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아버지와 아들
* * *
푸스탄트가 여행을 떠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 어디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망설이지 않았던 그였으니까.
1년 365일 중, 350일은 수도 페론의 집이 아닌 세계 곳곳에서 보냈다.
31년이라는 세월 동안 강현은 푸스탄트와 함께 해왔고.
“이렇게 분위기 잡으면서 말하는 걸 봐선, 혼자서 가겠다는 거지?”
“그래.”
푸스탄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원래 얘기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지 않아?”
원래대로라면 20살이 되고 아카데미에 입학함으로써 푸스탄트에게서 독립하기로 정해뒀다.
하지만 지금 강현의 나이는 17살.
원래 계획보다 3년은 일렀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구나. 강현이 네가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게 아니겠느냐, 뭔가를 가르치고 싶어도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더구나.”
끌끌, 푸스탄트가 별거 아니란 듯이 웃으며 말했다.
강현은 푸스탄트에게 크게 3가지를 배웠다.
선(?)
마법.
검술.
‘언제였더라.’
선은 회귀한 직후 푸스탄트의 인정을 받고 졸업했다.
12살에는 푸스탄트에게 전수받을 수 있는 모든 마법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재작년, 겨울.
수호의 검의 모든 초식을 전수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스스로 갈고닦는 것뿐.
“그게 할아버지가 긴 여행을 떠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그냥 같이 가도 상관없잖아.”
푸스탄트가 한차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대로 아무 상관없지.”
“그럼 왜….”
“스승 된 사람으로서, 훌륭하게 자란 제자가 나의 밑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 세상에 자기 뜻을 펼치는 모습이 보고 싶구나.”
“아니, 그 얘기는 알겠는데, 갑자기 이렇게 앞당긴 이유랑 긴 여행이 무슨 말이냐니까.”
푸스탄트의 바람에 대해서는 이미 몇 번 들었기에 잘 알고 있었지만, 강현은 그걸 묻지 않았다.
“이제 내 나이도 어느덧 여든을 넘기지 않았더냐.”
“뭐, 그렇지.”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여생은 사랑하는 세계를 떠돌며 안식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란다.”
푸스탄 트는 반신의 경지에 오름으로써, 필멸자의 운명에서 벗어나 불멸자가 되었다.
검신, 엘리스처럼 그는 반신이 되었음에도, 반신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렇기에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노화되고 있었다.
“푸스탄트가 아닌, 그냥 한 노인으로서 말이지.”
기대되는구나, 푸스탄트가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강현은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마도 은퇴 선언 비슷한 무언가 이리라, 확신했다.
“뭐…, 이 정도 했으면 은퇴할 때도 됐지, 충분히 고생했으니까. 그런데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니야?”
푸스탄트의 말이 무엇이고, 무슨 생각인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던 강현이었지만, 쉽사리 받아들이진 못하고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이별을 그 누구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상반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너무 갑작스러웠다.
푸스탄트와 31년이나 생활해온 강현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신중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인물이었다.
이런 중요한 일은 충동적으로 결정한 사람이 아니다.
뿐더러, 강현은 그의 분위기가 왠지 미묘하게 평소와 다른 것만 같았다.
어디라고 콕 찍어 말할 순 없었다.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미소일까.
아니면 평소보다 가라앉은 어두운 눈빛 일 수도.
강형은 뭔가 있다고 확신했다.
이렇다 할 증거는 없지만, 일종의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하지만 푸스탄트가 거짓말을 할 사람인가.
그건 또 아니었다.
그 사이에서 뭐가 맞을지 잠시 고민해본 강현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뭐…, 할배가 그러겠다면 딱히 막을 이유는 없긴 한데…, 혹시 나한테 숨기는 건 뭐 없지?”
강현은 푸스탄트의 반응을 살폈다.
푸스탄트를 믿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이상한 반응을 보이면 숨기는 것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낼 심산이었다.
“강현아, 내가 거짓말하는 걸 본 적이 있느냐?”
“…, 그렇긴 하지.”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와 당당한 눈빛.
평소대로의 푸스탄트였다.
“뭐…, 알겠어. 이 말하려고 다른 애들이 없던 거였구나.”
“그래, 중요한 얘기인 만큼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했지.”
푸스탄트의 대답을 들은 강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테이블 위로 턱을 괜 강현은 허공을 바라봤다.
“그래서 언제부터 갈 건데?”
언젠가 이 순간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떠난다는 푸스탄트의 말을 들은 강연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곧바로 받아들이기엔 아쉬움이 컸다.
“최대한 빨리 떠날 생각이란다.”
“그러니까 그게 언젠데.”
“으음….”
푸스탄 트는 고민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일 당장이라도 여행길에 오르고 싶었다.
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덩치를 부풀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하지만 푸스탄트도 강현을 사랑한다.
피가 이어지진 않았으나 하나뿐인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자랑스러운 제자다.
푸스탄트도 이별은 아쉬웠으며, 조금 더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스승과 떨어지기 싫은 게냐?”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강현을 바라본 푸스탄트가 물었다.
약간의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였다.
“당연하지, 할배랑 같이 해온 세월이 얼만데.”
그에 반해 강현은 진지하게 답했다.
“끌끌, 그래…, 언제 떠날 것이냐고 물었지. 내일 바로 떠날 거다.”
강현의 대답을 들은 푸스탄트는 오히려 결단을 내렸다.
“이별이 아쉽지만 영원한 이별이 아니지 않더냐, 언제든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고 기회가 될 때는 만날 수 있을 게다. 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뿐이지.”
“돈은 있고?”
“그래, 황실에서 지금까지의 업적을 헤아려 포상금을 내려주었다. 여행자금으로는 넘치는 액수였지.”
푸스탄 트는 그만큼 받을 자격이 있었다.
“늙은이 혼자서 뭘 하겠다고, 여행 중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할아버지, 지금은 전생이랑 달라져서 레이한테 암살당할 일은 없겠지만 여전히 위험한 건 사실이잖아, 농담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야.”
푸스탄트를 노리는 세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도 푸스탄트에 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무력을 지녔을 것이 분명했고.
남은 여생 동안 세상을 둘러보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건 괜찮다.
푸스탄트는 예전부터 강현이 독립하게 된다면 그럴 예정이라고 말해왔으니.
하지만 강현은 걱정을 숨길 수 없었다.
전생처럼 자신이 없는 사이에 푸스탄트가 죽어버릴까 봐.
“강현아 걱정하지 말거라, 전생에서 내가 죽은 건 며늘아가에게 걸려있던 속박이 문제지 않았더냐.”
푸스탄트가 죽은 이유에 관해서 강현은 그와 함께 여러 가지 가설을 만들었다.
그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게 푸스탄트와 연관된 속박을 풀어주기 위해 레이에게 죽어준 것.
푸스탄트기에 가능했던 가설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게다, 말하지 않았더냐.”
강현은 반박할 수 없었다.
사실 아직 한참이나 모자란 자신이 푸스탄트를 지킨다는 건 어폐가 있다.
강현은 이제야 그의 발 끝에 미치는 수준이었기에.
“그럼 뭐…, 내일 출발한다고 했지.”
“그래.”
하아, 강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뭘 그렇게까지 서두른다냐, 조금 더 나중에 가도 되지 않아?”
“세상은 넓지 않으냐, 그리고 빨리 출발할수록 빨리 돌아올 게다.”
∴
다음날 이른 새벽.
완전히 해가 뜨지 않는 세계는 군청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어두컴컴했던 하늘에서 빛나고 있던 별들은 점점 빛을 잃어가기 시작하며 태양의 도래를 알렸다.
수도 페론의 사람들의 시간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2시간을 빨랐다.
그들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장간에서는 망치를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과점에서는 고소하고 달곰한 냄새가 풍겨옴과 동시에 굴뚝 사이로는 연기가 뭉개 뭉개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장은 아직 손님들을 맞이한 것이 아님에도 시끌벅적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수도 페론의 아침은 활력으로 넘쳐났다.
그 평화로운 모습을 보며 아침 산책을 나설 때며 그 활력을 나눠 받아 기운찬 하루를 배 낼 수 있었고.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다 챙겼어?”
“그래.”
푸스탄트는 허리춤에 매달아준 가죽 주머니를 살짝 들어 올리며 답했다.
그의 시공간 마법이 부여된 가죽 주머니는 인벤토리와 상당히 유사했다.
“조금만 더 있다 가지.”
강현은 작게 중얼거렸다.
끝내 아쉬움을 견뎌내지 못했기에 나온 일종의 투정이었다.
“나는 이미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해냈다. 더 이상 너와 함께 있어봤자 너의 방해만 될 뿐이겠지.”
푸스탄 트는 확신 했다.
강현은 분명 크게 될 인물이다.
자신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하지만 자신의 그늘에 가려진 그는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몸을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항상 함께란다, 멀리서라도 너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을 테니, 너의 뜻을 마음껏 펼쳐보려무나, 그 누구보다 강해져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했으니.”
“할배가 있다고 못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그냥 빨리 가고 싶어서 그런 거지?”
“흐흐, 부정할 순 없구나.”
“됐으니까 잘 다녀와, 가끔씩 동선이 겹칠 때마다 만나면 되는 건데 뭐.”
강현은 스스로를 다독이고자 말했다.
“그래, 잘 지내고 있으려무나.”
푸스탄 트는 강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고맙구나,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해주고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해줘서, 너는 영원히 나의 자랑이란다. 사랑한다, 내 아들아.”
“…, 나도 여러모로 고마웠어. 할배…, 아버지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니까.”
낯뜨거웠지만 강현은 아버지란 단어를 입에 담았다.
그 말을 들은 푸스탄트는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강현의 머리를 잠시간 쓰다듬어줬다.
“그래.”
푸스탄트의 대답과 동시에 출발 준비가 끝났다는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가. 출발해야지.”
“그래, 잘 지내고 있으려무나.”
∴
강현에게 이별을 고한 후의 마차 안.
‘미안하구나.’
푸스탄트는 강현에게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강현은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좋다.
고작 그런 설명으로 강현을 납득 시키는 건 원래였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이 여행은 위험하다.
언제 어디서 무슨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데 강현을 데리고 갈 순 없었다.
그렇기에 푸스탄트는 강현을 속여야만 했다.
[능력: 설득(A)의 지속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특수 능력: 마법 엄폐(SS)의 지속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푸스탄트의 시야 정중앙에 하늘색 알림 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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