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입학 시험 (14)
* * *
“하지만 지금은 한참이나 부족하답니다.”
샤렌이 말을 이었고, 강현은 궁금해졌다.
“허락받지 못한 곳에 들어간다면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저 문에 손을 댔을 뿐임에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걸로 봐서는 분명 뭔가가 있을 거라 확신한 강현은 샤렌에게 물었다.
“마녀의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존재…, 영혼이라고나 할까요. 영혼이 뭉개지겠죠. 그로 인해 육신이라는 껍데기 그 자체만 남게 될 테고요.”
꽤 섬뜩한 소리였다.
식물인간과 비슷한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될 테니까..
몸이 먼저 반응해서 다행이다.
혹시라도 그 문을 열었다면….
쉽게 상상이 가진 않았지만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겠지.
“그럼… 혹시라도 잘못될 수 있는데 문을 열게 두신 이유는 뭡니까?”
그런데 샤렌은 왜 문을 그대로 열게 내버려둔 걸까,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일단…, 직접 느꼈던 대로 강현 학생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문을 열지 못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혹시라도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있었고요.”
“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하답니다.”
샤렌은 썩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뛰운 채 대답했다.
뭐가 충분하다는 걸까.
절로 의문이 들었지만 딱 보니 친절하게 설명해줄 모습은 아니었기에 다른 질문을 하기로 한 강현이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의 저는 이 문을 열기 위해서 얼마나 부족한 겁니까?”
“마녀의 세계에 들어가고 지식의 보고에 입장하려면 최소한 본인의 내면세계를 현현시킬 수 있는 경지에 달해야만 하죠.”
마법사들은 현자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자신만의 내면세계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현자들의 성장에 따라 내면세계도 성장하며 현자 그 이상의 경지.
대현자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마법사는 현실에 자신의 내면세계를 현현시킬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내면세계의 현현으로 마법사의 극치이자 권능이라고 불리우는 최강의 마법.
“… 아직 한참이나 남았군요.”
강현은 아직 대마법사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6 서클 마법사이다.
대현자의 경지는 9 서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아직 아득히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아쉽게도요.”
샤렌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제 질문을 거부하신 것과 이 지식의 보고가 무슨 연광성이 있는 겁니까?”
“간단해요, 강현 학생이 원하는 것은 저의 지식이 아닌 지식의 보고가 지닌 것들이기 때문이죠. 아주 먼 옛날부터 존재해온 마녀들의 보고 듣고 습득한 것들은 전부 지식의 보고로 전달되죠. 지금, 강현 학생과 저의 만남조차도 말이에요.”
“그렇… 군요.”
“네,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이라면 얼마든지 말해드릴 수 있지만 지식의 보고에 저장된 것들을 말씀드리는 건 지식의 보고에 입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거죠.”
그래서 직접 느껴보는 편이 더 나을 거라 얘기했던 거였구나.
샤렌의 설명을 들은 강현은 곧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인가요?”
마녀는 생각과 감정까지도 알 수 있다고 했었던가.
샤렌이 말했다.
강현은 엘리스와 대화를 나눌 때의 감각을 느꼈다.
“네.”
“물어보도록 하세요, 아무래도 강현 학생을 찾아온 손님이 있는 거 같은데 서두르는 편이 좋겠네요.”
손님?
여인들을 말하는 것일까.
“그럼 만약 제가 지식의 보고로 들어간다면 어디까지 알 수 있는 겁니까?”
고룡들이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이유.
출생의 비밀.
레이를 조종했던 놈까지.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부, 강현 학생이 원하는 것들은 그 무엇이든 알 수 있겠죠.”
∴
현실에 현현했던 내면세계가 소멸했다.
점멸한 시야는 아카데미의 총장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의미한 시간이었으면 좋겠네요.”
즐거움과 여유로움이 섞인 샤렌의 말.
강현은 어째서인지 그녀의 목소리부터가 색다르게 들려왔다.
그건 아마도 푸스탄트에게 느끼던 감정과 동일한 것.
그 정체는 경외심이라는 감정이겠지.
같은 마법사로서 내면세계를 현현시키는 샤렌에게 들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덕분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수많은 의문들이 생긴 만남이었지만 답답함은 전혀 없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방법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고 나아가야 할 목표를 얻을 수 있었으니.
강현은 샤렌과 만나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후후…, 뭘요. 지금 이렇게 제 앞에 나타나 준 것만으로도 제가 훨씬 감사해야 하는 걸요.”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샤렌은 또 한 번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 왔다.
어째서 그녀가 감사한다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던 강현의 질문은 아쉽게도 답을 받지 못했다.
짝짝.
샤렌은 두 번 손뼉 쳤다.
그리고 새하얀 빛무리가 강현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곧장 강현은 고개를 숙여 발 밑을 바라봤다.
마법진에 새겨진 술식을 확인하고 텔레포트 마법이란 사실을 깨닫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를 섬기실 생각이 아니라면 제가 부르기 전까지는 찾아오지 마세요. 아, 그리고 고룡의 심장은 제 실험작의 실패 같은 이유로 적당히 넘길 테니까 그렇게 알고요.”
이 일방적인 의사소통.
어디서 경험했던 거 같은데.
강현은 기억을 떠올렸고 메르시가 납치되었던 산에서 만난 분홍머리의 마녀를 떠올렸다.
마녀라는 족종 특성일까.
“아, 그리고 미처 보지 못한 마법 시험은 내일 아침 일찍 치르면 된답니다. 한… 8시 정도면 되겠네요.”
불만을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샤렌의 마지막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순백의 빛은 강현을 감쌌고, 빛무리가 사그라졌을 때, 강현은 어느새 총장실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서 있었기에.
“주, 주인님!”
그리고 주변을 살피기도 전, 우측에서부터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녀는 곧장 강현을 끌어안았다.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걱정했잖아요!!”
강현은 엘리스에게서부터 걱정과 분노의 감정이 전해져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굳이 감정 공유가 아니더라도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괘, 괜찮아?”
엘리스의 행동이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왜 걱정과 분노가 느껴지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고.
“갑자기 아무것도 안 느껴져서 얼마나 놀랐는데, 괜찮겠어요!?”
“응…? 무슨 말인지… 아, 그렇네.”
강현은 엘리스의 말을 이해했다.
신살자의 검인 그녀와 검의 주인인 강현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감정의 공유를 막아놓은다고 해도 그 연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강현이 자신의 내면세계에 들어갔을 때조차 마찬가지.
하지만 방금 막 샤렌의 내면세계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았던가.
당장 눈앞에 닥친 의문들을 해소하는 것에만 집중해서 제대로 느끼지 못했지만 아마 엘리스와의 연결이 끊어졌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엘리스가 이럴 이유가 없겠지.
“… 별 일 아니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뒤에서부터 상당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부총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강현은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연결이 끊겨 놀란 엘리스가 곧장 총장실로 찾아왔고 내 안위를 걱정한 탓에 그와 마찰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예상은 아마 맞는 듯했다.
껴안고 있던 팔을 푸르고 살짝 물러선 엘리스는 복잡한 표정을 부총장을 잠시 바라봤다
뭔가 말하려는 듯이 입을 벌리고는 아무 말도 없이 다시 다무는 것까지 봐서는 아마 망설이는 것 같기도 했고.
“잠깐 뭐 좀 하느라 잠깐 끊긴 거야. 나도 끊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 숙소로 돌아가면 전부 설명해줄게.”
강현은 자신을 걱정해준 엘리스가 너무나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 무슨 문제 있었던 거 아니죠?”
“당연하지.”
“…, 죄송합니다. 잠시 흥분한 탓에 화를 내버렸네요.”
그리고 엘리스는 부총장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주인을 섬긴다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사과받을 일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부총장도 총장, 샤렌 못지않게 비밀스러운 캐릭터였다.
마녀인 샤렌과 분명 특별한 관계겠지.
마치 엘리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말투로 봤을 때는 샤렌을 섬기는 인물이 아닐까.
“… 네.”
작게 대답한 엘리스는 어서 돌아가자는 듯이 강현의 손을 붙잡았다.
빨리 설명을 듣고 싶어서 그런 것이겠지.
“잠시만. 부총장님, 혹시 한번 더 총장실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까?”
“총장님께서 안된다고 하시더군요.”
아쉽게도 다시 들어갈 수는 없는 모양.
강현은 빠르게 포기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살펴가십시오.”
부총장과 인사를 나눈 강현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목표를 바라본 채, 숙소로 돌아가 엘리스에게 총장실에서 있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8시.
남은 마법 시험을 치른 뒤, 다른 여인들에게도 총장실에서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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