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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81화 (81/148)

〈 81화 〉 영웅 (1)

* * *

결계가 생성되었고, 그 안에는 요한과 데스나이트만이 남아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 요한의 입이 움직여 뭐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밖으로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당황한 건 비단 요한뿐이 아니었다.

특급 몬스터 데스나이트.

아직 소드마스터의 경지인 요한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즐겁게 해 보라니.

고약한 성격을 지닌 마녀일까.

‘아니.’

강현은 초월이 가까워졌다는 마녀의 혼잣말을 기억하고 있다.

요한은 검성의 경지에 가까워졌으나, 벽에 막혀 다음 경지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마녀는 그런 요한을 알아보고 다음 경지로 넘어가기 위한 시련을 준 건가, 라는 생각이 강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왜?

그저 유흥의 하나일 뿐인 건가.

나른한 표정으로 결계 내부를 바라보고 있는 마녀의 생각과 감정을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런 마녀는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모두가 강현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기다려봐.”

강현은 마녀에게 다가가고 있던 레이를 다급하게 말렸다.

레이에게는 소중한 가족이 위험의 처했을 뿐이다.

초월이든 뭐든.

레이의 날카로운 시선은 마녀를 향해있었다.

만약 강현의 생각이 틀렸으며, 그저 고약한 취미하고 할 지라도 마녀는 분명 강하다.

그녀를 자극해서 좋을 게 없다.

“강현 씨, 요한이 위험해요.”

“응, 나도 알지. 그런데 조금만 진정해봐, 내가 가서 얘기해볼게. 응?”

강현의 말에 잠시 머뭇거린 레이는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도 바보가 아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생각이 깊다.

강현은 마녀에게 다가갔다.

둥둥 떠있는 빗자루 위에 다리를 꼰 채 앉은 마녀는 강현을 바라봤다.

“저….”

“기특하구나.”

하지만 강현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마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희 모두 산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그렇지 않니?”

마녀가 물었다.

갑작스러운 마녀의 말에 잠시 고민한 강현은 일단 그녀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아직 요한과 데스나이트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대치중이었다.

“… 예.”

“이래서 사람을 싫어할 수가 없는 거란다, 누군가는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잔인하지만, 누군가는 멍청하다고 모욕당할지언정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니까.”

칭찬으로 받아들여하는 걸까.

일단 잠자코 듣는 편이 좋겠지.

“저 남자가 분명 요한이겠지?”

“예,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건지 여쭙고 싶습니다.”

“별거 아니란다. 금발의 여자아이가 잠결에 부르는 걸 들었을 뿐이니.”

메르시는 분명 마녀에게 안전히 보호받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상을 주기로 했단다.”

“상… 말입니까?”

“그래, 너희는 알 수 없겠으나, 내 눈에는 명확하게 보인단다. 저 요한이라는 남자의 초월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당장 검성이 돼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야.”

“… 역시.”

이따금씩 요한과 대련을 했던 강현은 요한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실력과 검기는 소드마스터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강했으나, 검성이라 하기엔 부족했다.

“아마 어떤 형태의 속박이 그를 옥죄이고 있는 것일 게야.”

“그게 데스나이트와의 전투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

강현이 묻자 재밌다는 듯이 마녀가 웃으며 말했다.

“저 데스나이트는 한의 뼈와 영혼으로 만들어졌지.”

“한이라 하심은….”

익숙한 이름이었다.

역사책과 영웅전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 이름.

“그래 네 생각대로다. 초대 용사이자 태초의 영웅, 한의 뼈와 영혼으로 만들어진 것이 저 데스나이트다, 아주 먼 옛날, 네 검과 동료였던 사내이지.”

요한은 영웅이 되고 싶다.

약한 사람들을 돕고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멋진 사람이.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처럼.

촌 동네 남자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지는 꿈이다.

요한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요한은 검술에 재능이 있었다.

그 재능은 마을 최고가 되고 자작령 최고가 되었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왔을 때, 요한은 자신의 재능이 최고임을 확신했다.

압도적인 차이는 아닐지 언정, 수많은 귀족가에서 자신을 원했다.

하지만 그는 기사가 아닌 영웅이 되길 원했다.

모험가의 일을 시작하고 명예를 쌓았다.

지출이 많아 돈은 쉽게 모이진 않았으나, 더욱 좋은 장비를 마련하고 먹고 살만큼은 벌었다.

그리고 15살이 되던 해, 잠시 마을로 되돌아갔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함없이 정겨운 분위기에 반가움을 느끼고 있었을 때였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소꿉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있었고, 요한은 사랑에 빠졌다.

미래를 약속했다.

그리고. 소꿉친구가 죽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마차를 타고 자신에게 오던 소꿉친구가 도적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묘비 앞에서 다짐했다.

그 누구보다 강해져서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건들 생각조차 못하게 만들겠다고.

절망을 딛고 일어선 뒤 시간이 흘렀다.

모험가 길드에서 만난 여인이었다.

어리숙했지만 누구보다 성실한 노력가였다.

좋은 동료로서 큰 힘이 되어주었다.

오거를 만나기 전까지는.

48살 평생.

허리춤에 검을 매달고 살아왔다.

수많은 적들과 몬스터를 상대로 생사결 치러왔고, 실력자들과 끝없이 대련을 해왔다.

특급 몬스터 데스나이트.

기이하고 끈적한 마나, 짙게 내려앉은 죽음의 한기가 느껴져 왔다.

‘못 이겨.’

제국 제일 검 중 한 명이라고 칭송받는 요한이었으나, 혼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사실이란 걸 깨달았다.

‘어떡하지.’

메르시를 구해야 한다.

마녀는 자신을 즐겁게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마주 보고 선 것만으로도 압도당했다.

원초적인 공포에 빠진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도 안으리라.

요한은 주변을 둘러봤다.

검은 장막이 반구 체형으로 형성된 결계는 외부의 상황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럴 거면….’

다가오는 죽음과 공포에 요한은 생각했다.

메르시에게 마음을 전할걸.

지금까지 모른 척 억지로 외면했던 메르시의 마음이 너무나도 미안했다.

‘나는….’

쓰레기다.

겁쟁이였으며.

도망치기 바쁠 뿐이었다.

메르시의 마음은 이미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녀가 고백하려 할 때면 항상 도망칠 뿐이었고.

두 번의 사랑과 두 번의 상실은, 요한을 겁쟁이로 만들었다.

세 번째 상실을 목전에 둔 요한은 좌절했다.

“정신 차려라.”

섬뜩하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마녀가 고른 내 상대가 고작 그 정도인 거냐.”

실망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자세를 고쳐 잡고 검을 쥐어라, 너의 입장은 모르겠으나, 검을 든 이상 모든 전투는 명예로운 것. 나를 모욕할 셈이냐.”

데스나이트가 말했다.

몬스터가 말을 한다고?

요한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해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적을 앞에 둔 이상, 검사로써 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검을 쥐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잔뜩 겁먹은 꼴이 계집아이와 다를 바가 없군. 열정과 기백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어.”

실망감이 역력한 말투였다.

“… 웃기지 말아라.”

요한은 손의 떨림을 진정시키기 위해 검을 더욱 세게 쥐었다.

“흥, 싱겁군.”

데스나이트, 한은 거대한 검을 들어 올렸다.

요한의 몸집보다 더욱 거대한 검에서 엄청난 중압감이 전해져 왔다.

“네 연인이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건가.”

마녀가 부탁했기에 어쩔 수 없이 악인을 연기하고 있었지만, 데스나이트, 한은 이런 성격과는 잘 맞지 않았다.

“… 그게 무슨 말이지.”

“좋을 대로 생각해라.”

물론 지금 쯤, 마녀의 오두막에서 편히 잠을 청하고 있겠지만.

“메르시가 어디 있는지 말해라.”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요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고, 자세는 정돈되었다.

손과 다리에 떨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있었다.

메르시.

반드시 구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웠던 후회는 두 번으로 족하기에.

“나를 이긴다면 알게 될 거다.”

데스나이트가 발도 자세를 취했다.

요한은 공격의 대비했고 데스나이트가 발도 했다.

쿠우웅!

검은색의 검기, 아니. 검강이 땅을 가르며 일자로 쇄도했다.

방어하면 죽는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요한이 곧바로 몸을 옆으로 날려 검강을 피해냈다.

검강을 이용한 충격파라 할지라도 믿기지 않는 위력은, 차라리 마법이라고 보는 게 훨씬 그럴싸했다.

마법이라 할 지라도, 말도 안 되는 파괴력.

요한은 압도적이 차이를 실감했다.

하지만 일어섰다.

쿵쿵.

데스나이트가 입은 갑옷이 철그럭 거리며 한 발자국씩 다가왔다.

그와 가까워질수록 점점 짙어지는 패기는 전의를 상실하고 몸을 굳게 만들기 충분했다.

“겨우 그 정도론 아무도 지킬 수 없다. 나약해 빠진 놈.”

나약해 빠진 놈.

요한은 생각했다.

자신의 모습은 지금, 그 누구보다 나약했다.

분하게도 데스나이트의 말은 사실이었다.

“너의 검은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이냐. 부나? 명예인 것이냐? 그런 시답잖은 이유라면 알아둬라.”

데스나이트의 검끝이 요한에게 향했다.

투구 사이로 푸른빛이 일렁였다.

“너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다.”

흉흉한 살기가 느껴져 왔다.

지금껏 수 없이 많은 살기를 받아온 요한조차 처음 느끼는 수준의 농밀함이었다.

“나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감사를 받을 때면 그 여느 때보다 행복했으니.

하지만 자신의 검은 사랑하는 사람, 고작 단 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

“지키기 위해 싸운다.”

묘비 앞에서 맹세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해지겠다고.

다시는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겠다고.

하지만 맹세는 지켜지지 못했다.

두 번째 사랑을 잃었고, 요한은 다짐했다.

“그 누구 한 테도 지지 않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 좌절 속에서 잊고 있던 다짐을 기억해낸 요한의 눈이 빛을 머금었다.

그의 검의 푸른 검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영웅이, 되기 위해 싸운다.”

모든 이들의 영웅이 아니어도 괜찮다.

당장 마녀의 손에 빠진 메르시의 영웅이 되어주기 위해 싸우겠다고, 요한은 새롭게 다짐했다.

‘잠깐 정신이 나갔네.’

요한은 스스로를 질책했다.

적을 앞에 두고 무서워하느라 전의를 상실하다니.

사나이 실격이다.

‘정신 차려.’

요한은 고개를 들어 데스나이트를 바라봤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도 반드시 이긴다.

그것이 사나이의 기백이다.

안되면 될 때까지.

팔을 잃으면 다리로, 다리를 잃으면 이빨로 싸운다.

그것이 사나이의 열정이다.

“덤벼라, 데스나이트. 내가 세이브리스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 요한 윌이다.”

초대 용사이자 태초의 영웅, 라가 말했다.

열정을 불태워라, 사나이의 기백을 등에 짊어져라.

그 순간 요한의 검에 일렁이던 검기가 서서히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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