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모두가 잠든 밤 (1)
* * *
황제가 손짓함과 동시에 그의 옆에 서있던 시종이 내게 다가왔다.
“저한테 주시면 됩니다.”
“예.”
시종에게 생력 포션을 넘겨주고 물건을 받은 시종은 황제에게 다가가 전달해주었다.
어쨌든 뿌리는 현대인인 강현에게 있어서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예법이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
“생력을 치료하는 포션이라니, 네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겠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믿지 못하겠느니라.”
생력 포션을 유심히 살펴본 황제가 말했다.
어차피 바로 믿을 거라곤 생각도 안 했다.
양해를 구하는 말투와 헛소리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폐하께서 믿어주시지 못한다 해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어찌 황제폐하를 감히 능멸하겠습니까.”
황제는 분명 믿고 있을 거다, 강현은 확신했다.
푸스탄트의 제자라는 신분과 여태껏 쌓아온 명성이 있었니까.
그런 자신이 황제를 속일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황제라는 자리는 항상 신중해야 하는 법이다.
알현실에는 수많은 기사들과 시종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들의 눈을 신경 쓰고 있는 거겠지.
강현의 입장에선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한 이상, 위업을 전할 입은 많을수록 좋다.
의약 성인으로써의 명성은 더욱 높아질 테니까.
“그렇다면 이 포션이 생력 포션인지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 네 말대로 이게 생력을 치유하는 포션이라면 황실의 약제사들이 연구할 수도 없을 테지.”
“제 스승님께 여줘보심이 어떠십니까, 생력 포션을 개발하는 과정을 스승님께서 직접 지켜보셨습니다.”
황제는 기사와 시종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다.
완벽한 황제로써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그들 또한 납득할만한 증명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푸스탄트라면.
충분했다.
“흠, 여봐라, 통신 스크롤을 가져오너라.”
“예.”
시종이 알현실 밖으로 나갔다.
5분 정도 흘렀을까.
황제는 시종이 가져온 통신 스크롤의 직접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 스크롤에서 약간의 마나가 느껴져 왔다.
“푸스탄 트는 진실이라고 말하는 군.”
시종들과 기사들이 작게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그 작은 소리들이 모인 알현실의 고유함이 사라졌다.
“정숙하시오.”
옆에서 상황을 재밌게 지켜보고 있던 록스가 말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알현실이 침묵이 깔렸다.
“좋다, 의약 성인, 이강현.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보거라.”
“황실의 브로치, 그거 하나면 됩니다.”
여러 득실과 상황을 따져보고 상정해봤다.
작위와 평민.
강현은 결국 평민으로 살아가기로 정했다.
∴
황실의 브로치를 수여받았다.
겸사겸사 록스에게서부터도 브로치를 받았고.
황실에서는 강현을 위한 연회를 베풀어주겠다 하였지만, 강현은 거절하고 나왔다.
포션 제조와 마법, 검술 수련을 위해 투자할 시간도 녹록지 않았다.
또한 여러 사람들이 모일만큼 귀찮은 일이 생기겠지.
하루가 멀다 하고 귀족들이 강현을 자신의 가문의 약제사로 포섭하기 위해서 접근한다.
강현은 귀찮은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힘없는 표정으로 나른하게 소파에 앉은 엘리스가 보였다.
시간은 늦은 밤,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다녀왔어.”
엘리스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안 데려왔네?”
강현의 주변을 살핀 뒤, 냄새를 맡은 엘리스가 말했다.
“뭘 안 데려와?”
“여자요.”
“아니…, 그게 무슨.”
대출 4일 만에 돌아왔다.
반겨줄 거라 생각했는데, 들려오는 엘리스의 이상한 말에 어이가 없어진 강현이 엘리스를 바라봤다.
“농담이에요. 저는 또 황녀라도 꼬셔올 줄 알았죠.”
엘리스가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섬뜩한 소리를 했다.
“아니, 황녀님을 왜 꼬셔, 그리고 내가 언제 누굴 꼬셨다고 그래.”
강현은 게임을 플레이하며 황녀를 공략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플레이어 능력 덕에 전부 기억하고 있다.
황녀의 취향과 성격, 습관과 능력,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와 성감대까지 전부 다.
만약 게임이라면 얼마든지 다시 공략할 수 있다.
이미 한번 공략했던 히로인이니까.
하지만 여기는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감당하기 버거운 상대라고 할까.
그리고 강현은 억울했다.
비록 자신이 우유부단하게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각하고 있다.
그에겐 레이가 있었지만 현대의 가치관으로는 레이만 선택할지.
하지만 아멜리아와 엘리스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다처제라는 제도의 편승할지.
자신을 좋아해주는 여인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는 쓰레기라고 한다면 당연히 받아들일 거다.
하지만, 강현은 그 누구도 자신이 직접 꼬신 적이 없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지.
“흐음, 그래요?”
미심쩍닷는 듯이 강현을 지그시 바라보던 엘리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강현의 가슴을 손을 얹었다.
“농담이에요, 보고 싶었어요.”
엘리스의 손이 강현의 몸을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부드럽게.
가슴과 배를 훑으며 천천히 내려가는 손놀림은 자극적이었다.
“드, 들어갈까?”
그리고 엘리스의 손이 하복부를 거쳐 더 아래로 내려가려 하는 순간, 그녀의 손을 붙잡은 강현이 말했다.
“칫.”
그리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착각이겠지?
“그래요, 한동안 나갔다 오셔서 피곤하실 테니까.”
∴
언제부턴가 유대감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확인한 건 2년 전이었다.
쏴아아. 따듯한 물로 몸을 씻으며 강현은 생각해봤다.
엘리스에게 각방을 권해보는 건 어떨까.
솔직히 더 이상 참는 것도 한계다.
몸을 씻은 강현은 속옷과 바지를 입은 뒤,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갔다.
“오셨어요?”
침대 위에 앉은 엘리스의 모습에 강현은 잠시 넋을 잃었다.
창문 사이로 흘러들어온 달빛을 머금은 엘리스의 찰랑거리는 흑발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엘리스는 마치 밤의 여신이 내려온 것만 같았다.
화려한 무늬가 인상적인 레이스 브라는 엘리스에게 조금 작은 사이즈인 듯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브라에 전부 담기지 못해 살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색 레이스 팬티는 중요부위만 가린 채, 무늬가 그려진 망사로 되어있어 더 야릇했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오늘은 가터벨트를 입은 상태였다.
허리와 골반 사이에 착용한 카터벨트의 끈은 검은색 레이스 스타킹과 연결되어 있었다.
스타킹이 엘리스의 얇고 늘씬한 각선미를 더더욱 부각하고 있었다.
침대 맡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무릎 위로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괸 자세 때문에 안 그래도 풍만한 가슴이 모여 깊은 가슴골이 보이고 있었다.
“으, 응.”
강현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평소였다면 강현의 귀여운 반응에 웃기라도 했겠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오히려 서운했다.
자신의 몸을 본 강현은 분명 성적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를 안은 채로 잠에 들 때면 항상 딱딱한 무언가가 아랫배를 찌른다.
그런데 왜 한 번도 손을 데지 않는다는 말인가.
레이랑 했던 약속 때문일까?
아니면 여자로서 매력이 없거나, 내 본체가 검이기 때문일까.
4일 동안 고민한 엘리스는 결정했다
그가 아직 순수할 때, 선수를 쳐야 한다.
다른 여자들보다 빨리 정면돌파하기로.
“이리 와요, 빨리 주무셔야죠.”
엘리스는 양팔을 강현을 향해 뻗으며 말했다.
현재, 강현은 원래 잠버릇으로 품 안에 안겨들었지만, 이젠 안긴 채로 잠든다.
그리고 굿나잇 키스와 굿모닝 키스까지 당연하다는 듯이 주고받고.
지난 3년간의 성과였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응.”
오늘 뭔가 작정했다는 것이 느껴져서일까.
강현은 차마 각방을 쓰잔 말을 할 수 없었다.
강현은 엘리스의 품 안에 곧장 안겨들기엔 너무 부끄러워, 살짝 돌아 침대에 누웠다.
“주인님.”
“응? 듣고 있어.”
“어때요? 주인님이 흥분해주셨으면 해서 조금 야한 속옷으로 골라봤거든요.”
엘리스의 목소리가 끈적하게 귓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누워있을 때가 아님을 직감한 강현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세워 엘리스를 바라봤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아시잖아요.”
엘리스가 침대 맡에서 올라와 강현을 바라본 채 앉은 엘리스가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엘리스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 그렇지.”
“주인님, 제가 별론 가요? 여자로서 그렇게 매력이 없어요?”
서글픈 표정을 지은 채 엘리스가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한쪽 손을 꽉 진 그녀는 어딘가 간절해 보였다.
“아니, 당연히 아니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던 탓에 외로움이라도 느꼈던 걸까.
강현은 최대한 침착을 유지한 채 엘리스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왜 저한테 손을 대지 않는 거예요?”
왜인가.
강현은 그 이유에 관해 확실하게 정해두고 있었다.
레이와의 약속을 떠나서, 아직 엘리스의 마음에 답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곧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그건….”
뚝.
하지만 무언가가 풀리는 소리와 동시에, 뱉으려던 말이 쏙 들어갔다.
순식간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엘리스가 입고 있던 브래지어가 풀려 뚝, 하고 떨어졌다.
그녀의 생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엘리스의 작은 얼굴보다 큰 가슴은 봉긋하고 탄력적인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 중앙에는 분홍색의 유두가 시선을 끌고 있었다.
“어, 어때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 엘리스가 시선을 피한 채 말했다.
가슴을 가리고 싶은 건지, 가릴 생각이 없는 건지.
그녀의 양 팔이 가슴 근처에 애매하게 놓인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 예, 예쁘네…, 크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은 대답이 있지 않았을까, 강현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후회했다.
“주인님 거예요. 주인님이 하고 싶은 데로 해도 괜찮은데, 왜 매일 모른 척해요?”
상상 이상으로 부끄러웠다.
소중한 부위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부 보이고 있다는 것은.
밝히는 여자로 보이면 어떡할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사실이긴 하지만.’
상관없다.
색을 밝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주인인 강현만 밝히는 것이니까.
엘리스는 확실하게 할 말을 내뱉었다.
“가끔 씩 몰래 화장실 갔다 오시는 거, 모를 거 같아요?”
“그, 그건.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던 걸까.
강현은 가끔씩 참기 힘들어질 때마다 화장실에 가서 혼자 조용히 해결하고 왔었다.
“당연하죠. 저보다 손이 더 좋으신 건 아니죠…?”
자존심 상했지만, 솔직히 진지하게 걱정됐다.
엘리스도 결국 남자 경험이 없는 처녀였기에.
“당연히 아니지.”
대답하는 강현의 바지 가운데에,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와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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