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입학식 (2)
* * *
라드삭스는 11마리의 고룡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다.
드래곤으로써의 압도적인 무력을 물론이거니와 지혜로우며 지식 또한 엄청났다.
현재 인간들이 사용하는 모든 마법의 근간은 라드삭스로부터 시작되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필요하겠는가.
거기에 더해 다른 10마리의 고룡은 라드삭스를 따랐다고 전해져 왔으며 악신에게 고룡과 수많은 드래곤들이 세뇌당하여 벌어진 ‘어두운 밤의 전쟁’ 속에서도 홀로 제정신을 유지하여 인간의 편에서 싸우다 죽었다.
고룡 학자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라드삭스마저 세뇌당했더라면 분명 인간은 멸망했을 거라 입을 모아 말할 정도.
“그게 왜 할배한테 있는 거야…?”
그리고 그 라드삭스의 심장은 푸스탄트가 가지고 있었다.
“여행하던 도중에 어쩌다 보니 찾아버렸다.”
“아니, 그게 ‘어쩌다 보니’ 찾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아? 5천 년 동안 못 찾은 건데.”
5천 년 전, 어두운 밤의 전쟁.
드래곤들에게서부터 승리한 인간들은 자신들의 수호자이자 신이었던 고룡들의 심장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발견된 것이라고는 ‘고룡, 브루노스의 심장’이 전부.
남은 10개의 심장들은 찾지 못했다.
5000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대륙을 다스렸던 제국이 수색대를 꾸려 찾았음에도.
“도대체 어디로 여행을 가면 그걸 찾는 거야? 무슨 심해라도 다녀왔어? 아니면 활화산 용암 속?”
하도 어이가 없어 우스갯소리로 뱉은 말이었지만 반신인 푸스탄트라면 충분히 그랬을 가능성도 있기에 강현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비슷하구나.”
“아니, 무슨…. 그래서 정확히 어디서 찾았는데?”
“빛을 집어삼키는 협곡에서 찾았지. 구경삼아 다녀왔는데 지하실로 통하는 입구가 발에 걸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허허허.
자기도 예상 못했다는 양, 푸스탄트는 길게 늘어진 흰색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 무슨 여행을 그런 곳으로 가는 건데.”
빛이 집어삼키는 협곡은 인간들이 감히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깊다.
그로 인해 아무리 밝은 태양이 떠오르더라도 그 넓은 협곡을 밝힐 수 없을 정도.
그로 인해 협곡의 땅바닥은 미지의 공간이다.
어떠한 학자들은 독립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을 거라 말하고 또 누군가는 생명체가 살 환경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은퇴하겠고 마음 편히 세계 여행이나 다니겠다고 말한 푸스탄트의 행선지로 맞는 건지 의구심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다.
“그야 궁금하니 갔지. 협곡의 밑바닥은 과연 어떠한 공간일까 하고 말이야.”
“… 에휴.”
마음 같아서는 뭐라 하고 싶었지만 푸스탄트였기에 걱정이 되질 않았다.
빛을 집어삼키는 협곡에 무엇이 있든 간에 반신이자 데미갓인 푸스탄트에게 큰일이 생길 수가 없을 테니.
“그래서 이거 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구만?”
“그렇다고 해야겠지. 브루노스의 심장에 관한 소식을 듣고 나니 너에게 건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세간에는 아카데미의 총장이 직접 만든 복제품이 파괴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
“… 할배는 고룡의 심장에 관해서 어떻게 알고 있어?”
“흠,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구나 총장님께서 만드신 복제품이 파괴된 것 아니더냐?”
분명 강현은 고룡의 심장을 흡수한 것이겠지.
푸스탄트는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해야만 했다.
“그게 사실은….”
강현은 고룡의 심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푸스탄트에게 전해주었다.
고룡의 심장은 사실 복제품이 아닌 진품이었으며 자신에게 닿자 산산조각이 나며 흡수되었다고.
그 후, 정신을 잃고 도착한 내면세계의 1번 드래곤이 고룡, 브루노스로 변해있었단 사실까지.
“허어…. 꽤 놀랐겠구나.”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강현은 ‘예언의 아이’였기에.
“말도 말라니까. 총장이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그냥 넘어가 주셔서 다행이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다 돋는다.
이 세계에 단 11개만 존재하는 고룡의 심장들 중, 인간이 소유한 유일한 고룡의 심장의 가치가 얼마나 엄청나겠는가.
돈으로 헤아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어쨌든 이 라드삭스의 심장도 나한테 닿으면 바로 흡수될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강현의 물음은 두 가지의 질문을 내포했다.
이렇게 귀한 것을 자신에게 넘겨줘도 되는지.
5000 년 역사의 제국이 건국 이래로 계속 찾아온 고룡의 심장이 자신에게 흡수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그래, 물론이지. 소유권은 습득자인 내게 있을뿐더러 라드삭스의 심장의 존재를 아는 건 너와 나 밖에 없으니.”
“… 할배, 혹시 아는 거 없어? 고룡들이 왜 내 내면세계에 있는지.”
“흠…, 미안하구나. 나는 아직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니.”
이것은 진실이었다.
아무리 푸스탄트라 할 지라도 내면세계에 고룡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쓰읍…, 알겠어. 어쨌든 고마워 잘 받을게.”
강현은 일단 인벤토리에 라드삭스의 심장을 넣었다.
앞으로 대략 3분 뒤에는 입학생 대표 선서문 낭독이 시작될 거고 입학식이 끝난 뒤에는 교사와의 만남 이후 첫 수업을 시작해야 하니.
“그래, 그럼 슬슬 돌아가 보자꾸나.”
∴
“다음은 입학생 대표 선서문이 있겠습니다.”
무대 위.
입학식의 진행자를 맡은 부총장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무대와 객석 곳곳에 설치된 수정구슬을 통해 증폭되어 넓은 공터를 가득 채웠다.
“이제 올라가라.”
브룩에 지시에 따라 강현과 아멜리아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리허설 때처럼 곧장 무대 위 단상에 놓인 푸른 수정구를 사이에 두고 객석을 향한 채 나란히 섰다.
‘진짜 많네.’
입학생, 귀족가의 사람들과 명망 높은 가문의 사람들.
입학식 때만 개방되는 아카데미에서 진행되는 축제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 평민들과 상인들까지.
쉽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인파에 강현은 감탄했다.
이 세계에서 이만한 인파가 모이 기한 쉬운 일이 아니다.
통신수단과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못했으니.
아카데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리라.
다만 시선들은 그리 곱지 못했다.
강현이 제 아무리 푸스탄트의 제자라 할지라도 결국 평민일 뿐이다.
심지어 뒷골목 거지라는 천한 출신.
혈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귀족가와 명망 높은 가문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만큼 강현은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놈에게 아카데미의 수석 입학생의 자리를 빼앗기기까지 했으니 더하겠지.
질투, 무시 등, 온갖 부정적인 시선.
다들 포션과 약, 영약을 노리고 강현에게 굽신거리더라도 결국 본성은 이렇다.
하지만 그 속에서 강현은 오히려 더욱 어깨를 폈다.
고작 열등감에 휘둘릴 정도로 남의 시선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다.
항상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더라도 강현은 상당한 자존감을 지니고 있다.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항상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애쓸뿐더러, 항상 옆을 지켜주며 함께 생활해온 여인들은 강현을 지지해주고 추켜세워줬으며 무슨 상황 속에서도 기를 살려주었으니.
“공녀님.”
“네.”
강현의 신호와 함께 아멜리아는 객석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선서.””
미리 연습했던 대로 오른손을 든다.
그에 맞춰 입학생들 전원이 오른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펼쳤으며. 강현은 외워온 연설문을 입에 담았다.
“나는 영광스러운 페론티아 제국의 백성이자 아카데미의 입학생으로써 겸허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선서한다.
하나, 아카데미에 입학함에 있어 성실한 자세로 수업에 임한다.
하나, 아카데미의 입학한 순간부터 한 명의 생도로써 모두가 평등하단 사실을 잊지 않는다.
하나, 새로운 배움을 기꺼이 수용하여 학문의 틀을 넓힌다.
하나,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는다.
하나. 나는 곧 제국의 미래이며 아카데미의 얼굴이란 사실을 잊지 않는다.”
강현의 차례가 끝나고 아멜리아가 이어받을 차례.
“나는 이와 같은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며 더욱 성장하고자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스스로의 의지로 이와 같이 선서한다.
입학생 대표.”
“이강현.”
“아멜리아.”
선서문 낭독이 끝나고 손을 내렸다.
객석의 생도들 또한 강현과 아멜리아를 따라 손을 내렸으며 관객들은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에서 내려갔다.
∴
그 후, 푸스탄트의 환영사가 진행되고 수정구슬에 저장한 총장의 환영사를 들었다.
그렇게 입학식은 막을 내렸으며 생도들은 곧장 발을 서둘렀다.
앞으로의 1년을 함께 생활할 생도들과 담임교사를 만나기 위해서.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아멜리아 님.”
“네, 네에…. 나중에 봬요, 강현 님.”
얼굴을 붉힌 채 답하는 아멜리아의 표정엔 아쉬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현과 같은 반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석과 차석이 같은 반에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네.”
강현도 아쉬울 따름이었지만 별 수 있겠는가.
수업이 끝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뒤 곧장 레이와 아리아, 라비와 함께 자신의 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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