는 뚫은 방법이 없겠구나. 해제하도록 하지.”
“아니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마침 딱 좋으니까.”
강현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급하게 말했다.
“호오…? 딱 좋다니. 그거 참 기대되는 것이로구나.”
과연 푸스탄트는 얼마나 놀랄까.
아마 강현은 푸스탄트보다 훨씬 기대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법이 시작된 이래로, 인간이 이런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수많은 문헌들 속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마나요.”
강현의 나지막한 한마디의 일대의 마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불규칙적이면서도 규칙적인 마나의 흐름이 단숨에 깨졌으며 그 마나들은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칙성, 그 자체가 되었다.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아니, 마법진이라 하기엔 어폐가 있다.
속성에 걸맞은 ‘색’과 마법에 따른 ‘술식’을 지녀야 할 마법진은 아무런 색의 술식도, 심지어 형태조차 지니지 않았다.
강현의 영창과 함께 만들어진 투명한 마법진.
그것은 마나를 변환시켜 ‘생성’해낸 것이 아닌, 마나 그 자체가 형태를 이루어 ‘형성’해낸 것이었다.
“무슨…!”
마나를 느낄 수 있는 마법사들만 볼 수 있는 마법진.
푸스탄트는 경악 했다.
이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인간의 ‘언어’가 적혀있어야 할 마법진 사이의 술식은 룬으로 이루어진 ‘룬 문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네 주인을 섬겨라.”
푸스탄트가 유지 중이던 배리어를 구성한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또한 강현에게 전부 모였다.
그를 감싸고 있던 투명한 막이 반듯한 원형의 모양을 잃어가고 있음을.
‘됐… 응…?’
“윽….”
털썩.
강현이 제자리에서 쓰러졌다.
∴
“… 나 왜 여깄냐.”
넓은 들판과 푸른 하늘.
내면세계에 온 강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와, 왕이시여…, 왜 그런….”
그리고 그의 등 뒤에는 힘을 잃어 바닥에 쓰러져있는 브루노스의 모습이었다.
“왜 그래?”
작금의 상황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강현이 물었다.
“다른 애들은?”
“지금….”
거기 못 갈 거 같습니다….
힘이 안 들어가요….
왜 그런 무리를. 윽.
다른 드래곤들의 생각이 전해져 왔다.
그들은 전부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며 곡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나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각자 하나의 서클로 형성되는 마나의 드래곤들에게 생긴 문제인 만큼 강현은 곧장 마나의 문제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당신, 바보야?!
그리고 그 순간, 멀리서부터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오는 붉은 드래곤의 모습이 보임과 동시에 도롱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부터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강현의 앞에 착지한 도롱이.
강렬한 황당함이 도롱이에게서부터 느껴져 왔다.
무슨 그런 실수를….
“잠깐만 기다려봐 상황 파악 중이니까.”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유지하는 내면세계의 특성상, 강현은 그 당황함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에겐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게 제1 순위였다.
“음…, 능력을 쓰면 안 됐나?”
당연한 거 아니야!? 상대는 반신인데 그걸 쓰면 어떡해!
“일단 이런 능력이 있다고만 보여줄 생각이었어.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취소하려고 했고. 근데 무슨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여기로 와버렸네.”
어휴…! 진짜 다른 애들….
그렇게 도롱이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
“일어났느냐.”
눈을 뜬 건 아침이었다.
“으음, 아직 회복이 부족한 것일까. 안색이 좋지 않구나.”
“아니…. 몸은 멀쩡하긴 한데 정신적으로 피곤하다고 해야 하나….”
확실하진 않지만 장장 1시간의 걸친 잔소리를 끝마친 도롱이는 빨리 용왕의 심장을 흡수하라는 말과 함께 떠나갔다.
그 직후 일어나니 지금 상황.
고갈되었던 마나는 6개의 서클 중 3분의 1을 채웠기에 신체에 지장이 없을 정도였지만 잔소리의 후유증이 남았다.
그나마 다시 회복한 마나의 드래곤들을 보고 와서 다행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미안했다.
다음에 볼 때 반드시 사과하리라. 강현은 다짐했다.
“흠…, 그런 마법을 사용했으니 피곤할 만도 하겠지.”
“으, 응…. 그렇지.”
강형은 아무래도 오해한 듯한 푸스탄트를 그냥 두기로 했다.
내면세계에 있는 생력의 드래곤에게 잔소리를 듣고 왔다고 하기는 좀 그랬으니까.
“할아버지, 근데 나 얼마나 쓰러져 있었어?”
“16시간 동안 누워있었다. 오늘은 네가 쓰러진 날을 기준으로 다음 날 아침이지.”
다행히 그렇게 오래 쓰러져 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첫 수업부터 참석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떡할지에 관한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다행… 아.”
“왜 그러느냐.”
“… 나 약속 있었는데.”
황녀와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엘리스와는 함께 밤을 보내기로 했었다.
다음날 아침.
강현은 두 개의 약속을 날려버렸다.
‘하지 말걸…!’
곧장 후회가 밀려왔지만 강현은 솔직히 너무 억울했다.
다른 여인들에게는 잘만 사용했던 용언이지만 푸스탄트에게 사용하니 문제를 깨닫기도 전에 기절해버렸다.
시간으로 치면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에.
“안 그래도 황녀님께서 오늘 왔다 가셨다. 내가 사정을 설명해두었으니 걱정 말려무나.”
“정말로?”
“그래.”
“하아… 살았다. 진짜 고마워, 할아버지.”
황녀에게 괜히 비호감을 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강현은 진심으로 안도했다.
엘리스는,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미안하다, 엘리스.
저는 괜찮은데 깜짝 놀랐으니까 다음부터는 조심해줘요.
응, 고마워.
그래도 일단 텔레파시를 통해 엘리스에게 사과를 했다.
“그런데 강현아, 네가 사용한 마법은 분명 고룡의 마법이겠지?”
“응, 정확히는 용언이라고 하는 건데 주변, 그리고 상대의 마나, 마법을 조작하는 마법이야.”
고룡, 브루노스의 심장을 흡수하고 얻게 된 새로운 마법 ‘용언’
주변의 마나와 상대의 마나를 조작할 수 있는 만큼 상대가 생성한 마법진의 술식을 바꾸거나 소멸시켜버릴 수 있는 능력이었다.
엄청난 효과만큼 마나 소비 또한 엄청나지만 상대의 수준에 맞춰진다.
“허허…, 엄청난 능력을 얻었구나.”
“엄청나긴 하지. 근데 아직 상대의 마나까지 간섭할 순 없어.”
“흐음…, 강현아, 네가 고룡의 심장을 흡수하고 얼마나 지났느냐?”“음…, 1달 좀 안됐지? 아마 날짜로 하면 20일 정도?”
푸스탄트는 분명 기억한다.
강현이 자신의 배리어에 영향을 주었단 사실을.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검성의 검강, 대현자의 9 위계 마법이 아닌 이상 10 위계, 반신이 사용한 배리어에는 흠집조차 낼 수 없으니.
고룡의 심장을 흡수하여 새로운 능력을 얻은 건 분명 기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고작 20일이라는 시간 만에 그 정도의 성과를 내는 건 절대 요행으로도 볼 수 없다.
역시 엄청난 재능이었다.
드래곤을 품은 자이기에 그릇부터가 다른 것이겠지.
‘이걸 어쩔꼬….’
그런 만큼, 푸스탄트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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