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타오르는 열정, 사나이의 기백 (1)
* * *
요루가 오크라는 몬스터의 이름을 입에 담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오크에게 끌려간 인간 여성이 어떤 수모를 겪게 되는지는.
그 정도면 상관없다.
시간이 지난 만큼 상황을 낙관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구출이라도 할 수 있다.
오크는 그래 봤자 4급 중위권 몬스터.
상급 기사나 상급 마법사가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산이라는 단어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절망에 빠졌다.
창작물 속에선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주된 배경들이 존재한다.
흔히들 게이트, 던전, 에이리어 등등, 여러 가지의 명칭으로 불린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그것들 중에서 무엇인가.
그걸 이해하기 위해선 몬스터가 태어나는 과정을 알아야 한다.
몬스터들은 대기 중에 흐르는 마나들이 자연적으로 응축된 마석으로 인해 태어나게 된다.
마법을 수련하려면 숲으로, 마법을 익히려면 아카데미로라는 말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숲은 더욱 많은 마나들이 흐르고 있었기에 강현은 항상 숲에서 수련을 해왔다.
더욱 많은 몬스터들을 사냥하여 서클을 빠르게 늘릴 수 있었으니.
그렇다면 산은 숲과 비교했을 때는 어떠한가.
제국의 마법 학회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산은 숲보다 약 20배에서 50배 정도의 마나 농도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더욱 많고 강력한 몬스터들이 존재한다.
대륙 역사에서, 산을 정복하기 위해 원정을 나섰다가 멸망한 왕국의 숫자가 5개가 넘는다.
매년, 수확철이 될 때면 꼬박꼬박 모험가 길드로 의뢰가 날아오는 슈레이츠 백작가의 방어전도 산에서 내려온 수천마리의 몬스터를 상대로 진행된다.
즉, 아무리 뛰어난 실력자라 할 지라도, 산에 들어가서 살아 돌아올 확률은 희박하다.
물론 모든 산이 그런 건 아니다.
전생 전 강현이 레이를 보살펴줬던 오두막은 몬스터가 없는 산에 지어져 있었으니.
“놔.”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요루를 날카롭게 째려보며 요한이 말했다.
분노와 한기가 서린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모습과 대비되어,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긴장시키기 충분했다.
“미쳤어? 산속으로 들어갔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냉정함을 잃고 감정적으로 변했다.
“산이든, 바다든, 용암 속이든, 무조건 구하러 간다.”
요루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요한이 말했다.
“요, 요한 잠깐 진정해요.”
요한이 메르시의 마음을 모른다 해도, 그녀는 요한에게 있어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동료다.
그 마음을 모른 것이 나이었기에,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하던 중, 레이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갈 거면 같이 가요.”
레이에게 있어서도, 메르시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과거의 기억이 흐릿한 레이에게 있어선, 진정한 어머니였으며 강현과 이어지 수 있게 된 건 메르시의 덕택이 컸다.
여자로서의 능력은, 전부 메르시에게 배웠던 거다.
레이는 확고한 의지를 담은 채, 요한에게 말했다.
“…, 아니. 나 혼자서 갔다 올게.”
레이의 말에 잠시 망설인 요한이 말했다.
그녀는 요한 자신에게 있어서 딸 같은 존재인 만큼, 그런 위험한 곳에 데리고 갈 생각은 없었다.
“그럼 못 가요.”
“레이, 메르시가 오크한테 납치당했는데, 어떻게 못가!”
“그럼 왜 저는 못 가는 건데요.”
“저는 아직….”
감정싸움으로 이어졌다가는 시간이 낭비된다.
결국 누가 됐든 메르시를 구하러 간다는 결과는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라 확신한 강현은 곧장 인벤토리에서 통신 스크롤과 깃펜을 꺼내 푸스탄트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여행을 방해하는 건 미안했지만.
연락을 보낸 후,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강현은 점차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요한과 레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지금 싸울 때입니까? 제가 볼 때는 1분 1초라도 서둘러야 할 거 같은데.”
1년 동안 모험가 길드라는 한 지붕 밑에서 생활해온 만큼의 정이 쌓였던 강현이었지만 냉정함을 유지했다.
“요한 님, 마음은 이해하니까 조금만 진정해요. 혹시라도 길드장인 당신까지 잘못되면 어떡합니까. 당장 여기 있는 모험가들은 일도 못하고 굶주려야 할 텐데.”
강현의 말에 거칠었던 요한의 숨결이 점차 차분해지기 시작했고, 그제야 주변을 둘러본 요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나이는 벌써 48.
요한도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이다.
“레이, 너는 똑똑한 아이니까 알 거라고 생각해. 내가 왜 가려하고, 너를 왜 못 가게 하려는 지.”
“요한도 아시잖아요. 저도 반드시 가야 한다는 걸. 그리고 요한, 저는 요한보다 강해요.”
전생에서, 검성의 경지에 올랐던 요한을 상대로 승리했던 레이다.
회귀한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레이는 검술에 있어서 요한을 압도했다.
“… 그렇지. 무조건 갈 거야?”
씁쓸한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는 레이가 동행해야 되는 이유를 정확히 설명해주었다.
“네.”
“알겠어. 바로 출발하자.”
뒤도 안 돌아보고 출발하려던 요한의 어깨를 붙잡으며 요루가 말했다.
“형, 나도 간다.”
요루의 참여의사가 시작이었다.
“나도! 메르시한테 빌린 돈 아직 못 갚았다고.”
씀씀이가 헤프기로 유명한 양갈래 머리의 여인.
“길드장, 길드원들은 다 가족이라며. 나도 간다.”
“아…, 메르시한테 여자 소개받기로 했는데.”
어릴 적부터 이 마을에서 함께 자라와, 항상 함께 의뢰를 수행하던 두 남자.
“내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지. 이 길드 덕에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세이브리스 모험가 길드의 최고 연장자. 바르탄.
다른 모험가들은 각자만의 이유로.
또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무기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친 거야? 너네가 죽어도 책임 못 진다고.”
그들은 보며 당황한 요한이 말했고.
“길드장, 자기 목숨이 중히 여기는 놈이 모험가일을 시작하기나 했겠어?”
바르탄이 대답했다.
다른 모험가들도 그의 말에 동의하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
감동한 눈빛으로 요한은 모험가들을 둘러봤다.
그의 눈가에 약간의 물기가 서렸다.
“…, 알겠어. 그럼 가자. 메르시 구하러.”
메르시 구조대가 결성되었다.
“감동적인 순간에 초져서 진심으로 죄송한데, 백금 등급 이상의 모험가들만 동행하죠.”
그 감동적인 장면을 보며 망설이던 강현은 끝내 큰 결심을 머금고 자신의 생각을 입에 담았다.
눈치 없는 놈이라고 욕먹겠지.
그래도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
구리.
철.
동.
은.
금.
백금.
금강.
영웅.
길드의 모험가들은 총 8개의 등급으로 나뉘어 있다.
개개인의 무력과 실적으로 나뉘는 등급은 그 모험가의 실력과 노련함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척도가 되어줌으로써 높은 등급의 모험가일수록, 어느 길드를 가든 좋은 대우를 받게 된다.
그리고 강현은 이번 구출 작전에서, 금 등급 이하의 모험가들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판단을 내렸다.
이곳은 마나라는 신비한 힘이 존재하는 세계다.
현대에서는 총든 놈을 이길 수 없다는 법칙이 존재하지만, 이 세계는 총을 들어도 못 이길 가능성이 존재한다.
끈끈한 유대감과 동료애로 묶인 모험가들인 만큼, 다른 사람들의 발목을 잡게 될 확률이 컸다.
만약 한 마리의 오거가 나타난 가면, 금 등급 이하의 모험가들은 뒤에서 구경하는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들을 지키면서 오거와 전투를 해야겠지.
거기에 더해 산에는 오거보다 더욱 강한 몬스터들이 얼마든지 존재할 거다.
요한도 강현의 의견이 합당하다고 생각했기에, 백금 등급 이상의 모험가들로만 구조대를 편성했다.
의욕을 불태우던 모험가들은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메르시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건 낭만이 아닌, 합리였다.
“다들 준비됐지?”
그렇게 총 10명이 모였다.
요한과 요루.
강현, 레이, 엘리스(검), 아리아, 라비.
그 외 세이브 리스 지부의 백금 등급 모험가 3명.
그 셋 중, 바르 탄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
요한의 질문에 모험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입을 열어 답했다.
그들은 메르시의 흔적이 끊긴 산 앞에서 최종 점검의 시간을 가졌다.
“그럼 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부탁할게.”
강현이 앞으로 나섰고 마법을 사용했다.
“나와라, 일백의 토견(??)]”
[4 위계 흙 속성 마법: 토견(??)을 사용했습니다][× 100]
마법을 보는 것만으로도 습득할 수 있었던 강현은 제물 같은 건 사용하지 않았지만 흑견은 엄연한 흑마법이고 제국 법으로 금지된 마법이다.
흑마법을 만들고 익히기 위해선 그에 따른 제물이 필요하기에.
하지만 꽤나 마음에 들었던 마법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강현은 흑마법인 흑견을 토속성 마법으로 재구성했다.
물론 그림자를 넘어 다니는 능력을 사라졌지만, 흙에 숨어 다닐 수 있었고.
토견들은 곧장 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크들의 위치와 위험한 몬스터의 위치를 파악해줄 것이었다.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갔데, 그 후로는 모르겠고.”
장수종, 자연의 친구라 불리는 엘프.
그 엘프들은 청력과 시력이 뛰어남과 동시에 엄청난 마나 감응력을 지녔다.
그로 인해 엘프라는 종족은 정령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 능력을 활용한 라비는 산의 정령들에게 메르시의 행방을 물었다.
강현과 라비는 직접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진, 척후대로써의 역할을 책임지기로 했다.
“정확히 어느 방향?”
“정면으로 쭉. 가다가 큰 바위가 나오면 왼쪽으로 꺾으래.”
강현의 질문에 다시 눈을 감고 정령들과 대화를 나눈 라비가 다시 답했다.
“…, 좋아. 가자.”
요한이 말했고 구조대는 입산했다.
긴장감과 불안감 희망을 지닌 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