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검신(?) 엘리스, 신살자(??者)의 검 (4)
* * *
강현과 엘리스는 깊은 새벽이 될 때까지 서로에게 번갈아가며 질문은 던졌다.
강현이나 엘리스나, 앞으로 자신이 다루게 될 검, 자신을 다룰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넘쳐났기에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강현은 자신과 푸스탄트에 대해 엘리스가 묻는 대로 답해주었고 엘리스도 성실히 질문에 답해주었다.
“내 본업이 약제사라서 그래, 약초나 부산물들을 재료를 쓰기 위해선 몇 가지 공정을 거쳐야 하고 큰 집중력이 필요하거든.”
약초와 부산물을 공정하는 과정은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한다.
약초를 1초만 덜 데쳐도 독성이 남을 수도 있고, 0.1초만 더 데쳐도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강현은 자신이 지금껏 단련해온 제약 술이 강인한 정신력의 원천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흐응... 그래요?”
강현은 아직 어려도 너무 어리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나이임이 분명했지만 마법사로서 5 서클의 경지에 도달하고 검술에도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마법사나 검사가 아닌 약제사가 본업이라니.
엘리스는 강현의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했다.
이미 강현에 대한 평가는 최고점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더 물어볼 건 없나요?”
엘리스의 물음에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궁금한 것들은 전부 물어본 상태다.
강현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검술을 배울 수 없다는 속박의 해결을 위해서 더 강해져야겠다는 결론을 이미 내린 상태였다.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해.”
“재미없게 벌써 끝나버렸네요.”
침대맡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던 엘리스는 아쉽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마치 일부로 보여주는 듯한 느릿느릿한 일련의 동작과 자신의 방향으로 숙인 상체 탓에 은근히 노출되는 가슴골에 강현이 시선을 돌렸다.
“뭐가 재미없다는 거야? 벌써 두 시간은 지났는데.”
“흐음, 그렇긴 하네요.”
눈웃음을 지은 채, 재밌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엘리스가 대답했다.
성숙한 성인의 여인은 처음 상대해보는 것이 처음인 강현에게 있어서 엘리스는 너무나도 매혹적임과 동시에 부담스러웠다.
“내일도 수련해야 하니까 슬슬 자려고 괜찮아?”
“네, 당연하죠. 내일도 더 강해지셔야 하잖아요.”
엘리스는 대답과 동시에 자신의 손을 움직였다.
“뭐 하는 거야...?”
그리고 그 손은 강현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놀란 강현은 곧장 엘리스의 손을 붙잡았다.
“앞으로 어떻게 훈련해야 할지 알아보는 거예요.”
“그게 내 몸을 만지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검술을 수련하기 위해선 몸을 균형 있게 단련시키는 게 중요하거든요. 어느 부분이 과해서도 부족해서도 안돼요. 그러니까 몸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거죠.”
엘리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감정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강현은 엘리스가 상당히 진지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성인의 상태인 그녀가 13살인 자신에게 욕정과 흑심을 품고 몸을 더듬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고.
“... 그래?”
“네, 제가 확인해보고 어떤 식으로 훈련할지 정해드릴게요. 주인님을 돕는 것이 제 의무니까요.”
“그렇다면야 뭐...”
“편히 누워보세요.”
싱긋, 웃으며 엘리스가 말했다.
침대에 편히 누웠고 엘리스의 손길이 느껴져 왔다.
강형은 잠에 들기 전, 상의를 벗고 짧은 하의와 속옷만 걸치고 있다.
목에서부터 몸을 더듬기 시작한 엘리스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져 왔다.
고운 손은 따듯하기 그지없었어며 그녀의 손길이 지나친 자리에 남은 간지러움은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이게 남자의 몸...’
검의 부여된 엘리스의 영혼은 23살이다.
왜 23살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본체인 엘리스가 23살 때, 검에 영혼을 부여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을 구성하는 것은 육체와 영혼이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배워온 지식들과 수많은 기억들이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신살자의 검인 엘리스는 자신을 엘리스라고 부르기 애매했다.
영혼 파편에 불과한 엘리스는 대부분의 기억을 지니지 못한 상태였기에.
자신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원래의 성격과 검술에 관한 기억.
본체에게 들었던 예언에 관한 기억이 전부.
당연히 아름다운 숙녀의 나이인 엘리스는 이성에게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감조차 잡을 수 없는 기나긴 시간 동안 검에 봉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이성의 반나체는 처녀인 엘리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처녀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직접 확인해봤기에 알고 있는 거였다.
여자인 자신보다 훨씬 단단한 근육과 떡 벌어진 어깨.
아름답게 조각된 복근까지.
‘멋지네.’
강현의 근사한 몸을 보면 알 수 있다.
강현이라는 남자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아직 어린 나이에도. 대견하네.’
물론 흑심과 욕정은 전혀 없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미남이었다.
꾸준히 단련한 흔적이 보이는 몸은 근사했고.
그래 봤자 13살이다.
‘흐음...’
짧은 감상을 마치고 엘리스는 강현의 몸을 살폈다.
전체적으로 잘 단련된 몸이었다.
딱히 흠잡을 곳이 없는.
그렇다고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상체에 조금 더 신경을 쓴 것인지 상체에 비해 하체의 근육은 조금 부족했다.
‘동해물과 백두산...’
엘리스의 손이 몸을 더듬고 있는 동안 강현은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몸 구석구석은 더듬는 성인 여성의 손길은 강현에게 있어선 너무 강렬한 자극이었다.
엘리스는 자신의 도움이 되어주겠다고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상대인데, 텐트라도 쳐졌다가는 그 상황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사타구니 사이의 중요 위를 그냥 지나칠 때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껴버렸다.
“끝났어요.”
엘리스의 말과 함께 행복과 고통이 공존하던 시간이 끝났다.
“그, 그래.”
강현은 안심함과 동시에 아쉬움을 느꼈다.
솔직히 어떤 기분이었냐고 물어본다면 좋았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쉬우면 조금 더 해드릴까요?”
그리고 그 감정은 엘리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후후, 엘리스가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퇴폐적인 분위기가 더해져 강현은 뭔지 모를 요염함을 느꼈다.
“... 아니, 하나도 안 아쉬운데.”
엘리스가 자신을 놀리면서 즐거워하고 있단 사실을 강현은 깨달았다.
곧장 그녀의 말을 부정했지만, 엘리스가 전혀 믿지 않고 있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더 즐거워하고 있었기에.
“거짓말은 못된 건데요. 제가 친절하게 알려드릴 수 있는데.
“... 어쨌든 살펴보니까 어떤 거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고 강현은 곧장 말을 돌렸다.
‘왜 이렇게 귀엽지.’
분명 자신의 나이에 비해 엄청난 성숙함을 보여준 강현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부끄러워하는 반응은 귀엽기 그지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 멋진 남자가 될 것이 분명했다.
여자 여럿 울리고 다닐.
‘차라리 확 내가 잘 키워서 먹어버릴까?’
엘리스는 약간이지만 진지하게 고민해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하셨던 건지 좋은 몸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장하네요.”
“... 잘됐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훈련하면 좋을 거 같아?”
“으음... 수호의 검은 기본적으로 유연함을 중시하는 검술인 만큼, 허리랑 하체운동을 조금 더 집중하고 유연함도 기르는 게 좋을 거예요.”
“흐음... 알겠어, 고마워.”
엘리스의 조언은 장난을 쳐 올 때와는 다르게 진지하고 구체적이며 실용적이었다.
전란의 시대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순수한 선의로 자신을 도와주는 엘리스에게 강현은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허리랑 유연성에 좋은 운동을 하나 알고 있긴 한데, 알려드릴까요? 지금 당장도 할 수 있는 운동인데.”
“그게 뭔... 아니, 됐어, 필요 없어.”
엘리스의 말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도 잠시.
그녀의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본 강현은 그녀가 말한 운동의 정체를 깨달아버렸다.
“크흡... 큭... 하아... 죄송해요. 주인님이 너무 귀여우셔서 그만.”
결국 웃음을 참아내지 못한 엘리스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아...”
이 검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에 강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나셨어요...? 빨리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너무 심했나 봐요...”
기죽은 표정을 지으며 엘리스가 물었다.
“화난 건 아니야. 그런 장난만 조금 그만해주면 좋겠어.”
딱히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부끄러운 나머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곤란했을 뿐.
“네, 주인님.”
그리고 방금까지 짓고 있던 표정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강현은 엘리스가 연기한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뭐 더 할 거 있어?”
어쨌든 궁금했던 것들도 전부 물었고 앞으로의 훈련에 대한 조언도 받았다.
슬슬 다음 날의 훈련을 위해 잠에 들려했던 강현은 엘리스에게 물었다.
“아뇨,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할 거 같아요.”
“그럼 슬슬 자자.”
“네.”
강현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엘리스는 다시 검으로 돌아가... 지 않고 침대 위로 올라왔다.
“... 뭐해?”
“뭐긴요, 저도 자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 침대에서 나랑 같이 자겠다고?”
“네, 이 기회에 유대감도 기르면 좋지 않겠어요?”
후후, 또 다시금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엘리스가 말했다.
유대감.
에고 소드에게 있어서 유대감이란 상당히 중요하다.
게임 속에서 에고 소드를 다룰 때면, 유대감이라는 수치가 하나 생성된다.
수치가 높을수록 에고 소드의 위력은 올라가고.
그렇기에 유대감을 올리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고 엘리스의 장난도 어느 정도는 유대감이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순수히 즐기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엘리스는 검이 아닌 인간의 모습일 때 더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건 안돼, 차라리 방이 필요한 거면 할아버지한테 내가 말해볼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된다.
그리고 어차피 진심도 아니고 장난이라는 사실을 강현은 알 수 있었다.
“알겠어요.”
그리고 순순히 포기한 엘리스는 검으로 돌아갔다.
그 대신 저도 주인님 옆에 눕혀주시면 안돼요?
“지금은 인간도 아니고 검이잖아.”
저도 따듯하고 푹신푹신한 곳에서 자는 게 더 좋거든요.
“뭐... 그 정도면.”
유대감도 올리고, 엘리스의 요구도 들어준다.
어차피 지금은 검의 모습을 하고 있고.
“알겠어.”
강현은 검집에 담긴 신살자의 검을 자신의 옆에 눕힌 뒤 잠에 들었다.
∴
창문 너머에서 지저귀는 새의 울음소리를 알람 삼아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강현은 자신의 아침이 평소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껴졌다.
무게에 의해 눌린 침대의 눌린 정도가 평소와 달랐다.
따듯한 팔이 자신을 감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굴에서는 부드럽고 따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일어나셨어요?”
“... 너 뭐하냐?”
강현은 자신이 엘리스의 품에 안긴 채로 잠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껏 봉인에서 풀려난 건데 검의 모습으로만 있기에 답답해서요.”
“...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약속을 어긴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솔직히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검에 부여된 상태라고는 하지만 결국 엘리스는 사람의 영혼이니까.
“그게 나를 껴안고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저는 그냥 가만히 누워있었어요, 강현 씨가 제 품에 들어오신 거고요, 뭐 귀여워서 그냥 안고 있긴 했지만.”
“...”
엘리스의 말이 사실이란 것을 알 수 있었던 강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하루빨리 창고로 사용 중인 지하실을 청소해서 새로운 방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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