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첫날밤 (2)
* * *
고대하던 순간이 도래했다.
깊은 밤, 그와 몸을 겹침으로써 진정한 여자로 거듭 나는 순간이.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던가.
각종 관능소설들과 많은 유부녀들에게 자문을 구해왔으며, 메르시의 수업을 열심히 들어왔다.
‘이제 곧….’
역사적인, 기념비적인 시간이 찾아온다.
지금까지의 공부와 노력들을 사용할 시간.
레이는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과 축축하게 젖어들어가는 속옷을 애써 무시하며 지금까지 배워왔던 것들을 떠올렸고, 어떤 식으로 상황을 이끌어갈지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욕실의 문이 열렸다.
뜨근하고 습한 수증기가 문을 통해 빠져나오고 하늘색의 나이트가운을 걸친 강현이 욕실에서 나왔다.
“다, 다 씻었어.”
긴장한 듯,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강현의 방금 막 씻고 나온 모습은 야릇하기 그지없었다.
아직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과 달아오른 피부, 나이트가운 사이로 슬쩍슬쩍 보이는 쇄골과 단단한 가슴 근육.
거기에 더해, 항상 여유롭게 미소 짔던 그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떨고 있었다.
무엇보다 다리 사이, 사티구니에서 툭 튀어나온 무언가까지.
‘아….’
그리고 레이는 자신의 소중한 곳에서부터 끈적하고 뜨거운 액체가 한차례 울컥, 쏟아진 것을 느꼈다.
이미 푹 젖은 속옷 밑으로 침대까지 적시고 있지 않을까.
“이제 씻어도 돼.”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던 걸 들킨 걸까.
강현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의 귀까지 붉게 물들었다.
지금씻는 게 문젠가.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침대위로 집어던져 그의 위로 올라타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 네.”
하지만 간신히 이성을 부여잡은 레이는 침대맡에서 일어서며 대답했다.
오랫동안 밖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속옷도 심하게 젖은 탓에 반드시 씻을 필요가 있었다.
강현의 첫 경험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정실의 자리를 공고히 지키기 위해선 반드시 최고의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 잊지 못할 밤으로 남겨야만 했다.
연인 생활, 부부생활에서 속에서 밤일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들었으니.
특히 남자들은 성욕이 강한 만큼.
“씻고 올게요.”
레이는 은근한 미소를 지은 채, 강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가 깨끗하게 몸을 씻었다.
씻고, 또 씻어도 음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애액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레이는 원래 이랬다.
예전부터 시도 때도 없이 강현과 함께 있을 때면 애액이 흘러내렸다..
그저 서로 바라보고 있을 때면 아랫도리가 축축해지기 시작했고.
손을 잡을 때면 속옷이 젖어들어가기 시작했고, 입을 맞출 때면 속옷을 적시고도 남은 애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었다.
‘어떡하지….’
머리로 쏟아지는 따듯한 물을 맞으며 레이가 생각했다.
혹시라도 색을 밝히는 상스러운 여자로 보일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
‘… 아니.’
하지만 레이는 당당해지기로 했다.
강현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처녀를 바치고 그의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오래 해왔던가.
적어도 10년은 됐을 걸.
10년 동안 기다려 왔는데, 이 정도 반응은 당연한 거 아닐까.
그래, 적어도 임신 정도는 시켜줘야 제대로 된 도리지.
레이는 생각했다.
강현을 닮아 잘생기고 착하고, 멋지고 근사한 아들 둘에, 똑똑한 딸 한 명 정도….
‘안돼, 안돼…!’
레이는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고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머리카락을 타고 흐르던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벌서부터 서두르려고 해선 안된다.
과한 욕심을 화를 부른다.
오늘의 목적은 어디까지 그에게 최고의 첫 경험을 경험하게 해 주고, 자신을 더욱 좋아하게 만드는 것.
임신은 어디까지나 예상치 못한 문제로 인해 발생한 사고다.
구멍이 뚫려있는 불량 고무막이라던가, 피임약이라고 속이고 판매한 평범한 물이라던가.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요.’
레이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핸드백에 있는 고무막과 피임약이 절대 그럴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고는 벌어지지 못할 거다
그리고 강현은 이제 막 아카데미로 입학할 생각이다.
그런데 자신이 임신한다면 강현의 방해가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강현이 괜찮다면….
“헤…, 헤헤….”
레이는 방금 좁은 욕실에 울린 바보 같은 웃음소리가 진정 자신의 입에서 난 소리인지 의심했다.
“흠흠….”
착착, 정신 차리자.
레이는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한차례 때리며 생각했다.
물을 끄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역시, 긴 머리카락은 말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강현이 긴 머리카락을 더 좋아한다 했고, 지금의 머리를 좋아해 주는데.
고작 말리기 힘들다는 단점 따위는 작은 먼지 한 톨에 불과했다.
충분히 머리를 말린 뒤, 나이트가운을 몸에 걸쳤다.
“음.”
그리고 거울 앞에 서 잠시 상태를 점검했다.
나이트가운 사이로는 깊은 가슴골이 드러나 있었다.
화장이 지워지긴 했지만, 얼굴 상태도 괜찮았고.
‘조금 더 벌려볼까…?’
레이는 시험 삼아 가슴을 가리고 있던 나이트가운의 앞섬을 조금 풀어헤쳤다.
나이트가운은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덮었다.
가슴골뿐만이 아닌 가슴 아래의 둥근 곡선이 살짝 드러남과 동시에 분홍색의 유룬이 아주 살짝 드러났고.
‘너…, 너무 야한가?’
레이는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앞섬을 다시 여매 노출되었던 가슴을 다시 가렸다.
“으음….”
그래도 이건 또 너무 가린 게 아닌가.
결국 그를 유혹해야 하는 건데.
다시 풀고, 여매고.
10분 정도 반복했을까.
‘그냥 벗고 나갈까?’
레이는 아예 강렬한 인상을 남겨버릴까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을 오래가지 않았다.
너무 변태같이 보일 수도 있었고, 그가 직접 벗겨주는 장면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좋아.”
레이는 강현의 시선이 가끔씩 자신의 가슴으로 향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조금 노출시키는 편이 더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약 스스로를 상대로 20분간 실랑이를 벌인 끝에, 레이는 앞섬을 조금 푸는 걸로 타협했다.
“강현 씨, 오래 기다리셨죠?”
∴
목욕을 마치고 나온 레이의 모습을 본 강현은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과 달아오른 피부, 나른한 듯 살짝 쳐 저 있는 눈꼬리는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입가에 머금은 은근한 미소와 시선은 매혹적이었으며, 시선을 살짝 내리니 양 옆으로 벌어진 나이트가운의 앞섬 사이로 레이의 가슴이 살짝 드러났다.
사이에 깊고 어두고 야한 계곡을 따라 시선을 내리면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는 밑가슴이 살짝 보였다.
끝부분에는 보기 좋은 연분홍색의 유룬이 아슬아슬하게 노출되어 있었고.
역시 크네.
드레스 위로 살짝 노출된 윗가슴만 봐왔던 강현은 다시금 감탄했다.
언뜻 봐서는 레이의 얼굴보다 더 커 보였다.
“너무 보시는 거 아니에요?”
부끄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장난스러운 말투로 레이가 말했다.
들어 올린 양쪽 팔은 가슴을 가린 것도, 가리지 않은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안 볼 수가 없잖아. 그렇게 예쁜데.”
강현은 생각했다.
자신처럼 그녀도 여러모로 부끄럽지만 여유로운 척하고 싶은 게 아닐까.
또한 아마 지금 쯤 자신의 동공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으리라, 뻔히 쳐다보기는 뭐하지만 그렇다고 시선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가, 강현 씨도 멋져요.”
분명, 호수의 선율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던 걸로 기억하는 데.
지금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강현이나 레이나 동정이고 처녀인 상태고, 첫 경험을 목전의 둔 상태였기에 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스러운 상황이었다.
“으, 응….”
레이가 다가왔다.
그녀는 침대 맡에 겉어 앉은 강현의 옆에 앉았다.
평소보다 묘하게 멀어진 거리감.
서로의 숨소리가 들려올 정도의 고요함.
레이와 강현은 서로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 지를 알게 되었고, 이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을 유심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강현은 가벼운 말로 대화를 시작해볼까 생각했다.
레이는 일단 강현을 침대에 눕히고 볼지 생각했고.
“그…, 레이야.”
“네, 네…!”
먼저 행동에 나선 건 강현이었다.
강현은 레이에게 다가가며 그녀를 불렀고, 레이는 무릎 위로 얹어둔 양손에 힘을 꽉 쥐었다.
그 손을 붙잡자, 바닥을 향하던 레이의 시선이 움직였다.
“지금까지 기다려줘서 고마워.”
어디선가 얼핏 들었다.
여자들은 관계를 맺기 전, ‘무드’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좋은 여관방도 대실 했겠다.
이제 그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라는 걸 만들기만 하면 된다.
“네? 뭐가….”
“나 계속 좋아해 주고, 지금까지 기다려줘서. 사실 20살까지는 무조건 기다리라는 게 이기적인 요구일 수도 있잖아?”
이 세계는 현대 2차 성징을 맞이하면 성인이 된다.
레이의 입장에선, 아직 어리다고 받아주지 않는단 사실을 쉽게 납득할 수 없을 거다.
2차 성징을 맞이한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어엿한 성인이니까.
대신 죽어줄 수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을 사랑하는 레이에게 20살이 될 때까지 주구장창 기다리라고 하는 건 이기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
“괜찮아요. 강현 씨라면 백 년이고 천년이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아리따운 미소를 지은 레이가 답했다.
긴장감이 역력했던 눈빛은 어디로 가고 없어졌는지, 평소처럼 애정이 담긴 눈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지금까지 왔잖아요.”
“… 사실 나도 좀 힘들더라고. 솔직히 20살까지 기다려달란 말이 자주 후회되기도 했고.”
“그러신 거 같더라고요, 가끔씩 보셨잖아요, 제 가슴이나 다리나 목 같은 부분.”
“다 알고 있었어?”
약간의 머쓱함을 느낀 강현이 애꿎은 뒷목을 긁적이며 물었다.
“당연하죠, 원래 여자들은 남들 시선에 민감하니까요. 그리고 그 시선이 사랑하는 사람이면 더더욱.”
레이가 양팔을 모아 강현과 붙잡고 있던 손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팔이 모이며 저절로 가슴도 모였고 더욱 깊은 골이 형성되었다.
마치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강현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고.
“후후.”
기분 좋은 웃음소리에 정신을 자리고 시선을 올리기 기쁘다는 듯, 입고리를 말아올린 채 미소를 짓고 있는 레이와 눈이 마주쳤다.
“다른 남자들은 싫어도 강현 씨라면 얼마든지 봐주셔도 괜찮아요. 아니, 오히려 강현 씨가 봐주실 때마다 얼마나 기쁜데요.”
“그, 그렇구나.”
조금 쪽팔리기도 했지만, 레이의 말을 달콤했다.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그런 눈으로 다른 애들도 봤었던가.
그리고 전부 다 그걸 기뻐한다고?
이건 좀 놀라운데.
“그리고 어차피 강현 씨 거잖아요.”
“으, 응…?”
강현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그의 손을 감싼 레이의 손이 움직였다.
“여기도.”
강현의 손이 레이의 목에 닿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고운 목선에서부터 부드러움이 느껴져 왔다.
“응…, 여기도.”
작게 신음을 흘렸다.
새하얀 다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수련의 증거로 탄탄했다.
그 기분 좋은 감촉은 더 느끼고 싶다는 욕망이 끌어오를 무렵.
“하읏….”
신음이 조금 더 커졌다.
순간적으로 아득해지는 거리감을 부유하고 제정신을 차렸을 때, 강현은 자신의 손이 레이의 가슴 위에 올라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여자의 가슴은 부드러웠다.
한 손에 전부 담기지 않을 정도로 풍만한 탓에 손에서부터 넘쳐흘렀다.
그리고 손바닥 정 가운데.
딱딱하게 솟아오른 점이 느껴져 왔다.
“전부 강현 씨가 마음대로 하셔도 좋아요.”
부끄러운 지, 얼굴을 붉혔지만 레이는 강현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꿀꺽.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현이 침을 삼키고 레이는 그런 강현을 보며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레이야.”
“제가 먼저 말할래요.”
레이가 강현의 말을 끊었다.
잠시 당황한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 씨,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강현은 레이의 허리를.
레이는 강현의 뒷 목을 끌어안고는 키스를 시작했다.
“내일 두 시 출발이야.”
그리고 강현이 말했다.
“잠은 마차에서 자도 괜찮지?”
“… 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