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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속 중간보스와 히로인들이 내게 집착함-15화 (15/148)

〈 15화 〉 재회 (1)

* * *

어느 평화로운 날이었다.

흑적초의 연구도 성황리에 끝을 맞이했다.

이제는 소중히 아껴둔 푸스탄트의 선물인 최상급 성수를 이용해 영약을 생산하려 했던 날이었다.

항상 신문을 챙겨봤다.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부재는 현대인인 강현에게 있어서 꽤나 고달픈 일이었기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슬프고 기쁜 이야기 모두 즐거웠다.

또한 힘든 사람들을 돕는다.

그런 목적을 지닌 푸스탄트와 그를 따르는 제자로써 의뢰가 없을 시기엔 세계를 돌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노래로써 승화시키는 바드와 신문의 존재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강현은 오랜 배움 끝에 이 세계에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신문에 적힌 작은 글자, 하나씩 전부 읽어내리던 중이었다.

­약제학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한 약제학 명장, 과연 그는 누구인가. 수많은 귀족가에서 그를 찾기 위해 혈안인 상태. 루이스플 공작가에서 약제학 명장을 찾는 사람에게 백금화 다섯 닢을 사례금으로 주겠다 약속...

‘지치지도 않나.’

강현은 흑적초의 연구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1개월간 제련한 약물들을 황실에 아는 지인을 통해 판매했었다.

피로 회복제와 근육 성장 보조제.

하급 회복 포션과 중급 해독제 몇 병.

그리 많은 물량을 푼 것도 아닌데,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흥미를 가지지 못한 귀찮은 일은 질색하는 강현이다.

집착의 정도를 봐서는 전용 약제사를 거절한다고 해도 귀찮게 할 게 뻔했다.

‘오늘도 핏빛 칼날에 대한 소식은 없나.’

그리고 그가 신문을 매일 챙겨보는 또 다른 이유, 언젠간 자신의 스승을 살해할 핏빛칼날, 레이의 정보를 찾기 위해서였다.

‘지금쯤이면 뒷 세계를 넘어서 양지에서도 핏빛 칼날에 대한 소식이 슬슬 들려와야 하는데.’

전생의 강현이 2차 성징을 맞이할 때쯤, 핏빛 칼날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관련된 정보는 하나도 얻을 수 없었다.

‘오늘도 꽝인가.’

힘든 사람을 돕는 일도, 핏빛 칼날에 관한 정보도 없는 신문이었다.

읽고 있던 신문을 곱게 접으려 할 때쯤, 그의 눈에 한 문단이 들어왔다.

­칸트루스 자작령 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또 칸트루스냐?”

이 귀족 집안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실제 게임에서도 온갖 사건사고가 터졌던 지역이다.

평민 출신의 모험가가 무수한 전공을 쌓아 올려 황실에서부터 자작이라는 작위를 수여받아 귀족이 된 케이스.

당연히 선민의식에 빠져서 사는 여타 다른 귀족들의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었고 결국 척박한 땅을 받게 되었다는 스토리였다.

강현이 이 스토리를 왜 기억하고 있는가.

아카데미 파트에 존재했던 히로인 캐릭터가 예뻤기 때문이다.

“여기도 참 불쌍하단 말이야.”

그래도 걸출한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여럿 육성해냈기에 자작가의 명맥이 유지 중인 상태다.

어쨌든, 약간의 안타까움을 느끼며 강현은 다시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그 마을에 돌연 20마리의 오거가 나타나 침공을 시작했다.

“오거 스무 마리...?!”

경악한 강현은 자신의 눈을 비빈 뒤, 제대로 읽은 것이 맞나 확인했다.

오거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몬스터들 중, 최상위에 속하는 강력한 몬스터다.

오거 한 마리의 무력은 최소 정식 기사, 정식 마법사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다.

그런 오거가 20마리라니.

‘진짜 불쌍하네.’

20마리의 오거에게 습격받은 마을의 사람들은 달아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을테니.

이래서 푸스탄트도 몬스터는 용서하지 않는 거다.

그들은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을 죽이겠다는 본능만이 존재하니까.

‘내가 거기에 있었으면...’

20마리는 무리일지 몰라도 마을 주민들은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애초부터 거기에 있었다면 푸스탄트도 함께 있었을 테니까 아무 문제없었겠다.

안타까움을 느끼며 강현은 다음 문단을 읽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의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바로 모험가 길드, 세이브리스 지부에 소속된 백금 2급의 모험가 소녀가 작은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뭐야.”

이야기의 흐름이 뒤바뀌었다.

아무래도 절망적인 결말을 맞이하진 않을 모양이다.

­적발 적안의 모험가 소녀. 자신을 핏빛 칼날...

“뭐?!”

그 4개의 글자를 읽은 강현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강현아, 기도시간에는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았더냐.”

옆에서 자신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던 푸스탄트가 말했다.

“할배, 지금 기도가 문제가 아니야. 빨리 와서 읽어봐, 어서...!”

“무슨 일이길래...”

“핏빛 칼날, 핏빛 칼날이 신문에 나왔다고!”

“그러냐.”

푸스탄트는 담담했다.

하지만 그는 기도를 중간에 끊으면서까지 강현에게 다가왔다.

기도시간은 철저히 지키던 푸스탄트가 기도를 중간에 끊을 정도라면 그도 놀란 것이 분명했다.

데미갓의 경지에 오른 자신을 죽인 소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푸스탄트는 생각 해왔다.

데미갓과 평범한 인간 사이의 벽은 그저 운으로 어찌해볼 수 있는 높이 차이가 아니기에.

자신이 사망한 후의 강현의 시점에서 일어난 일들만 꿈에서 봤던 푸스탄트는 핏빛 칼날, 레이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강현과 푸스탄트는 함께 신문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이라고 밝힌 소녀는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검을 뽑았다.

자신보다 10배는 거대한 오거의 앞에서도 당당했던 소녀의 검에서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붉은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붉은 검기.

마을의 사람들은 그녀의 검을 그렇게 불렀다.

소녀가 검을 휘둘렀다.

2마리의 오거가 목이 절단되어 죽었고 그녀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을의 주민들은 영웅의 등장에 환호했다.

1시간조차 걸리지 않았다.

스무 마리의 오거가 전부 마석만 남긴 채, 재가 되어 바람에 흩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고 자신을 핏빛 칼날이라 칭한 소녀는 마을의 복구에 사용하라며 백금화 한 닢을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

핏빛칼날의 소식에 관한 정보가 적힌 문단이 끝났다.

“말도 안 돼.”

신문을 읽은 강현이 말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게임 속 스토리와 전생의 기억에서는 핏빛 칼날에게 이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네가 알고 있는, 내가 꿈에서 본 핏빛 칼날의 행보와는 많이 다르구나.”

“응, 그러니까. 나 때문에 미래가 바뀐 건가...?”

회귀자인 강현.

그는 전생과 다른 방형의 삶을 산 건 아니었지만 현재의 삶은 분명 전생과는 달랐다.

전생의 기억을 활용하여 모든 일을 수월하게 해결했다.

그 덕에 전생에 비해 더욱 많이 남은 시간을 활용해 세계 곳곳을 방랑할 수 있었으며 더욱 많은 선행을 베풀며 살아왔다.

나비효과.

초기값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져도 결과는 크게 뒤바뀐다.

자신의 존재라는 아주 작은 초기값으로 인해 레이라는 결과가 크게 뒤바뀌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잘된 일이구나. 앞으로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

끌끌, 웃으며 말한 푸스탄트였지만 표정은 밝지 못했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은 핏빛 칼날이라 불리는 레이라는 소녀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죽어준 것이라는 사실을.

‘이 소녀한테 분명 뭔가가 있다.’

푸스탄트가 생각했다.

“그러게, 휴우... 진짜 다행이네.”

강현의 생각은 달랐다.

푸스탄트는 반신, 데미갓이다.

그런 그를 어떻게 죽인 건지는 알 수 없다.

히지만 전생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레이에게 푸스탄트가 살해당할 확률이 크게 줄은 이상, 푸스탄트가 죽을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크게 안심할 수 있었다.

할배는 앞으로도 호구처럼 착하게 살다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늙어 죽어야 할 사람이니까.

“그런데 붉은 검기를 사용했다는 건, 생력을 소모했다는 것이 아니더냐.”

“... 그렇겠지.”

붉은 검기는 마나가 아닌 자신의 생력, 즉 생명을 소모해서 사용하는 기술이다.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소모한 것인지, 아니면 수명을 깎는 선까지만 사용한 건지는 몰라도, 후유증을 앓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알아서 하겠지. 난 공방이나 다녀올게.”

하지만 강현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전생의 악연을 용서해준 걸로도 충분하기에.

이번 생의 레이는 죄를 저지르지 않은 선량한 사람이라도 강현은 다시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공방에 도착한 강현은 흑적초 자신과 푸스탄트, 그리고... 혹시 모를 여분의 영약 3개를 만들었다.

어디까지나 여분이다.

혹시라도 필요할 때가 생길까 봐.

“너, 미쳤냐? 내가 그거 쓰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모험가 길드, 세이브리스 지부.

의료실에서 요한의 표독스러운 외침이 울려 퍼졌다.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야?! 생력이 소모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냐고.”

레이가 10살이 되던 해였다.

의뢰를 완료하고 길드로 복귀하던 길, 그녀는 한 마리의 오크에게 습격당했다.

마부와 레이밖에 없던 상황.

아직 신체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해, 검기를 사용하더라도 오크를 이기기는 무리인 상황이었다.

그녀는 마부를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서 생력을 소모하고 자신만의 오리지널 기술, 붉은 검기를 발현시켰다.

그 후, 그 붉은 검기에 존재를 마부에게서 전해 들은 요한은 그녀의 붉은 검기를 금지시켰다.

붉은 검기를 사용한 대가는 너무나도 거대했으니.

“진짜, 왜 이렇게 속을 안 썩이냐 했더니, 이런 식으로 썩이고 있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요한.

어느덧 40대에 들어선 그는 혼기를 놓치고 자신의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

모험가의 특성상 한 곳에 머무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연애를 하기도 좋은 상황이 아닐뿐더러, 실력을 인정받아 길드장의 직책을 맡은 지금은 눈코 뜰 세도 없이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5년 동안 레이의 훈련을 돕고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많은 정이 들었다.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레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잔소리가 심하고 위험한 의뢰는 맡지 못하게 한다.

짜증났었지만 자신을 걱정해서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지나친 간섭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부모가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성격은 잘 맞지 않았지만 요한은 마치 자기가 부모라도 된 것 마냥 자신을 대해줬다.

레이는 어느새 요한과 스승과 제자를 넘어선 가족의 유대를 쌓고 있었다.

강현과 푸스탄트가 그랬던 것처럼.

“미안... 해요...”

망가진 생력.

말하기도 벅찼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제가 아니면... 누가... 크흡... 하겠어요...”

공포에 떨던 마을 사람들을 구할 힘이 있었다.

속죄의 삶을 살기로 약속해놓고 그들을 외면하고 목숨을 부지하는 건 모순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지난날이 떠오른다.

강현은 항상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무리해서 말하지 말라고 해줬었는데.

이렇게 될 거였다면 그에게 인사 한 번이라도 건넸으면 좋았을 텐데.

“이 멍청이가 진짜.”

요한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한줄기의 눈물에 턱에 매달려 떨어지려 할 때쯤. 요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서 꼼짝도 하지 말고 푹 쉬고 있어.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그게 무슨...”

“푸스탄트님께 도와달라고 해야지 뭐.”

이 세계에서 손상된 생력을 유일하게 치유해줄 수 있는 푸스탄트.

마을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생력까지 소모한 레이라면 분명히 그의 치유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요한은 확신했다.

“...”

레이는 침묵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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