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소중한 사람 (5), 새로운 동료 (1)
* * *
아멜리아가 강현을 만남으로써 깨달았다.
자신이 지독하게 외로워하고 있었단 사실을.
어머니를 여의었다.
듣기로는 아멜리아를 낳으시던 중,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아버지인 브라함은 너무나도 바쁜 사람이었다.
북부의 실질적인 지배자로서, 공작령뿐 만이 아닌, 북부에 위치한 귀족령들의 일을 전반적으로 신경 쓰셨다.
그런 아멜리아에게 있어서, 오빠의 존재는 유일하게 아멜리아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존재였다.
그저 순수하게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음에도 가식 없이 대해준 소중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아멜이라 아 5살이 되던 해, 역사에 길이 남은 검사가 되겠다며 가문을 뛰쳐나갔다.
그때부터였다.
자신이 잘난 줄 알고 건방지기만 했던 아멜리아는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야만 했다.
항상 그녀에게 다가오던 사람들의 눈에는 탐욕이 깃들어 있었다.
공 작가의 명예는 다른 귀족들이 아멜리아에게 굽신거리도록 만들었다.
공 작가의 돈은 상단과 상인들을 현혹시켰으며 입이 닳도록 아부를 떨게 만들었다.
공작가의 무력은 도적들과 무뢰한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 무엇도 아멜리아가 일궈낸 것이 아니었으며 아주 약간의 보탬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 전부 다 공작가의 위상이었다.
자신은 그저 호랑이의 위상을 등에 짊어진 여우, 호가호위(??虎?)였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5살에 깨달은 아멜리아는 독해 지기로 했다.
지독하고 괴로운 외로움을 잊기 위해.
가문의 위용을 빌린 것이 아닌, 아멜리아라는 한 여인으로써 대접과 사랑을 받고 싶었기에.
날이 지날수록 아멜리아의 집착은 더욱 강해졌다.
더 이기적으로, 더 냉혈한이 되어갔다.
오랜 노력 끝에 아멜리아는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
자신의 오빠만 찾던 브라함은 공작위 계승자 후보로서 아멜리아를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기뻐했다.
이제 자신이 ‘공녀님’ 아닌, ‘아멜리아’라고 불릴 날이 다가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가문의 위용은 너무나도 높은 산이었으며 하늘이었다.
아무리 전력으로 제자리 뛰기를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하늘에 닿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을 뿐, 자신의 대한 대접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뒤에서 잘근잘근 씹히고 있었다.
어느 날, 히엘이 알려주었다.
공작가의 시종들이 아멜리아를 욕하고 있다고.
아멜리아는 왜인지 물었고 히엘은 알려주었다.
부모, 가문을 잘 만나 태어난 년이 힘든 척, 노력하는 척, 최선을 다하는 척, 고상한 척하는 게 꼴 보기 싫었다고.
그날 아멜리아의 세계가 무너졌다.
인정받고자, 지금껏 해왔던 노력이 그저 ‘척’이라는 표현으로 전락돼, 욕이 되었으니.
또한 아멜리아는 여전히 ‘공녀’였다.
아멜리아가 아니었다.
공 작가의 차녀로 태어나 가문의 영광을 더욱 빛낸다는 책임감은 한때 아멜리아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연약한 몸을 짓누르는 거대하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전락했다.
깨달았다.
‘공녀’가 아닌, ‘아멜리아’를 바라봐주는 사람은 앞으로도 영영 없을 거라고.
그 사실을 깨달은 아멜리아는 더욱더 독해졌다.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했지만,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몰랐으니.
그러던 어느 날, 브라함이 말했다.
약제학 명장을 찾아오라고.
아멜리아는 아버지가 아닌, 가주의 명을 받들고 약제학 명장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1년이라는 시간 끝에 약제학 명장을 찾았다.
그리고 처음 강현을 만났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소문대로 엄청난 미남이었다.
신이 조각한 예술품이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하지만 그의 외모보다 아멜리아의 뇌리에 더욱 깊숙이 박힌 것이 하나 있었다.
아멜리아는 타인의 눈빛을 읽는 능력을 길러왔다.
그 능력 하나만큼은, 자신이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생각할 만큼 자신이 있었다.
첫 만남 때, 자신을 바라보던 강현의 눈빛이 어떠했는가.
귀찮음이 느껴졌다.
피곤함, 불편함이었다.
무례하기 그지없었다.
북부의 실질적 지배자인 루이스플 공작가의 공녀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있을 수 없는 일’ 이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이었다.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공녀인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탐욕과 욕망, 두려움과 부러움이 느껴져 왔는데, 강현은 아니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강현은 자신을 루이스플 ‘공작가의 차녀’, ‘공녀’가 아닌 ‘아멜리아’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작 눈빛 하나였지만, 너무나도 기뻤다.
그의 외모에 대해 지적할 사람은 전 세계를 뒤져봐도 몇 없겠지만, 외모뿐만이 아닌, 그 눈빛 때문에 그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게 아닐까.
아멜리아는 생각했다.
그를 따라다녔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그의 눈빛은 특별했다.
편안했으며, 따듯했다.
그와 눈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공녀가 아닌 아멜리아로써 대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좋았다.
잠에 들 때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부드러운 시선에 잠을 설쳤다.
그리고 그에게 고백조차 해보지 못하고 거절당했다.
너무나도 괴로웠다.
가문의 시종들이 자신을 욕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을 때보다 훨씬 더.
가족을 제외하고 자신을 오로지 아멜리아로 바라봐주는 눈빛을 보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도 한스러웠다.
강현처럼, 오로지 자신을, 순수하게 바라봐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더 존재할까, 너무나도 두려웠다.
공작가로 돌아가 일에 매진했다.
슬프고 괴로운 마음을 잊기 위해.
그리고 그의 눈빛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일을 하던 중에는 잊어버릴 수 없었다.
정신없는 시간을 보낼 때면, 머릿속에서 그의 환영이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매일 밤마다 꿈속에 나타난 그가 자신을 괴롭혔다.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은 오로지 행복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모순적이게도 악몽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던가.
그가 꿈에서 나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워 억지로 잠을 견뎌냈다.
그의 꿈을 꾼 날의 아침이면, 눈물에 젖은 백제가 얼마나 원망스럽던가.
강현과 헤어지고 1년이 지났다.
그와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강현을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었지만, 그는 아름 다고 성숙한 여인을 옆에 두고 있었다.
패배감과 무력함, 상실감과 외로움이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래서 아멜리아는 레이가 고마웠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강현에 대한 마음을 깔끔하게 포기해버렸을 테니까.
다시금 기회를 얻지 못했을 거고, 수많은 밤을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보냈을 테니까.
‘지금 첫 번째가 아니더라도 좋아요.’
어딘 가든, 무슨 자리든.
아멜리아는 주인공이 되어 첫 번째로 대접을 받아왔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이런 ‘다름’ 너무나도 좋았다.
지금 당장은 첫 번째가 되지 못할 거다.
강현에겐 오랫동안 사귀어온 레이가 있으며,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인 엘리스가 있다.
아직 자신이 그들에게 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세 번째라도 좋다.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기회라도 있는 게 좋지 않은가.
그렇기에 첫 번째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레이와 엘리스를 진정시키는 걸 도왔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생각은 전혀 없다.
강현이 너무나도 좋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좋다.
그의 눈빛이 좋다.
부드러운 입술이 좋으며 굳은살 박힌 커다란 손이 좋다.
사냥한 목소리로 항상 자신을 배려해주면 절제된 작은 몸짓들이 너무나도 좋다.
강현을 갖고 싶다.
자신을 ‘공녀’가 아닌 ‘아멜리아’로 바라봐주는 강현이.
그만큼 강현을 독점하고 싶다.
만약 그를 독점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의 첫 번째가 되고 싶었다.
“기대하세요.”
공녀…. 아니, 아멜리아의 집착은 이제부터 시작이자.
투지를 불태웠다.
강현을 갖기 위해서 누구의 앞에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투지를
“….”
미소가 떠나지 않은 아멜리아를 보며 히엘은 심경이 복잡했다.
그녀와 푸스탄트의 제자가 사이좋게 데이트를 즐기며 입 맞추는 모습을 목격했기에.
‘역시 보고 해야겠지...?’
그래도 돈 받고 하는 일인 만큼, 할 일을 다 해야겠지.
∴
레이와 아멜리아를 떠나보낸 뒤, 곧장 페론으로 돌아왔다.
“조심해서 다녀와. 성녀님이랑 라비는 내가 잘 안내해줄 테니까.”
푸스탄트는 용무가 있어 페론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황성으로 향해야 했다.
마차에서 내린 뒤, 푸스탄트를 배웅해주며 강현이 말했다.
“그래, 나중에 집에서 보자꾸나.”
“응, 다녀와.”
푸스탄트가 떠나갔고 강현과 검 상태인 엘리스, 아리아와 라비만이 남아있었다.
“일단 길부터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강현은 곧장 아리아와 라비를 데리고 수도를 돌아다니며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자주 찾는 음식점과 잡화점, 대장간과 시장 등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 뒤, 강현과 푸스탄트의 집이 어딘지 알려주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편안하고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당장 침대에 뛰어들어 오랜 여행으로 인해 지친 몸이 휴식을 취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할 일이 남아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실로 향했다.
“오면서 말했다시피, 이곳이 성녀님과 라비 님이 사용하실 방입니다.”
먼지 쌓인 지하실의 공기는 텁텁하기 그지없었다.
[2 위계 무 속성 마법: 클린을 사용했습니다.]
마법을 사용하자 먼지가 쌓여있던 지하실이 순식간에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1년 전, 엘리스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한차례 정리를 해둔 탓에 간단한 청소만 하면 그만이었다.
또한 청소 정도는 마법 한 번으로 해결이었다.
‘클린, 진짜 개사기네.’
자신이 지금까지 익혔던 마법들 중 가장 많이, 가장 효율적으로 써먹은 스킬이 클린이었다.
세계를 방랑하며 오랜 시간 동안 집을 비워둬도 클린 마법 한방이면 다시 깨끗한 상태가 되었으니.
“침대나 옷장 같은 가구가 필요하시다면 아까 안내해드렸던 가구점에서 구매해오시면 됩니다.”
“정말 멋진 방이네요, 감사합니다.”
싱긋, 웃으며 아리아가 인사했다.
아리아는 아직 어린 소녀이긴 했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이었다.
강현도 남자였기에 아름다운 미소를 보며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헤벌쭉 해져서는.”
뭔가 불만이 담긴 라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아리아한테 사심은 전혀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이 정도면 대충 안내는 끝난 것 같은데, 혹시 더 궁금하신 점 있으신가요?”
“아뇨, 충분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아리아, 라비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