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칸트루스 자작가 (1)
* * *
2일 동안 달려, 칸트루스 자작성에 도착했다.
강현과 레이에게는 칸트루스 자작성은 꽤 큰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
강현이 현대에서 이 세계를 게임으로 즐겼을 때, 칸트루스 자작가의 영애는 그의 최애캐였다.
무수히 많은 캐릭터들 속에서도.
아름답고 착한 캐릭터라는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캐릭터의 성능으로만 보자면 최악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의 재능을 지니고 태어나는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그녀는 최악의 재능을 가졌으니까.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노력가형.
강현은 그런 모습에 감동했고 칸트루스 자작가의 영애를 가장 먼저 공략했었다.
또한 하우로스 백작가의 기사들에게 살해 당한 뒤, 회귀했을 때 가장 먼저 갔던 곳이 칸트루스 자작령이었다.
작은 마을에 퍼진 붉은 역병을 치료해주기 위해서 왔었었지.
또한 레이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칸트루스 자작가 덕이 컸다.
핏빛 칼날이 자작가의 마을을 습격한 오거떼를 토벌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던 덕에 회귀한 뒤, 처음으로 레이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체 이런 저런 사건들이 끊이질 않는 자작가인 탓에 푸스탄트와 여행을 하며 최소 10번 이상은 방문한 곳이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강현 님.”
“예, 자작님을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그런 만큼 강현은 칸트루스 자작가의 가주, 카트 칸트로스와 좋은 관계를 유지중이었다.
오직 자주 찾아왔다는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강현과 카트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입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고, 다른 귀족들이 싫어한다는 입장이.
귀족들의 입장에선 귀족도 아닌 뒷골목 출신의 거지가 상당한 정치적 발언권을 지녔단 사실을 불만을 품고 있었다.
또한 아무 근본 없는 일개 모험가가 자신들과 같은 귀족이 된 카트를 못마땅해하였고.
물론 강현은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명예를 떨친 만큼, 자리에 걸맞은 책임을 응당 지어야 한다.
그런 강현에게 있어선 비슷한 입장을 지닌 아군을 만든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카트 자작과는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물론 아멜리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강현이 제작하는 의약품의 대부분을 거래하고 있는 만큼, 대륙의 기둥이라 불리는 4개 공작가중 하나인 루이스플 공 작가가 든든한 뒷배경이 존재하지만.
“예, 멋지게 성장하는 딸아이를 보는 맛에 살고 있습니다, 영지민들 또한 좋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굳건하게 살아주고 있죠.”
카트 자작은 약간의 미소를 입가에 띤 채 말했다.
그의 말대로 칸트루스 자작가의 사정을 그리 좋지 않다.
척박한 토양을 지닌 영지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서성이고 있다.
또한 여러 귀족들의 견제를 받는 만큼 영지의 성장 또한 더딘 상황.
안쓰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한 사람.
카트 자작에 대한 강현의 평가였다.
칸트루스 자작가가 7대 용사의 숨겨진 후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강현 님은 어떠십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강현 님의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뭐…,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하. 2년 전 마지막으로 방문해주셨을 때와 똑같이 말하시는군요. 한결같으신 분입니다.”
내가 그랬던가?
강현은 잠시 기억을 되짚었고 그렇게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예, 그걸 기억해주시다니.”
“제가 마법을 수련하려면 기본적으로 머리가 따라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카트 자작이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렇죠.”
카트는 7 서클 마법사로 현자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당장 마법 학회나 마탑에 들어가고 꽤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는 귀족이라는 어릴 적 꿈을 이루겠다는 목적으로 고된 길을 골랐다.
평민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몇 번 고생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런…, 찾아와 주셔서 기쁘긴 합니다만, 강현 님께서 찾아와 주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강현 님과 레이 님이 의뢰를 받아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찌나 놀랐던지.”
“놀라실 게 뭐 있습니까. 모험가가 모험가의 일을 할 뿐입니다.”
“그래도…, 보수라던가 난이도가 안 맞지 않습니까?”
칸트루스 자작가가 내건 의뢰는 자작령에 위치한 숲을 점거한 미노타우로스 무리의 소탕.
미노타우로스는 각각 5등급 몬스터로 상급 마법사와 상급 기사가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다.
구리, 철, 동, 은, 금, 백금, 금강, 영웅.
총 8개로 나뉜 모험가 등급으로 보면 은 등급 모험가 수준.
“제 등급의 딱 맞는 의뢰지 않습니까.”
그리고 모험가 활동을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강현은 은 등급 모험가였다.
“하하…, 누가 강현 님이 겨우 은 등급 모험가 수준이 아니란 건 제국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레이 님께서는 금강 등급이라 들었습니다.”
강현의 농담에 카트 자작이 웃으며 답했다.
“하하, 그렇죠. 뭐, 제가 칸트루스 자작가의 의뢰를 고른 이유는 물론 따로 있긴 합니다.”
“음? 그게 뭡니까?”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상단을 만드셨다 들었습니다.”
“허어…, 그거까지 알고 계실 줄이야, 맞습니다. 1달 전쯤에 드디어 황실에서 허가가 떨어졌지 뭡니까.”
당연히 강현이 모를 리가 없었다.
칸트루스 자작가는 오래전부터 본인들만의 독자적인 상단을 구성하기 위해 황실에 허가를 요청해왔다.
하지만 칸트루스 자작가가 독자적인 상단이 없다는 것을 노린 다른 귀족가들과 상단 주들이 상단의 허가가 떨어지는 것을 계속 방해해왔다.
외부에서 들여온 물건을 칸트루스 자작가에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었으니.
그리고 약 2달 전, 강현이 나섰다.
그가 한 일은 간단했다.
육각 성의 장로들 중 한명인 록스 라우티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렇게 원하던 생력 포션을 한병 줄 테니, 자작가의 상단이 허가될 수 있도록 힘 좀 써달라고.
승리와 전투의 신, 베가를 섬기는 베가교의 교황이자 육각성 서열 3위.
제국의 의전서열 5위는 당연히 그럴 만한 힘이 있었고, 강현이 제시한 대가는 차고 넘쳤다.
물론 강현은 아까운 거래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록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게 없으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니까.
또한, 생력 포션이라면 사용할 일이 많이 없어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인 상태였다.
앞으로 3년 후엔 3번째 흑적초를 수확할 수 있고.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어떤 물건을 취급하실지는 정해둔 상태십니까?”
“예, 저희 자작령에서 생산되는 무기들의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테니 일단 되는 대로 하려는 중이긴 합니다.”
“흐음…, 그렇군요.”
강현은 잠시 고민하는 척을 했다.
“혹시 제가 직접 만든 의약품을 팔아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네?”
갑작스러운 강현의 제안에 카트 자작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최근에 기가 막힌 정력제를 하나 개발했는데, 판매할 상단을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정력제…. 들은 기억이 나는군요. 다른 곳에서 판매되는 정력제와는 비교도 안된다고 들었습니다.”
메르시를 구한 날.
요한은 강현이 선물한 정력제를 사용했고, 엄청난 성능에 만족하여 기존에 약속했던 대로 강현의 정력제를 열심히 홍보해줬었다.
“하지만 강현 님은 루이 수플 공 작가와 거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계약으로 묶인 관계는 아닙니다. 그저 다른 곳에 비해 높은 값을 쳐주기 때문에 계속 거래하고 있었을 뿐이죠.”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군요, 왜 굳이 저에게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저희는 공작가처럼 높은 값을 쳐드릴 여력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장사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투자를 하자는 겁니다.”
“투자…, 말입니까?”
“예, 칸트루스 자작가는 근처 많은 귀족령들과 인접해있을뿐더러, 다른 왕국들과도 상당히 인접해있죠, 그런 만큼 상단은 빠르게 성장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상단에 비할 수 있는 경쟁력을 지녔을 때의 이야기겠지만요.”
강현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정력제를 꺼냈다.
“그 물건입니다. 같은 물건이 천 병 정도 더 있죠.”
“천… 병이나 말입니까?”
현재 강현이 루이스플 공작가의 상단을 통해 조금씩 풀고 있던 정력제는 개당 1 골드에서 2 골드 사이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물론 한 번에 전부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금도 고려해야 하지만 총 20 백금화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예, 칸트루스 자작가에 병당 30 실버에 독점으로 판매해드리겠습니다. 대금 또한 판매한 후에 지불하셔도 괜찮고요.”
참고로 정력제의 병당 원재료값은 10 실버다.
루이스플 공작가의 상단은 정력제를 병당 80 실버에 구매해갔고.
하지만 강현이 말했다시피, 이건 어디까지나 투자였다.
강현은 어느 정도의 미래를 알고 있는 만큼 칸트루스 상단의 성장력 또한 잘 알고 있다.
칸트루스 자작가의 영애, 벨라 칸트루스는 뛰어난 사업수완을 지니고 있었으니.
물론 그 수완이 빛을 보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겠지만.
“… 진심이십니까?”
그 정도라면 신생 상단의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심지어 그저 그런 물건이 아닌, 대륙에서 의약 성인이라는 칭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강현이 직접 제약한 정력제.
어느 정도의 부를 지닌 귀족가의 가주들, 모험가들에게 불티나게 팔릴게 안 봐도 뻔했다.
지금 당장만 해도, 정력제의 물량을 찾고 있다는 ‘귀족부인’들이 수두룩했으니.
“당연히 진심이죠.”
수상할 정도로 좋은 조건.
카트 자작은 고민했다.
하늘이 내린 기회나 마찬가지.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상단이 만약 실패했을 때, 강현이라는 좋은 인맥을 잃게 될 위험성도 분명 존재했다.
“실패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투자를 하겠다고 한 건 온전히 제 결정이죠. 또한 자작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제가 재물에 큰 의미를 둔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런 카트 자작의 마음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강현이 말했다.
“… 알겠습니다. 그럼 가문의 사람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눠본 뒤 결정 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의뢰를 수행하기 전까지는 자작가에서 머물기로 했기에,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선물입니다. 판매하실 물건의 효과에 대해선 알고 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강현은 꺼내 뒀던 정력제를 카트 자작에게 내밀며 말했다.
“… 그, 그럼.”
잠시 망설인 카트 자작은 정력제를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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