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42화 (42/148)

〈 42화 〉 검신(?) 엘리스, 신살자(??者)의 검 (3)

* * *

체력이란 무엇인가.

신체적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그렇다면 정신력은 무엇인가.

정신적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체력과 정신력.

각각 신체와 정신의 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 동력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그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체력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기를 수 있다.

당장 넓은 초원을 숨이 벅찰 때까지 달리기만 해도 체력은 저절로 늘어난다.

하지만 정신력은 다르다.

정신력을 기르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어린 시절을 산만하기 그지없다.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복잡한 일들에 대해서 굳이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어린 나이일수록 정신력을 기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사람들은 굳이 정신력이라는 개념을 자각해서 그것을 수련하려 하지 않는다.

엘리스는 알고 있다.

검사들에게 있어선 정신력이란 체력만큼이나 중요한 덕목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검을 다루는 이들은 정신력이라는 개념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의 신체가 더욱 강인 해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에.

절대다수의 검사들이 자신의 경험과 동물적인 감각에 의존하려 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며 그것들 또한 검사에게 있어서 중요한 부분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과 오감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정보를 받아내기 위한 집중력.

생사가 오가는 찰나의 순간에서 이겨내기 위한 판단력.

상대의 전투 방식에 맞춰 대응하기 위한 사고력.

전투가 길어진다 해도 집중을 잃지 않기 위한 근성과 인내심.

검사에게 있어서는 없어서 안될 자질들이지만, 이 사실을 간과한 검사들은 언젠가 반드시 정신력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엘리스는 자신의 새로운 주인인 강현에게 정신력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그것을 수련하게 하려 했다.

물론 마법사로서 어느 정도의 정신력을 키워왔겠지만 검사와 마법사가 요구하는 정신력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르다.

그것이 마검사로 대성하기 어려운 이유였으며 마검사에게 압도적인 무력을 줄 수 있었던 이유들 중 하나기도 했다.

그리고 강현의 자세 훈련이 시작된 이후, 엘리스는 경악했다.

자신이 13살이라 했던 강현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어마 무시한 집중력...’

푸스탄트의 검술의 기본자세는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자세이다.

까치발을 든 상태로 무게중심과 균형을 완벽하게 유지해야 한다.

임의로 지정해온 영역 내로 무슨 공격이 날아와도 무조건 막아내야 하는 만큼, 초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검술에서 자세라는 것은 아주 작은 흐트러짐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자세를 잡는다는 행위는, 오로지 신체를 움직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목적을 자각하고 어느 순간이라도 목적을 위해, 검을 휘두르기 위한 준비를 유지하는 것까지가 자세를 잡는다는 행위다.

강현은 그것을 몇 시간 동안이나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단 한순간도 잡생각을 품지 않고 오로지 자세에 관해서만 자신의 사고를 움직였다.

신체와 체력적인 한계로 인해 자세가 조금씩 무너지긴 했으나, 곧장 자신의 자세를 바로잡고 집중력을 흩트려 뜨리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까치발을 든 채로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다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자신의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정말 이게 13살이라고?’

엘리스는 믿을 수 없었다.

일단 체력부터가 어마 무시했다.

고작 13살에다가 마법사로서 살아온 그가 난도가 높은 검술의 자세를 몇 시간 씩이나 유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그리고 정신력을 수련시키려 했지만, 강현의 정신력은 이미 완성되다 못해,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자세를 훈련하며 그가 보여준 정신력은 이미 평범한 13살짜리 남자애라고 생각할 수준이 아니었다.

정신력만 보자면, 자신과 비등하거나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13살에 5 서클의 경지를 도달한 마법사까지.

‘평범한 천재가 아니야.’

검과 마법.

체력과 정신력까지.

천재들의 천재라고 엘리스는 생각했다.

‘좋아’

엘리스는 의욕을 불태웠다.

아침에서 점심 사이의 시간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계속 자세만 잡고 있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상당히 고된 일이었다.

푸스탄트에게 교정을 받고 있었으나, 마나와 달리 가시적인 결과물을 확인할 수가 없었기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상심리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죽겠네...”

집으로 돌아온 강현은 곧장 몸을 씻고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목부터 어깨, 양팔과 가슴, 허리, 허벅지, 종아리, 발, 발가락까지.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듯했다.

심한 근육통은 고통을 동반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운동을 해왔던 강현은 알고 있다.

이 근육통이야말로, 육체가 성장하고 있다는 가시적인 성과라는 사실을.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기엔 애매했으나, 이런 고통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보상이라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었다.

“이걸 1달에서 반년이나...”

그래도 막막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푸스탄트의 말에 따르면 자세 훈련은 1달에서 반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 말했으니까.

“아뇨, 아마 나흘에서 엿새면 기본자세는 완성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습... 응?”

어디선가 들려오는 엘리스의 목소리에 대답하려던 강현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원래대로라면 엘리스의 목소리는 머리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머리가 아닌 귀를 통해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강현은 벌떡 몸을 일으킨 뒤 고개를 돌렸다.

“놀라신 모양이네요.”

그리고 흑발 흑안의 여인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색과 눈의 색을 본 강현은 놀랐다.

이 세계에서 흑발 흑안은 엄청나게 희귀하 머리색과 눈 색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오랜 세월 동안 푸스탄트와 세계를 방랑하면서 단 한 번도 흑발 흑안을 지닌 사람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리고 허리까지 길게 뻗은 검은 생머리와 살짝 찢어진 눈매에서는 까칠함이 느껴져 왔다.

피곤한 것인지 축 처진 눈빛과 붉은 입술에서는 퇴폐적인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각선미가 도드라지는 군청색의 가죽바지와 볼륨감이 엿보이는 흰색 셔츠까지.

“누구세요...?”

“누구긴요, 당신의 검이에요.”

피식,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은 엘리스가 턱은 괸 채로 강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 신살자의 검? 검신님...?”

“네, 맞아요.”

역시 놀라는구나.

꽤 예쁘장한 얼굴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꽤나 귀여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 세월 동안 검 속에 봉인되어있다가 만난 첫 주인과 새로운 삶은 기나긴 세월 동안 봉인당해 있던 엘리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기 딱 주었다.

“어... 검신님을 뵙습니다...”

잠시 당황하고 있던 강현은 엘리스에게 인사했다.

모든 검사들의 신이자 검신의 도달한 강자.

예의를 갖추는 것이 당연했기에.

“뭘 그렇게 예의를 차리시나요, 당신이 저의 주인이신데, 오히려 제가 예의를 차려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인간의 자아를 갖고 있었기에 벽에 세워두기는 뭐해서 의자 위에 올려둔 검은 사람으로 변했다.

아마 신살자의 검이 지닌 2번째 능력이겠지.

“후우...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 건 몇백 년 만이라 옷이 좀 불편하네요.”

뜨거운 한숨을 내쉰 엘리스가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위쪽에서부터 2개 풀었다.

풍만한 가슴으로 인해 생긴 가슴골이 노출되었고 엘리스는 강현이 당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엘리스가 느낀 것은 재미였다.

“저기... 왜...”

그리고 그 엘리스는 다가오고 있었다.

강현이 누운 침대를 향해.

엘리스가 지닌 특유의 퇴폐적인 눈빛에 본능적인 위협을 느낀 강현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리고 강현이 누워있던 침대 바로 앞까지 온 엘리스는 침대 위로 올라왔다.

“안마라도 해줄게요. 그 상태로 바로 잠에 들었다가는 내일 제대로 움직이기도 벅찰걸요?”

“아뇨, 이 정도는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허세가 아니었다.

강현은 스탯 창을 각성함으로써 엄청난 체력과 회복력을 얻게 되었다.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 정도의 근육통을 느낀 적은 없었으나,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흐음... 아닐 텐데요? 저를 못 믿으시겠다는 건가요?”

하지만 엘리스의 말에 확신이 흔들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자신의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는 말이 존재하지만, 과연 엘리스보다 더 잘 알 수 있을까.

“... 그렇습니까?”

“네, 이 정도에서 마치자고 해도 계속 더 하겠다고 고집을 피운 누군가 때문에 조금 심각하게 몸이 혹사한 상태거든요.”

후후, 엘리스가 눈웃음을 지으며 웃었다.

성숙함과 퇴폐미가 섞인 그녀의 눈웃음과 웃음소리는 매력적이었다.

강현은 푸스탄트가 오늘은 끝마치자고 했지만 더 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긴 했다.

말 그대로 더 할 수 있었기 때문에.

1달에서 반년이나 걸리는 수련을 하루빨리 끝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다.

더군다나 검신이 해주는 안마라.

솔직히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 배를 붙이고 편히 누워보세요.”

강현은 엘리스의 지시에 따라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종아리에서부터 따듯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져 왔다.

“크흡...!”

“어때요?”

엘리스의 손이 종아리를 주무르기 시작함과 동시에 강현은 곧장 이를 꽉 깨물었다.

‘무슨 안마가...!’

극락이라는 두 글자는 엘리스의 안마가 주는 느낌을 표현하기에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손이 주무르고 손가락이 꾹꾹 눌러줄 때마다 뭉쳐있던 근육들이 절로 풀어졌으며 고통은 시원함을 넘어서 쾌락으로 느껴져 오기 시작했으니까.

“조, 좋습니다...”

“다행이네요.”

엘리스의 안마는 계속되었다.

다리에서부터 허리를 지나 몸통과 목까지 구석구석 주무르는 그녀의 손길을 가히 신의 손이라고 부르기 손색이 없었다.

“이제, 끝났어요. 어떠세요?”

대충 30분에서 1시간에 걸린 안마가 끝났다.

몸을 일으켜 세워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한 강현은 경악했다.

“완전 괜찮아졌네요...?”

근육통과 전신에 배겼던 알, 찌뿌둥함과 피곤함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의 상태는 딱 그거였다.

푹 자고 일어난 뒤 맞이한 상쾌한 아침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후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주인님.”

“주인님이요...?”

“네, 제 주인님이잖아요?”

신살자의 검의 주인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 여인에게 주인님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사실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냥 이름으로 편히 불어주시면 됩니다.”

“싫어요.”

“... 네?”

“죄송한데 그 명령은 받아들일 수 없겠네요, 인간관계에서 서로를 칭하는 호칭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려드릴까요?”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엘리스가 물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검과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강현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그녀의 의지가 굽혀질 일은 없을 것이란 사실을.

“그리고 편하게 말해주세요.”

“... 그래”

그리고 같은 감각을 또다시 느낀 강현은 이미 결과가 정해져 피곤하기만 할 뿐인 기싸움을 벌이지 않고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그럼 몸도 괜찮아지셨으니 이야기를 나눠보실까요? 피차 서로에게 궁금한 점이 많은 거 같은데.”

“그래, 그럼 나부터 물어도 괜찮겠어?”

“편한 대로 해주세요.”

강현은 엘리스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검술에 관한 것부터 검신 엘리스에 관한 것.

그리고 방금 받은 안마라던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