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입학 시험 (5)
* * *
실기시험을 앞두고, 강현이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은 어이없는 실수였다.
실력에 있어서는 의심할 이유가 없다.
아마 응시자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겠지.
자만이 아닌 사실이었다.
누가 20살의 나이에 소드마스터의 경지를 달성하고 6 서클에 도달하겠는가.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잘 알려지지 않고 숨어 사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은, 강현의 실력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아득히 넘어선 상태였다.
그런 만큼 시험에 있어, 자신의 실력을 백분 발휘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합격하겠지.
실수만 경계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실력이 있더라도 실수가 나올 확률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강현은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연습하는 시간을 갖는 것보다는 휴식을 선택했다.
체력을 아끼고, 아주 약간의 긴장감조차 없애기 위해.
그 덕에, 강현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시험장에 도착했다.
검술 시험장은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온갖 이벤트들의 주 무대가 되는 콜로세움이었고, 입구 앞에는 4명의 사람이 모여 학생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었다.
이 추운 날에 고생이 많네.
코 끝이 붉어진 교직원들을 보니 약간의 측은함이 느껴져 왔다.
강현은 형성되어 있던 줄 맨 뒤에 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례가 온 강현은 여성 교직원 앞에 섰다.
“이강현 님 맞으시죠?”
“아…, 네. 맞습니다.”
이름을 물어보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상대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했다.
하긴, 외형이나 이름이나.
기억하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특이하니까.
“네…, 1번이시고요. 관객석에서 대기하고 계시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강현은 1이라는 숫자가 적힌 번호표를 받았다.
“그…, 저 파이팅 하세요…!”
발걸음을 옮기려던 중 불끈 쥔 주먹을 들어 올리며 교직원이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강현이 미소 지으며 답하자 얼굴을 붉히더니 시선을 피했다.
∴
원형의 결투장을 둥글게 감싼 관객석.
강현은 2층에 위치한 관객석에 앉아 대기했고, 레이와 같은 사용인들은 3층으로 이동해 주인들의 시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충… 200명 정도.’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응시자는 총 5천 명이며 20일 동안 진행된다.
5천의 인원이 한 번에 시험을 치를 수 없는, 만큼 500명으로 나뉜 응시자들이 날짜별로 시험을 치르는 구조.
500명들 중 200명이 검술 시험에 응시했다는 것은 검술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 지를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시험관은 누굴까.’
그렇게 시험관이 오길 기다리던 중이었다.
“어서 와라, 제군들!!”
넓은 콜로세움 내부에 울릴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가 선수 입구에서부터 들려왔다.
말투와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제군들의 검술 시험을 감독할 브룩이다!”
서부의 지배자인 아그니스 공작가의 장남.
초대 용사이자 태초의 영웅인 한의 자손.
브룩 아그니스였다.
그는 등 뒤로 자신의 몸보다 큰 두 자루의 대검을 들쳐 매고 있었다.
‘으음…, 준수한 편인가?’
교수들만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시험.
그들은 각자만의 방식을 지니고 있고, 브룩 또한 마찬가지였다.
강현은 브룩의 시험 방식을 떠올리며 잠시 고민했다.
직관적이고 간단한 방식이기에 이점도 있었지만 그만큼 쉬운 것은 아녔으니.
“다들 입장 전 번호표를 받았겠지!”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꽤 떨어진 거리였는데 목소리가 정확하게 들려올 수준이었다.
작게 감탄함과 동시에, 강현은 받았던 종이에 적혀있던 번호를 떠올렸다.
1번.
“아….”
강현은 곧장 한숨을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설 준비를 했다.
“이제부터 제군들은 번호 순서에 맞춰 나와의 1분간의 대련을 치를 것이다! 검술 시험은 오직 그뿐이다!”
관객석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이상하리만큼 간단한 시험 방식에 실망한 듯 보였다.
그럴 만도 하겠지.
오늘 시험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열심히 준비해왔을 테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는 수많은 검술이 존재한다.
그런 모든 검술에 맞춰 정확한 심사를 내리기 또한 불가능한 일이고.
브룩의 시험은 어찌 보면 합리적일 수 있다.
상대와의 실력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보다 정확한 심사를 내릴 수 있을 테디.
그 또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엄청난 실력 자니까.
“1번! 결투장으로 뛰어내려라!”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어…, 조금 높지 않나?”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학생들이 위치한 관객석에서부터 결투장까지의 높이만 최소 10M는 돼보였으니.
물론 높긴 했지만 강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나를 지니고 있으며, 검사를 희망하는 만큼 그에 맞는 훈련을 해왔을 학생들 또한 불가능한 일까지는 아니겠지.
잘못돼봤자 기껏해야 발목이 살짝 삐는 게 전부가 아닐까.
“싫다면 걸어서 내려와도 된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브룩의 시선은 여전히 강현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깃들어 있었다.
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난관 앞에 섰다.
이미 시험은 시작됐으니.
엘리스, 잘 부탁해.
네, 뭐…. 그리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데요. 뭘.
엘리스의 대답을 들은 강현은 난간을 넘고 뛰어내렸다.
곧바로 결투장에 착지함과 동시에 자세를 잡았고,
“역시, 훌륭하군.”
그런 강현을 본 브룩에 표정에는 흡족함이라는 감정이 깃들었다.
검사에게 중요한 소양들 중 하나.
균형 잡기.
검사는 언제든지 검을 휘두르기 위해서 절대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브룩은 뛰어내리기라는 요구를 했다.
착지한 뒤, 학생이 얼마나 빨리 중심을 되찾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런 의미에서 강현은 훌륭했다.
착지 후, 중심을 되찾는 데까지 1초의 시간조차 걸리지 않았으니까.
“감사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강현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규칙 따위는 없다. 1분간 네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면 되니.”
“… 예, 알겠습니다.”
강현은 신살자의 검을 고쳐 쥔 후, 자세를 잡았다.
양다리를 어깨넓이로 벌린 뒤, 뒤꿈치를 세웠다.
왼손을 검집을, 오른손으로는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언제, 어디서든 공격이 날아오든 막아내는 검술.
수호의 검.
“… 오랜만에 보는 군.”
브룩은 등에 매고 있던 대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팔뚝만큼이나 두꺼운 검의 무게감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절절히 느껴져 왔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예.”
브룩은 양 무릎을 구부렸다.
땅을 박찼고.
무웅…!
굉음과 함께 그가 마치 총알처럼 날아왔다.
왼쪽 어깨 위로 들어 올린 검과 내려간 오른쪽 어깨.
‘왼쪽에서 사선으로 내려치기.’
작은 그의 움직임을 통해 공격을 파악했고.
검을 쥔 손에 힘을 가득 실었다.
‘지금의 나라면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대검의 칼날에 시선을 고정한 채.
수호의 검, 일검.
류(?)
발도.
오른발을 뒤로 뺀다.
검을 높게 들어 올리고.
대검의 도신을 내려친다.
틀어진 대검의 검의 궤도.
콰앙.
비껴간 대검은 소음과 함께 땅에 꽂혔다.
그와 동시에 생겨난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교환, 핏빛 칼날.’
[교환: 수호의 검 → 핏빛 칼날]
엘리스, 신살자의 검의 세 번째 능력.
검술 교환.
미리 익혀둠으로써 신살자의 검에 저장해놓은 검술을 사용하는 능력.
신살자의 검에 생력을 담았다.
엘리스의 지원.
더욱 많은 생력이 담겼으나, 검기라고 부르기엔 한참이나 부족했다.
괜찮다.
이 정도로도 충분하니까.
핏빛 칼날, 사검.
혈전….
“흐읍…!”
검을 휘두르려던 순간이었다.
작은 기합과 함께 브룩이 다시금 뛰어올랐다.
땅에 박혀있던 대검이 뽑힘과 동시에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졌다.
“쯧…. 교환.”
[교환: 핏빛 칼날 → 수호의 검]
아쉬움에 혀를 찬 강현은 다시 검술을 교체했다.
“역시…, 푸스탄트님의 제자다 이거군.”
브룩의 목소리에 당황과 감탄이 섞여 있었다.
역시 호 전가답게 입가에는 큰 미소가 걸려 있었고.
이제 겨우 혼합을 겨뤘을 뿐임에도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고수인 만큼, 강현과 브룩은 알 수 있었다.
서로의 실력이 비등하다는 사실을.
“다시 간다…!”
브룩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고개를 당겨야지만 보일 정도로 높이.
강현은 들어 올린 뒤꿈치를 내리고 중심을 땅에 단단히 고정했다.
어깨와 무릎, 발목에 힘을 주고 검에 마나를 흘려 넣는다.
일렁이기 시작한 푸른색의 검기.
“흐읍…!”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더 많은 마나를 신살자의 검으로 흘려보낸 뒤, 마나를 응축시켜 검기로 변환시킨다.
점점 더 견고해진 검기.
검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붙잡은 뒤, 머리 위로 올려 한 바퀴 돌린다.
일변하는 공기.
마치 무언가에 흡수되듯, 강현을 향해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검기를 익혔으나, 검강을 익히지 못했을 때를 위한 기술.
수호의 검, 칠검.
흡(?).
그와 동시에 뛰어올랐던 브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검을 든 양팔은 내려칠 것을 예고하듯, 높게 치켜들고 있었다.
바람을 모은 검을 내리며 허리를 뒤로 비튼다.
발부터 머리끝까지.
바람의 무게를 견뎌내기 위해 힘을 준 뒤.
팔검.
방(?)
검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려치며 모아둔 바람을 방출한다.
“크윽…!”
바람의 벽과 충돌한 브룩은 그 기세를 잃어 공격이 끊기고 땅에 사뿐하게 착지했다.
이제 몇 초 지났을까.
30초 정도?
“후우….”
작은 숨을 몰아쉰 브룩의 검에 푸른 기운이 일렁였다.
“오랜만에 당해봤는데, 역시나. 썩 좋은 기분은 아니란 말이지.”
하하하! 호쾌하게 웃으며 브룩이 말했다.
“이제 제대로 시작해보자고.”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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