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입학 시험 (11)
* * *
“용용이가 뭐 어때서, 귀엽고 친근해서 얼마나 좋아.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강현이 묻자 다른 마나의 드래곤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놈들이….”
머리를 돌려 자신의 뒤에 서있던 드래곤들을 바라본 채 용용이가 이를 갈았다.
“왕이시여. 어찌 하늘의 지배자인 드래곤의 이름이 용용이겠습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주십시오.”
용용이는 사뭇 간절하게 말했다.
“아니, 너는 용용이다. 그건 이미 정해진 것.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뀔 수 없지.”
원래였다면 불쌍함이라도 느꼈을 강현이었지만, 내면세계에서는 완벽한 이성을 유지한다.
동정심이 생길 리가 없다는 뜻.
용용이의 호소는 강현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롱이는 어딨냐?”
도롱이.
총 7마리의 드래곤들 중, 유일한 생력의 드래곤의 이름이었다.
“뭐, 삐져서 안 온다고?”
발랄하고 활기찬 성격이 특징인 5번 드래곤이 말했다.
물론 말이나 텔레파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연하게 알고 있었다.
“이름이 뭐 어때서. 이해가 안 되네. 내가 얼마나 심사숙고해서 지은 이름인데.”
또한 도롱이는 이름을 바꿔주기 전까지 얼굴도 안 보겠다고 한 모양이었다.
7마리의 드래곤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드래곤이긴 하지만 어쩔 때 보면 참 속이 좁단 말이지.
“너도 좋은 거 같지?”
4번 드래곤은 호쾌하게 웃으며 충분히 좋은 이름이 아니냐고 물어, 강현이 말했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특별한 선물을 하나씩 준비해왔어.”
원래는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라 8번째 드래곤을 맞이한 뒤 하려 했지만 기껏 내면세계까지 온 만큼 지금 하기로 했다.
그리고 강현의 말에 거짓말같이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들 즐겁게 웃고 있었는데.
마치 긴장한 모습이었다.
뭐 때문에 저러는 거지?
“선물이 뭐냐고? 당연히 너희 이름이지. 지난번에는 너무 급하게 지어준 탓에 도롱이랑 용용이 밖에 못해줬잖아.”
“크흡…! 하하하!!!”
용용이는 한차례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한 듯, 머리를 들어 올리며 하늘을 향해 크게 웃었다.
마치 통쾌하다는 듯이.
“아니.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데. 언제까지 번호 같은 딱한 호칭으로 부를 수 없잖아.”
2번부터 7번까지.
6마리 드래곤들의 적극적인 반대 속에서 강현은 꿋꿋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다.
“자, 딱 한 번만 말해줄 테니까 잘 들어라? 제일 먼저… 어디 가냐?”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 자신의 두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르려던 2번을 향해 강현이 말했다.
강현의 말에 초코는 날갯짓을 멈춰 섰다.
그리고 강현을 바라봤다.
급한 볼일이 기억나서.
그의 생각과 감정이 전해져 왔다.
딱 봐도 거짓말이다.
어두컴컴하고 습한 동굴 속 둥지에서 하루 종일 누워있는 주제에.
“이름은 듣고 가.”
2번에게서부터 절망의 감정이 느껴져 왔다.
그런 2번을 본 용용이는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2번, 너의 이름은 다용이다.”
2번 드래곤, 다용이에게서부터 비통함의 감정이 느껴져 왔다.
귀엽기만 한데 무슨 문제지.
강현은 이해할 수 없을 따름이었다.
“다음 3부터는 한 번에 말할게. 나롱이, 이용이, 하롱이, 우롱이, 사롱이다.”
모두의 이름을 지어준 강현은 흡족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크흡, 크하하하…! 정말 멋진 이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왕이시여!!”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기에, 용용이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렇지? 너도 이제 뭘 좀 아는구나. 용용이도 멋진 이름이라니까?”
“… 쯧.”
용용이가 혀를 찼다.
어떻게 드래곤 이름이 우롱이에요! 지금 저를 우롱하시는 건가요!
6번 드래곤, 우렁이의 생각이 전해져 왔다.
“오.”
강현은 작게 감탄했다.
우롱당하는 우롱이라.
엄청난 라임이….
‘오,’가 뭐예요! ‘오.’가!!
마치 발작하듯이 외쳤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강현은 마음이 아팠다.
곧장 관심을 돌렸다.
이번에는 사롱이의 생각.
뭔가 되게 나쁜 드래곤 이름 같아요…. 사룡 같은….
소심한 성격의 사롱이가 말했다.
“… 그건 확실히 문제가 있네. 그럼 7번은 취소하고 일단 보류로 하자. 제대로 된 이름으로 생각해올 테니까.”
사롱이가 될 뻔한 7번에게서부터 안도의 감정이 느껴진 직후, 모든 드래곤들의 부러움이 7번에게 향했다.
“수컷은 용, 암컷은 롱이다. 딱히 이유는 없고.”
그리고 용과 롱을 구분 짓는 기준이 궁금해 보이길래 알려주었다.
“흠흠, 그럼 전부 이름도 지어줬으니까 이제 무슨 일이 생긴 건지에 관해서 얘기를 좀 해보자고.”
휘몰아치는 드래곤들의 엄청난 불만들을 간단하게 무시한 강현이 말했다.
어떻게 작명 실력이 저렇게 처참한 걸까.
그에게 있어서 이름을 짓는 기준은 오직 귀여움이 전부인 건가?
다른 모든 것에는 재능이 뛰어난 강현이었기에 지옥과도 같은 작명 센스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예.”
“너, 브루노스냐?”
그리고 강현은 곧장 용용이에게 물었다.
고롱 브루노스의 심장의 파괴와 흡수.
드래곤의 형상이 아닌 진짜 드래곤이 된 용용이.
모든 정황상. 심장이 흡수되어 용용이가 진짜 드래곤이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저도 방금 막 잃었던 심장을 흡수함으로써 깨달았습니다. 제가 고룡 브루노스였다는 사실을.”
용용이는 두장의 날개를 넓게 펼치며 말했다.
과연, 진정한 드래곤이라는 것일까.
그 압도적인 존재감과 위용은 초월적인 존재로써의 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 네가 왜 내 내면세계 안에 있는 건데?”
하지만 강현은 무덤덤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면세계 내부였으니.
“… 저도 모릅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약간의 민망함을 느낀 브루노스는 펼쳤던 날개를 다시 접은 채로 대답했다.
“모른다고?”
“예, 그저 제가 브루노스라는 사실만 깨달을 수 있었을 뿐, 그 외의 것들은….”
용용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마쳤다.
“흐음….”
그게 가장 중요한 건데.
강현은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지 고민해본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어두운 밤의 전쟁은? 아니, 정확히 어디까지 기억나는 건데.”
“흠…, 가장 먼 기억이라고 한다면, 마탑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은 건물들이 즐비했던 거기가 기억납니다. 어두운 밤하늘의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달조차 흐릿하게 보였던 세계였습니다.”
“… 현대를… 말하는 거냐?”
“예. 왕께서는 그 세계를 자주 그렇게 칭하시더군요.”
현대에서부터 용용이가 내면세계 내에서 존재했다.
어째서?
강현은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고, 빠르게 관뒀다.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만, 어릴 적부터 부모 없이 고아원에서 자랐던 자신의 출생에 뭔가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고,
멋지게 자라줬구나, 앞으로도 멋진 사람이 되어주렴.
문득, 강현은 일전에 오크에게 납치당한 메르시를 구하기 위해 들어갔던 산에서 만난 분홍 머리의 마녀가 떠올랐다.
분명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의 말투.
‘그 마녀를 만나볼 수 있다면….’
뭔가 알아낼 수 있으리라.
강현은 확신했다.
“예, 그리고 이 세계로 돌아와 어두운 골목길에서 눈을 떴을 때, 2번… 이 아니라 다용…, 크흡…. 흠흠. 다용이가 태어났습니다.”
2번의 이름을 말함과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며 용용이가 말했다.
“흐음…. 그렇다면 다른 애들도 고룡일 확률도 있을 수도 있는 건가?”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확신을 위한 마땅한 근거는 없었지만, 브루노스의 심장을 흡수함으로써 진짜 드래곤이 된 용용이가 있는 만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 알겠다.”
반신의 마법으로도 흠집조차 낼 수 없었던 고룡들의 심장들.
파괴할 수 없는 만큼 이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겠지.
강현은 어째서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심장들을 모을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왕이시여,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말해봐.”
“저는 이미 브루노스라는 원래의 이름이 있는 몸. 왕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있다고는 하지만 원래 이름을 사용하고 싶은 바입니다.”
“흐음…, 확실히.”
용용이라는 이름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봐도 브루노스라는 이름보다는 훨씬 나은 거 같기도 하고.
하지만 원래 이름이 있는데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럼 그렇게 하자. 용용이 말고 브루노스로 부를게.”
“…!!”
환희의 감정이 느껴졌다.
다른 드래곤들에게서부터 브루노스를 향한 배신감이 느껴져 왔고, 브루노스는 뒤를 돌아본 채, 승리자의 미소를 뛰웠다.
상황 역전이라는 것이다.
‘사이좋네.’
강현은 그런 드래곤들의 모습을 태평하게 지켜봤다.
그러던 중.
엄청난 분노의 감정이 느껴져 왔다.
멀리서부터 공기를 가르는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고.
제 이름은요!!!
생력의 드래곤의 생각이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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