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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31화 (31/148)

〈 31화 〉 그 분은 누구신가요? (3)

* * *

공방에 도착한 후, 곧바로 포션 제조에 착수했다.

강현은 레이와 아멜리아에게 잡일들을 시켰다.

포션을 담을 병을 삶게 하거나 재료들을 꺼내오고 완성된 포션을 유리병에 담는 잡일.

다행히도 공방으로 돌아온 뒤 그녀들 사이에서 기싸움이 오고 가진 않았다.

레이와 아멜리아, 둘 다 강현이 지시하는 대로 빠르게 움직여주며 성심성의껏 포션 제조를 도와줬다.

‘레이는 그렇다 쳐도...’

강현은 생각했다.

공작가의 공녀를 부려먹는 평민이라니.

다른 누가 보면 졸도할 상황이었지만 아멜리아는 진심으로 열심히 도와주고 있었다.

가끔씩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문제였지만.

강현은 슬슬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가설을 점차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멜리아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레이와 나의 사이좋은 모습을 보고 기싸움을 한 것도 그렇고.

귀족들 중에서도 작위가 가장 높은 공작가의 차녀가 평민인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것도 그렇고.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이 정도라면 의심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강현은 눈치가 느린 것도 아니며, 이미 그럴 가능성을 생각했었다.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는 건가, 강현은 생각했지만.

“아멜리아 님.”

“네, 넷...!”

“왜 그러십니까? 어디 안 좋으신 건 아니신지.”

“아, 아니요오...! 멀쩡한데... 너무 가까운...”

봐라 얼굴 좀 살짝 들이밀었다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어버버 거리지 않는가.

아까 전까지만 해도 바로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레이와 대화를 나누던 그녀였다.

아무리 봐도 사랑에 빠져 수줍어하는 소녀의 어리숙한 모습이었다.

‘... 이상하네.’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여복에 강현이 기이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자신의 뒤통수에서부터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의 주인을 레이였고, 강현은 헛기침을 하며 다시 포션 제조에 몰두했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춤으로써, 세계는 어둠을 맞이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과 달은 여전히 미약하게나마 세계를 은은하게 밝혀주었다.

꽤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던 마을인 탓에 사람들의 활기가 넘쳐났던 마을에는 낮과 대비되는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았고 몇몇 가정집의 창문 로부터 촛불의 옅은 불빛이 세어 나오고 있었다.

푸스탄트는 말했다.

자신은 어둠이라는 악으로부터 세상을 밝혀주는 태양 같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그런 푸스탄트에게 강현은 답했다.

그럼 자신은 태양이 없는 동안 세상을 밝혀주는 달과 별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진지하게 말하던 푸스탄트에게 반쯤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진심이었다.

그래서일까.

강현은 새벽시간이 너무나도 좋았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잘 맞지 않는 강현에게 있어서 새벽의 고요함이란 마음의 평화를 찾아주는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포션을 제조하거나 수련을 하다가 문뜩 새벽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충만함과 뿌듯함은 이뤄 말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만 해도 그렇다.

아직 성장기인 몸이 성장을 위한 수면을 강렬하게 요구하는 탓에 목도 잠기고 몸도 무거웠으며 눈꺼풀이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피곤한 상태였기에 뿌듯함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오늘 하루 동안 만든 체력 포션만 해도 200병 이상.

미리 대량으로 준비해둔 질 좋은 약초들을 사용했기에 최소 중급부터 최상급에 이르는 포션들이었다.

이 포션들을 몬스터로부터 마을을 지켜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줄 것이다.

체력 포션이 아니더라도 다른 약들도 많이 만들어뒀고.

“아멜리아 님, 오늘 하루 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처음 해보시는 일이라 쉽지 않으셨을 텐데, 열심히 도와주신 덕에 더 많은 포션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강현은 먼저 아멜리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예법 상, 레이와 아멜리아가 같이 있을 때는 더 높은 작위를 지닌 아멜리아에게 먼저 감사인사를 해야 했기에.

“이걸 어떻게 보답해드려야 할까요.”

보답.

아멜리아의 머릿속에 보답이란 단어가 맴돌았다.

습관적으로 아멜리아는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동안 자신이 한 수고를 계산해서 강현에게 어느 정도의 보답을 요구할 수 있을지.

보답이라는 핑계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거나 공작성에 초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 아니에요... 강현 님의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걸로 충분한걸요... 헤헤...”

계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와 한 공간에 있으며 일에 전념하고 있는 그의 근사한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뭔가를 요구할 용기도 생기지 않았다.

그의 얼굴조차 똑바로 마주 볼 용기도 생기지 않는데, 보답을 요구하기엔 아멜리아에게 있어선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얼굴을 붉히며 배시시 웃는 그녀의 모습은 딱 나이에 걸맞은 어린 소녀의 순수한 모습이었기에 꽤나 사랑스러웠다.

순간 습관처럼 아멜리아의 머리를 또 쓰다듬으려 했던 강현은 곧바로 손을 거두었다.

귀족 제도가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오래 살아온 강현에게 아직 그 정도의 깡이 없었다.

‘참, 내가 뭐라고.’

그녀의 본심은 직접 들을 때까지 알 수는 없겠지만, 순수한 선의라는 것만은 확실했기에 강현도 절로 미소를 지었다.

“...”

그런 모습을 보며 질투한 레이는 강현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의 상냥한 점이 너무나도 좋은 레이였지만,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 상냥함이 오로지 자신에게만 향했으면 좋겠다는 과한 욕심이 생긴 것이었다.

“레이, 너도. 멀리서 오느라 많이 피곤했을 텐데, 늦은 시간까지 도와줘서 고마워. 처음 해보는 일이라 많이 힘들었지?”

강현은 레이에게도 감사인사를 했다.

레이도 아멜리아만큼이나 오늘 하루 동안 최선을 다해 일을 도왔다.

그녀의 진실된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강현으로서는 레이의 마음씨가 기쁠 수밖에 없었다.

“저는 강현 씨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레이는 자신의 말이 진심이라고 표현하듯, 결연한 의지가 담긴 말투로 말했다.

뭐든지.

“그래, 알겠어.”

‘뭐든지’라는 표현의 허용범위가 과연 어디까지일까.

강현도 남자였기 때문에 궁금해졌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시간도 늦었으니 슬슬 들어가자. 아멜리아 님, 먼저 들어가 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녀들에게 감사인사도 끝 맞췄겠다.

피곤한 몸을 빨리 쉬게 해주고 싶었다.

“네에... 그. 혹시 내일도 여기서 만날 수 있을까요...?”

“내일도 말입니까?”

“네...!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으음...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 그럼...”

“네, 내일 아침에 이곳에서 만나는 걸로 괜찮겠습니까?”

“네에...! 다, 당연하죠!”

아멜리아는 기쁜 마음으로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포섭을 위한 거니까...!’

내일도 다시 강현과 만날 수 있다.

그와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게 솔직한 마음이었지만 아멜리아는 굳이 외면했다.

쉽게 마음을 내어주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하지만 이미 마음을 전부 내어준 것이 사실이었고 그를 가지고 싶었다.

“강현 씨, 저도 도와드릴게요.”

질 수 없던 레이가 말했다.

“그래 주면 나야 좋지.”

강현은 레이가 이렇게 나올 거란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레이의 방해에 원망의 눈빛을 보냈다.

레이는 무시했고.

“그럼 살펴 들어가십시오. 레이, 너도 잘 자고 내일 보자.”

“네에...”

“네.”

강현은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그가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고 그가 떠나간 자리에는 레이와 아멜리아만이 남아있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강현이라는 공통점으로 만난 그녀들은 오늘이 초면인 데다가 딱히 나눌 말이 없었기에.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가 침묵을 깼다.

그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걸까.

레이는 아멜리아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깨달아버렸다.

강현은 대하는 그녀의 태도와 말투, 눈빛을 보고 그녀가 자신의 연적임을.

그렇다면 잘 부탁한다는 말의 의미는 적으로서일까.

아니면 슈레이츠 백작가의 의뢰를 완수하기 위한 동료로서일까.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무엇의 비중이 더 큰지는 요한만큼 둔감한 사람 아니라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경쟁자가 생기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말 그대로 같은 목적을 두고 다투는 적이라는 뜻이니까.

레이는 자신과 아멜리아를 비교해보았다.

귀족가의 차녀인 그녀는 아름다우며 관리를 받음으로써 점점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또한 평민인 자신과 공작가의 차녀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악연에서부터 시작된 강현과 자신의 관계와 그녀와 강현의 관계를 출발점부터 다르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공녀님."

하지만 레이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모든 면에서 봐도 그녀와 비교했을 때, 자신이 꿀릴 수밖에 없다.

레이에겐 강현이 전부다.

그가 없는 삶은 살아갈 생각조차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당당할 수 있었던 걸까.

그 누가와도,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여인이라도, 그녀는 절대 지지 않는 것이 하나 존재했다.

바로 강현을 향한 마음.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절대 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의지가 되어 행동으로 나타남으로써, 자신의 힘이 되어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또한 평생이 생명이 오가는 위기속에서 삶을 쟁취해왔던 레이다.

그런 레이에게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었다.

"후후, 네."

작게 웃으며 아멜리아가 답했다.

하지만 입만 웃고 있던 그녀의 눈에는 이채가 서렸다.

그것의 정체는 자신감이며 자존감이었으며 투기이자 투지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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