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20살 (1)
* * *
파티가 끝나고 모험가들은 자신의 거처로 되돌아갔다.
뒷정리도 어느 정도 끝난 상황.
“강현 씨.”
강현과 함께 뒷정리를 돕고 있던 레이가 다가왔다.
그녀의 뒤에는 아리아와 라비도 함께 있었는데, 딱히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아리아는 공허한 눈으로 강현을 응시하고 있었고, 라비는 뭔가 심술 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 응? 왜 그래?”
그리고 레이의 표정을 살핀 강현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똑바로 마주하고 있는 눈은 차가웠지만, 입가에는 아름다운 미소를 은은히 머금고 있었다.
강현은 레이와 오랫동안 함께 해온 만큼 저 표정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저건 기분이 상했을 때 나오는 레이의 표정이다.
“정력제를 왜 만드신 건가요?”
레이는 아름다운 연한 붉은색 입술을 달싹이며 내게 물었다.
대답 여하에 따라 내 목을 앗아갈 것 같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거? 판매용으로.”
그리고 레이가 뭔가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강현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판매… 용이요?”
“응, 요즘에 용품점에서 파는 정력제가 시원찮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길래 한번 만들어봤어.”
강현의 대답에 레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럼…, 그 효과는 어떻게 검증하셨죠?”
레이는 강현이 약품을 만들 때마다 직접 복용하여 효과를 검증해본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물었다.
“그건….”
강현은 잠시 고민했다.
뭐 상관없겠지, 라는 결론을 내린 강현이 입을 열었다.
“정력제를 만들어달라고 처음 의뢰한 게 요루였거든. 요루가 괜찮다고 하더라.”
“네…? 요루가 왜….”
“그런 게 있어, 의무방어전이라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남자들의 고민이라고 할까.
차마 직접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기에 강현은 돌려 말했다.
“그럼….”
“레이, 무슨 오해를 한 거야?”
“아, 아니…, 그, 그게….”
순식간에 얼굴을 붉게 물들인 레이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당황한 모습이 꽤 귀여웠다.
“아리아랑 라비는 무슨 일이야?”
“네…? 어… 그, 그냥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려 했던 거예요, 헤헤….”
“나는 왜. 뭐.”
아리아와 라비도 얼굴을 붉혔다.
∴
2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지났다.
바람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낮이 짧아지는 계절 계절이 찾아왔다.
12월 말.
세이브리스 모험가 길드에는 큰 소식이 전해졌다.
요한과 메르시가 드디어 부부로써의 관계를 맺는 결혼식을 내년 1월에 거행하기로 정했다는 것과, 메르시가 임신했다는 사실이었다.
“부럽다, 그렇죠?”
모험가와 약제사의 일과 수련을 쉬는 날.
함께 나들이를 나온 레이가 강현에게 말했다.
“그러게.”
강현은 바나나 라테와 비슷한 음료를 마시며 대답했다.
작게 간 바나나가 씹히며 느껴지는 달콤함이 우유의 고소함과 잘 어우러진 것이 일품인 음료였다.
“결혼이라….”
강현도 오래 살아온 만큼, 주변 인물들의 결혼 소식을 자주 들어왔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의 느낌은 늘 새로웠다.
남자가 아닌 가장으로써의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현대에선 결혼에 관한 여러 말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강현에게 있어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니까.
“강현 씨 우리도 언젠가는 하겠죠?”
레이가 부럽다고 한 부분은 결혼보다는 메르시의 임신소식이었지만 강현은 살짝 다르게 이해한 모양이다.
아무렴 어떤가.
레이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강현은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푸흡…, 흠흠….”
갑작스러운 레이의 질문에 음료를 잘못 삼킨 강현이 헛기침을 했다.
“괜찮으세요?”
당황한 레이가 물었다.
“으, 응…. 결혼이라…”
강현은 레이의 질문에 대답해주기 위해 잠시 고민했다.
강현도 언젠가는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먼 미래의 일 같아 막상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어, 언젠가는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강현은 얼굴을 붉히며 적당한 대답을 내놓았다.
강현은 언젠가 자신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상대가 레이일 확률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당장은 어때요?”
“… 농담이지?”
“당연하죠.”
레이는 뭐라고 할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요망해져 갔다.
은근한 눈빛과 몸짓으로 유혹하기도 하며 부끄러워지는 농담을 자주 해왔다.
약속을 나눴던 20살이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럴까.
강현은 그런 레이가 싫진 않았지만 심장에 별로 좋지 않았다.
지금 당장만 해도 드레스 사이로 보이는 풍만한 가슴의 가슴골과 살짝 치뜬 눈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남달랐던 발육은 더욱 엄청난 결과물로 성장했다.
잘록한 허리에서부터 골반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곡선을 가히 신이 직접 빚었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뿐이었다.
“그럼 이제 일어설까요?”
마시던 음료를 다 비웠을 때, 레이가 물었다.
“응.”
가게에서 나온 강현과 레이는 마을에서 잠시 동안 데이트를 즐긴 뒤, 길드로 돌아갔다.
“왔어요?”
그리고 침대 위에는 조금 공격적인 디자인의 속옷을 차려입은 엘리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응.”
강현은 몸을 씻기 위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인벤토리 안에 넣어두었다.
“재밌었나 봐요?”
강현의 표정을 본 엘리스가 물었다.
질투심이 살짝 섞인 목소리는 뭐라고 해야 할까.
짓궂은 느낌이었다.
“당연히 재밌었지.”
강현은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말했다.
원래였다면 여기서 상대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말도 못 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매일 아름다운 여인들 4명 사이에서 생활해온 만큼, 눈치와 상황에 따른 대처법을 길러왔다.
“저번 주에 너랑 다녀왔을 때도 재밌었고.”
레이, 엘리스, 아리아, 라비.
매주 일요일마다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즐기는 강현은 잘 알고 있다.
누구든지 간에, 너와의 데이트가 가장 재밌다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음을.
물론 라비에게 그런 말을 했다간 명치를 맞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선 한 명만 편애해선 안된다.
“뭐, 그렇겠죠.”
그에 따라, 엘리스가 볼멘 목소리로 답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엘리스의 성격상, 오래가진 않았다.
“우리 주인님을 사등분할 수도 없으니까요.”
다시 장난스러운 말투로 돌아온 엘리스가 말했다.
다소 섬뜩하게 들렸지만.
“그건 좀….”
“당연히 농담이죠.”
히히, 엘리스가 작게 웃었다.
강현을 바라보고 있는 그윽한 눈빛에는 애정과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빨리 씻고 와요.”
“응.”
강연은 서둘러 몸을 씻은 뒤, 엘리스와 함께 잠에 들었다.
∴
“태초의 신, 데우스가 가장 먼저 창조한 3개가 뭐야.”
“으음, 우주와 별, 마나 죠.”
“정답, 그럼….”
아리아의 숙소 안.
책상 앞에 앉은 아리아 옆에 선 강현은 그녀에게 이런저런 문제를 내고 있었다.
앞으로 2개월 후에는 아카데미 입학시험이 시작되고 3개월 후에는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다.
당연히 아리아도 아카데미의 입학을 희망한 만큼, 입학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만 했다.
아리아는 성녀인 만큼 성직자로서의 기량은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을 월등히 뛰어넘었다.
또한 머리도 나쁘지 않았기에, 강현이 내는 문제들에 대해 술술 정답을 말했다.
“으음…, 이 정도면 충분히 통과하겠다. 수고했어.”
오늘도 만족스럽게 수업을 끝낸 강현이 들고 있던 책을 덮으며 말했다.
“끄으응…!”
그리고 아리아는 양팔을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가슴을 앞으로 내민 탓에 그녀의 풍만한 곡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수녀복 사이에서는 깨끗한 옅은 분홍색의 겨드랑이가 노출되었다.
강현은 아리아를 만나고 나서 겨드랑이가 이렇게 야한 신체부위인지 처음 깨달았다.
“항상 감사해요 강현 씨.”
“뭘 이 정도로 받은 만큼 도와주는 거지.”
아리아는 강현의 모험가, 제약일을 성실히 도와주었다.
그런 강현이 아리아의 공부를 돕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후후, 통과할 수 있겠죠?”
“응, 아마 실기시험은 만점 확정이고, 필기는…, 40점만 넘으면 될 테니까.”
아카데미의 임학 시험은 필기 100, 실기 100으로 계산된다.
총합 140을 넘기면 입학이 가능한 만큼, 아리아의 입학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기쁘네요.”
아리아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 순수한 미소는 모순적이게도 아름다운 외모와 잘 빠진 몸매와 더불어, 그녀가 지닌 뇌쇄적인 매력들 중 하나였다.
그런 어디 하나 모난 곳이 없는 아리아를 보며 두근거리는 것은 Y염색체를 지닌 사람이라면 으레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가끔씩 탁한 눈빛으로 응시할 때는 그 무엇보다 두려웠지만.
“네가 열심히 해서 그런 거지.”
“헤헤….”
아리아는 잘 정돈된 자신의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꼬며 뺨에 홍조를 띠고 작게 웃을 뿐이었다.
그녀가 부끄러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행동이었다.
“원래였다면 성녀의 방에서 계속 생활했어야 할 텐데, 오히려 신탁을 받고 강현 씨와 만나게 돼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눈을 감으며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곱게 모은 두 다리 사이로 올린 두 손을 꼼지락 거리며.
“그래도 좀 힘들진 않아? 옛날 친구들이 그립다거나.”
“당연히 그립죠. 가끔씩 교회에서 전해주시는 소식으로만 접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성녀인걸요.”
12살이라는 나이에 성녀라는 높은 자리에 올라 신탁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졌다.
하지만 항상 꿋꿋한 모습을 보이는 아리아였다.
“멋지네.”
강현은 그런 아리아가 대견할 수밖에 없어 절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리아는 배시시 웃은 채, 머리를 강현에게 내밀고 그의 손길을 잠시 동안 즐겼다.
“그럼 이제 가볼게.”
“네, 내일은 모험가 의뢰를 할 예정이죠?”
“응, 조금 오랫동안 다녀올 거 같으니까 잘 준비해둬.”
“네,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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