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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53화 (53/148)

〈 53화 〉 개판 (7)

* * *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어찌 됐건 서로 초면인 상황.

앞으로 좋든 싫든 함께 있어야 하는 사이다.

엘리스는 강현이 사용하는 검이니까.

괜히 서로 얼굴 붉힐 사이가 되는 것보다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거라 생각한 레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엘리스가 말했다.

“아까 말했다시피, 주인님께 자주 들었거든요. 항상 소중한 동료라고 하셨었죠.”

엘리스는 강현이 매일같이 통신 스크롤로 어떤 여인과 연락을 주고받는 게 심히 못마땅했다.

어떤 때는 은근히, 또 어떤 때는 적극적으로 그를 유혹했지만 자신에게는 손도 대지 않았던 그였기에.

그런데 다른 누군가랑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게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엘리스는 싱긋 미소를 지은 채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레이와 강현의 관계는 애매하긴 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의 끈끈한 무언가로 연결돼있음을 직감했다.

아마 레이에게 밉보였다간 강현을 키워서 잡아먹겠다는 계획이 무산될 수도 있었다.

“그런가요. 강현 씨가 절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네요.”

“후후, 그러게요.”

서로 미소 지은 채, 말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상대의 작은 행동, 말투 등등.

서로를 향한 탐색전이 시작되었다.

‘여자.’

강현은 성장이 끝난 여인을 여자로 본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20살 이상의 여자를.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자신과 엘리스, 아멜리아 셋 중에서 강현에게 여자로 보이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매혹적인 눈웃음과 찰랑거리는 고운 머릿결.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늘씬하고 길게 쫙 뻗어진 다리까지.

심지어 자신과 달리, 강현과 1년 365일을 함께 붙어 다닐 수 있다.

여전히 엄청난 위험도를 지닌 여자인 사실은 분명했다.

“주인님께 너무 화내진 말아줘요. 처음에는 제가 매일 같이 자자고 조른 거였거든요.”

엘리스는 ‘처음에는’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말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던 그도 결국 스스로 선택해서 받아들인 결과였기에.

“... 그런가요.”

레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고민했다.

‘... 역시 그냥 덮쳐야 할까.’

첫 경험은 자신과 가져주겠다고 강현이 약속했다.

레이는 강현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게 아닌가.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고 안심할 수 없었다.

그래도... 믿기로 했으니까.

“괜찮아요, 저랑 약속해주셨거든요.”

“... 약속?”

레이는 약속이라는 말을 하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행복해 보이는 소녀의 미소.

곧 불안감이 느껴졌다.

엘리스는 강현과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에 알 수 있다.

그 둘이서 맞은편 방에 갔을 때, 강현의 감정이 요동쳤다.

행복, 기쁨, 당황 등등.

그리고 지금은 부끄러움이 느껴져 왔다.

강현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불쾌함을 느끼게도 만들 수 있었다.

“... 무슨 약속이요?”

“으음... 강현 씨께 직접 들으시는 게 어떠세요?”

한 껏 여유로운 태도를 자아낸 레이가 대답했다.

강현의 첫 경험만 가질 수 있다면 다른 것 정도야, 얼마든지 양보해줄 수 있다.

남자의 성욕은 강하다.

강현도 마찬가지일 테고.

하지만 아쉽게도 레이는 지금 당장 자신이 직접 강현의 성욕을 해결해줄 수 없었다.

20살까지 무조건 참으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양보하기로 했다.

“흠흠, 기다렸지?”

얼굴이 붉어진 강현이 헛기침을 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뒤에 서있는 아멜리아도 얼굴을 붉히고 애먼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스는 데자뷰를 느끼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은 제 차례죠?”

“으, 응? 너도?”

“그럼 저만 쏙 빼놓게요?”

엘리스는 강현을 손을 덥석 붙잡고 곧장 옆방으로 향했다.

‘이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엘리스와 기싸움을 해버리고 말았다.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계획이 틀어져버리고 말았지만...

‘뭐 괜찮겠지.’

레이는 막연하게 생각하며 아멜리아를 바라봤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입구에 멍하니 서있는 아멜리아.

“공녀님?”

“아, 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멜리아는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후후... 그게 강현 씨가 제게 입맞춤을 해주셨거든요.”

“... 그런가요?”

첫 키스를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른 여자랑 혀를 섞은 건가.

순간 화가 올라오려 했지만 일단 억눌렀다.

성급하게 생각해서 오해하면 안 되니까.

“네, 제 이마에 입을 맞춰주시면서 부끄러워하시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황홀하다는 듯이 말하는 아멜리아를 보며 레이는 안심했다.

“잘됐네요.”

“... 네, 레이 님. 긴장하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아멜리아가 말했다.

“네, 저도 긴장해야겠네요.”

싱긋 웃으며 대답한 레이는 여유로웠다.

이마에 키스를 받은 것쯤은 이미 1년 전에 뺏던 진도였으니.

강현은 엘리스에게 손을 붙잡힌 채 끌려가며 체념했다.

엘리스의 감정이 느껴져 온다.

분노와 서운함, 다급함까지.

아무래도 쉽게 끝나긴 글렀다.

한 명씩 번갈아가고 있는 이 상황이 무슨 개판인가 싶기도 했지만.

“앉아요.”

맞은편 방에 도착한 후, 엘리스는 강현을 거칠게 의자 위에 앉혔다.

강현의 허벅지 위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엘리스는 그와 마주 본 채, 팔을 목에 휘감았다.

“에. 엘리스...?”

엘리스의 뜨거운 숨결이 얼굴에 흘러왔다.

가슴팍에서는 부드러운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자세에 당황해, 놀란 듯이 말했지만 엘리스는 비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지그시 강현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 좋아요?”

씩, 엘리스가 웃으며 물었다.

그와 동시에 상체를 조금씩 움직이자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져 왔다.

“뭐, 뭔 소리야, 좋긴 뭐가 좋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지만 그저 연기에 불과했다.

품 안에 안긴 엘리스의 무게감과 달짝지근한 이성의 살 냄새.

부드러운 가슴과 가까운 거리.

엘리스는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이었기에 싫을 수가 없었다.

“그래요? 그럼 아랫배를 꾹꾹 찌르고 있는 딱딱한 건 뭘까...”

“너, 너 그거 성희롱이야...!”

차마 힘으로 밀쳐낼 수가 없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엘리스의 기분이 단단히 상한 모양이었다.

“하아... 주인님, 1년 사이에 많이 자랐네요? 처음 봤을 때까지만 해도 저보다 작으셨는데.”

귓가에 입을 대며 엘리스가 말했다.

낮아진 엘리스의 목소리와 뜨거운 숨결이 귀를 유린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긴 하지. 근데 좀 내려와 주면...”

불편하거나 싫지 않았다.

다만 하반신 때문에 쪽팔리기만 했다.

하지만 엘리스는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멋지게 자라시는 동안, 저한테 손도 안 대시던 주인님이 여기서 꼬마 숙녀분들이랑 뭘 하셨을까?”

은근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잔잔한 분노가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떤 종류의 위험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위험을 느낀 강현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적당히 둘러대서 넘길 생각하지 마요,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 말과 동시에 엘리스의 얼굴이 조금씩 멀어졌다.

엘리스는 손가락을 뻗어 강현의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생각보다 기분 더럽네요.”

“뭐, 뭐가...?”

“감정을 공유한다는 거요. 저는 좋다고 생각했어요. 싫은 척하면서도 좋아하고 있다는 걸 다 알 수 있었으니까.”

알고 있었다.

엘리스는 그 점을 이용해 자주 장난을 쳐왔으니.

“그런데, 내 소중한 주인님이 갑자기 다른 여자랑 단 둘이 한방에 들어가더라고요?”

“으, 응... 그래서...?”

엘리스의 말을 들은 강현은 뭐가 문제인지 깨달았다.

레이와 키스를 하며, 아멜리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느꼈던 감정들도 엘리스가 전부 느꼈을 거다.

“굳이 제 입으로 더 말 안 해도 알죠?”

“응.”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빨리 말해줘요, 아기라도 만들었을까?”

한기가 서린 엘리스의 목소리.

“뭔 소리야, 무슨 아기를 만들어...!”

“그럼요?”

“... 그냥 키스만 했어.”

잠시 고민한 강현은 순순히 말해주기로 했다.

“... 키스요? 레이랑 공녀 둘 다?”

“... 공녀님은 그냥 이마에 뽀뽀 정도.”

엘리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목을 휘감고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아껴먹으려 했던 건데...!”

“으, 응? 뭐라고...?”

강현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되물었다.

“... 저도 해줘요.”

“키스를?”

“그럼 뭐겠어요.”

못해줄 거 없다.

하지만 그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었다.

“알겠어, 그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네, 뭐든지 물어봐요.”

“너도 내가 좋아?”

조금 등신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알아둬야 했다.

엘리스의 감정이 즐거움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해서인지.

“그럼 제가 마음도 없는 남자한테 끼 부리고 아양이나 떠는 헤픈 여자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 아니. 당연히 아니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주인님이 좋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 됐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러웠던 엘리스가 말을 끊었다.

이렇게 된 이상, 뒤쳐질 순 없다.

1년 동안 얼마나 참아왔는데.

마음이 급해진 엘리스는 움직였다.

엘리스가 강현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코가 맞닿을 정도였던 가까운 거리는 금세 좁혀졌고 서로의 입이 맞닿았다.

“하움...”

엘리스는 곧장 혀를 움직였다.

어차피 아직 어린 레이와 했을 키스가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고작 입술끼리 맞대고 끝났겠지.

훨씬 어른인 자신은 끈적한 딥키스를 함으로써 앞서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쭈웁, 하움... 쪼옥...”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던 강현이 두 눈을 감았다.

손을 뻗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아준 것을 확인한 엘리스는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한 그의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 어떻게 해야 하지...?’

엘리스도 첫 키스였다.

어른의 끈적하고 퇴폐적인 딥키스가 뭔지 알 리가 없었다.

“쪽, 쭈웁...”

하지만 혀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열심히 했다.

“쪽, 쪼옥... 츄, 츄웁... 쭙...♡”

엘리스의 키스는 정열적이었다.

입 안을 누비는 엘리스의 혀는 곳곳을 핥으며 강현의 혀를 물고 빨았다.

‘이게 어른의 키스...?’

레이와의 키스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찐득한 혀놀림의 강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키스...’

강현의 타액이 달콤하다.

뻣뻣하게 굳어있는 강현의 혀가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처음 해보는 키스는 달콤한 디저트보다도 훨씬 달콤했기에, 엘리스는 더욱 열심히 혀를 굴렸다.

시간이 흘렀다.

“하아... 하아...”

“후우...”

키스가 끝났다.

멀어지는 입술사이에 또 한가닥의 실이 늘어났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쪽♡”

엘리스가 볼에 입을 맞췄다.

코끝, 이마, 반대쪽 볼.

“쪼옥, 쭙...”

그리고 마지막, 목까지.

“어땠어요?”

목에 새겨진 붉은 키스마크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엘리스가 물었다.

“... 좋았어. 능숙해서.”

“무슨 이상한 생각 하실까 봐 오해하시는 데 저 첫 키스였어요. 뭐... 확실히 좋긴 했나 보네요. 아랫배가 계속 찔려서 아플 정도니까.”

다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엘리스가 말했다.

첫 키스를 빼앗긴 건 아쉽지만, 그 정도쯤이야 상관없다.

어차피 강현과 매일 함께 있을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기에.

‘귀여워... 그냥 덮쳐버릴까.’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하는 강현의 모습에 아랫배가 저려오기 시작함을 느낀 엘리스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됐으니까, 이제 슬슬 내려와.”

“아뇨, 저 물어볼 게 하나 더 있어요.”

하지만 아직 강현에게 물어볼 게 남아 있었다.

“... 그럼 빨리 물어봐.”

“레이랑 했던 약속이 뭐예요?”

엘리스의 질문을 들은 순간.

강현의 심장이 철컹, 가라앉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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