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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28화 (28/148)

〈 28화 〉 공작가의 차녀, 아멜리아 루이스플 (3)

* * *

모험가로 활동하며 의뢰를 해결하며 시간을 보냈다.

슈레이츠 백작령의 모집공고에 신청을 넣고 10일이 흘렀을 때, 레이는 슬슬 백작령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이네? 어서 와.”

모험가 길드 앞, 모험가에게 필요한 대부분의 물건을 취급하는 잡화점으로 레이가 들어오자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가게 주인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짧고 간결하게 인사를 건넨 후, 레이는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가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보존 식량.

오래 사용한 탓에 많이 헤진 침낭 대신 사용할 새로운 침낭.

나침반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원래 같았으면 혹시 모를 부상에 대비하여 포션도 구매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통신 스크롤에서 강현이 말했다.

만약 레이가 다치면 자신이 치료해줄 거니까, 혹시라도 포션은 사 오지 말라고.

무슨 대화를 하던 중도 아니었다.

레이가 물어본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통신 스크롤로 먼저 연락을 보내왔을 뿐이었다.

‘강현 씨... 빨리 보고 싶어요.’

포션이 진열된 선반 앞에서 레이는 작게 미소 지었다.

항상 강현의 생각을 할 때마다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레이였다.

언제는 안 그랬냐만은 이번엔 특히 더 기쁘고 행복했다.

그가 자신을 생각해서 말해준 것이 분명하다.

통신 스크롤의 적히는 그의 말 한 글자 한 글자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달콤한 탓에 충치가 생겨버리지는 않을까.

레이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응? 이건...”

필요한 물건들을 다 고르고 계산대로 돌아가려던 순간 레이의 시야에 한 물건이 들어왔다.

모험가로 활동한 이후, 줄곧 이 가게를 애용해왔던 레이였다.

어떤 물건을 판매하고 있는지 모두 꿰고 있던 레이였지만, 그녀가 본 것은 그녀에겐 생소한 물건이었다.

“이건 뭔가요?”

순수한 호기심에 레이가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그거 고무막이야.”

“그, 그런가요...?”

고무막.

남녀가 관계를 맺을 때, 의도치 않게 아이가 생기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피임기구.

어떤 물건인지 알고 있던 레이였지만 고무막을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무막은 성인용품점에서만 취급하고 있으며 레이가 그곳에 갈 이유는 여태껏 전혀 없었으니.

“이게 왜 여기에 있나요...?”

그렇기에 레이가 물었다.

잡화점이라 할 지라도 고무막을 취급하는 잡화점은 난생처음 본 그녀였다.

“그게 있잖아? 요즘 들어서 남녀 혼성 모험가 파티에서 이런저런 사고가 많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돈 좀 될 거 같아서 들여왔지. 엄청 잘 팔려. 모험가들한테 팔아먹으려고 했던 건데 마을 주민들한테도 인기 만점이야.”

“그렇군요... 흠흠...”

원치 않은 정보를 들어버린 레이는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함을 느꼈다.

곧장 고무막에 쏠려있던 정신을 거두고 물건이 담긴 장바구니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가게 주인은 물건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주판알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해서 은화 32닢이랑 동화 71닢. 단골손님 할인으로 은화 32닢만 줘.”

“항상 고마워요.”

“뭘, 자주 이용해줘서 내가 더 고맙지.”

물건값을 안내받은 레이는 동전지갑을 꺼내어 은화 32닢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이건 서비스. 받아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가게 주인이 계산대 밑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레이에게 건넸다.

그 물건의 정체는 고무막이었다.

“이, 이걸 왜... 저는 필요 없어요.”

레이는 확신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성교를 맺는 날이 온다면 자신이 죽는 그날까지 그 상대는 강현 뿐이며 절대 변치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아직 강현과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아직 그의 연인이 되지도 못했으며 손 한번 잡지 못한 사이였다.

“지금 당장 필요 없더라도 세상일은 모르는 거잖아? 미리미리 준비해둬서 나쁠 건 없다고.”

가게 주인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그와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되다면.

어느 순간에 성교를 맺게 될지도 모르니.

“그, 그럼...”

“흐흐, 나중에 사랑하는 낭군님이 생기면 언니한테도 말해줘야 한다?”

“... 네.”

이미 사랑하는 낭군님이 있는 레이였지만 아직 말해줄 수는 없었다.

슈레이츠 백작령으로 향하는 마차 안.

강현은 빠르게 지나가는 마차 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밝은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과 대지를 적시고 있는 빗물을 보는 건 축 처지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또한 그가 타고 있는 마차는 공작가에서 마련해준 고급 마차인 만큼, 특유의 덜컹거림도 적고 쿠션도 푹신푹신하고 좋았지만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

시선이 느껴질 때, 고개를 돌리면 항상 자신을 몰래 바라보고 있던 아멜리아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었다.

그것뿐이라면 상관없다.

좁은 마차 속 공간에서 눈이 마주치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런데 아멜리아는 항상 그럴 때마다 얼굴을 화악 붉히고는 시선을 피했다.

손과 허벅지를 꼼지락 거리는 게 혹시 볼일이 마려운 건가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고.

그냥 신경 끄자고 생각한 후, 다시 시선을 마차 밖으로 옮기면 또다시 시선이 느껴져 온다.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는 상황.

‘혹시 나를 좋아해서 저러나?’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이성과의 연이 없었던 강현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관계는 많이 봐왔다.

풍부한 경험과 오랜 세월 덕에 강현은 눈치 하나는 그 누구보다 빨랐다.

아멜리아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에 빠진 소녀의 행동이었다.

‘말도 안되지.’

하지만 강현은 자신의 가설을 곧바로 기각했다.

아멜리아라는 캐릭터는 절대 누군가에게 마음을 쉽게 내어주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아멜리아 공략할 바에 현실 여친 만드는 게 더 빠르겠네 ^^ㅣ발

게임 속, 아멜리아라는 히로인의 공략 난이도를 그 무엇보다 쉽게 설명해주었던 누군가의 게시물 제목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오르질 않는 호감도를 보며 아멜리아는 정말, 공략하라고 만들어둔 야겜 속 히로인인지, 게이머들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강현 또한 마찬가지였고 4600시간이라는 플레이 타임을 쌓는 동안 아멜리아를 공략했다는 인증글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무성애자도 아니며 동성애자도 아니다.

특이한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런데 그런 아멜리아, 고작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에 빠져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거라고?

말도 안 된다.

‘어쩜 저렇게 생기실 수가 있으신 걸까... 강현 님...’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세상이 돌아가는 일을 전부 예상하기란 불가능하다.

생각대로 되지 않고 가끔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 삶이 아니겠는가.

공작가의 차녀인 아멜리아는 어느새 자신의 마음속으로 평민인 강현을 높여 부르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마차 안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눈호강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심장박동은 격렬하면서도 따스했다.

그녀는 어느새, 동행 요청을 이상하게 말한 탓에 느끼고 있던 수치심을 깔끔하게 잊어버렸다.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사랑을 표현한 감성적인 문장이다.

자신도 그런 걸까.

‘... 아니에요.’

스스로에게 든 의구심을 부정했다.

그가 미친 듯이 잘생긴 건 사실이며 좋은 품성을 지닌 이성임은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쉬운 여자가 아니다.

수많은 귀족가의 자제들의 고백을 냉철하게 거절했던 그녀였다.

그런 자신이 평민에게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니 말도 안 된다.

그저 이만큼이나 잘생긴 외모를 가진 상대를 보는 것이 처음이라 그렇다.

아멜리아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본 목적을 다시금 떠올렸다..

최종 목표는 강현을 포섭하는 것.

목적을 망각하면 안 되기에 아멜리아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자 했다.

이 생각이 4일 동안 이어져왔지만 성공했던 적은 없었다.

“공녀님.”

“네, 넷...!”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다잡으려도 해도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제게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강현이 물어왔다.

지금이 지극히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이전보다 가까운 사이가 될 기회라고.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까.

미리 뭐라고 말할지 생각해두었던 아멜리아였지만 그가 말을 건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결국 급하게 할 말을 정한 아멜리아는.

“나, 날씨가 참 좋네요...”

“... 지금 밖에 비가 오고 있는데, 혹시 비를 좋아하십니까?”

날씨는 우중충했고 폭우가 쏟아져내리고 있었지만 날씨가 좋다는 말실수를 해버렸다.

“네... 좋아해요.”

아멜리아는 화창한 날씨를 좋아한다.

하지만 자신의 말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선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어야만 했다.

아멜리아는 또다시 자괴감에 빠져들어갔다.

“할배, 확실히 마차가 좋긴 좋아. 그렇지?”

슈레이츠 백작가의 성 앞에 도착한 후.

마차에서 내린 강현이 좁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앉아있던 탓에 찌뿌둥했진 몸을 풀며 말했다.

마차가 확실히 걷는 것보다 낫다.

도보로 1일이 걸릴 거리도 반나절만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또한 비속에서 우비를 입고 걸을 필요도 없고.

편하고 빠르며 쾌적함.

그것이 강현이 추구하는 여행의 형태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런 의미로...”

“안된다.”

강현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푸스탄트는 무슨 말을 할지를 예상하고 거절했다.

“말하지 않았더냐, 마차를 탄다면 더욱 서두를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것들을 미쳐 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지 않느냐.”

“에휴, 알겠어.”

푸스탄트는 강현과는 달리 불편하더라도 천천히, 여유로우며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여행을 지향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기에, 강현은 순순히 포기했다.

푸스탄트를 존경한다고 하지만, 그와 모든 사상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강현과 푸스탄트.

두 명 모두 서로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강현은 제자의 신분이기에 푸스탄트의 방침을 따라야 마땅한 것일 뿐.

“흠흠, 그래도 공녀님의 배려 덕에 훨씬 편한 여행길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푸스탄트는 아멜리아에게 말했다.

“후후, 아닙니다. 저 또한 푸스탄트님과 제자분 덕에 외롭지 않은 여행길이었습니다.”

타고 있던 마차의 뒤를 따라오던 20대의 마차들.

그 안에서 내리고 있는 기사들을 살펴보던 아멜리아가 푸스탄트의 말에 대답했다.

우아하게 미소 지은 아멜리아가 대답했다.

어조와 말투, 모든 것에서부터 기품과 당당함이 엿보이는 그녀가 정녕 자신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여인이 맞는 건가.

강현은 생각했다.

‘또 저러네.’

이것 봐라.

또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시선을 피하고 있다.

“강현 씨. 내, 내일쯤에... 마을로 갈 거랍니다. 또 볼 수 있을까요?”

“... 예, 먼저 마을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혹시라도 마주친다면 제가 먼저 인사하겠습니다.”

“네... 헤헤...”

“...”

“오랜만에 뵈었는데도, 아름다움은 여전하십니다, 공녀님.”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손등의 입을 맞추는 슈레이츠 백작가의 장남을 내려다보며 아멜리아는 생각했다.

슈레이츠 백작가의 장남은 누구나 인정할 미남이었다.

하지만 이 느낌이 아니었다.

아무런 느낌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얼굴을 봐도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으며 강현이 자신의 손등에 입을 맞췄을 때 느꼈던 행복함과 이유모를 충만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예, 슈렉님도 마지막으로 뵙을 때보다 훨씬 멋진 남성분이 되셨군요.”

“그, 그렇습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아멜리아가 마음에도 전혀 없는 말을 지어내서 말하자 얼굴을 붉히며 슈렉이 대답했다.

이래야지 정상이다.

자신이 이성을 원한다니, 말도 안 된다.

항상 어느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한마디 한마디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목소리를 떨고 말을 더듬는 행위는 아멜리아로써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상대, 그것도 이성의 호감을 얻는 것은 아멜리아에게 있어선 식사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고.

또한 먼저 원해오는 것은 자신이 아닌 상대여야만 했다.

“아버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가시지요.”

“예, 부탁드릴게요.”

가짜 미소를 꾸며내며 아멜리아가 답했다.

‘... 강현 씨가 보고 싶네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가 누군가를 원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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