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공작가의 차녀, 아멜리아 루이스플 (2)
* * *
외모에 대한 평가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가.
정답은 없다.
사람들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다르며 특이한 취향을 지닌 사람도 존재하니.
아멜리아는 자신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강현을 보며 생각했다.
깔끔한 헤어스타일.
짙은 속눈썹.
커다란 눈방울과 오뚝한 코.
붉은 입술까지.
그의 이목구미에 흠잡을 곳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신께서 직접 한 땀 한 땀 공들여 조각한 조각품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강현이 아닐까.
그뿐만이 아니다.
아멜리아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눈빛이 가진 깊이를 가장 중요시 여겼으며 상대의 눈빛을 읽는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의 눈빛은 곧 그 사람의 성향을 나타낸다고 생각했기에.
이상하게도 그의 눈빛은 도저히 자신과 비슷한 나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었고 그 속에서는 강인함과 엄청난 자신감이 느껴져 왔다.
어떤 난관에 맞닥뜨려도, 절대 굴하지 않고 이겨낼 사람의 눈빛이었다.
아멜리아는 이런 눈빛이 익숙했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루이스플 공작가의 가주, 브라함의 눈빛이 그와 비슷했으니.
또한 피곤한 것인지 축 처진 눈가 밑, 옅은 다크서클에서부터 오는 정체모를 퇴폐미까지.
‘말도 안 돼.’
여태껏, 공 작가의 차녀로서 수많은 사람들과 교제하며 교류해온 그녀였다.
제국에서 외모로 알아주는 다른 귀족가의 자제들과도 여러 번 마주쳤던 그녀였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의 외모에 설렘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멜리아는 생각했다.
자신의 심장이 여태껏 이만큼 떨린 적이 없었던 것은, 아직 강현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아안 돼요. 정신 차리세요.’
자신이 정신줄을 놓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자각한 아멜리아는 곧장 제정신을 되찾으려 했다.
“...? 괜찮으십니까?”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등에 입을 맞췄던 강현이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 당연하죠. 괘, 괜찮아요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강현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하려 했던 아멜리아였지만 흔들리는 자신의 눈동자처럼 말을 더듬고 말아 버렸다.
‘...?’
그런 아멜리아를 보며 히엘은 의아해했다.
이런 아멜리아의 모습을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멜리아는 그 누구의 앞에서도 주눅 든 모습을 보인 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에 비해, 항상 당당했으며 특유의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런 그녀가 말을 더듬고 있다니.
경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뭐가 문제지.’
혹시 정신계 마법인가.
진지하게 걱정한 히엘은 주변의 마나의 흐름을 살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나의 흐름, 마법의 영향은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면...
‘말도 안 되지.’
자신의 앞에 서있는 강현 때문일까.
히엘은 생각했지만 곧장 말도 안 된다고 결론지었다.
그 아멜리아가 고작, 한눈에 반한 나머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말을 더듬으며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것일 리가 없기에.
‘... 설마 아니겠지...?’
자신이 섬기는 주군이 이렇게 마음을 쉽게 내어주는 여인이라니.
히엘은 부정했다.
그리고 히엘의 생각은 강현의 생각과 비슷했다.
아멜리아라는 캐릭터를 잘 알고 있는 강현은, 그녀가 몸이 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살펴보고 있었다.
“아멜리아 님, 무슨 일로 이곳에 직접 행차해 주신 겁니까.”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분위기 속, 푸스탄트가 입을 열었다.
이 분위기를 타파하고 잠시 동안 나가버린 정신을 되찾기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아멜리아는 입을 열었다.
“시민들을 위해 힘써주시고 계신 푸스탄트님과 제자분께서 아직 점심식사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감사한 마음에 공작가에서 점심식사를 대접해 드려도 괜찮을지 여쭤보기 위해서 찾아왔답니다.”
브라함에게도 이미 허락을 구해두었다.
푸스탄트를 손님으로써 환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도시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을 무료로 치료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평민들에게 있어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치료비와 비교하자면 초졸한 보답일 뿐이었지만, 오히려 그 정도가 딱 좋았다.
또한 아멜리아는 안심했다.
잠시 강현의 외모에 넋이 나가 있었지만 금세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으니.
“흐으음...”
강현은 고민하기 시작했고, 위기를 느꼈다.
왜인가.
아주 중요한 이유였다.
밤빵이 먹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일찍이 체념했다.
푸스탄트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 확신했기에.
“흐음... 브라함 공작님께서는 성채에 계신 겁니까?”
“예, 아버님도 계신답니다. 푸스탄트님만 괜찮으시다면,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었죠.”
“흐으음... 그렇다면 공녀님의 성의에 기대어, 점심식사를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예, 분명 아버님께서도 기뻐하실 거랍니다.”
북부의 대공, 브라함 루이스플.
그는 푸스탄트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인물이었다.
과거, 노인의 나이가 아닌 중년의 나이였던 푸스탄트는 제국의 아카데미에서 교사로 생활했던 때가 있었고 브라함은 그런 푸스탄트의 학생이었다.
‘밤빵 먹고 싶었는데...’
밤빵이 먹고 싶기도 하고, 귀족들과의 식사는 예법을 신경 쓰느라 상당히 피곤하다.
하지만 이 분위기에 초를 칠 수도 없으며, 감사한 마음에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공작가의 성의는 감사해야 마땅하다.
‘뭐.’
전생에 루이스플 공작가에서 식사를 대접받은 적이 있었다.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 요리가 일품이었던 기억 덕에 밤빵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정했다.
“제 제자도 같이 가는 것이겠지요?”
“네, 네... 당연하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줄 알았던 아멜리아가 강현과 한번 눈을 마주치더니 또 한 번 쭈글해진 모습을 보였다.
‘왜 저러는 거지 진짜.’
강현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병이 있는 건 아닐 텐데.
∴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님.”
아멜리아를 따라 곧장 공작성으로 이동한 푸스탄트와 강현.
공 작가의 가주, 브라함 루이스플이 성문 앞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북부의 대공이자, 제국의 기둥이라 칭해지는 공작가의 가주가 성문 앞까지 나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가 푸스탄트를 어떻게 대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예, 오랜만에 존안을 뵙습니다, 스승님.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허리를 숙이며 인사한 푸스탄트를 향해 자신도 똑같이 허리를 숙이며 브라함이 말했다.
스승이라기보다는 선생님이 적절했지만.
정신적 스승이었기에 브라함은 푸스탄트를 스승이라 칭하였다.
“예, 황제폐하의 은덕과 사랑스러운 제자 덕에 행복한 세월을 구가하고 있지요.”
“그것 참 제자로서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군요. 스승님의 세월은 반대로 흐르는 것인지 점점 회춘하시는 것 같으십니다.”
“끌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시는 건 여전하시군요.”
오랜만에 만난 푸스탄트와 브라함 모두, 반가움 마음을 숨길 순 없었다.
굳이 성문 앞에 서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으니.
“하하, 그런데... 오랜만에 보는군요. 어린 꼬마 아이였던 아이가 벌써 이렇게 자라다니, 세월 참 빠릅니다.”
“북부의 대공님께 인사드립니다, 푸스탄트님의 제자. 이강현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직감한 강현은 브라함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래, 오랜만에 보는 군, 어느새 멋진 신사로 자랐구나.”
“모두 스승님의 은혜와 가르침 덕입니다.”
강현의 말을 들은 푸스탄트와 브라함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나이며, 뒷골목의 거지 출신임에도 예법과 화술이 뛰어나다.
고작 두 마디를 나눴을 뿐임에도 강현이라는 인간 자체에서부터 그 나이에 걸맞지 않은 깊이가 느껴져 왔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귀한 손님을 너무 오랫동안 서있게 해 버렸군요.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성의 요리사들이 만찬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드디어 브라함을 따라 공작성 내부로 입성했다.
고급스러운 그림들과 꽃병들이 장식되어 있는 붉은 카펫의 복도를 지나 드디어 공작성 내부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
식당 중앙에 배치된 긴 테이블 위에 진열된 음식들을 보며 강현은 작게 감탄했다.
고급스럽고 먹음직한 음식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밤빵에 대한 강현의 미련을 전부 버리게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브라함이 말했던 것처럼 만찬이라는 표현이 딱 적절했다.
“편히 앉으시지요. 이만 모두 나가봐라.”
“예.”
식당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과 집사, 요리사들이 나가고 우리는 자리에 착석했다.
성의 주인인 브라함이 상석에 앉고 그의 왼쪽 대각선 자리에 푸스탄트 앉았다.
아멜리아는 푸스탄트의 맞은편에 앉았고, 강현은 푸스탄트의 옆에 앉음으로써 자리배치가 끝났다.
‘밤빵도 있네?’
역시 카라이 시스의 명물이라서 그런 걸까.
강현은 기뻐했다.
하지만 동시에 불편했다.
“흠흠...”
대각선 자리에 앉은 아멜리아에게서부터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면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왜 저러는지 알 수도 없으며 무슨 용건이 있는 거라면 그녀가 먼저 말해올 테니까.
“어서들 드시지요.”
브라함의 말과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다.
푸스탄트와 브라함은 여태껏 밀려왔던 지난날들의 회포를 풀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아멜리아는 힐끔힐끔 강현의 외모를 눈 안에 가득 담았다.
강현은 묵묵히 식사를 즐겼다.
가장 먼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밤빵 한 개를 집어 입으로 쏙 넣었다.
빵의 부드러움이 느껴진 후, 꿀에 달콤함과 밤알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시, 식사는 입에 맞으시나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멜리아가 물어왔다.
강현이 간단하게 ‘네.’라고 답하자 아멜리아는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호화로운 식사시간이 끝나고 푸스탄트와 강현은 카라이시스로 내려가 치료 봉사를 계속하였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에 맞추어 환자들의 치료를 끝낸 그들은 공작성으로 되돌아갔다.
이미 푸스탄트와 강현의 행선지를 알고 있던 브라함은 그들이 자신의 성에서 머물 수 있도록 빈 방을 내주었다.
역시 공작가의 손님용 방이라서 그런 걸까.
다른 건 다 모르겠지만 침대의 편안함과 푹신함 만큼은 일품이었기에 강현은 행복한 수면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3일이라는 시간.
그 시간 동안 딱히 이렇다 할 특별한 일은 전혀 없었다.
기본적으로 도시의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시간이 남을 때마다 마법 수련에 임하였다.
식사와 숙박은 공작성에서 편의를 봐주었고.
브라함 루이스플.
그는 강현이 알고 있던 것처럼 냉혈한 인물임은 변함없었지만 자신의 사람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것도 변함없었다.
“3일 동안 감사했습니다. 공작님 덕에 한결 더 편하고 의미 있는 여행이 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야겠습니다.”
푸스탄트와 브라함은 이별의 시간을 맞이하여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강현은 짐을 챙겨 백작령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떠나려니까 아쉽네.’
세계를 방랑하는 강현에게 있어서 아쉬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종의 동반자나 마찬가지였다.
짧은 시간이라 할 지라도 정들었던 마을과 도시들을 떠나는 것은 항상 아쉬운 일이었기에.
그런 만큼 익숙해진 감정이어서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저, 저기...!”
짐을 챙기던 중 아멜리아가 다가왔다.
그녀는 상당히 조급한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계획이 틀어졌다.
강현이 공작성에서 머무는 시간 동안 그와 어떤 식으로든 친분을 쌓아 가까운 사이가 되려 했다.
하지만 친분을 쌓기는커녕, 그의 얼굴만 봐도 심장이 요동치는 탓에 제대로 된 말 한번, 인사 한번 건네지도 못한 채, 3일이라는 시간이 허투루 날려버렸다..
이대로는 안된다.
강현을 공 작가의 전용 약제사로 포섭하여 공작 위 계승에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선.
아멜리아는 자기 자신을 다그쳤다.
‘그저 얼굴이 조금... 조금 많이, 아니, 꽤... 도 아니죠. 엄청, 엄청 잘생겼을 뿐이에요.’
그것 말고는 없다.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을 단련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힘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인이라는 사실을 뺀다면.
...
어쨌든.
자신이 누구던가.
가문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그 어떠한 인물의 앞에서도 항상 당당한 태도를 일관해왔으며 이루고자 하는 것을 항상 이루어왔다.
고작 외모에 홀려 그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자신은 명예로운 루이스플 공작가의 차녀이며 언젠가 공작위를 계승하여 가문의 영광을 이끌어갈 인물이니까.
아멜리아는 말하기 전, 미리 생각해둔 말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되새겼다.
아버님께 들었답니다. 푸스탄트님과 함께 슈레이츠 백작가를 도우러 가신다고. 저 또한 공작가의 차녀로서, 미약한 힘으로나마 백작가를 도우러 갈 예정이랍니다. 혹시 목적지가 같은데 백작가까지 동행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좋아요.’
준비한 말을 되새긴 아멜리아는 강현의 앞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요동치는 심장을 억지로 진정시킨 뒤,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을 강현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리고.
이제 말하기만 하면 끝.
아멜리아는 입을 열었다
“저,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완벽한 실패였다.
함께 싸우게 될 동료로서 동행을 제안하는 것이 아닌, 홀로 남겨지기 싫은 여인이 매달리는 것 같은 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