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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30화 (30/148)

〈 30화 〉 그 분은 누구신가요? (2)

* * *

그의 말을 들은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저 통신 스크롤이 원인이었다.

포션을 제조하던 그가 이따금씩 통신 스크롤을 신경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본능적인 불안함이 느껴진 거였다.

‘설마...’

그 동료라고 하는 게 여성일까.

그것도 통신 스크롤을 나눠가질 정도로 인연이 깊은.

“호, 혹시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그를 혼자 보내면 안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한 상대의 주변 인물에 대해 미리 파악해두는 것은 인간과계의 기본 소양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강현은 별 다른 생각 없이 아멜리아의 요청을 승낙해주었다.

꽤 오랫동안 공방에 있었다.

약초의 독한 냄새에 오랫동안 있었으니, 잠깐 숨 좀 돌릴 시간을 가져서 나쁠 건 전혀 없었다.

어차피 나가서 인사만 나누고 곧바로 돌아올 생각이었기에, 별다른 정리는 하지 않았다.

아멜리아와 함께 임시 공방에서 나온 후, 곧장 마을 입구로 향했다.

‘뭔데 떨리냐.’

미약하긴 하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져 왔다.

레이라는 여인과 오랜만에 만나서 두근거리는 건지.

레이라는 회귀자 동료를 만나서 두근거리는 건지.

둘 중 뭐가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인사만 하고 다시 포션을 제조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상관없어요.’

기대하고 있는 강현과 반대로 아멜리아는 긴장하고 있었다.

강현이 말한 동료가 이성일까봐.

하지만 긴장한 것과 별개로 아멜리아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 어떠한 상대든, 만약 강현과 깊은 관계를 맺은 인물이더라도 결국 자신이 그를 쟁취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누구던가.

북부의 지배자, 루이스플 공작가의 차녀이며 훗날 공작위를 계승받을 여인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제국에서 둘째 가면 서럽다고 알려져 있다.

또래들보다 훨씬 앞선 발육은 그녀에게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숙한 매력을 주었다.

아멜리아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닌, 누구나 인정하는 객관적 사실이었다.

아멜리아는 자신의 매력과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상대의 나이가 많든 적든, 작위가 높든 낮든 자신의 가치를 이용하여 항상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이 원하던 것들을 단 한 번도 놓친 적 없었다.

비교해볼 때, 꿀릴 부분이 전혀 없다.

제국의 황녀라고 오지 않는 이상.

그 마저도 그렇게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니고 있는 지위만 꿀릴 뿐이지.

그것이 아멜리아가 가진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단언할 수 있었다.

만약 그 동료가 여인이고 강현과 연인관계라 할지라도 그를 뺏어올 자신감이 있다고.

“그, 그 동료라는 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물론 그 자신감이 강현의 앞에서 진가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으음...”

강현은 고민했다.

레이를 어떤 인물이라고 표현할지.

“좋은 사람이죠.”

잠시 동안 고민한 강현은 깔끔하고 담백하게 대답했다.

아직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지만 그녀가 사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기에.

“그렇군요...”

질문에 대답하는 강현의 눈빛에서부터 애정이 느껴져 왔다.

애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눈빛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아멜리아는 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기 보이네요.”

잠시 동안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의 입구가 보일 위치에 도달했다.

저 멀리 마을 입구 심어진 나무에 기대고 있는 레이가 보였다.

강현은 자신이 여기 있음을 알리기 위해 팔을 들고 흔들었다.

강현과 빨리 만나고 싶었기에,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레이는 금방 강현을 발견할 수 있었고 곧장 그를 향해 달려갔다.

“강현 씨...!”

2주일 만의 재회.

7년간의 기다림에 비하면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지만 레이에게 있어선 강현이란 매일, 24시간 동안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상대였다.

그와 마을을 거닐었을 때의 두근거림과 감정이 떠올라 2주일 내내 밤을 설쳤다.

이마로 느꼈던 따듯하고 부드러운 그의 입술을 떠올리며 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마다... 어쨌든.

많이 보고 싶었다.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마주 보며 시시콜콜한 대화라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강현을 향해 쪼르르 달려가던 레이의 시야에 마을에 풍경과 맞지 않는 한 여인이 보였다.

금발금안.

순백의 드레스와 아름다운 청록색 보석이 박힌 귀걸이와 목걸이.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느껴지는 우아함과 기품은 그녀가 명문가의 자제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레이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다른 귀족가에서 슈레이츠 백작가를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하면 이상할 게 없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옆에 있는 사람이 강현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강현은 자신의 앞까지 달려온 레이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번에 입었던 드레스와는 달리, 평범한 평상복을 입은 그녀였지만 모델이 좋으니 뭘 입어도 아름다운 건 마찬가지였다.

“네... 강현 씨는 잘 지내셨나요?”

“나야 잘 지냈지.”

반가운 마음에 살짝 들뜬 목소리.

하지만 아멜리아에게는 딱히 달가운 상황이 아니었다.

‘... 핏빛 칼날...!?’

강현의 동료가 누구인가 했더니, 세이브리스 모험가 길드의 영웅, 핏빛 칼날 레이였다.

개인적인 친분까지 확인하며 역시 강현은 생력을 치유할 수 있다고 확신한 순간이었지만 그 둘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

레이를 대하는 강현의 태도에서는 강한 친밀감이 느껴져 왔다.

자신을 대할 때는 관심이라고는 티끌조차 보이지 않았던 그가.

또한 레이라는 같은 여성인 자신이 봐도 반해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였다.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는 듯한 강렬한 눈빛이 담긴 붉은 눈동자와 빨간색의 머릿결을 도저히 평민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곱고 아름다웠다.

‘... 위험해.’

위험하다.

아멜리아는 생각했다.

자신이 점찍어둔 약제사인 강현에겐 이성은 자신 말고 필요 없다.

물론 가문의 전용 약제사라고 해서 독신이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런데 그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신가요?”

아멜리아가 생각은 레이의 생각과 상당히 유사했다.

강현과 아멜리아의 거리가 너무나 가깝다.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서로의 어깨가 부딪힐 거 같았다.

‘뭔데 강현 씨 옆에 딱 달라붙어서...!’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자리는 자신의 자리여야 한다.

당장 강현과 마을을 거닐 때도 그가 혹시라도 불편해할까 봐 최소 5 발자국의 거리는 유지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강현의 옆에 서있는 여인은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적어도 저 멀리 있는 지평선까지 강현과 떨어져 줬으면 좋겠다.

“아, 이분은...”

“저는 루이스플 공작가의 차녀, 아멜리아 루이스플이라고 한답니다. 안녕하신가요.”

아멜리아는 기선제압의 필요성을 느끼고는 강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며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아주 조금만 움직이면 서로의 어깨가 맞닿을 만큼에 거리.

‘역시.’

강현을 바라보는 레이의 눈빛을 본 아멜리아는 확신했다.

그가 말했던 동료의 관계를 넘어서는 애정... 아니, 사랑이 담겨있었다고.

또한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분노와 질투가 섞여 있었다.

“공녀님을 뵙습니다, 레이라고 합니다.”

예의를 갖추어 인사한 레이였지만 아멜리아를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어깨와 가슴골이 드러나는 음란한 드레스를 입은 채, 강현에게 접근하는 그녀가 레이의 눈에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레이는 대부분의 드레스가 저 정도 노출은 기본이란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네, 신문에서 봤답니다, 칸트루스 자작령의 작은 마을을 구해주신 영웅이라고 적혀있었지요.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니 엄청 반가운 마음이네요. 그런데 우리 강현 님과 아시는 사이신가요?”

“... 우리?”

아멜리아는 ‘우리’라는 단어를 은근히 강조하며 물었고 레이는 그 단어에 반응했다.

회귀한 이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현과 칭찬을 쌓은 인물인 걸까.

위기감을 느낀 레이였다.

“... 당연하죠, 이 세상 어떠한 사람들보다 더욱 깊은 연으로 맺어진 사이입니다.”

무려 전생에서부터 이어져온 인연이었다.

여기서 밀리는 순간 아멜리아라는 공녀의 술수에 빠져드는 거란 사실을 깨달은 레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렇군요.”

미소를 유지한 채, 대답한 아멜리아였지만 마음은 심란했다.

강현의 반응으로 보아 허세는 아닌 것이 분명했으며 태연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평범한 시골 모험가라고 얕볼 상대가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강적.

“흠흠, 어쨌든.”

그녀들 사이에 이상항 기류를 포착한 강현은 여태껏 조용히 하고 있다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한동안 뭐하고 지낼 생각이야?”

“딱히 계획은 없어요. 마을에 머물면서 몬스터가 습격할 때까지 기다려야겠죠. 강현 씨는요?”

레이는 아멜리아에게 향해있던 날카로운 시선을 강현에게 돌리며 말했다.

당연히 그녀의 눈빛은 훨씬 부드러워진 상태였다.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지네요.’

그 눈빛을 본 아멜리아는 레이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강현을 바라볼 때, 어떤 눈빛을 보내고 있었는지 직접 볼 수 없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혹시... 일정이 없으시면 저번처럼 함께 마을을 둘러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레이가 수줍게 물어봤다.

아멜리아를 떨어뜨려놓을 구실이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강현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순수한 바람이 훨씬 컸다.

하지만 레이의 바람을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건 힘들 거 같아.”

강현의 단호한 거절에 레이는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설마 아멜리아 때문일까.

그녀와 함께 있어야 해서 자신과 있어줄 수 없다는 걸까.

안 좋은 상상이 레이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곧 있을 전투에 대비해서 포션을 많이 만들어둬야 하거든.”

하지만 이어진 강현의 말에 레이는 안심할 수 있었다.

이번 의뢰에서 강현이 배정받은 역할은 전투를 대비한 약의 제조였다.

시중에 판매하는 포션과 약들은 비싸도 너무나 비싸다.

그렇기에 대규모 전투에 대비할 만큼 공급하기엔 경제적 문제가 너무 크다.

그래서 강현은 재료값만 받고 포션과 약들을 제조함으로써 그들을 돕는 것이었다.

물론 전투가 시작하면 약제사로서 할 일은 없어지니 전투에 합류할 것이었지만.

“그,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레이는 순순히 포기하기로 했다.

그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에게 도움이 되어주지 못할망정, 방해가 되는 것은...

그래,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으니까.

그게 레이가 사는 이유다.

“더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본 강현이 미안한 마음에 말했고.

“아뇨 아뇨! 괜찮아요, 강현 씨가 왜 사과를 하세요...”

레이는 얼굴에 홍조를 뛰우고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대답했다.

너무나도 상냥한 강현이었다.

이 상냥함을 직접 얼굴을 보며 느끼는 것만으로도 레이는 충분히 행복했다.

“아멜리아 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약제학의 지식은 없었지만 요령이 좋고 행동이 빠른 아멜리아였다.

부려먹기... 가 아니라 도움받기 좋은 사람이었기에 강현은 물었다.

“네, 네..! 저, 저는... 더 도와드리고 싶어요오...”

“...?”

레이는 어이가 없었다.

저렇게 수줍어하는 아멜리아를 보니 방금 전까지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여인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강현의 시선을 똑바로 유지하지 못한 채, 힐끔힐끔 바라보기만 하는 아멜리아는 보며 레이는 그녀의 위험함을 상향 조정했다.

어차피 자신과 강현의 입장에서는 어린 소녀일 뿐이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경쟁상대조차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줍어하는 그녀의 모습은 연기가 아니라, 진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여자의 감이었다.

또한... 안타깝게도 레이 또한 어린 소녀의 모습임은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아이들보다 발육이 빨라 점점 커져가는 가슴과 골반에 의해 매달마다 속옷을 새로 사야 했으며 얼굴의 젖살이 점차 빠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겨우 13살의 몸.

요한의 말대로 남자들은 이성의 외견을 많이 보고 강현도 마찬가지라면.

그가 좋아해 줄 전생의 육감적인 몸매가 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전생의 기억에서는 지금보다 가슴과 골반, 엉덩이가 지금보다 컸으며 허리도 얇았으니.

“... 강현 씨. 혹시 저도 도와드릴 순 없나요?”

이대로 강현과 아멜리아를 단 둘이 보내선 안된다고 생각한 레이가 물었다.

“당연하지.”

일손이 늘어난다.

강현으로써는 레이의 요청이 반가울 뿐이었다.

‘뭐, 괜찮겠지.’

레이와 아멜리아가 자신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강현이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아멜리아와 만날 일이 거의 없을 것이며 레이에 대한 감정도 정의 내리지 못한 지금, 어설프게 그 사이에 끼어들 이유가 없었으니.

강현은 레이, 아멜리아와 함께 임시 공방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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