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개판 (1)
* * *
“마땅한 계획이라도 있느냐?”
마차에 몸을 실은 뒤에 시작된 작전타임.
푸스탄트가 물었다.
이번 일은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성녀의 위치를 찾고자 하면 탐색 마법을 사용하면 그만이지만, 성국의 신물은 로자리오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성국의 삼신기.
로자리오.
빛의 천막.
성배.
그중, 빛의 천막은 덮고 있는 이들의 위치를 모든 탐색 능력으로부터 숨겨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응, 꽤 그럴싸한 계획을 하나 세워뒀어.”
강현도 그 사실을 염두한 뒤,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아쉽게도 계획을 세우기 위한 재료로 주어진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성녀와 즉위식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가 극비사항이다.
회귀자로써의 이점들 중, 한 가지.
정보의 격차.
전생의 기억을 백분 활용한 강현은 푸스탄트와 세계를 방랑하며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성녀의 암살과 즉위식에 관한 정보는 전생에서 얻지 못했으니.
하지만 단 한 가지, 즉위식에 관련된 정보가 있었다.
회귀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정보가.
“그게 무엇이냐.”
“즉위식이 시작하기 전에 보통 여러 곳에서 온 손님들한테 선물을 받잖아?”
“그래.”
“선물로 위장해서 숨어드는 거야,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서 성녀랑 접촉해서 위험을 알려주는 거지. 아니면 할배의 표식을 몰래 전달해놓거나.”
그건 바로 성녀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 게냐?”
나름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한 강현과 달리, 푸스탄트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어느 정돈 예상했다.
선물 상자에 숨어든다고 성녀와 접촉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성녀에게 전달될 선물들이, 설마 단 한 번의 검사도 거치지 않을까.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당연히 진심으로 하는 소리지, 무조건 성공할걸, 그리고 아직 설명 다 안 끝났어.”
“흐음... 그래, 말해보려무나.”
“결국 성녀와 접촉할 선물이 이 계획의 핵심이잖아? 여기서 우리 계획에 도움을 줄 사람이 있어.”
“음...? 설마...”
그제야 강현의 계획을 눈치챈 푸스탄트는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신살자의 검을 바라봤다.
“맞아, 일단 허락은 받아야 하지만, 엘리스가 선물로 위장해주는 거지.”
뭐라고요?
“제가요?”
강현의 말을 듣고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며 엘리스가 물었다.
“응, 네가.”
엘리스의 형태 변환은 엄청난 자유도를 자랑한다.
처음에는 다른 종류의 검으로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으로도 변했었다.
그리고 검과 인간이 아닌 다른 물체로도 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장신구를 사랑하는 성녀의 취향에 걸맞은 장신구가 된다거나.
“혹시 도와줄 수 있겠어? 예쁜 장신구로 변해서 성녀랑 접촉해주면 돼.”
또한 엘리스는 강현에게 귀속된 아티팩트다.
강현을 제외한 그 누구도 엘리스, 신살자의 검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 누구에는 푸스탄트도 포함되었다.
“뭐... 못 해 드릴 건 없는데.”
엘리스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에게 기회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저한테도 그에 맞는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엘리스의 음흉한 미소에 강현은 위험을 느꼈다.
“보상이라... 알겠어.”
위험과는 별개로, 엘리스에게 보답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말이다.
지금까지 검술을 수련하며 아무런 대가 없이 많은 도움을 받아왔고, 이번 계획도 그녀의 도움이 절실하다.
도움받은 만큼, 보답을 하는 건 사람으로서의 도리다.
“정말요?”
강현의 대답을 들은 엘리스의 눈빛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상상도 못 했던 순간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였기에.
“응, 그런데 너무 이상한 거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안된다?”
“이상한 거에 기준이 어디까지인가요?”
이상한 거.
엘리스에겐 무엇보다 그 애매한 기준의 허용선이 어딘지가 가장 중요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푸스탄트의 앞에서 할 얘기가 아닐 거다.
분명 엘리스라면 음흉한 보상을 요구해올 테니까.
‘흐음... 청춘이구나.’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푸스탄트는 작게 웃으며 생각했다.
“그럼 정확한 계획은 어떻게 되느냐?”
“일단 즉위식 이벤트로 성녀의 축복을 진행하려면 결국 성녀가 선물들을 하나씩 확인해봐야 하잖아.”
즉위식의 이벤트, 성녀의 축복.
즉위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선물을 보내준 사람들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벤트로, 선물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선물을 보내준 이에게 성녀가 직접 축복을 내려주는 이벤트다.
그리고 그 이벤트를 진행하기 위해선 성녀가 직접 선물들을 살필 필요가 있고. 그 과정에서 엘리스는 필연적으로 성녀와 접촉하게 된다.
“그때, 엘리스가 다른 물체로 변신해서 성녀의 방에 숨어 들어서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거지. 그리고 성녀가 즉위식을 위해서 이동할 때쯤, 한번 더 변신하는 거야, 성녀가 자주 쓰는 장신구 같은 걸로.”
“그럼 성녀가 즉위식으로 이동할 때, 습격을 당하면 텔레포트로 합류한다는 계획이로구나.”
“엘리스가 할배의 표식을 들고 있으면 되니까.”
푸스탄트의 비전 마법, 표식.
한 물체에 표식을 세긴 뒤, 표식을 지닌 대상에게 위치 상관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다.
흑적초의 독에 중독되어 죽어갈 때, 강현이 살 수 있었던 이유는 푸스탄트의 표식이 새겨진 펜던트 덕분이었다.
“...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는 게 아니라면 완벽한 계획이겠구나.”
표식이라면 빛의 천막이 위치를 숨겨주더라도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강현이 말한 계획 내에서 변수가 발생할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그리고 뭐... 자기가 선택한 성녀를 지켜주겠다는데, 신도 알아서 잘 도와주지 않겠어?”
일평생 신앙심과는 전혀 연관 없는 삶을 살아온 강현이지만 이 세계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었다.
“끌끌... 그래, 헤르피아님께서 우릴 보살펴주시겠지.”
“보살펴줄 거면 애초에 암살을 당하지 않게 해 주면 어디 덧나나... 그런데 할배, 할배는 헤르피아를 믿는 거야?”
문득 든 호기심에 강현이 물었다.
푸스탄트는 자신이 섬기는 신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강현은 그가 믿는 게 어느 신인지 알지 못했다.
“... 비밀이란다.”
∴
나흘이 흐르고 강현은 꽤나 오랜만에 익숙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로지 현대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감각.
교통체증.
성국의 수도, 상트리움의 검문소 앞에는 엄청난 숫자의 마차들이 행렬해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검문소 앞에서 3박 4일은 보냈겠네.”
대략 4시간의 대기시간을 기다리고 검문을 마친 강현은 상트리움에 입성하며 말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각국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다.
귀족과 평민 구분 없이.
“서둘러 오길 잘한 모양이야. 일단 숙소부터 잡자꾸나. 그리고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우리도 오랜만의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겠지.”
“그래, 그러자.”
강현은 푸스탄트와 함께 머물 숙소를 찾기 위해 상트리움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 말도 안 돼.”
그리고 성문 근처를 배회하고 있던 아멜리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백발의 노인과 함께 걷고 있는 흑발 흑안의 사내.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매일 밤마다 꿈에서 나타나고, 하루하루의 모든 일상에서부터 절로 떠올라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강현이였다.
“으음... 꿀꺽. 무슨 일입니까, 공녀님?”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달콤함을 음미하고 있던 히엘이 물었다.
“히엘, 따라와요.”
“...? 네, 알겠습니다.”
∴
남성의 출입이 절대 금지된 공간.
신의 축복이 깃든 안식처.
성국의 수도, 상트리움의 모든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대교회의 최상층.
성녀의 안식처.
성법사가 되기 위해 신성 마법을 갈고닦던 중, 신탁을 받음으로써 성녀가 된 아리아는 창문 너머로 상트리움을 내려보고 있었다.
“많이 모여주셨네요.”
길거리를 가득 채운 바글바글한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이던 중, 아리아가 작게 읊조렸다.
성녀가 된 자신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숫자에 비례한 죄책감과 책임감.
그것은 아직 어린 소녀인 아리아의 어깨를 짓눌렀고 깊은 한숨을 절로 내쉬게 만들었다.
약 1달 뒤에 거행되는 성녀 즉위식은 성국의 가장 큰 행사들 중 하나이며 자신이 주인공이지만.
‘제가 참석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쉽게도 주인공은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
자신은 즉위식으로 향하는 길에서 죽어야하기 때문에.
아니, 죽는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이 세계에서 사라져야 한다.
성녀로써의 자신과 아리아라라는 이름을 지닌 자신이 세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만 한다.
“차라리 성녀 같은 게 되지 않았더라면...”
헤르피아를 섬기는 신도인 아리아는 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웃을 사랑하기에.
헤르피아를 섬기는 신도였기에.
“그러다 불경죄로 잡혀간다? 성녀가 불경죄라니, 아주 난리가 날 거라고.”
“이그드라실 씨...”
“성 말고 이름으로 불러달라니까, 우리의 우정이 겨우 그거밖에 안돼?”
“라비... 무슨 일로 왔나요?”
라비.
엘프의 나라, 세계수의 숲에서 나와 성국 헤르피아로 온 엘프이자 아리아의 소꿉친구.
“무슨 일이긴, 또 혼자서 궁상떨고 있을까 봐 찾아온 거지.”
“궁상이라뇨... 아니거든요.”
“그럼 세상 그 누구보다 슬프다는 듯이 창문 밖을 보고 있는 건 궁상이 아닌가?”
장난스러운 라비의 말에 아리아는 살짝 심통이 났지만, 무거웠던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단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사람 더럽게 많네, 그치?”
“라비, 바른말을 사용하세요.”
“이 정도면 바른말이지. 나는 다른 엘프들처럼 고상한 척하는 건 딱 질색이라서.”
라비은 엘프지만 다른 엘프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언제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으며, 쾌활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라비도 창문 밖을 바라봤다.
1년 365일.
활기찬 상트리움의 풍경은 익숙했지만 이 정도는 처음이었다.
전부 아리아를 완벽히 소멸시키기 위한 연극을 위해 모인 관객들.
저 수많은 사람들이 지닌 수많은 입이, 아리아라는 소녀를 세계에서 지워버리는 데 일조해줄 것이었다.
“무서워?”
“... 네.”
강한 척하고 싶었지먼, 그러지 않았다.
거짓말을 좋아하지도 않고, 이 두려움을 혼자 견뎌내기엔 너무나도 힘들었기에.
“결국 네가 선택한 일이잖아, 잘나신 신님께서 선택권도 주셨는데 말이야.”
성녀를 선택하는 첫 번째 신탁이 내려온 뒤, 곧바로 두 번째 신탁이 내려왔다.
그리고 헤르피아는 아리아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 역시 그렇죠.”
아리아의 표정이 한층 더 침울해졌다.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뭘 그렇게 울상 짓고 그래. 다른 사람들은 다 잊어도 내가 계속 같이 있어줄 건데. 혹시 나로는 부족해서 그러는 거야?”
라비의 물음에 아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 라비까지 아리아를 잊게 된다면 아리아는 버틸 수 없을 거다.
“그럼 됐지, 교황님이랑 성기사님들도 기억해주실 건데, 안 그래?”
“맞아요.”
아리아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기운 좀 내. 열심히 용사도 찾고 나서 다시 돌아와야 할 거 아니야.”
“용사... 네, 그렇죠.”
죽음과 소멸의 목적, 용사.
목적 앞에서 아리아는 다시 기운을 되찾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라비.”
“나야말로, 너는 내가 완벽하게 죽여줄 테니까.”
신의 축복이 깃든 성녀의 안식처.
그 안에서 한 소녀와 한 엘프가 약속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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