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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52화 (52/148)

〈 52화 〉 개판 (6)

* * *

잠시 시간이 흘렀다.

강현과 함께 방 안으로 돌아온 레이.

아멜리아는 그 둘 사이에서 흐르던 기류가 격변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더운 여름날, 한기를 느끼게 해 주던 레이의 눈치를 살피던 강현은 사라지고 없었다.

사이좋게 얼굴을 붉힌 그들은 서로의 반대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

대략 20분 정도일까.

아멜리아는 그 사이에 그 둘 사이에서 거사가 치러졌음을 깨달았다.

‘역시...’

그 둘 사이에 자신이 끼어들 틈은 없는 거구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다시 머리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약 1시간 전에 자신이었다면, 그냥 포기하고 돌아갔으리라.

“이제 제 차례죠?”

하지만 아멜리아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일평생, 자신이 원하던 것을 모두 이루어왔던 아멜리아는 강현이란 남자를 갖고 싶다.

공녀의 집착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지만 직성이 풀린다.

강현에게 거절당한 후, 더 이상의 실패는 겪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네.”

강현은 아멜리아가 왜 이곳에, 그것도 레이와 함께 있는지 궁금했다.

강현은 아멜리아와 함께 레이가 새로 잡은 맞은편 방으로 이동했다.

“...”

밀폐된 공간에서, 단 둘이 남게 되자 아멜리아는 곧장 강현을 향해 자신의 손등을 내밀었다.

당당하게 그의 입맞춤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 오랜만에 공녀님의 존안을 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강현은 아멜리아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가 내민 손을 오른손으로 받히며 입을 맞췄다.

“네에...”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자신은 여전하구나.

아멜리아는 자신이 미워졌다.

그래도 지난 1년 간의 괴로움이 깔끔히 잊혀질 만큼 행복했다.

손등에서부터 부드럽고 따듯한 강현의 입술이 느껴져 왔으니.

“아, 앉도록 하세요...”

“네.”

강현과 아멜리아는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았다.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예법에 따르면 더 높은 신분이 지닌 이가 먼저 말을 시작해야 한다.

아니면 상대가 말을 하게 해 주거나.

더욱이 이런 상황 속에서 강현이 먼저 무슨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무슨 말을 꺼낼지 고민에 빠져있었다.

자신한테는 고백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으면서, 매일 밤마다 다른 여인과 동침한다는 사실이 서운하고 부럽고 슬펐지만 질투 났지만 강현에게 따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거절함으로써 철저하게 선을 그었으니까.

하지만 한마디 정도는 하고 싶었다.

­엘리스 님은 여자로 보이시는 모양이네요.

아멜리아는 한 문장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혹시라도 말하던 중에 실수하지 않도록.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기로 했다.

“에, 엘...”

하지만 강현이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되면 어떡하지.

입을 연 순간 그 생각이 떠올랐다.

거기에 너무 긴장한 탓일까.

한 글자조차 제대로 말하기가 벅찼다.

“... 네?”

알아듣지 못한 강현이 되물었고.

“보고... 싶었어요...”

당황한 탓에 아멜리아는 자신의 속마음을 말해버렸다.

뭐라도 제대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멍청인가요...!’

자신을 욕하며 조심스럽게 강현의 눈치를 살폈다.

당황한 그는 진중한 표정을 지은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 그렇습니까.”

“네.”

잠시 기대했지만 강현의 반응은 석연치 않았다.

애초에 긍정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을 리도 없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선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한 강현이 입을 열었다.

“공녀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습니까?”

“네, 네...! 뭐든지 물어봐 주세요...!”

고개를 크게 두 번 끄덕이며 아멜리아가 대답했다.

“레이와는 무슨 일로 함께 계셨던 겁니까?”

“그, 그건... 우연히 만났어요.”

우연히 만났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를 미행하다 만난 것이었지만.

“... 그렇군요.”

우연히 만났다.

거짓말을 아닐 거다.

강현은 자신도 모르게 레이와 아멜리아 사이의 교류가 있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궁금증은 해결할 수 있었다.

“오늘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멜리아의 모습을 봤을 때, 아직 자신을 향한 마음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강현은 그녀에게 사과했다.

분명 상처받았을 테니까.

“... 마, 맞아요...!”

그리고 아멜리아는 크게 용기를 내었다.

“에, 엘리스 님은 여자로 보이시는... 모양이신가 봐요...!”

결국 원래 하려 했던 말을 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담담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원망이 담긴 말투.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철저하게 숨기는 아멜리아였지만, 이상하게도 강현의 앞에선 그럴 수가 없었다.

평졍이 전부 사라져 버린다.

“... 그건...”

차마 뭐라 대답할 순 없었다.

아멜리아는 고백도 해보기 전에 거절당했다.

그런데, 오늘의 일로 얼마나 괴로울까.

어른으로써, 강현은 아멜리아의 괴로움을 덜어줄 책임이 있다.

아직까지도 변함없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아멜리아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아멜리아의 괴로움을 덜어줄 순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것뿐이지만, 아멜리아에게 그런 것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레이 님도...!”

여관에 들어와 강현의 숙소로 향하던 중, 아멜리아는 레이가 강현에게 거절당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왜 저는 여자로... 봐주시지 않는 건가요...!”

자신은 레이와 동갑.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유라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덜 억울하기라도 하지.

만약 해결이 가능한 이유라면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

답은 간단하다.

아멜리아는 어리다.

신체적인 나이는 동갑일 지라도, 정신적인 나이는 크게 차이 난다.

사실대로 말한다 해도, 레이와 자신이 무슨 차이인지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 제 취향 때문입니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강현이 입을 열었다.

“취, 취향이요...?”

“예.”

당당하고 진지하게 강현은 대답했다.

“저는 20살 이하의 이성이 여자로 보이지 않습니다.”

현대에서 살아온 강현은 당연히 미성년자를 여자로 볼 수 없었다.

최소한 현대에서 성인 취급을 받는 20살 이상은 되어야지 여자로 볼 수 있었다.

“... 그, 그럼 레이 님은...”

취향.

존중할 수 있다.

사람마다 각자의 취향을 가지고 있으니.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한 여인이 취향이라는 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취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레이와 자신의 차이가 무엇인가.

아멜리아는 강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레이는...”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

레이는 신체적으로는 14살이라 할 지라도, 정신적으로는 30년 이상의 세월을 살아왔다.

물론 회귀자라서 가능한 일.

아멜리아에게 레이가 회귀 자라는 사실을 말해줄 순 없었다.

그렇기에 강현은 마땅한 대답을 생각해내야만 해냈다.

“제게 약속했었습니다.”

“약속...”

“네, 20살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죠.”

“...”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비록 지금 당장은 여자로 볼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 달라진다.

그리고 그건 레이뿐만이 아닌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아멜리아는.

“그럼 저도 20살까지 기다릴게요...!”

물러서지 않았다.

6년이라는 세월은 너무나도 길었다.

하지만 영원한 시간은 아니었다.

결국 시간은 흐를 것이고, 20살이 되어 강현에게 여자로 보일 수 있게 된다면 그를 가질 수도 있다.

“... 진심이십니까?”

결국 이렇게 나오는 건가.

강현은 생각했다.

6년은 긴 시간이었기에, 설마 했지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 당연하죠... 그렇게 해서 강현 씨의 여자가 될 수만 있다면...”

부끄러움은 의지를 불태우는 것과 별개였다.

아멜리아는 할 말은 꿋꿋이 해냈으나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기다리신다고 해도, 반드시 잘 될 거라 보장해드릴 수 없습니다.”

“괜찮아요.”

지난 1년간 깨달았다.

강현보다 훨씬 멋진 남자를 만남으로서, 그가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강현보다 멋진 남자는 찾을 수 없었다.

“시,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할 정도로 겁쟁이가 아니랍니다...”

어찌 됐든,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엄청난 수확을 얻었다.

이로써 1년 동안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그와의 슬픈 기억에서도 해방될 수 있을 거고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다.

“... 그렇습니까.”

사람이 무슨 감정을 품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다.

좋아해도 된다고 허락을 해줄 일이 아니다.

이미 한차례 아멜리아의 마음을 거절했었다.

그녀를 여자로 보기 위해선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럼에도 아멜리아는 다시금 6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겠다고 선언했다.

아멜리아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겠다는 데, 강현이 막을 권리는 없었다.

“네, 지난 1년 동안 키도 크고 가슴도 커졌답니다...! 부, 분명 시간이 흐르면 더 멋진 여자가 될 거예요!”

아멜리아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 기회에 강현에게 자신을 어필하고자 했다.

아마 목적과 잘 맞는 말이긴 하겠지.

“그, 그런군요...”

“호, 혹시! 궁금하시면 직접 만져보실래요...? 강현 씨라면 좋으니까...”

“... 괜찮습니다. 일단 잠시 진정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아멜리아는 꽤 흥분한 상태였기에, 강현은 그녀를 진정시키고자 했다.

“죄,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그럼... 뭐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강현이 묻자 아멜리아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눈치를 살피다가, 갑자기 시선을 피한다.

얼굴을 붉히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저,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그리고 오랜 고민이 끝난 것인지, 아멜리아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 말입니까?”

“네.”

“들어드릴 수 있는 부탁이라면, 말씀해주세요.”

“그, 그게... 그, 손등이 아니라... 혹시 다른 곳에 입을 맞춰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오늘 입술이 일하는 날인가.

“알겠습니다.”

잠시 고민한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힘들어했을 아멜리아를 조금이라도 위로해줄 수 있다면 입맞춤 정도야 못해줄 것도 아니었다.

강현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상체를 앞으로 움직이고 아멜리아의 앞머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강현의 입술이 아멜리아에 이마에 잠시 동안 닿아있다가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괜찮으십니까?”

흠흠, 얼굴을 붉힌 강현이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네, 네헤에... 조하요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한 표정을 지은 아멜리아의 목소리는 넋이 나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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