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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34화 (34/148)

〈 34화 〉 몬스터 습격 (3)

* * *

약제사였던 강현에게 대규모 전투란 낯선 경험이었다.

전투가 시작된 후, 호기롭게 몬스터들과 전투를 시작한 강현이었으나, 현실은 참혹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며 고통의 찬 비명이 여기저기, 사방팔방에서 들려온다.

몬스터의 비명, 인간의 비명 가릴 것 없이 전부.

오인사격.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던 중, 등 뒤에서부터 마법과 화살이 날아와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발치에 무언가가 걸려, 시선을 아래로 움직이면 끔찍한 시체가 이따금씩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순백의 빛을 내뿜는 구름에서 빗줄기처럼 떨어지는 빛무리.

푸스탄트의 10 위계 빛 속성 마법 ‘성지를 적시는 치유의 비’가 사람들을 감싸고 있었음에도, 즉사한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전투 상황임에도, 모험가들은 몬스터가 드랍한 마석과 부산물들의 소유권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크윽...”

무언가에 뭉개져, 고깃덩어리가 된 인간의 시체를 밟은 강현은 기분 나쁜 탄식을 내뱉었다.

물컹거리고 축축하고 끈적끈적하다.

토악질이 절로 나는 감각을 느끼며 생각했다.

목숨을 건 전투를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

마나를 늘리기 위해, 푸스탄트와 함께 몬스터를 사냥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몬스터와의 전투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닌.

같은 인간들의 비명과 시체.

오인사격.

전투의 전반적인 양상.

기타 등등.

신경 쓸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강현 씨, 괜찮으세요?!”

주변에서 모험가와 전투를 벌이고 있던 오거의 목을 양단한 레이가 다가오며 물었다.

그녀의 검에는 붉은빛의 검기, 생력의 검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 괜찮아.”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약제사로 살아오며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는 환자들은 얼마든지 봐왔다.

그 어떠한 인간의 시체를 보더라도,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던 푸스탄트를 보는 것보다는 백배, 아니. 천배는 나았다.

오인사격은 걱정할 필요도 없다.

7000이 넘어선 선(?) 카르마가 가져다준 행운은 오인사격으로부터 반드시 지켜주었다.

“무리하지 마세요.”

걱정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며 레이가 말했다.

강현은 생각했다.

나는 과연 지금 무리하고 있는 것일까.

“... 아니,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이 따로 있었다.

강현은 자신의 마인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누군가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돌을 벌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마을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기사라는 직책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마나를 쌓을 절호의 기회가 아니다.

마나를 쌓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기회였을 뿐이었다.

“잠깐, 고민 좀 하느라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몬스터들의 수를 줄일 수 있을지.”

생각을 고쳐먹은 강현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폈다.

몬스터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다.

주변을 살펴도 인간의 시체는 스무 구를 넘기지 않았다.

“다시 정신 차리고 가자.”

“... 네!”

‘펜던트가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의 생명이 위험해질 때, 그의 위치를 알려줌과 동시에 진동하는 펜던트.

푸스탄트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에게 있어서 강현은 소중한 제자이며 아들 같은 존재이다.

당장 자신이 전장에 합류한다면, 강현의 안위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푸스탄트는 후방에 남아, 치유사로써 사람들을 돕기로 정했다.

강현은 검과 마법을 배운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모를 수밖에 없다.

가르쳐주지 않았으니.

타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검과 마법을 배운다고 사용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미래로 향하게 만든다.

그가 소중한 만큼, 그를 위험에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하지만 강현이 4 서클에 도달하여 상급 마법사가 된 지금, 그도 직접 몸으로 배워야만 한다.

진짜 전투라는 것이 무언인지.

“... 신이시여.”

푸스탄트가 자신의 신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그 기도에 응답하듯, 성지를 적시는 치유의 비가 시전 되었다.

마나를 끌어올린다.

마법술식을 떠올린다.

떠올린 마법술식을 마법진으로써 형상화시킨다.

마법진으로 형상화된 술식에 맞춰 마나를 움직이고 증폭한 다음, 속성을 변환시킨다.

“나와라, 삼십의 흑견(??).”

그리고 방출한다.

[스킬: 4 위계 어둠 속성 마법, 흑견을 사용했습니다.][×30]

강현의 발 밑에 형성된 검은 마법진에서부터 30개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그림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견의 형상을 취했다.

약 2년 전, 한 마을의 흑마법사가 사용한 것을 보고 습득한 마법.

흑견이었다.

“이건... 강현 씨의 마법인가요?”

“응, 4 위계 어둠 속성 마법이야, 안 어울리지?”

“으음... 솔직히 말하면 그렇죠...? 아무래도 푸스탄트님의 제자시니까.”

솔직한 레이의 대답에 강현은 쓴웃음을 삼켰다.

강현도 스스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물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푸스탄트라는 인물 자체가 어둠 속성의 마법과는 근본적으로 어울리지를 않았으니.

“크크, 뭐 어때, 쓸만하면 그만이지.”

참고로 어둠 속성 마법을 습득한 것은 푸스탄트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현 씨는 이미 5 서클에 도달하신 건가요?”

내심 놀란 레이가 물었다.

마법에는 지식이 별로 없는 레이였지만 최소한의 지식은 알고 있었다.

적을 알아야지 조금 더 수월한 전투를 할 수 있었기에.

방금 강현이 사용한 흑견이라는 마법, 척 보기에도 마나 소모가 적은 마법이 아니다.

그가 소환한 흑견 한 마리, 한 마리가 스스로 자아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흑견에게서부터 느껴지는 힘도 4 서클의 마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아니, 4 서클이야. 5 서클은 아직 조금 남았어.”

“4 서클인데 이만한 마법을 그냥 사용하신다고요...?”

믿을 수 없는 강현의 대답에 레이가 경악했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된다.

사실 낮게 쳐서 5 서클이지.

이만한 힘을 지닌 소환수를 무려 30마리나 소환하기 위해선 6 서클은 되어야 강현처럼 여유로울 수 있다.

“내 마나가 조금 특별하거든.”

강현의 마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더 고급졌다.

그 누구와 비교해도 마나가 가진 힘, 마력이 월등히 뛰어났다.

또한 개개인에 따라 서클에 저장할 수 있는 마나는 조금씩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강현의 서클은 다른 이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마나를 저장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와아...”

레이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오거 20마리를 혼자 썰어버린 네가 놀랄 정도는 아닐 텐데.”

“그, 그건 그렇네요...”

물론 강현의 마법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레이에게는 못 미친다.

아직 13살에 불과한 신체를 지니고도 오거 20마리를 혼자 상대한 레이다.

“흠흠... 흑견, 임무를 내리겠다.”

강현의 앞에 흑견들이 정렬했다.

“너희들은 이 전투지역을 돌면서 즉사할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지켜라. 대신 죽어서라도.”

강현이 왜 강해지고자 하는가.

푸스탄트처럼, 사람들을 구해주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강현은 흑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즉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푸스탄트의 마법으로 상처는 저절로 치유된다.

푸스탄트의 마법이 케어해주지 못하더라도, 미리 받아간 포션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라도 벌 수 있을 테고.

““아우우우우...!””

삼십의 흑견은 강현을 향해 자신의 고개를 치켜들고 울음소리를 내었다.

명령을 받들겠다는 의미였다.

흑견들은 다시 그림자로 들어간 뒤, 전투 중인 사람들의 그림자를 옮겨가며 자신이 지킬 사람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인벤토리, 중급 마나포션.’

회귀 후에 얻은 능력, 인벤토리에 저장해둔 마나포션을 꺼내기 위해 강현이 머릿속으로 커맨드를 입력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 푸른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코르크 마개를 맨손으로 뽑은 뒤, 마나포션을 마셨다.

떫고 쓴 맛은 여전했으나, 소모됐던 마나가 빠르게 회복되는 것이 느껴져 왔다.

“대지여, 솟아올라라.”

마나를 끌어올린다.

마법 술식이 떠올리고 마법진으로써 형상화시켰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술식에 맞춰 마나를 움직였지만 증폭과 변환은 생략했다.

어차피 주변에 펼쳐진 것이 흙으로 된 드넓은 대지.

마나를 사용하여 흙은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스킬: 4 위계 흙 속성 마법, 흙의 창을 사용했습니다.]

강현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 내의 땅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땅에서는 뾰족한 가시가 솟아올라, 근처에 있던 몬스터들의 몸을 관통했다.

꼬챙이에 꽂힌 몬스터들은, 그대로 즉사하여, 마석과 부산물을 남긴 채, 재가 되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레이야.”

“네, 강현 씨.”

“빨리 끝내자, 피곤해 죽겠다.”

강현의 말투에서부터 자신감이 느껴져 왔다.

레이는 솔직히 걱정했다.

강현이 얼마나 강해졌을지는 몰라도, 전생에서의 그는 전투능력이라고는 전무했던 남자였기에.

회귀 이후에도, 푸스탄트와 함께 행동한 탓에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인 적이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몬스터들과의 전투가 시작된 이후, 그는 급속도로 초췌해지고 있었다.

다들 처음에는 다 그랬다.

훈련과 실전의 간극은 언제나 초심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기에.

보통 여기서 갈린다.

얼마나 빨리 실전에 적응함으로써 극복하는지.

죽음의 두려움에 굴복하고 포기하는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거다.

어떤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사람은 실전을 오히려 더 즐기기도 하고.

강현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음으로써 빠르게 실전에 적응했다.

역시 자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고 레이는 생각했다.

“네, 강현 씨.”

레이의 검에 일렁이던 생력의 검기가 더욱 강렬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몬스터 사이사이를 누비며 휘두르는 검의 궤적에 따라 붉은빛이 잔상을 남기고 서서히 사라져 갔다.

마치 허공에 흩뿌려지는 적들의 피처럼.

그리고 다음날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해가, 산 너머에서부터 서서히 떠올라 어두웠던 세계를 밝게 비추기 시작했을 때.

“우오오!!”

“이겼다!!”

슈레이츠 백작가를 습격해오던 몬스터들은 전부 사라지고 사람들만이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며 드넓은 초원 위에 서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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