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입학 시험 (8)
* * *
하늘색의 머리카락과 사파이어 색의 눈동자.
수려한 외모와 늘씬한 몸매.
차가운 인상과 마치 인형이 떠오르는 무표정.
재능 없는 노력가.
자신의 가문이 다시는 무시당하지 않게 최고의 가문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지닌 야심가.
벨라 칸트루스는 자신의 번호가 호명되자 시험을 치르기 위해 훈련장 위로 올라갔다.
‘잘할 수 있으려나.’
[페론티아 온라인]이라는 게임을 즐겼을 당시만 해도 강현의 최애캐로써 많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귀족 가문들 중에서는 아멜리아의 가문인 루이 수플 공 작가 다음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생, 이름이 뭐죠?”
“벨라 칸트 루스입니다.”
시험관 로라의 질문과 벨라의 대답.
그리고 벨라를 향하는 학생들의 곱지 못한 시선들과,
“근본도 없는 년이 귀족인 척은.”
“걸음걸이에서부터 천박함이 느껴지네요.”
수군거림.
벨라는 귀족과 평민.
그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정통성과 역사를 중시하는 귀족가의 자제들은 벨라를 무시했다.
어느 정도의 위상을 지니고 있는 평민 가문의 자제들은 귀족인 벨라에게 자격지심을 느꼈고.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일까.
벨라를 욕하고 있는 목소리들은 대부분이 여성의 것이었다.
가까이에 앉은 나에게도 간신히 들릴 정도인 만큼, 벨라에게는 들리지 않으리라.
그 점은 다행이라 생각해야 될까.
한심하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왜들 저러는지 원.
인간들에게는 계급이 정해져 있기에 차별은 당연시 여겨진다.
그들이 지닌 기득권은 수백 년에 걸쳐져 왔다.
그런 만큼 굴러온 돌과 흐르는 물을 싫어한다.
박힌 돌과 고인 물을 좋아하는 놈들.
잘할 수 있을 까요?
그래도 지난 자작가의 숲에서 합을 맞춰봤다는 걸까.
엘리스는 사뭇 걱정되는 말투로 물어왔다.
뭐…, 일단 통과는 하지 않을까?
왜요?
엘리스가 물었다.
지난 칸트루스 자작가에 위치한 숲 속 오크를 퇴치하는 과정에서 벨라의 마법 실력이 굉장히 낮다는 것을 직접 봤기에.
으음….
벨라의 재능은 없느니만도 못하다.
하지만 벨라를 처음 만난 장소가 아카데미인 만큼, 그녀가 시험을 통과한다는 것만큼은 기정사실이다.
또한 강현은 벨라가 어떻게 시험을 통과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하지만 게임 속에서 봐서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해둘까? 자작님께 들었는데 뛰어난 노력 가래.
그렇기에 강현은 그럴 싸한 대답을 내놓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벨라가 시험에 통과한 이유는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네, 그럼 마나 측정부터 시작할게요. 아티팩트에 손을 얹어주시겠어요?”
로라는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벨라에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작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 벨라는 손을 뻗어 ‘고룡, 브루노스의 심장’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거대한 백옥의 구슬 위로 일렁이던 푸른 기운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마나 측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잠시 멈춰 섰던 푸른 기운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과는 달랐다.
파도치는 바다의 물결처럼 일렁였던 기운들은 구슬과 맞닿은 벨라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중심으로 뭉쳤던 푸른 기운들은 서서히 넓어졌으며 백옥색의 구슬을 뒤덮기 시작했다.
“오오….”
그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던 로라는 작게 탄성을 흘렸다.
오늘, 마나 측정을 한 학생들의 최고점을 이미 넘겨섰으니.
그리고 약 1분 뒤.
푸른 기운은 백옥의 구슬을 60% 정도 뒤덮은 뒤 다시 흩어져 굽이치는 파도의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강… 현 씨. 저거면 어느 정도예요…?”
‘고룡 브루노스의 심장’이라는 아티팩트는 백옥의 구슬 겉면을 감싼 푸른 기둥으로 하여금 사용자의 마나를 측정해준다.
그 푸른 기운이 백옥의 구슬을 얼마나 뒤덮는가에 따라 사용자의 마나를 확인할 수 있고.
지금까지 봐왔던 학생들보다 훨씬 압도적인 벨라의 결과.
“마나 양으로만 봤을 때는 6 서클 근처일 거야.”
백옥의 구슬이 60% 정도 뒤덮였으니 6 서클 근처이리라.
아마 5 서클 극 후반이거나 6 서클 극초반.
“…, 그럼 엄청 높은 거 아니에요?”
놀란 레이는 의문이 담긴 목소리로 강현에게 물었다.
오크가 점령했던 숲에서 보여준 벨라의 마법은 절대 6 서클의 수준이 아니었기에.
“들어봐.”
“네?”
대화가 끊기자 다른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러면 뭐해. 마법도 못쓰는 불량품인데. 안 그래?”
“그니까. 우쭐해져서는.”
아무리 보도 지금의 벨라가 우쭐거리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에휴.
지성 없이 억지로 깎아 내릴 뿐인 말들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귀족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이야기야. 칸트 루스 자 작가의 장녀는 엄청난 마나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마법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
“일단 직접 보면 알 거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하기 시작한 레이에게 강현이 말했다.
“와아…, 이 정도면 저와 비슷한 정도신데요? 이거, 엄청난 인재가 찾아와 줬네요.”
로라가 말했다.
그녀는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20살의 나이에 저 정도의 마나를 지키고 있는 만큼 엄청난 인재로 밖에 보일 수 없었기에.
벨라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이겠지.
벨라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관객석에서는 작은 비웃음이 들려왔다.
그 분위기를 느낀 걸까.
시험관, 로라는 당황한 듯 고개를 돌리며 상황을 살폈다.
“아…, 시끄러워.”
그런 비웃음 소리에 결국 짜증이 터져버린 강현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당신, 지금 나보고 한 말이야?”
그리고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백히 강현을 향한 말이었으며 벨라를 잘근잘근 씹어대고 비웃던 목소리였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강현은 차가운 바람을 막기 위해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동시에 여인의 말이 끊겼다.
강현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여인의 눈빛이 부드러워짐과 동시에 동공이 확장되었다.
“이… 강현 님?”
마음만큼이나 얼굴도 추한 여인이 말했다.
‘누구더라. 아 맞다.’
동부에 위치한 한 백 작가의 삼녀.
여러 가지 일들을 위해서라도 귀족들의 얼굴을 외워뒀던 강현은 곧장 기억해낼 수 있었다.
이 또한 플레이어 스킬의 덕이겠지.
“누군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크란 백 작가의 영애님.”
“어, 어머…. 알아봐 주시다니. 영광이랍니다.”
갑자기 말투가 조신해졌다.
그래 봤자 여전히 역겨울 뿐인데.
“그런데 시끄럽다는 것은 무슨 뜻이신지….”
무슨 뜻이긴.
시끄러운 것이 시끄러운 거지.
“지금은 시험시간이 아닙니까. 다른 학생들이 시험을 지켜보고 있는 만큼 영애님께서 귀족의 품위로써 배려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강현은 일단 좋게 말했다.
뭐가 됐든, 강현도 귀족들의 정치판 사이에서 그렇게 환영받지 않는 존재가 아니기에 조심스럽게 처신할 필요가 있었다.
그냥 무시하는 편이 더 나았겠지만 불의를 그냥 보고 넘긴다는 것은 푸스탄트의 가르침에 벗어나는 행위가 아닌가.
또한 약제학 명장이라는 신분과 황실, 루이스플 공작가와의 친분이라는 든든한 믿을 구석도 존재했고.
“아… 하하…. 죄송합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시험이기에 잠시 실수한 것 같네요.”
“아닙니다.”
강현은 짧게 대답하고 고개를 돌렸다.
‘분명…, 본 적 없지?’
그리고 잠시 기억을 되짚어봤다.
아카데미에서 백작 영애를 만난 적이 없었으니 웬만해서는 볼 일 없겠지,라고.
뜬금없이 시험이 끝난 후의 애프터를 신청하는 백작 영애의 권유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다시 시험에 집중했다.
“그럼 두 번째 마나 증폭 측정으로 넘어갈게요?”
대화가 들리진 않았겠지만, 분위기가 다시 돌아온 것을 눈치챈 로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시험을 재개했다.
“네.”
로라와 벨라는 잠시 움직였다.
허수아비와 10M쯤 떨어진 위치까지.
“사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매직 미사일로 허수아비를 타격해주시면 돼요. 준비되시면 바로 시작해주시고요.”
“네.”
후우, 벨라는 가슴 위로 손은 얹은 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벨라를 향한 시선들은 여전히 긍정적이지 않았지만 수군거림 만큼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벨라의 말과 함께, 그녀의 손바닥 위로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역시…, 망했네.’
그리고 벨라의 마법진에 새겨진 술식을 본 강현이 생각한 직후.
슈웅.
허공을 가르며 벨라의 매직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매직 미사일은 허수아비까지 닿긴 했으나, 툭하고 건드리는 것이 전부.
제대로 된 타격을 하지 못한 채 소멸해버렸다.
“….”
시험장에 침묵이 일었다.
원래였다면 이제 비웃음이 나올 차례였지만 생각보다 조용했다.
강현이 했던 말 덕분일까.
하지만 그리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온갖 무시와 한심함, 멸시의 시선이 벨라에게 향했으니.
로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아서 그런 거겠지.
벨라는 여전히 냉기까지 느껴질 정도로 지독히도 차가운 무표정을 지은 채, 그 속에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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