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입학 시험 (9)
* * *
벨라는 7대 용사의 숨겨진 후손들 중 하나다.
그에 반해 유일하게 지닌 단 한 개의 서클조차 간신히 생성해낸 수습 마법사이고.
하지만 ‘고룡 브루노스의 심장’을 통해 확인한 그녀는 정식 마법사와도 비견될 만큼의 마나를 지니고 있다.
압도적인 마나의 총량.
그것이 용사의 후손이라는 증거 그 자체겠지.
그녀는 태생적으로 엄청난 마나를 지니고 태어난 만큼 가문 사람들의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칸트루스 자작가의 당주이며 대마법사의 경지인 카트를 뛰어넘어, 대현자의 경지까지 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지만 그녀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사람이 지닌 마나는 각기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자신의 마나에 대해 설명은 항상 추상적이다.
휘몰아치는 폭풍.
넓은 들판을 질주하는 말.
고요한 달.
잔잔한 호수와 같이.
강현의 마나 또한 특이하게도 드래곤의 형상을 뛰고 있다.
자연의 마나를 흡수하지 못하는 대신, 몬스터의 마나를 흡수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고.
신은 공평하다고 했던가.
벨라는 마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어째서인가.
엄청난 마나와 마나 흡수력을 타고난 대신, 마나 제어력에서 큰 결함을 보였다.
벨라의 문제인가?
절대 아니다.
그녀의 몸속 마나들이 흐르는 회로는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었으며 매직 미사일을 사용하기 전에 선보인 마법진 속 술식들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저 벨라의 마나가 주인의 말을 들어먹질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그럼 자유 마법으로 넘어갈게요. 가장 자신 있는 마법을 허수아비를 향해 날려주시면 된답니다.”
표정을 굳힌 채로 로라가 말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는 벨라를 걱정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그런 그녀의 눈과 마주친 벨라는 작은 손을 꽉, 쥐었다.
여전히 무표정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숨겨놓은 감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슬픔과 괴로움.
“네.”
하지만 벨라는 꿋꿋하게 대답했다.
‘역시 대단하네.’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0년도 더 전에 자신의 문제를 깨달았으며 온갖 무시를 당해왔을 거다.
하지만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그 무슨 상황 속에서도 굳건하게 버텨내며 포기하지 않는 타고난 노력가.
강현은 마음속으로 벨라를 응원했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자유 마법 시험은 1 서클 마법의 파이어의 불발로 끝을 내릴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벨라가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관객석…, 아니.
강현을 잠시 바라본 뒤, 다시 허수아비를 바라보았다.
한쪽 팔을 허수아비를 향해 내밀자 그녀의 손 위로 푸른색의 마법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일렁이기 시작한 주변의 마나들.
“타올라라, 불꽃이여.”
마법진 위로 뭉친 야구공 정도 크기의 화염.
1 위계 마법 파이어였다.
그 불꽃을 허수아비를 향해 날아갔다.
평범한 파이어들보다 느리게.
그리고 허수아비를 5M쯤 남겼을 때였을까.
벨라가 생성해낸 파이어는 허공에서 흩어져버렸다.
“…, 수고하셨어요. 돌아가셔도 되고, 남은 시험을 관람하셔도 돼요.”
그리고 복잡한 표정을 지은 로라가 말했다.
평소처럼 짧게 대답한 뒤 객석으로 돌아옴으로써 벨라의 시험이 끝을 내렸다.
∴
벨라의 차례가 끝난 후, 다른 학생들의 시험이 진행되었다.
또한 자유 마법 시험에서 3 위계 마법을 사용한 학생들도 몇몇 나오기 시작했고.
‘역시 수준이 높네.’
아카데미 입학 희망자들인 만큼 다들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평균적으로 20살 때쯤, 두 번째 서클을 생성해냄으로써 2 서클 마법사가 된다.
또한 20대 중후반이 될 때쯤, 3 서클의 마법사가 되고.
벌써 3 위계 마법을 구사한다는 것은 평균보다 5년에서 10년이나 앞서있다는 뜻이었다.
“마지막…, 74번 학생.”
그리고 강현의 차례가 찾아왔다.
“이강현 학생 맞으시죠?”
항상 학생의 이름을 물었던 로라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강현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사실 그 누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도 이상할 게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강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일단 강현 학생이 6 서클 마법사라고 들었거든요.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강현이 대답했고 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시험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지만 마력 증폭 측정과 자유 마법에서는 힘 조절을 부탁드릴게요.”
“… 알겠습니다.”
아쉽게도 강현은 시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실력을 선보일 수 없게 되었다.
…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로 조절하면 됩니까?”
강현도 왜 로라가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6 위계 마법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들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그만한 위력을 지닌 만큼, 시험을 관람하는 학생들이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
“으음…, 4 위계 후반에서 5 위계 초반 정도면 될 거예요. 일단 결계를 쳐둘 생각이긴 하지만 제가 아직 5 서클이거든요.”
“네.”
“그럼 바로 시작할 게요. 계속 보셔서 아시죠?”
로라는 ‘고룡, 브루노스의 심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바로 손을 얹으면 될까요?”
“준비되는 대로 시작하시면 된답니다.”
“네.”
강현은 ‘고룡, 브루노스의 심장’을 유심히 살펴보며 생각했다.
현재의 경지는 6 서클의 마법사.
그 6개의 서클들은 평범한 서클들보다 압도적인 마나를 지니고 있었다.
‘얼마나 나오려나.’
결과에 대한 기대를 품은 채, 아티팩트 위로 손을 얹었다.
일렁이던 푸른 기운들이 손을 향해 모이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이구나….’
마치 자신이 흡수하는 것처럼 무언가가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감각.
게임 속에서나, 다른 학생들의 시험에서나.
계속 봐왔던 강현은 저 파란 기운이 어디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것이고 어떤 감각이 느껴지는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이 해결되어 묘한 쾌감을 느끼며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으음…? 왜 안 나오지?”
푸른 기운들이 백옥의 구슬을 뒤덮을 시간이 지나도 한참이나 지났다.
하지만 푸른 기운들은 다시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무언가가 흘러들어오는 감각이 계속 느껴지고 있었다.
‘뭔가….’
잘못된 건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콰득….
“…?”
어디선가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에 강현이 시선을 돌렸다.
푸른 기운이 잃은 백옥의 구슬에 금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무, 무슨…! 당장 손 떼세요!!”
로라의 다급한 목소리에 강현은 곧장 손을 떼려 했다.
하지만,
“어어…?!”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언가로 인해 접착된 것도 아니었다.
마법 같은 특별한 힘도 아니다.
마치 원래부터 신체의 일부였다는 듯이.
붙어있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가, 강현 씨…!”
위급 상황이 발생했다.
레이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순간.
콰드득…, 쩍, 쩌어억….
챠아앙!
맑은 소리와 함께 백옥색의 구슬이 깨져나갔다.
그리고 그 구슬의 조각들은 강현의 손을 통해 흡수되었으며.
“아….”
시야가 명멸하고 사고가 점멸한다.
강현은 정신을 잃었다.
∴
대지를 갈라놓은 협곡.
마치 사람의 침범을 거부하듯, 감히 가늠할 수 조차 없는 깊은 바닥은 빛이 닿지 않아 지독한 어둠만이 두껍게 깔려있을 뿐이었다.
세계와 격리된 공간에서는 또 다른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짙은 음기 때문일까.
몬스터들 한 마리 한 마리 전부 특급과 비견될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카아 아악!!”
어둠 속.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밝은 빛이 협곡의 바닥을 밝히기 시작함과 동시에 한 인물이 나타났다.
길게 늘어진 턱수염이 인상적인 백발의 노인.
성인군자라 칭송받으며 반신의 경지의 오른 인물.
푸스탄트였다.
그는 머리 위에 라이트 마법을 뛰워둔 채, 협곡의 바닥을 살피고 있었다.
“흐음….”
협곡의 바닥에 내려온 지 어언 12시간.
푸스탄트의 마음은 그다지 편치 못했다.
잘못짚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에.
하지만 모든 상황과 단서들이 ‘빛을 집어삼키는 협곡’으로 향하고 있었다.
“후우…. 강현이가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푸스탄트는 작게 읊조렸다.
어느 순간부터 버릇이 되어버린 생각이자 말이었다.
이렇게 길이 막혔을 때마다 강현의 지혜를 빌려왔고, 푸스탄트도 강현이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으니.
물론 강현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여러 의견을 나누며 해답을 찾던 때가 이따금 씩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되짚으며 돌아가야 되겠어.’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도 잠시.
푸스탄트는 서둘러 돌린 발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던 중이었다.
“음?”
무언가가 발에 걸렸다.
분명 몬스터가 쓰러져 있던 곳이었지.
“대지여.”
[스킬: 1 위계 흙 속성 마법, 디그를 사용했습니다.]
푸스탄트의 시야 정중앙에 푸른색의 알림 창이 나타난 직후, 그가 지정해둔 땅이 파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돌로 된 입구와 손잡이.
‘이걸 그냥 지나쳤다니.’
역시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진 것이겠지.
끌끌, 푸스탄트는 자학적인 생각을 하며 작게 웃은 뒤, 지하통로의 입구를 열었다.
그렇게 드러난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으며.
파바박.
길게 늘어진 지하통로의 벽에 걸려있던 횃불들의 불이 단숨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푸스탄트는 통로를 따라 걸었고, 그 끝에 위치한 넓은 공간 정 가운데.
한 개의 석판과 함께 붉은 기운이 일렁이는 백옥의 구슬이 놓여 있었다.
푸스탄트는 석판으로 다가가 내용을 확인했다.
아아.
큰 지혜의 용이여.
나의 벗이여.
너를 추락시킨 나를 부디 용서하지 말아다오.
그다음, 석판의 뒷면.
위대한 고룡, 라드 삭스의 심장을 이곳에 놓고 떠난다. 전란의 시대를 맞이할 미래의 후손들이여. 심장의 주인을 찾아라.
문장은 간결했으며 짧게 끝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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