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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61화 (61/148)

〈 61화 〉 성녀의 축복 (4)

* * *

메인 퀘스트의 해금률이 올랐다.

서브 퀘스트 완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퀘스트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레이의 치료가 먼저였다.

“그럼 손 좀 내밀어 주시겠습니까?”

강현은 아리아에게 자신의 손을 건네며 물었다.

강현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본 아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은 왜….”

“텔레포트로 이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잠시 의아해했던 아리아였지만 설명과 동시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망설이던 아리아가 강현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어째서인지 아리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고 라비는 그런 모습을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흑심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라비 님도 부탁드립니다.”

“그래.”

반대 손은 라비와 맞잡았다.

양손 모두 미녀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에 살짝 심장이 두근거렸다.

강현은 목에 걸고 있던 펜던트에 약간의 마나를 흘려 넣었다.

푸스탄트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강현의 발 밑에 마법진이 생겼다.

그 마법진에서부터 순백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주변의 환경이 바뀌어있었다.

무성한 나무가 우거진 숲이 아닌 평범한 방 내부.

침대 위에는 레이가 누워있었고 푸스탄트는 그 옆에 앉아있었다.

“다녀왔느냐.”

“응.”

“저는 푸스탄트라 합니다. 이곳에 와주신 거면 분명 도움을 주시기 위해 와 주신 거겠죠, 감사드립니다.”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인 푸스탄트가 감사인사를 전했다.

“저는….”

아리아가 잠시 강현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엔 푸스탄트 또한 자신이 성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냐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헤르피아님의 선택을 받고 성녀가 된 아리아라고 합니다.”

간단한 인사가 오가던 중, 라비의 시선이 느껴졌다.

불만이 가득 찬 그녀의 눈빛.

그녀의 입장에선 아리아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좋을 게 없을 거다.

설령 그게 그 푸스탄트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닌 듯했고.

강현은 슬쩍 라비의 시선을 피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강현아,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으마.”

“응, 들어가 봐.”

푸스탄트가 떠나갔다.

“이분이신가요?”

“네.”

아리아가 레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레이의 모습은 성녀의 표정을 어둡게 물들이기 충분했다.

“영혼에 새겨져 있던 속박이 산산조각 난 모양입니다. 그 조각들이 영혼의 상처를 입혔죠.”

“그렇군요….”

강현의 설명을 들은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해도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레이가 누운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은 아리아는 자신의 두 손을 맞잡은 채, 얼굴 앞으로 모았다.

두 눈을 감고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얀 피부.

끝부분에 약간의 웨이브가 들어간 긴 금발.

특유의 나긋나긋함과 아름다운 외모의 여인이 기도를 하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명화와 같아 강현은 잠시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는 것은 아리아에게서부터 요사로운 기운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마나와 형태는 비슷하지만 느껴지는 성질이 달랐다.

마나가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면 아리아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신성한 느낌이었다.

‘이게 성녀의 신성력.’

여태껏, 신성력을 여러 번 접해왔다.

하지만 이만큼 신비롭고 신성한 신성력이 또 있었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없었다.

아리아의 몸 전체에서 금빛 기운이 일렁였다.

마치 황금의 옷을 입은 듯, 그녀를 감싼 금빛 기운이.

“신기하지?”

라비가 물어왔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흡족한 표정을 짓은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네. 역시 성녀는 다른 모양이네요.”

“성녀라서가 아니야. 아리아라서지.”

신뢰가 담긴 라비의 말의 그녀가 왜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이만큼 대단한 사람이고 그 대단함에 놀라고 있는 사람을 보면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저게 아리아 본인의 힘이든, 성녀의 힘이든 딱히 상관없었다.

그저 레이의 영혼만 치료해줄 수 있다면 뭐든지 간에.

숨을 죽인 채, 아리아의 움직임을 살폈다.

금빛 기운을 두른 그녀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이의 가슴 중앙으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영혼을 살피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고, 어두워지는 아리아의 표정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다시금 알려주었다.

“어떤 거 같습니까? 가능할까요?”

레이의 가슴에서 아리아의 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현이 물었다.

시스템은 성녀의 축복이 레이의 영혼을 고칠 수 있으리라고 장담했다.

시스템을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긴 해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불안감을 완전히 없애기란 불가능했다.

“네, 가능할 거 같아요.”

담담한 아리아의 반응에 강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십 년 감수했다는 표현이 있다.

아마 나는 백 년 정도 감수하지 않았을까.

강현이 생각했다.

한숨을 내쉬는 강현을 보며 아리아가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름다운 그녀가 보내는 따듯한 시선에 왠지 얼굴이 화끈거려 절로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해버렸다.

“소중한 사람이신가 봐요.”

“당연하죠.”

한때는 찢어 죽이고 싶었던 원수였다.

하지만 이제는 소중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된 레이였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고 강현이 답했다.

“혹시 제가 도울 건 없을까요? 이래 봬도 의학과 약제학에 나름대로 식견이 있습니다.”

대가를 원한다면 가능한 선에선 무엇이든 내어줄 수 있다.

하지만 대가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순수한 호의를 베풀어주는 것이 고마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네, 잠시 나가주셔야 해요.”

“…네?”

하지만 도움이 형태가 예상과는 크게 달랐다.

잠시 당황한 탓에 강현은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치유를 하기 위해선 환자의 옷을 벗길 필요가 있거든요.”

“아. 그렇군요.”

의외로 당연한 이유에 강현은 쉽게 납득했다.

“그럼 혹시 얼마나 걸립니까?”

“음… 저도 영혼을 치유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지라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해가 지기 전에는 끝낼 수 있을 거 같네요.”

이번이 처음이라.

그 말을 들은 강현의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불안함이었다.

“무, 무조건 성공할 거예요!”

자신의 말이 괜한 불안감을 줬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리아는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급히 말했다.

그리고 ‘으으음...’ 작은 침음을 내뱉으며 잠시 동안 고민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축복이라는 게 저는 축복을 내릴 상대만 고르는 거거든요, 축복을 내린 후에는 헤리프아님께서 직접 해주시는 거라고 해야 하려나...”

고민 끝에 그나마 괜찮은 비유를 떠올리고 말했으나 완벽한 설명은 아니었기에, 말하는 데에 망설임이 있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들었다.

술식 전개에서부터 증폭, 성징 변환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직접 실행하는 마법과 달리, 신성력은 자신이 섬기는 신의 힘을 빌리는 거다.

아마 축복도 비슷한 뉘앙스겠지.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맡겨만 주세요. 라비.”

“응?”

“라비도 잠시 비켜주실 수 있을까요?”

“나도? 왜?”

아리아의 말에 당황한 라비가 되물었다.

“혼자 있는 편이 집중하는 데 더 좋을 거 같거든요.”

“아…. 알겠어. 대신 혹시라도 무슨 상황 생기면 바로 불러라?”

“네, 당연하죠.”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아리아의 미소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더니 등을 휙, 돌렸다.

“안 나와?”

“나가야죠.”

“좋은 소식 기다려주세요.”

성녀, 아리아의 미소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녹여주는 따스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방에 혼자 남은 아리아는 레이의 카르마를 확인해보았다.

레이라는 여인을 대하는 강현의 태도를 보고 생긴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어…?”

그리고 레이의 카르마를 확인한 아리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다시금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레이]

[핏빛 칼날, 검귀, 대륙 제일 검, 세이브리스의 영웅]

[선(?) 카르마: 581]

[악(?) 카르마: 4602]

아리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보였다.

많아봤자 2개가 최대였던 칭호가 4개인 것.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레이라는 여인의 명성을 듣진 못했지만 칭호는 여러 개가 존재할 수 있었으니.

하지만 진짜 문제는 카르마였다.

카르마란 본디 사람이 살아오면서 쌓아온 업보였다.

선을 행하여 선 카르마를 얻더라도 악행을 저지르면 선 카르마가 줄어들고 선 카르마가 0이 된 후에는 악 카르마로 전환된다.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람들은 오로지 한 가지의 카르마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칭호처럼 예외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절대불변의 법칙 중 하나였다.

그런데 레이라는 여인은 동시에 두 개의 카르마를 지니고 있다.

마치 영혼이 2개라는 것처럼.

‘어떡해야 할까요….’

아리아는 끙끙거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두 개의 카르마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단 차치해두고, 레이라는 여인에게 축복을 내려줘야 할 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레이가 선인이라면 기꺼이 축복을 내려줬을 거다.

선인이 아닌 일반인이더라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녀는 악인이었다.

악 카르마에서 선 카르마를 빼더라도 4000이 넘어간다.

어쩌면 레이라는 여인은 자신이 쌓아둔 업보를 치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을 섬기는 자신이 그런 그녀를 정말 치료해도 되는 걸까.

고민이 깊어질수록, 결단과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선 카르마가 500이 넘는다면 분명 의도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4600이라는 악의 카르마라면 악을 밥먹듯이 행해온 사람이라는 뜻.

아리아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시작했다.

“헤르피아님,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

전지전능한 헤르피아님께서 고난에 빠진 자신에게 길을 제시해주길 바라며.

“그리고 강현 님이 용사인가요.”

강현이라는 남자에게서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14살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는 어마어마한 선 카르마뿐만이 아니다.

교황과 100명의 성기사들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

빛의 천막으로 숨었음에도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하여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어쩌면 헤르피아님께서 내리셨던 신탁에서 등장했던 용사라는 존재가 그가 아닐까.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아리아가 물었다.

명확한 신탁으로써 대답이 내려오지 않았다.

그저 신성한 빛이 자신을 따스하게 덮어주고 있음을 느꼈을 뿐.

“… 알겠습니다.”

아리아는 답을 정했다.

“신이시여, 위대한 축복을 내려주시옵소서.”

레이의 가슴의 손을 얹은 아리아는 여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아리아를 감싸고 있던 황금의 기운, 신성력이 레이를 감싸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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