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타오르는 열정, 사나이의 기백 (2)
* * *
“뭔가 이상해.”
산에 들어온 뒤, 메르시의 흔적을 찾던 중 강현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구조대로 모인 10명 중, 유일한 치유사인 강현과 아리아는 다른 이들의 뒤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중이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강현의 말에 의아한 아리아가 물었다.
“우리 산에 들어오고 나서 1시간은 지났잖아.”
“그렇죠.”
“그런데 단 한 번도 몬스터랑 조우한 적이 없잖아.”
몬스터들의 소굴, 산이다.
몬스터와 조우하지 않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건 행운으로 여겨 마땅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니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숲을 가도 지금보다 더 많은 몬스터들을 만나게 되리라.
“토견들도 몬스터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없고.”
100마리의 토견은 구조대의 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몬스터들을 확인하고 있지만, 그 토견들한테서 몬스터를 발견했다는 신호도 오지 않았다.
그저 운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부자연스럽다.
“요한 님.”
강현은 요한을 불렀다.
뒤를 돌아본 그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강현에 물음에 동의하듯,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우리를 눈치채서 포위하려는 게 아닐까?”
“아니, 정령들 한테도 아무 말이 없어.”
라비가 강현과 요한에게 말했다.
“잠시만요.”
그러던 중, 레이가 다급하게 말하며 구조대를 멈춰 세웠다.
허리를 숙인 그녀는 자신의 발 밑에 떨어져 있던 무언가를 주워 들었다.
“이건… 마석?”
어두운 푸른색 빛을 은은하게 빛내고 있는 돌.
마석이었다.
“잠시만.”
레이에게서 마석을 받아 든 요루는 마석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거 오크의 마석인데?”
“오크의 마석? 그게 왜 여기에….”
요루의 말을 들은 요한이 놀란 듯이 물었다.
몬스터가 죽으면, 시체와 피는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간다.
그리고 몬스터가 죽은 자리 위에 남는 것이 마석.
그 말은 오크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뜻이다.
몬스터들의 세상인 산에서.
“나도 모르지.”
“다른 사람인가?”
몬스터는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다.
시골 마을의 어린아이들조차 알고 있는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런데 마석이 떨어져 있다는 것은 사람의 존재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니면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다거나.
“기다려봐, 지금 어제 여기에 있었던 정령을 불러와 준데.”
산에 들어온 순간부터, 계속 눈을 감은 채 정령들과 대화 중이었던 라비가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기회였고, 구조대는 라비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라비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뜬 채 구조대원들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한 오크가 인간 여자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고 있었데.”
분명 메르시를 말하는 것이리라.
강현의 시야에 구조대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럼 그 오크가 죽은 거야?”
라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말도 안 되지만, 산에서 사는 누군가가 메르시를 구출해준 것일 수도 있으니까.
또는 더 강한 몬스터가 오크를 죽이고 메르시를 구출해줬다, 라는 가설도 세워볼 만했다.
그리고 그건 어찌 보면 희망적인 소식일 수도 있다.
인간 여성에게 성욕을 느끼는 몬스터는 오직 두 종족.
고블린과 오크.
당연히 고블린이 오크를 죽일 수 있을 리는 없을 거다.
최소한 몬스터들의 노리개가 되었을 경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리라.
“누구한테 죽은 건데?”
가장 중요한 질문.
“산신령이라고 하는데. 그거 말고는 잘 모르겠어, 최하급 정령 들이라 그렇게 기억력이 좋지 않아.”
산신령.
각각의 산을 지배하는 최상위 종족의 몬스터들을 일겉는 단어다.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인 산을 지배하는 만큼, 특급 몬스터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검성, 대현자의 경지와 비등한 수준인.
“… 일단 가자.”
아쉽게도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삼키고 퇴각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3시간 정도가 흘렀다.
산을 샅샅이 뒤지고 있음에도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조우하지 않고 있었을 때.
푸드덕.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이변이 일어났다.
“엔트…!”
땅에서 뿌리를 뽑아내고 움직이기 시작한 나무들을 본 아리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니, 앤트가 아니야.”
강현이 말하고,
“다들 준비해!”
요한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5급 몬스터 앤트.
평소, 평범한 나무의 모습으로 숨어있다가 다가오는 인간을 뿌리로 낚아채는 몬스터.
앤트는 자신의 뿌리를 인간에게 박아 대상의 마나와 생력을 흡수하는 위험한 몬스터였다.
하지만 앤트라고 볼 수 없었다.
평범한 앤트였다면, 몬스터 특유의 나무껍질로 인해 진작에 알아봤어야 정상이다.
또한 그 자리에서 뿌리만 움직이는 앤트와 달리 지금의 몬스터는 자신의 뿌리를 뽑아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앤트의 상위종.
3급 몬스터 우든이리라.
구조대는 각자의 무기를 든 채, 전부에 대비했다.
주변의 우든은 총 10마리가량.
구조대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뭐, 뭐지?”
한 명의 모험가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든은 구조대를 공격해오지 않고 자리를 움직일 뿐이었다.
양 쪽으로 나뉜 나무들은 마치 길을 터주는 듯했다.
심지어 10마리의 우든 뒤에는 더욱더 많은 우든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림 잡아도 100마리는 넘을 듯이.
“… 아무리 봐 따라오라는 거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강현이 요한에게 물었다.
구조대의 리더는 요한.
이 이상 현상에 대한 결정권은 요한이 지니고 있었다.
요한은 우든들이 터준 길을 보며 잠시간 고민했다.
“갈 사람은 가고,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
요한은 구조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지만 돌아가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럼 가자.”
∴
“으윽….”
머리가 지끈거리는 고통을 느끼며, 가라앉아있던 의식이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메르시는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래, 분명 마을 밖에서 오크를 만나고, 머리를 얻어맞았었지.
그 뒤로는 정신을 잃었던 듯, 기억이 끊겨있었다.
‘그럼….’
여긴 오크의 소굴일까.
온몸에 소름이 돋은 메르시는 곧장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응…? 여긴….”
그와 동시에 메르시는 자신이 오크의 소굴에 온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푹신한 침대와 따듯한 이불.
쓰고 떫은 냄새가 코로 스며듦과 동시에 무언가가 끓는 듯, 부글부글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가마솥이었다.
메르시는 자신이 작은 오두막 안에선 눈을 떴단 사실을 깨달았다..
창문 밖에서는 따듯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어디지?”
확실한 건, 오크가 이런 집에서 살 리가 없다는 거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 생활한 흔적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적혀있는 종이와 책들.
식기와 가구들까지.
확실한 것, 익숙한 장소가 아니란 사실이었다.
메르시는 경계를 유지한 채,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으윽….”
무거운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현기증이 닥쳐와 메르시는 몸을 비틀거렸다.
다급히 옆에 놓여있던 선반에 손을 짚어 중심을 잡았다.
“냐앙~.”
그리고 어디선가 고양이의 귀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메르시가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고양이가 창가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고양이와는 달랐다.
왼쪽 눈을 하늘색이며 오른쪽 눈은 황금색인 오드아이의 검정고양이.
그 고양이는 창가에서 뛰어내려 메르시에게 다가왔다.
“더 누워 있어야 된댜옹.”
“으, 응?”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고양이를 본 메르시가 눈을 크게 떴다.
동물이 말을 하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마나라는 것을 사용해 마법을 사용하니까.
메르시는 사역 술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길드의 업무를 보며 자연스럽게 얻은 얕은 지식일 뿐이지만.
‘사역마가 말을 하다니.’
그런 그녀는 알고 있다.
자신의 사역마가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게 만들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할뿐더러, 엄청난 실력이 필요하다.
길드의 사역술사의 말에 따르면, 제국 내에서 그 정도 경지에 이른 인물을 단 한 명도 없다고 했었다.
“그, 그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낀 메르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부터 물어봐야 할까.
“말했다냥, 누워 있어야된댜옹.”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오른 고양이가 자신의 앞발로 침대를 탁탁, 치며 말했다.
“으, 응…. 아니, 네.”
메르시는 일단 고양이가 시키는 대로 침대에 누웠다.
“잘했다냥.”
그런 메르시의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운 듯, 자신의 앞발로 메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어떻게 된 일인가요?”
“오크한테 납치당하고 있던 걸 구해줬다냥.”
역시 그렇구나.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잘 기억이 나질 않아서 그런데…, 혹시 무슨 짓을 당했을까요…?”
메르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젠가 요한에게 주겠다고 정하고 소중히 간직해온 자신의 처녀가 몬스터에게 빼앗겼을까 봐.
“걱정 말라냥.”
고양이는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대답했고, 그 대답에 메르시는 안심할 수 있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라냥.”
“그, 그럼. 그 사역술사님은 어디 계시나요?”
“재밌는 게 왔다면서 나가버렸댜옹. 하여튼 제맛대로인 주인이라 피곤하댜옹.”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양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고양이, 그것도 사역마인데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잠시 의문을 가진 메르시였지만 곧장 다음 질문을 물었다.
그리고 메르시는 자신이 산 속에 있는 오두막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양이의 주인이 말한 ‘재밌는 거’의 정체가 자신을 구출해주기 위해 온 요한과 길드의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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