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지키기 위한 검 (2)
* * *
“검을 다룬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라 생각하느냐.”
푸스탄트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황금색의 도신을 가진 롱소드는 예리한 칼끝을 지님과 동시에 칼날은 무엇이든 벨 수 있을 듯이 날카로웠다.
푸스탄트는 자신의 칼을 살펴보며 물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를 지킨다. 그게 검을 다룬다는 행위가 갖는 의미라고 생각해. 명성을 위해 서거나.”
“정답이다. 사람마다 지향하는 목적에 따라 자신의 검에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기사들은 충성을 바치기 위해.
범죄자들은 타인의 것을 빼앗기 위해.
모험가들은 돈을 위해.
귀족들은 자기 자신이 하나의 억제력이 됨으로써,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이 드넓은 세계 안에는 수많은 검법과 검술이 존재한다, 왜인지 알고 있느냐?”
푸스탄트의 물음에 강현은 잠시 동안 고민했다.
그는 질문을 하기 전에 검이 갖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답은, 그가 했던 질문과 필연적으로 연관성이 있을 거다.
“검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다르니까.”
“그래,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한 검술을 만들고 체계화시키며 발전시켜왔다. 검을 다루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목적이, 무수히 많은 검술을 만들어 낸 것이지.”
강현은 검을 배우기에 앞서, 마법사로서의 경지를 쌓아왔다.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 확실한 목적을 갖는 것은 성공을 위한 중요한 요소중 하나였다.
그런 강현 마법사로서의 목적과 검사로써의 목적을 혼동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게 스승의 역할을 맡고 있는 푸스탄트에게 있어선 제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다.
“그럼 묻겠다, 강현이 너는 검과 마법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으음...”
강현은 고민했다.
평소와 달리, 이번에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한 강현은 입을 열었다.
“추구하는 목적의 차이.”
“흐음... 말해보려무나.”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인 답변.
그 답변을 들은 푸스탄트는 생각 했다.
강현은 이미 자신이 짚고 넘어가려 하는 부분을 알고 있다고.
“마법은 연마하는 모든 마법사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지식을 학습함으로써,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던 마법을 창조해내거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나가는 거지.”
“그에 반해 검을 수련하는 것은 무슨 목적을 지녔든 더욱 강해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고.”
마법사는 문(文)이라면 검사는 무(?)다.
그게 마법사와 검사의 궁극적인 차이였다.
마법사들에게 있어 마법의 경지를 올림으로써 얻는 강함은 부차적인 소득에 불과하다.
검사들에게 있어, 검술과 검법을 만드는 것은 강해지기 위한 방법에 불과하고.
“잘 알고 있구나.”
강현의 대답을 들은 푸스탄 트는 검과 마법의 차이를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묻을 테니 대답해보거라. 너의 스승인 나의 검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 거 같으냐?”
“... 잘 모르겠는데... 보통 상대를 제압할 때 많이 쓰지 않나?”
잠시 고민해본 강현이 답했다.
푸스탄트의 검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강현으로써는 알 수 없었다.
푸스탄트의 전투는 대부분 몬스터를 상대로 이루어진다.
그는 몬스터를 상대할 때 마법을 사용하며, 가끔 산적과 도적들과 같은 인간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만 검을 사용한다.
하지만 푸스탄트가 누구인가.
실제로는 습격받을 일이 거의 없었기에 푸스탄트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럼 이제부터 직접 보고 생각해보려무나.”
푸스탄트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따듯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일순간에 사라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투기가 느껴져 왔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으며, 호흡조차도 힘겨워졌다.
공기의 흐름이 뒤바뀌었다.
“... 응.”
강현은 정신을 부여잡고 푸스탄트에게 집중했다.
필멸자의 운명을 초월하여 반신, 데미갓이 된 푸스탄트의 검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며, 푸스탄트가 인정해준 재능과 플레이어 능력이 있다.
더 강해질 기회다.
“이제 나에게 마법을 사용하거라.”
“... 마법?”
검술을 배우는 데 갑자기 무슨 마법이란 말인가.
강현은 의아해했다.
“그래, 네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들 중 가장 강력한 마법을 쉴 새 없이 내게 쏟아내라. 나를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
아마 검술과 관련된 의도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또한 아무리 최선을 다해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푸스탄트에게 작은 상처조차 주지 못할 거다.
그 사실을 푸스탄트 또한 알고 있기에.
“괜찮겠어?”
하지만, 괜한 오기가 생겼다.
어느 정도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강현이었기에, 당연히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푸스탄트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어차피 강현도 안다.
흠집조차 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더라도 푸스탄트가 놀라도록 만드는 소박한 목표는 괜찮지 않겠는가.
“네 스승이 누구더냐.”
“하, 하하... 그래, 알겠어.”
진심으로 간다.
“호오...”
강현에게서부터 기백이 느껴져 왔다.
아직 정제되지 않아 투박하기 그지없었으나, 확실한 투기가 느껴져 왔다.
강현은 항상 생각해왔다.
사용할 수 있는 마나의 한도 내에서 어떠한 마법이 가장 강한 위력을 보일 수 있을지.
모든 속성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강현은 이미 여러 개의 조합을 짜둔 상태였다.
“타올라라, 불꽃이여. 솟아올라라. 뿌리들이여.”
[스킬: 1 위계 화 속성 마법, 화염을 사용했습니다.]
[스킬: 5 위계 목 속성 마법, 뿌리 옭아매기를 사용했습니다.][×15]
땅에서부터 뿌리가 솟아올랐다.
수없이 많은 나무가 존재하는 울창한 숲 속.
숲에 뿌리는 얼마든지 있었다.
온 사방에서부터 솟아오른 뿌리는 푸스탄트를 옭아맸으며 화염은 뿌리를 불태웠다.
“뒤덮어라, 대지여.”
뿌리들이 푸스탄트의 육신을 옭아맸고 후 불이 붙어 불타오르기 시작한 직후.
[스킬: 3 위계 토 속성 마법, 바위 덮기를 사용했습니다.]
땅에서부터 솟아오른 회색의 돌들은 구체의 형태를 취한 채, 푸스탄트 주위를 뒤덮었다.
마지막.
“폭발해라, 불과 바람이여.”
[스킬: 5 위계 화, 풍 속성 마법, 화염 폭발을 사용했습니다.][×2]
약 10초라는 시간에 걸쳐 모든 마법이 시전 되었다.
상대를 속박한 뒤, 밀폐된 공간에 가둔다.
불타오르는 나무의 뿌리는 내부 온도를 급격하게 상승시키기 시작함과 동시에 연기로 가득 차게 된다.
마무리로 내부의 공기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화염 폭발까지 사용했다.
공기가 사라지고 불이 꺼지더라도 상관없다.
인간은 공기가 없으면 죽는다.
“성공하면 안 되긴 하는데... 했으려나...?”
강현은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폈다.
제한된 위계의 마법만으로, 1대 1의 상황에서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하거나 죽이기 위해 만들어둔 마법 연계.
강현은 자부할 수 있었다.
이 마법 연계의 살상력만큼은 확실하다고.
하지만.
“... 통했겠냐고.”
강현도 어차피 통할 리가 없단 사실을 알고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미리 예상해줬던 대로, 푸스탄트에게 티끌만큼의 상처도 입히지 않았다.
“근데 좀 말이 안 되는데...”
하지만 강현이 놀란 것은 따로 있었다.
푸스탄트가 입고 있던 옷조차 멀쩡했던 것이었다.
불에 타지도 흙에 더럽혀지지도 않고 새하얀 순백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거다.
‘특수한 아이템은 절대 아니야.’
강현은 알고 있다.
푸스탄트가 입고 있는 옷은 수도의 위치한 한 옷가게에서 구매한 옷으로 특수한 마법이 부여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마법을 사용한 걸까.
아니다.
푸스탄트의 마나가 움직이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을뿐더러 강현도 모르는 사이에 마법을 사용했다면 대기의 흐르는 마나에 마법술식과 관련된 흔적이 남아야지 정상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아, 내 마법이 썰린 거였구나.”
그리고 강현은 깨달았다.
그를 옭아맸던 뿌리에.
뿌리를 불태웠던 화염에.
그를 뒤덮었던 바위의 감옥에.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새겨진 마법 술식이 양단되어 있었다.
그리고 푸스탄트의 검에 푸른 마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기적을 베어내는 검, 검기.
아니, 그 이상이었다.
더욱 정교하며 안정되어 있다.
단단함과 유연함이 공존하고 있으며, 더욱 강한 힘이 느껴져 왔다.
“... 검강이었구나.”
검기의 다음 단계이자, 모든 검사들이 향하는 최종 목적지.
검성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기본 조건.
검강이었다.
“근데 그건 검술이랑 상관없는 거 아니야?”
강현이 푸스탄트에게 물었다.
그리고 푸스탄트는 고개를 저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주변을 느껴보려무나. 네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깨닫는 것이 중할 것이야.”
“응...? 으음...”
강현은 정신을 집중한 직후 자신이 여태껏 느끼고 있던 긴장감과 부담감은 푸스탄트의 투기로 인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정체불명의 압박감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본능이 외쳤다.
오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강현은 적절한 비유를 떠올렸다.
자신의 바로 앞에 검을 들고 있는 푸스탄트뿐만이 아닌, 상하좌우.
온 사방에서부터 푸스탄트가 나를 노리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일종의 영역이었다.
푸스탄 트는 자신의 영역을 펼쳤고 강현은 자신이 그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벌써 끝난 게냐?”
강현이 무언가를 깨달았단 사실을 눈치챈 푸스탄트가 물었다.
이대로 끝나면 곤란했다.
그가 토 속성의 마법으로 가린 탓에 검술을 보여줄 수 없었으니.
“... 아니. 아직 마나 많이 남았어.”
“그래.”
이미 최고의 위력을 지닌 마법 연계는 허무하게 실패했다.
그럼 푸스탄트의 검술이 뭔지나 알아야 하겠지.
강현은 마법을 사용했다.
수없이 많은 마법들이 푸스탄트를 향해 쇄도함과 동시에.
‘사라졌어...?! 아니, 아니야.’
일순간 푸스탄트를 시야에서 놓친 후, 다시 그를 시야에 담을 수 없었다.
은신을 한 것인가 싶었지만, 바닥에 찍히는 발자국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푸스탄트는 시야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마법들을 모조리 베어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며 강현은 비효율적임을 느꼈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마법과 빗나간 마법을 전부 베어냈다.
마법을 베겠다는 목적을 지닌 것이라면, 한 자리를 지켜내며 자신을 향하는 마법들만 쳐내면 그만이다.
그게 효율적일 텐데, 왜 굳이 모든 마법을 베어내려 하는 것인가.
강현은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강현이 난사한 마법들 중, 그 무엇도 푸스탄트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푸스탄트의 행동은 마치 자신의 뒤로 마법을 넘겨보내지 않겠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고 강현은 생각했다..
“... 그런 거였구나.”
강현은 더 이상 마법을 난사하지 않았고, 엄청난 쾌속으로 움직이고 있던 푸스탄트를 드디어 시야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깨달은 게냐?”
검을 지팡이로 되돌린 푸스탄트가 물었다.
“응.”
“그럼 다시 묻겠다. 나의 검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 거 같으냐?”
“지킨다. 지키기 위한 검 맞지?”
“정답이다, 오직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단 한 가지의 목적을 두고 발전시킨 나의 비전 검술이지.”
“오오...”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영역과 엄청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쾌검.
그리고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지니고 발전시킨 검술.
강현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너무 빠른 탓에 검술 자체를 눈에 담기란 불가능했지만, 무엇을 위한 검인지만큼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검술에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지.”
“응? 그게 뭔데?”
“이 검술은 사람을 베지 못한다.”
“... 검이 사람을 못 벤다고?”
강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