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양가감정 (1)
* * *
정신을 차렸을 땐, 따스한 햇살이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이었다.
특히, 상쾌한 공기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껴져 왔다.
왜일까.
강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벽시간 동안 치러진 정사의 흔적이 고급 여관방을 더럽혔다.
침대 위는 물론이거니와, 벽, 바닥. 소파.
어디로 고개를 돌리든, 정체불명의 액체가 안 묻은 곳이 없을 정도.
“… 드, 드디어…. 흐읏….”
끝났구나, 기나긴 시간 끝에 힘을 잃고 축 처진 강현의 음경을 보며 레이가 생각했다.
그가 잠은 마차에서 자라고 했다.
당연히 늦게 잠들 거라고 예상했는데, 설마 아예 재우질 않을 줄이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말이 되는 건가요…?’
너무 오랫동안 강현의 음경을 받아들인 탓에 쓰리기까지 한 음부를 느끼며 레이가 생각했다.
6시간.
6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기도 했지만, 강현은 무려 15번이나 사정했다.
또한 레이는 강형보다 배 이상의 절정을 경험했고.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정력이란 말인가.
‘나도 참….’
하지만 레이는 강현을 나무랄 수 없었다.
결국 자신도 즐겼다.
그의 음경이 주는 쾌락을 느끼며 간드러진 교성을 새벽 내내 내질렀으니.
정을 안으로 받아들일 때마다 황홀함을 느꼈고.
또한 강렬한 쾌락에 기절할 뻔했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해 준 강인한 정신력은 기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매달린 덕에 여기서 더 상스럽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은 걸.
“괜찮아?”
강현은 레이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레이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가슴부터 발까지.
레이의 아리따운 몸 곳곳에는 희멀건 정액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녀의 음부 사이로 정액이 쉴 새 없이 울컥울컥, 흘러나오고 있었고.
가슴은 하도 주무르고 입을 빨아댄 탓에 붉어져 있었다.
“… 네에.”
몽롱한 표정을 지은 채, 레이가 답했다.
분명 6시간 전까지만 해도 처녀였는데, 너무 거칠게 다뤄졌다.
수없이 절정을 맞이해, 쾌락이 두려울 지경까지 갔었다.
그런 레이에게 있어선 강렬한 첫 경험이었다.
하지만 레이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지만, 곧 회복될 거다.
몸 곳곳이 더럽혀졌지만 강현의 것들이니 상관없다.
거친 강현의 모습을 보고 더욱 흥분했던 건 자신이었고.
분명 짓고 있을 이상한 표정을 제외한다면 괜찮을 거다, 레이는 생각했다.
“강현 씨가 그렇게 좋아해 주시는데, 안 괜찮을 게 뭐 있나요. 저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으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그렇기에 강현을 바라보며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평소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레이….”
그런 레이의 상냥함이 기꺼워, 강현은 고마움과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가, 강현 씨 잠시만요…!”
그리고, 레이의 말에 반응한 것은 비단 강현뿐 만이 아니었다.
사타구니 사이에서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강현의 분신 또한 마찬가지.
“그, 그거 왜 또 서는 건가요! 그렇게 하셨는데…!”
당황한 레이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렇게 해놓고 또 하는 건가?
솔직히 이제는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다시금 그의 음경이 주는 쾌락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제는 해가 뜨는 것이 아닌 질 때까지 하게 될 거 같았으니.
“… 또 하시고 싶으신 건가요?”
하지만 혹시나 싶어 레이가 물었다.
그가 원한다면 그 무엇이든 하겠다고 맹세란 레이다.
그런 만큼 그가 조금 더 성관계를 맺고 싶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솔직히 기분 좋았으니까.
“생리 현상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
분명 엄청나게 싸지른 탓에 모든 체력을 소진했던 음경에 다시 피가 쏠려 발기된 것이 아니겠는가.
강현은 부끄러움을 감추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다.
기겁하는 레이의 모습에 죄책감까지 느껴졌으니까.
물론 완벽한 발기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절반의 발기 정도.
“그, 그런가요?”
“응, 네가 예뻐서 그런 거야.”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강현은 남 탓을 시전 했다.
왜냐하면 남 탓이 맞으니까.
레이가 아름답고 야한 탓에 발기된 거다.
“그, 그렇군요. 그럼 항상 서 계신 채로 있어주면 좋겠네요.”
그저 순수한 의도가 담긴 말이었지만 살짝 섬뜩했다.
“흠흠, 그만 일어나자. 슬슬 모험가 길드로 돌아가야지.”
∴
욕실에서 몸을 씻은 뒤, 곧장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거사를 치러 여느 때보다 행복하고 밝은 표정을 지은 레이와 달리, 강현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엘리스를 보기가 겁났다.
감정 공유를 차단해뒀다고는 하나,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은 만큼 분명 눈치를 챘겠지.
‘괜찮아.’
곧 찾아올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강현은 고민했고 정면으로 돌파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어설프게 상황을 모면하려거나 적당한 변명을 내놓더라도 절대 해결될 것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현대와 관념부터가 다르다.
현대에서라면 나는 바람이나 핀 바람둥이겠지만, 여긴 현대가 아니다.
일부다처제의 세계이며, 성관계는 그저 순서의 차이일 뿐이다.
그렇게 모험가 길드 정문에 도착했다.
“강현 씨, 괜찮으세요?”
강현의 안색을 살핀 레이가 물었다.
역시 다른 여자들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걸까.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미안해질 따름이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다른 여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거사를 치를 걸 그랬나.
하지만 회귀한 뒤부터 14년이나 기다렸는데,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마음 독하게 먹기로 정하지 않았던가.
매일같이 강현의 첫 번째 자리를 노리는 도둑년들… 이 아니라, 도둑고양이들에게 위치의 차이를 보다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 당연하지.”
“제가 알아서 잘 해결할 테니까, 먼저 들어가 계실래요?”
“아니, 그래 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굳이 숨기고 도망칠 이유는 없잖아.”
강현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길드의 정문을 넓게 열었다.
아직 모험가들이 모이지 않은 길드는 비워져 있었다.
“바로 방으로 가실 건가요?”
“응, 그래야지. 다른 애들은 몰라도 엘리스는 이미 눈치채고 있을 테니까.”
순간, 자신도 같이 가는 건 어떻겠냐고 물으려던 레이는 말을 삼켰다.
지금 가봤자,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 밖에 더 되겠는가.
“… 혹시 지난밤이 후회되시진 않으시죠?”
하지만 걱정스러워하는 강현의 모습을 보니 레이는 순간 불안감에 휩싸였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후회가 왜?”
하지만 강현은 아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후회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관계를 시작한 시간부터 아침의 해가 뜰 때까지 허리를 흔들었던 건 강현인데.
“아, 아니에요.”
그런 강현의 반응을 보고 레이는 안심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뭐…, 알겠어.”
도움이 필요할 일은 없을 거 같지만.
강현과 레이는 헤어졌다.
각자의 방으로 향하기 위해서.
“후우….”
잠시 걸어, 요한이 마련해준 숙소 앞에 선 강현은 잠시 긴장된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골랐다.
분명 슬퍼하겠지.
다른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엘리스도 첫 번째 자리에 집착하고 있었으니.
달래주자.
화를 내면 전부 들어주고.
더 이상의 대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강현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으니.
일단 상황에 직면하면 어떻게든 방법이 떠오를 거다.
강현은 스스로를 믿기로 하고 방의 문을 열고, 신발을 벗은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 주인님.”
그리고 그곳에는 평소와 같은 속옷 차림의 엘리스가 침대 맡에 앉아있었다.
엘리스의 얼굴을 척 보기에도 별로 좋지 못했다.
퀭한 눈 밑으로는 옅은 다크서클과 활기가 보이지 않는 표정.
얼핏 보면 피곤한 모습으로도 보였으나, 수면이 필요치 않은 엘리스가 피곤해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겠는가.
“우리 주인님이 외박하는 건 또 처음 보네?”
마음고생이라도 한 거겠지.
괴로운 무언가로 인해 끙끙 앓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것도 1월 1일에 레이랑 데이트를 나가서.”
힘없는 미소를 머금은 엘리스가 말했다.
슬퍼하는 모습에, 강현은 선뜻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침묵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 알고 있어?”
“… 그런 거 같네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
화를 내고 싶으면 내라.
내가 밉다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말을 입에 담으려던 순간이었다.
“주인님.”
슬픈 눈으로 강현을 응시한 엘리스가 말을 끊었다.
말이 끊기긴 했으나, 엘리스의 말을 먼저 듣기로 한 강현은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엘리스는 입을 살짝 벌렸다.
뭔가를 말하려던 듯했지만 마음이 바뀌었는지, 붉은 입술이 다시 다물어진다.
무릎 위로 얹어져 있던 손이 불끈 쥐어졌다.
한차례, 입술을 깨물고.
잠시 강현을 바라본 뒤, 시선을 돌렸다.
보이는 옆얼굴에는 꾹 다문 입술 옆으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 빨리 준비하세요. 오후에 출발하려면.”
그리고 엘리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 엘리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얼마든지 해도 괜찮아.”
예상치도 못한 엘리스의 말에 강현은 원해하려던 말을 입에 담았다.
엘리스가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저보다 레이가 더 좋은 건가요?”
“아니.”
불안함이 담신 엘리스의 목소리가 강현은 곧장 대답했다.
“너희 둘 다 똑같이 사랑해.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레이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엘리스는 훨씬 긴 시간을 함께 해왔고.
또한 레이와 엘리스 둘 다 각자 다른 매력을 지닌 소중한 사람이다.
아름답고 심성이 고운.
누가 더 좋고 나쁘고를 따진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왜 레이가 먼저에요?"
"그건…."
잠시 고민했다.
누가 먼저고 나중이다.
그런 순서는 당연히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런 만큼, 강현은 누가 첫 번째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둘 다 똑같이 사랑하니까.
하지만 여인들은 다르다.
그녀들은 강현에게 있어서 첫번째가 되고 싶어했고, 연인 사이에서의 특별한 일은 자신이 첫번째로 하길 바랐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얘기를 해야할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레이와 가장 먼저 관계를 맺은 것은 그녀와 나눴던 약속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게 아니였다면 진작에 엘리스와 관계를 맺었겠지.
"레이랑 약속했었어. 옛날에."
"… 성국에서 했던 약속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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