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재회 (2)
* * *
흑적초를 사용하여 만든 포션 겸 영약, 생력 포션이 완성되었다.
중상급 성수로 만든 포션으로 실험해보았을 때, 생력 포션은 생력을 회복시켜줌과 동시에 생력의 총량을 늘려주었다.
그래서 포션과 영약의 효과를 전부 가진 물건.
편의상 포션이라 부르기로 했다.
“할배, 이거 하나 받아.”
“드디어 완성한 게냐?”
“응, 하급이랑 중상급 성수로 만든 하위 호환 버전도 실험 끝났으니까 부작용은 없어.”
“으음... 마음은 고맙다만 나에겐 필요 없겠구나.”
푸스탄트는 강현이 건넨 최상급 생력 포션을 거절했다.
“왜?”
기껏 생각해서 만들어왔는데, 갑자기 필요 없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네 스승은 반신이 아니더냐, 나에게 있어서 생력은 이미 무한한 것이며 닳지 않는 거다. 그 귀한 포션을 내가 직접 마시더라도 아무런 효과를 볼 수 없겠지.”
푸스탄트는 반쪽짜리라고는 해도 신이다.
필멸자의 운명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곧, 생력의 무한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그럼 할배는 뭐, 불로불사의 몸인 거야? 영원히 죽지 않는 그런 거?”
“그건 모르겠구나. 이승에서의 업을 완수하면 천국으로 승천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끌끌, 푸스탄트가 농담조로 강현의 질문에 답했다.
“그럼 진작에 말해주지 그랬어. 괜히 하나 더 만들었네.”
툴툴댄 강현이었지만 딱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애초에 최상급 성수로 만들 수 있는 최상급 생력 포션은 고작 8병.
여태껏 푸스탄트에게 받아온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겠다는 목표는 무산되어 아쉽긴 했지만 귀한 포션을 아낄 수는 있었다.
“강현이 네가 언제부터 포션을 제조할 거란 사실을 안 알려주지 않았더냐.”
약간의 원망 섞인 강현의 말투 앞에서 푸스탄트는 떳떳할 수 있었다.
그는 여태껏 강현에게서부터 별다른 이야기를 들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그렇긴 하지...”
푸스탄트에게 완전히 논파당한 강현은 찍소리도 못했다.
푸스탄트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강현은 연구가 완료되어 포션을 제조할 거란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깜짝 선물의 부작용이었다.
“그래서 기껏 만든 포션이 쓸모없어질 일은 없을 거 같구나. 읽어보려무나.”
“응?”
푸스탄트는 강현에게 편지를 건넸다.
이미 푸스탄트가 확인한 것인지 편지지를 밀봉한 붉은 밀랍이 찢어져있었다.
“으음...”
강현은 편지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To. 위대한 성인, 푸스탄트님께.
모함가 길드, 세이브리스 지부의 길드장 요한 윌입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인지라, 서론을 생략하고 곧바로 본론만 적은 무례를 용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길드에서 핏빛 칼날이라는 이명을 사용하는 모험가 한 명이 마을을 침략한 오거 무리에 맞서다 무리를 해버리는 탓에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치유 마법과 의학과는 연이 없었던 터라 잘 알지 못하지만 앞으로 길어봐야 2일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생력이 크게 손상되어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상태.
오거들로부터 마을의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어린 소녀가 자신의 한 목숨을 기꺼이 바쳤습니다.
푸스탄트님께서 이 어린 소녀의 선한 마음씨를 갸륵히 여기신다면 부디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어린 소녀의 수입에만 의존하여 운영되는 고아원이 세이브리스 백작령에만 무려 5군데입니다.
그리고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마흔이 되도록 터를 잡지 못한 저에겐 딸아이 같은 존재입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고 제 목숨을 걸어서라도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
이 세계에는 현대인인 강현으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편지 문화가 있다.
첫째, 서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것이 편지를 받는 이의 즐거움을 위한 정성이자 예의로 통용되기 때문에.
둘째, 발송인은 제일 마지막에 적어둔다.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지를 읽으며 발송인이 누군지 상상하는 즐거움을 위한 거라고 할까.
요한 윌, 앞으로 3년 내로 검성의 경지에 도달하는 남자가 보낸 편지는 필체가 반듯하지 못하며 휘갈겨져 있었다.
깨끗해야 할 편지지는 액체가 젖었다가 건조된 흔적이 남아있었다.
눈물일까.
아마 그렇겠지.
어긋난 예법과 휘갈겨진 필체, 지저분한 편지지.
정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예의 없는 편지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요한의 간절함과 급박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보고 어떡하라고.”
어제, 신문을 읽으며 생각했던 것처럼 전생의 원수를 용서해준 것만으로도 신념을 지켰고 푸스탄트와의 신의를 지켰다.
“설마 할배를 죽인 암살자를 가서 치료해주려고?”
그렇기에 강현의 반응은 싸늘했다.
가라앉은 목소리와 날카로운 눈빛을 베일 것만 같았다.
“아니, 나는 일이 있어서 가지 못한다. 그러니 강현이, 네가 다녀와줘야겠구나.”
“... 알겠어.”
강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생각보다 쉽게 승낙했구나.”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관심도 안 주려고 했었고.”
“그럼 어찌 요청을 수락한 것이냐.”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강현은 푸스탄트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할배는 모를 거야, 꿈에서 봤어도. 할배를 잃고 나서 5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괴롭고 외로웠는지.”
전생의 외로웠던 날들을 떠올린 강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 생긴, 유일한 가족을 죽이고, 매일 밤마다 싸늘한 시체가 된 할배를 악몽에서 보게 만든 주범을 내가 직접 찾아서 복수하고 싶었었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왜 레이를 용서해줬는지 밤새 고민해봤어. 할배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후회하고 괴로워하던 그녀에게 가능성을 본 것인지.”
“둘 중에 무엇 때문이었느냐.”
“둘 다야. 처음에는 할배라면 그렇게 했을 거라는 생각으로 치료해주기 시작했어.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지난날을 후회하고 속죄하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한 레이한테서 가능성을 보고 용서해주기로 했고.”
“내가 본 가능성은 맞았어. 이번 생에서 할배를 죽인 것도 아니야, 오히려 지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마을의 사람들을 오거한테서 구해줬고. 심지어 고아원에 기부도 하는 모양이잖아?”
현재의 상황을 본다면 레이는 본성이 악한 사람이 아니다.
맹자의 성선설(???)대로 본성은 선하지만 상황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그녀는 마을의 사람들을 구함으로써 그들에게 대가를 바란 것도, 그들을 구해줬다는 명예를 바란 것도 아니었으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한 삶을 살아온 할배를 동경하고 배우고자 했던 나니까, 당연히 가야지... 어떻게 생각해?”
“뭘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냐. 네가 맞다면 옳은 일이고 틀리다면 그릇된 일인 것을.”
푸스탄트는 흡족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참나... 괜히 말했네.”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강현은 곧바로 깨달았다.
자신의 선(?)과 정의를 바로 세우고 그에 맞춰 줏대 있게 행동해라.
즉, 자신의 행동에 확신을 가지고 행동해라.
“길드장이 워프 스크롤도 같이 보내줬지?”
수도, 페론과 세이브리스 백작가는 상당히 먼 거리다.
마차를 타고 이동해도 6박 7일은 걸리는 거리.
“그래, 어서 준비하고 오려무나.”
“응, 포션 좀 챙기러 공방에 다녀올게.”
“강현아, 잠시만 가까이 와보거라.”
“응?”
강현은 푸스탄트의 앞에 섰고 그는 강현의 머리를 평소보다 더욱 거칠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내 아들, 네가 나의 제자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구나.”
“... 머리 쓰다듬지 말라니까.”
∴
워프 스크롤을 사용하여 강현이 떠난 뒤, 집에는 푸스탄트 홀로 남게 되었다.
‘미안하구나,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육체적, 마법적인 성장뿐만이 아닌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성숙해진 강현을 보며 푸스탄트는 미안함과 뿌듯함을 느꼈다.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
일 같은 건 없다.
강현과 함께 세이브리스 지부로 향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강현이 회귀한 날, 꿨던 꿈을 계속 생각해봤다.
자신이 왜 죽었는지.
끝내 알 수 없었다.
강현이 인질로 잡혀있었던 것도 아니니.
분명 모종에 이유가 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강현을 두고 레이에게 죽어줬어야만 할 모종의 이유.
‘역시 나도 평범한 인간이었지... 욕심이 생기는구나.’
멋지게 성장한 강현이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렇기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푸스탄 트는 레이와 만나더라도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 전까진 그녀와 접촉하지 않기로 정했다.
‘누군가를 동경하던 이에서 누군가의 동경을 받는 사람이 된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스승님.’
∴
정신적 지주가 무너진다면 당연히 기대던 이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아프냐? 내가 한창 모험가로 활동할 때는 매일매일이 생사의 고비였다고. 크크...”
그렇기에 요한은 평소처럼, 가볍고 방정맞은 모습을 연기했다.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는 레이의 모습을 보기 너무나도 슬프고 괴로웠으나, 레이가 자신보다 훨씬 괴로워하고 있을 테니까.
“고작 오거한테 그렇게 당해서 쓰겠어? 짝사랑을 이루러면 겨우 이 정도로는 부족할걸?”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생존하기 위해서는 눈치가 필수였다.
레이는 요한이 연기하며 거짓 웃음을 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자신보다 그가 더욱 힘들어하고 있을 텐데.
“곧 푸스탄트님 오실 테니까 후딱 치료받고 돼지고기 꼬치 먹으러 가자. 길드 앞에 노점상 주인이 왜 요즘은 안 오냐고 묻더라. 아무래도 매상이 줄어서 그런 거겠지?”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못한다.
그의 내면에서부터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주문했던 방패도 완성됐다더라. 확실히 돈 좀 챙겨준 보람이 있나 봐. 대장간 주인이 자기 인생의 역작이라고 호들갑을 떨던데.”
“... 요한.”
“응, 말해. 물이라도 가져다줄까?”
“... 고마워요. 저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죠?”
“... 마, 마음고생은 무슨, 곧 푸스탄트님이 오셔서 치료해주시면 멀쩡 해질 텐데 마음고생을 왜 해? 해도 해도 끝나질 않는 길드 업무가 더 고생시킨다. 어휴.”
방금.
위험했다.
눈물이 흐를뻔했다.
약한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레이가 버틸 수 있게 힘이 되어줘야만 한다.
여태껏 많은 동료를 잃었던 요한이다.
자신의 제자, 딸이라고 생각하는 레이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지만 생력을 고쳐줄 수는 없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무력함을 느낀 그는 자신의 무력함을 외면하겠다는 듯이 더욱 필사적이었다.
“...”
푸스탄트는 원체 바쁜 사람이다.
이 넓은 세계에 수많은 사람들 중,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채, 푸스탄트의 도움을 바라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만약 그가 와서 자신을 치료해준다면 완벽히 회복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푸스탄트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는 저택으로 보낸 상태다.
만약 그가 저택에 머물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편지조차 읽지 못했을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그에게 치유받을 자격 따위, 자신에게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레이였다.
“요한씨...! 가 아니라 길드장님!”
그러던 중, 의료실의 문을 벌컥 열고는 길드장의 비서, 메르시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오셨어요.”
“누가, 푸스탄트님?!”
“아뇨, 푸스탄트님이 오신 건 아닌데...”
그게 무슨 소리인가.
푸스탄트가 온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급하게 메르시가 올 이유는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길드장님, 푸스탄트님의 제자, 이강현이라고 합니다. 저택으로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도움을 드리고자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모험가 길드, 의료실에 도착한 이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푸스탄트가 아니었다.
소중한 자신의 제자가 매일같이 그리던.
꿈에서라도 다시 한번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던.
“거기에 누워계신 분이 핏빛 칼날이신가요?”
흑발 흑안에 예쁘장한 남자아이, 이강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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