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몬스터 습격 (2)
* * *
고요한 적막과 어둠이 가라앉은 마을에 곳곳에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거처와, 모험가들의 숙소.
작은 창문 사이로 빛이 흘러나오며 마을의 어둠과 적막이 깨졌다.
“하아...”
타이밍 더럽게 안 좋네.
강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내일은 아멜리아와 따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강현 씨, 왜 그러세요?”
강현의 한숨에 레이는 불안감을 느꼈다.
내일의 계획이 틀어져 한숨을 쉰 것이 아닐까 하고.
레이는 강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일 아멜리아랑 따로 만나기로 했어. 할 말이 있었거든, 꽤 중요한 말.”
“...! 그, 그런가요.”
레이는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자신이 숨기고 싶은 사실을 굳이 남에게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강현이 솔직하게 말해준다는 것은, 감출 필요가 없는 말이라는 뜻이겠지.
“일단 나중에 얘기해줄게. 일단 몬스터들이 먼저니까.”
오늘까지 제조한 포션과 약들을 전투 지대까지 옮겨야 한다.
자신의 집에서 나온 몇몇 마을 주민들이 임시 공방 앞으로 모였다.
그들은 사전에 약을 옮기는 걸 도와주기로 협의해뒀던 주민들이었다.
“... 하나만, 딱 하나만 여쭤볼게요.”
“알겠어.”
“공녀님의 마음은 알고 계신 건가요?”
“... 응, 그리고 받아줄 수 없고.”
∴
“... 이게...!”
공들여 마련해둔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아멜리아는 분노했다.
강현과 단 둘이서 하루 종일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
심지어 강현이 먼저 만나자고 요청해온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계획도 완벽하게 짜두었다.
아침에는 길거리에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 뒤, 꽃밭을 거닐 생각이었다.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은근슬쩍, 손도 잡아볼 생각이었고.
점심 식사는 그가 좋아했던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마을을 찾아온 바드들의 노래를 들으며 연극인들의 연극을 관람할 생각이었다.
공작가의 차녀인 그녀는 특별한 숙소를 마련받았다.
좋은 시설이 구비된 숙소.
저녁에는 가문에서부터 불러온 전문 요리사가 도착하여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줄 예정이었다.
달콤한 와인과 쿠키들을 먹고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계획이 전무 무너졌다.
하필 오늘 새벽의 산에서부터 내려온 몬스터들 때문에.
눈치도 없다.
딱 하루만 늦게 내려와 줘도 괜찮지 않은가.
“공녀님, 기사님들께서 대기하고 계십시다.”
“예, 가도록 하죠.”
강현의 임시 공방에서부터 자신의 숙소에 도착한 아멜리아.
숙소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녀가 말했다.
시녀는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소로 앞장서기 시작했고, 아멜리아의 발걸음에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오셨습니까.”
“네, 단장님,”
기사단장의 인사에 답하며 자신의 앞에 오와 열을 지켜 정렬한 기사들을 살폈다.
총 100명의 기사들.
하나하나가 정식 기사이며, 기사단장의 경우는 검성의 경지를 넘보고 있는 소드마스터, 검의 주인이었다.
“우리 루이스플 공작가의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기사님들.”
“예!”
전투 지휘권은 공녀, 아멜리아에게 있었다.
실질적인 지휘권은 단장이 행사할 것이 분명했지만, 기사들은 자신들의 섬기는 군주의 말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마을을 공격하는 몬스터들, 단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도륙 내버리세요. 한 마리도 남김없이.”
“네!”
뭔가 기대하던 연설과는 많이 달랐다.
몬스터들을 향한 강한 증오가 느껴지는 아멜리아의 말에 기사들은 의아해함과 동시에 우렁차게 대답했다.
∴
“한 분당 하나씩만 가져가세요!”
강현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자신이 직접 제조한 체력 포션과 약들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모험가들과 기사들은 줄은 서고 빠르게 포션을 받아갔다.
“얼굴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또 받아갈 생각 하지 마세요.”
물론 포션과 약은 돈이 된다.
항상 돈에 목말라있는 모험가들은 섰던 줄을 또 서가며까지 포션과 약을 더 받으려 했고, 플레이어 능력으로 기억력이 향상된 강현은 그런 이들을 걸러냈다.
물론 모험가뿐만이 아니라, 기사들이 그러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잘하고 있겠지.’
레이는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갔다.
푸스탄트는 치유사로써 후방에서 모험가들과 기사들을 지원할 준비에 한창이었고.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모든 모험가들과 기사들에게 포션과 약을 분배해줄 수 있었다.
남은 것들은 슈레이츠 백작가에서 내려온 사람에게 맡겨둔 뒤, 강현도 곧장 전선으로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레이가 있는 최전방이었다.
“나왔다.”
“아, 강현 씨 오셨나요?”
“응, 상황은?”
“보시는 대로예요, 몬스터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 모험가들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어요.”
강현은 주변을 살폈다.
모험가들과 기사들은 각자의 무기와 지팡이를 꺼내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또한 저 멀리 떨어진 산에서부터 내려온 몬스터들은 우리가 있는 슈레이츠 백작가의 마을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엄청 많네.”
아직 거리가 너무 먼 탓에, 무슨 몬스터들이 온 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름 철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에 꼬인 개미만큼 우글거리는 몬스터의 숫자.
정확한 숫자를 가늠할 순 없었지만 500마리에서 1000마리 사이일 것이다.
‘3급 상위부터는 좀 힘든데.’
강현은 자신의 스탯 창을 불러왔다.
이름: 이강현
종족: 인간
선(?) 카르마: 7242
체력: D+ 근력: C 민첩: D 내구: E+ 기교: D 마나: B+ 마력: B+
8년 전, 회귀한 직후 확인했던 스탯에 비해 눈에 띄게 성장한 스탯들.
마법 수련과 체력훈련을 동시에 평행한 덕이었다.
그다음은 스킬창.
일반 능력: 약제학(Master)
특수 능력: 플레이어(?) 대현자의 눈(?)
일반 스킬: 4 위계 마법
특수 스킬:
‘3급 중위권까지는 충분히 할만한데.’
현재 강현은 4 서클에 도달함으로써 4 위계의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중급 마법사의 경지에서 상급 마법사의 경지를 넘보고 있는 상태였다.
멀리서 진격해오는 몬스터들을 보면서 강현이 느낀 것은 설렘이었다.
‘얼마나 많은 마나를 얻을 수 있을까.’
현재 4 서클에 경지에서 1년이나 머무른 상태.
하지만 내면세계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강현은 알 수 있었다.
5 서클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내면세계에서 봤던 4마리의 마나 드래곤과 1개의 드래곤의 알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 몬스터들의 마나가 5번째 마나 드래곤의 부하를 위한 열쇠임이 분명했다.
“강현 씨, 무슨 일이 생기시면 반드시 제가 지켜드릴게요.”
몬스터를 향하는 강현의 시선에 레이는 착각했다.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로 인해, 강현이 긴장하고 있다고.
강현이 지금 얼마나 강한 지는 모르겠지만, 오거 한 마리도 벅찬 수준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었다.
분명 저 몬스터 무리에는 오거 이상의 몬스터들도 섞여있을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지키겠다.
그의 검과 방패가 되기로 했던 다짐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레이는 조금 흥분한 상태였다.
“으음... 잘 부탁해.”
레이의 말을 들은 강현은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뭐가 됐든 레이가 자신보다 훨씬 강한 것은 사실이었다.
“혹시 생력 포션은 몇 병이나 남아있어?”
“지금... 15병 정도 남았어요.”
“... 벌서 5병이나 마셨다고? 무슨 일 있었어...?”
놀란 강현이 물었다.
레이에게 생력 포션을 건네주고 고작 2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레이는 최상급 생력 포션을 마심으로써, 어느 정도의 생력을 소모해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벌써 5병이나 마셨다니.
“그, 그게...!”
별 다른 생각 없이 솔직하게 말한 레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강현이 말한 것처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냥 마신 거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유라면 있긴 했다.
이 포션을 넘겨주며 그가 지었던 표정이 떠올랐다.
또한 재료로 들어간 그의 타액 때문에.
모두가 잠든 밤, 침대 위에서 몰래 마신 뒤...
그렇게 된 거였다.
레이의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고, 변명거리를 급하게 찾기 시작했다.
“너무 무리하지 마, 그러다가 잘못하면 어떡하려고.”
“그, 그건... 죄송해요.”
“괜찮아, 너도 열심히 하느라 그런 거 아니야.”
열심히 하긴 했다.
말 못 할 부끄러운 짓을.
“죄송해요...! 죄송해요...!”
순수하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강현의 모습에 레이는 엄청난 수치심과 죄악감을 느꼈다.
차마 솔직하게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던 터라, 연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다 마시면 또 말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 네.”
한병 한 병마다,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생력 포션이다.
그런데 불순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남용하다니.
레이는 당장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후우...”
레이의 그런 마음을 모르는 강현은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몬스터들과의 대규모 전투.
마나를 얻을 생각에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걱정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몬스터들이 어느새 목전에 다다랐다.
산과 마을 사이에 위치한 초원에 튀어나온 거대한 바위.
그 바위를 몬스터들이 넘는 순간부터 전투가 시작된다.
‘오거도 있고... 트롤까지 있네. 오크랑, 고블린이랑.’
별의별 몬스터가 있었다.
심지어 오거보다 더욱 강한 2급 중위, 트롤까지.
아무래도 이번 몬스터 습격은 쉽게 흘러가진 않을 모양이었다.
죽을 생각이 없으니 강한 몬스터들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겠지.
“온다...”
“다들 준비됐지?”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긴장한.
또 어떠한 이들은 한탕할 생각에 흥분한 목소리로.
그리고.
맨 앞에 서있던 오크 한 마리가 바위를 넘어왔다.
“전투 개시!!!”
누구였더라.
맞다.
슈레이츠 백작가에서 온 기사단장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가즈아!!!”
“우오오!”
머리 위로 무수히 많은 마법들과 화살의 비가 지나가며 저 멀리에 위치한 몬스터들을 덮쳤다.
근질거리는 몸을 참지 못하고 있던 모험가들과 기사들이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강현과 레이도, 그들을 따라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달려 나갔다.
강현은 마나와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레이는 강현을 지키기 위해서.
“... 저도 싸울 수 있어요...!”
“안됩니다 공녀님, 옥체에 상처라도 입으셨다간 제가 죽습니다...!!”
아직 2 서클, 하급 마법사에 불과한 아멜리아는 전투에 참전할 수 없었다.
아멜리아를 지키기 위해 남은 말단 기사가 그녀를 힘겹게 막아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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