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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86화 (86/148)

〈 86화 〉 칸트루스 자작가 (2)

* * *

상단 관련 얘기를 마친 다음 날, 오크 사냥이 시작되었다.

“의약 성인, 이강현 님을 뵙습니다.”

그리고 사냥을 나서기 앞서, 기사들과 강현의 일행들이 준비하던 중, 한 여인이 다가와 강현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오른손을 왼쪽 가슴 위로 얹은 채, 살짝 허리를 숙이는 일련의 동작에서는 고급스러움이 물씬 느껴졌다.

귀족의 기품이라는 녀석이겠지.

맑은 하늘 같은 하늘색의 머리카락과 짙은 사파이어 색의 눈동자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수려한 외모와 늘씬한 몸매는 과연 미인이라 칭하기 손색이 없었다.

오른쪽 눈꼬리 밑에 박힌 점은 성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으며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무표정은 언뜻 보기엔 차갑게 느껴졌지만, 아름다운 외모를 퇴색시킬 단점이 되진 못했다.

오히려 신이 직접 빗은 인형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

누군가는 말했었다.

표정이 매일 똑같아서 기분 나쁠 정도라고.

하지만 게임 속에서 최애캐였던 벨라 칸트 루스를 공략했던 강현은 단 한번 벨라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친한 자작가의 영애일 뿐,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지만.

“벨라님을 뵙습니다.”

강현의 말에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을 대신하여 이번 전투의 지휘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희 자작가를 도와주시기 위해 먼 길에서부터 찾아와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넣어두시지요, 모험가가 모험가의 일을 하러 왔을 뿐이니.”

벨라는 잠시간 강현의 눈을 응시했다.

표정이나 억양에서부터 그녀의 감정을 유추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녀의 작은 행동들을 통해 그녀의 감정들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눈을 여러 번 깜빡거리면 놀란 것이고, 주먹을 쥐면 화가 난 것이다.

지금처럼 아무 말 없이 지그시 응시하는 것 고마울 때였고.

“그렇군요. 그럼 인사도 드렸으니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담백하게 대답한 벨라는 기사들을 통솔하기 위해 등을 돌렸다.

­본 적 있는 사람이에요?

강현의 허리춤에 매달려있던 엘리스의 목소리가 머리에서부터 들려왔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칸트 루스 자작령에 여러 번 왔었지만 벨라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반가워하시는 거 같던데.

반가운 건 사실이었다.

게임 속에서 제일 애정 했던 캐릭터를 실제로 만나게 되는 거니까.

‘뭐…, 말로만 들었던 분이니까. 그런 거겠지.’

­흐으음….

그리고 엘리스는 미심쩍었던 것인지 침음을 흘렸다.

사랑하는 남자의 근처에 아름다운 여성이 늘어나는 걸 반기는 여자는 없을 거다.

그리고 벨라는 같은 여자인 엘리스가 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레이와 아멜리아, 아리아와 라비도 마찬가지였지만.

마차를 타고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는 한 숲이 있다.

그 숲에서는 약과 포션의 재료로 사용되는 약초들과 열매들이 많이 자라나기로 유명하다.

칸트루스 자작가의 수입 중, 상당한 지분을 가진 숲인 만큼, 숲을 점거한 오크들을 반드시 처치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오크 정도야, 강현에게는 별거 아닌 상태일 뿐이었다.

확인된 오크의 숫자는 겨우 50.

일반인이나 평범한 실력을 지닌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위협적인 적인 것에 더해 엄청난 숫자였지만, 강현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레이 같은 경우에는 그저 몸풀기에 불과할 테고.

그런 만큼 긴장한 기사들과 달리 강현의 일행을 여유로울 뿐이었다.

지금까지 인명 피해도 없었다는 것이 한몫했다.

“헤헤….”

강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앉은 아리아는 기분 좋은 듯, 웃음소리를 흘렸다.

칸트 루스 자 작가로 오는 마차에서의 자리를 정하는 제비뽑기에서 승리했지만, 마부의 부재로 인해 강현의 옆에 앉지 못했었다.

그런 만큼 숲으로 가는 마차에서만큼은 강현의 옆자리에 앉게 된 것이었다.

엘리스와 함께.

옆자리에 앉는 게 뭐가 그리 좋다고.

강현은 떨떠름할 뿐이었다.

부러움과 질투가 느껴지는 레이의 눈빛을 받는 건 편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 새로운 해가 가까워질수록, 레이는 점점 여유로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그녀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들었다.

맹수에게 노려지고 있는 작은 동물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비는 아예 관심 없다는 듯, 아예 강현 쪽으로 시선을 보내지 않았지만, 힐끔힐끔 쳐다보는 눈빛에는 부러움이 묻어져 있었다.

특히 강현에게 팔짱을 낀 채로 앉은 엘리스를 바라볼 때 부러움은 더욱 선명하게 느껴져 왔다.

“후후.”

그런 라비를 본 엘리스는 여유롭게 웃을 뿐이었고.

다들 좋은 여자들이고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받아온 소중한 동료였지만 이럴 때만큼은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물론 싫다는 건 아니었다.

배덕감이라고 해야 할까.

눈치가 보인다고 해야 할까.

강현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뭐라 정의할 수가 없었다.

그냥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행운을 누리고 있으니 행운아라 봐야 마땅하겠지.

“레이야, 아쉽진 않아?”

침묵 속, 심심함을 느낀 강현은 이야기라도 나눠볼까라는 생각에 입을 열어 레이에게 물었다.

이 오크 무리의 소탕은 레이에게 있어선 모험가로서의 마지막 의뢰였다.

20살이 되면 강현의 호위로써 고용되기로 했기에.

“아쉽긴 해도 후회는 없어요.”

레이는 별 다른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쉽지 않을 수가 없었다.

6살, 회귀한 직후 세이브 리스 모험가 길드로 와, 모험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무려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해온 일은 관둔다는 건데.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이제 모험가 일을 관두고 평생 동안 바라 마지않던 강현의 옆에서 그의 검과 방패로 살아갈 수 있었으니.

또한 4일 후엔 약속했던 날이 된다.

10일 전에 막 생리가 끝났으니, 1월 1일은 배란 예정일이다.

임신하기 가장 좋은 날에 첫 관계를 맺게 된다.

아쉬움을 깔끔하게 잊어버릴 정도로 기대감이 더욱 컸다.

물론 아이를 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건 알지만….

‘예상 치 못한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니까.

예를 들어 피임구가 고장이 난 상태라던가?

레이는 미소를 지었다.

“강현 씨와 함께 생활하는 게 제 꿈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강현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이.

“아, 하하…, 그렇구나.”

그냥 심심함을 달래고자 대화를 시작했으나, 레이의 직설적인 말에 강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고.

‘… 역시.’

그런 레이를 보며 다른 여인들을 작게 감탄했다.

고작 말 한마디로 강현이 얼굴을 붉히게 만들다니.

강현은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뭔가 할 말이 없을까 고민을 시작했지만, 마차가 먼저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요.”

마부석에 앉은 마부가 뒷칸을 향해 도착을 알렸다.

“네. 애들아, 내리자.”

강현은 먼저 일어나 마차의 문을 열고 내린 뒤, 여인들이 내리기 편하도록 한 사람씩 손을 잡아주었다.

“흐음….”

그리고 마차 너머로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이 보였다.

이 안에 오크 50마리가 있다.

하지만 전혀 긴장되진 않았다.

메르시를 구하기 위해 산에 들어간 이후, 담력이 강해졌다고 할까.

속된 말로는 깡이 늘었다.

함께 달려온 마차들에서부터 벨라와 30명의 기사들이 차례차례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장 대열을 맞춰 벨라 앞에 정렬했으며 벨라는 그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강현과 여인들 또한 그 기사들의 대열 옆에 섰고.

그와 동시에 기사들을 살폈다.

일단 표정은 좋았다.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만큼은 높게 사야 마땅하겠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투기 또한 대단했다.

투기는 곧 그 사람의 실력을 대략적으로나마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척도가 된다.

칸트루스 자작가의 세력은 약하지만 척박하고 몬스터가 들끓는 영지덕에 기사들의 기량 또한 자연스럽게 올라갔겠지.

“… 해가 지기 전에 오십의 오크를 사냥하고 성으로 돌아갈 거니, 다들 힘 내주세요.”

벨라는 똑같은 표정과 잔잔한 목소리로 기사들을 격려했다.

“네 엡!”

뭐랄까, 사기 증진을 위한 연설이라고 보기엔 애매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처음부터 사기가 높았던 건지, 벨라 같은 미녀의 응원을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출발하죠, 잘 부탁드릴게요.”

벨라는 이번에 강현과 여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야 말로.”

강현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칸트루스 자작가는 모험가 길드에서 사람을 구했다.

치유사 한 명과 척후병 한 명.

그 외 전투가 가능한 은 등급 이상의 모험가들을.

치유사는 아리아가, 척후병은 강현이 맡기로 했고, 숲에 들어서기 전 오크들의 위치와 분포 같은 정보를 파악할 차례였다.

강현은 곧장 100마리의 토견(??)을 꺼내 숲 안으로 들여보냈다.

4 위계 마법들에 비해 마나 소모가 적은 토견은 척후병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전투능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강현의 마력은 처음부터 남달랐다.

원래라면 10등급 몬스터인 고블린 조차도 사냥할 수 없어야 정상이지만 최대 8등급의 몬스터 정도는 토견 한 마리가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었다.

토견들은 낮은 등급의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오크들의 위치를 파악했고, 숲 중심부 근처에 위치한 작은 호수를 중심으로 오크들이 터를 잡고 있다는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곧장 강현은 자신이 파악한 정보를 벨라에게 전해주었고, 기사들과 함께 숲 내부로 진격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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