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검신(?) 엘리스, 신살자(??者)의 검 (1)
* * *
이계의 신격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한 검신, 엘리스는 신격을 포기함으로써 불멸자가 아닌 필멸자의 운명을 선택했다.
세월이 흘러 그녀는 어느새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되었으며 필멸자의 운명인 임종을 맞이했다.
사람다운 죽음을 할 수 있어 기쁘다는 말을 남긴 그녀는 여느 때보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지은 채, 두 눈을 감았다.
엘리스의 시신은 그녀가 원하던 대로 화장시킨 후, 유골을 바다에 흩뿌려주었다.
죽고 난 후에도 자신이 지킨 넓고 아름다운 세계를 지켜보고 싶어 했기에.
그리고 엘리스의 죽음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를 뒤지며 신격을 베어낸 그녀의 검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그녀의 검이 발견되는 일은 없었다.
∴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사람을 벨 수 없는 검이라니.
검을 든 팔을 치켜들고 내리치면 당연히 베일 수밖에 없다.
사람의 피부는 칼날의 날카로움을 견뎌낼 수 없다.
만약 그게 가능했더라면 칼이라는 무기는 탄생하지 않았겠지.
그렇기에 강현은 생각했다.
푸스탄트의 말이 의미가 물리적인 개념이 아닌, 철학적인 사상 또는 신념에 근접한 것이 아닐까라고.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하긴, 사람들을 지키려고 만든 검술이니까...”
“잘못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내가 말한 대로 이 검술을 배운 그 순간부터 검을 사용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게 된다.”
“... 그게 말이 돼...?”
푸스탄트의 말에 강현의 예상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에 강현은 당황했다.
“강현이 너는 검을 휘두른 것이 검술이라고 생각하겠지.”
“아니... 검술이 망치를 휘두르진 않잖아...?”
“검사에게 있어서 검술이란 또 다른 자신이다. 검술을 수양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자기 자신을 수양함으로써 검술을 수양하는 것이지.”
“... 이해가 안 되는데.”
푸스탄트가 말한 이야기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과 검으로 사람을 벨 수 없다는 사실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관계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는커녕 아주 작은 연결점조차 찾을 수 없었다.
푸스탄트는 강현이 이해하지 못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본인 스스로도 뭐라 설명해야 할지 쉽게 감이 잡히질 않았으니.
하지만 언젠가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어떤 식으로 설명을 해줄지 미리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사용할 마법에 걸맞은 술식이 필요하지.”
푸스탄트가 설명을 시작했고 강현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검술도 완전히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육체에 검을 사용하기 위한 검술을 기억하게 만든다.”
“응.”
“그리고 나는 이 검술을 만들고 육체가 기억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한 가지 속박을 부여했느니라. 육체뿐만이 아닌 영혼에까지 부여된 속박을.”
“... 그 속박이 사람을 베지 못한다는 거야?”
“그래 네 말대로다.”
육체와 영혼에 걸어놓은 속박.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묻고 싶었지만, 데미갓인 푸스탄트는 규격외의 존재다.
인간의 기준으로 이해하려 들어선 평생 이해할 수 없겠지.
“힘의 천칭은 항상 수평을 유지해야만 하는 게야. 나는 사람을 베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검으로 사람을 베지 않겠다는 속박을 부여함으로써 그에 걸맞은 힘을 얻어냈지.”
잔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
특정한 영역을 펼치는 능력.
단 하나의 공격도 흘려보내지 않는 완벽함.
확실히 그렇게 생각한다면 수지타산이 맞았다.
“그렇구나...”
“나는 확신하고 있다. 온 세상을 뒤져도 이 검술만큼 누군가를 지키기에 특화된 검술이 없느니라고. 그와 동시에 사람을 베겠다는 목적에 있어선 이 검술을 최악의 검술이다.”
“또한 왜 검사들이 자신의 검술 단 하나만을 갈고닦는지 너 또한 알고 있을게다.”
“응.”
무수히 많은 검술은 각각 다른 능력치를 요구한다.
근력과 민첩함, 기교, 체력.
모든 요소가 검술에 있어선 중요한 능력치지만, 중요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자신의 신체만큼 거대한 검을 휘두르는 대검은 일격, 일격을 중요시한다.
그만큼 강인한 힘을 요구한다.
푸스탄트의 검술을 모든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엄청난 스피드를 요구한다.
한방 한방보다는 상대를 교란함으로써 착실하게 대미지를 쌓아가는 데 특화된 레이피어와 같은 검은 기교를 요구하고.
그런 만큼 검술마다 훈련법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
육체가 검술을 기억한 후에 새로운 검술을 받아들이긴 위해선 기존의 검술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검사들은 자신이 익힐 최고의 검술을 찾아 평생 동안 그 검술을 갈고닦는 거다.
심지어 푸스탄트의 검술은 영혼에 속박을 걸어놓음으로써 더욱 강력해진 검술.
“그 검술을 한번 배우면 다른 검술을 평생 익히지 못한다는 뜻이지?”
푸스탄트의 의도를 파악한 강현이 물었고 푸스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겠느냐?”
강현은 고민했다.
데미갓인 푸스탄트는 호언장담을 했다.
누군가를 지키는 것에 있어선, 최고의 검술이라고.
하지만 사람을 벨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당연히 배워야지.”
하지만 푸스탄트의 제자인 만큼, 그의 검을 계승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상대를 공격할 수 없더라도 상관없다.
푸스탄트의 검술이라는 최강의 방패를 얻었다면, 마법을 최강의 창으로 만들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평생 이 검술을 제외한 다른 검술을 배우지 못할 게다.”
“다 생각이 있다고, 할아버지.”
그리고 다른 검술을 평생 동안 못 배우게 된다는 디메리트.
상관없었다.
아직 그에겐 아껴둔 물건이 하나 있었으니.
∴
옛적에 한 여인이 존재했다.
검사들의 신으로서 신화를 만들고, 영웅으로써의 민담을 통해 구전되어온 그녀는 설화적 존재였다.
이계의 신으로부터 세계를 지켜냈다는 그녀는, 검강을 깨우침으로써 검성의 경지를 도달한 후 신격조차 베어버릴 수 있는 검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검술의 극치를 통달했으며, 단 한 자루의 검으로 모든 마법들과 모든 물질들을 넘어 신격과 공간조차 베어냈다고 구전되어왔다.
물론 어디까지나 전설 속의 이야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는 아마 평생 동안 알 수 없을 거다.
하나의 신앙이다.
자신이 믿는다면 진실.
믿지 않는다면 거짓이 되는.
하지만 검성의 경지를 초월함으로써 검신(?)의 경지에 도달했던 이가 먼 과거에 존재했다는 사실만큼은 진실이었다.
[페론티아 온라인]이라는 게임에서 검사 캐릭터를 후반까지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전부 알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캐릭터가 무슨 검술을 사용하든 간에, 검신과 관련된 메인 시나리오를 반드시 거쳐야 했으니.
그리고 아직 사용하지 않은 아이템이 있었다.
회귀한 후에 흑적초의 씨앗과 함께 받은 선물.
[선물]
[사용자가 원하는 레전더리 등급 이하의 아이템, 또는 S급 이하의 스킬 중 하나를 선택하여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건...”
푸스탄트는 강현의 바로 앞에 생겨난 작은 상자 하나를 바라봤다.
허공에 둥둥 떠 나니는 상자는 강현이 자신을 받아주길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는 강현에게 들은 바가 있었기에 저 상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뭔지 기억 나?”
“그래,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준다는 선물이 아니더냐.”
강현은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왔다.
일정 등급 이하의 아이템, 또는 스킬을 얻게 해 주는 선물을 통해 무엇을 받을지.
4600시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페론티아 온라인]을 플레이해왔던 강현에게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너무나도 많았다.
처음에는 스킬을 생각했다.
하지만 강현은 자신이 모든 마법을 익히고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선택지에서부터 스킬을 제외시켰다.
스킬은 곧 마법이었기에
그래서 강현은 장비를 생각해봤다.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모든 능력치를 향상해주고 모든 암흑 속성 공격에 절대적인 면역을 부여해주는 성국의 로자리오.
하지만 성녀와 성자를 위해 존재하는 아이템을 자신이 차고 다니다가는 이단 신문관들에게 끌려가 고문을 받다 죽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모든 종류의 언데드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저주의 반지.
기타 등등.
레전더리 급 아이템들 중, 좋은 아이템은 넘쳐났지만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했다.
끝내 좋은 마법 지팡이를 얻을까 했지만, 마법의 증폭과 성질 변환은 천재인 강현에게 있어서 숨을 쉬는 것보다 더 간단한 일이었다.
마법 지팡이의 효과들 중, 2가지의 효과나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은 마법 지팡이라는 선택지에서부터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아끼고 아낀 지금.
강현은 드디어 선물을 사용할 곳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맞아. 이제 검술도 베울 건데 내가 쓸 칼이 한 자루쯤 필요하지 않겠어?”
마법은 지팡이가 있다면 좋지만 없어도 사용할 수 있다.
그에 반해 검술을 검을 사용한 기술.
검이 없다면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강현은 자신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무기를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선물은 검신의 검, 신살자(??者)의 검으로 한다.”
선물을 받아 든 강현이 상자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알림 창이 나타났다.
[정산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정산 과정 중, 오류가 방생하였습니다.]
[신살자(??者)의 검의 합당성을 계산중입니다.]
‘... 역시 이렇게 되나.’
일단 신살자의 검은 이름 그대로 전설 등급을 넘어선 신등급 이상의 무기다.
레전더리 등급까지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선물로는 받지 못해야 정상인 검.
하지만 선물은 왜 거부하지 않고 합당성을 계산하고 있는 것인가.
신살자의 검은 검신, 엘리스의 영혼, 자아가 깃든 에고 소드(Ego sword)다.
스스로의 자아, 에고가 깃든 모든 무기들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성장형 무기라는 특징.
에고 소드는 사용하는 주인의 능력에 따라 노멀 등급부터 시작하여, 레어, 에픽, 유니크, 레전더리를 걸쳐 갓, 신등급의 무기로 성장한다.
당연히 검술을 사용해본 적이 전무한 강현에게 있어선 신살자의 검은 고작 노멀 등급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정산중 오류가 발생했다고 하는 거겠지.
그래서 강현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합당성을 인정받으면 좋고, 못 받으면 아쉬울 뿐이었으니까.
“방금 신살자의 검이라고 한 게냐?”
푸스탄트가 물었다.
그는 신살자의 검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검들 중에서 신살자의 검을 선택하리란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응.”
“허허... 그래, 좋은 선택이겠구나.”
“할배도 그렇게 생각하지?”
모든 검술의 극치를 통달한 검신, 엘리스가 사용했다는 검.
만약 전설 속 이야기처럼, 검에 엘리스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면 다른 검술을 배우지 못한다는 문제의 해결책이 되어줄 수도 있었다.
“받을 수 있을지가 문제긴... 오 됐다.”
[신살자의 검에 대한 합당성이 인정되었습니다.]
[신살자의 검이 소환됩니다.]
“... 이게 신살자의 검.”
강현의 앞에 한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검은 손잡이와 약간의 곡선을 그리고 있는 금색과 청색으로 이루어진 크로스가드.
순백의 도신은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강현은 검을 집어 들었다.
가벼움과 묵직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검.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저의 주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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