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흑적초 연구
* * *
“드디어...”
회귀 후의 선물로 받았던 흑적초의 씨앗.
5년이라는 오랜 기다림이 드디어 열매를 맺었다.
[흑적초]
[생력에 관한 모든 손상을 치유해주며 생력을 강화시켜주는 유일한 전설의 약초. 시간이 흐르면 꽃잎이 씨앗으로 변합니다.]
[효능: 생력을 치유하며 생력을 강화시켜줍니다.]
[씨앗 획득 방법: 흙에 심어둔 채로, 1개월이 지나면 씨앗으로 변합니다.]
[보관 방법: 흑적초의 잎과 줄기, 잎, 뿌리에 아무런 손상이 생기지 않은 채로, 물에 완전히 담가놓고 실온에 보관합니다.]
[조합법: 확인된 조합법이 없습니다.]
강현이 12살이 된 여름.
드디어 흑적초의 성장이 완전히 끝났다.
검은 잎과 줄기.
민들레가 연상되는 둥근 형태의 붉은 꽃잎들.
“이제야 다 자란 모양이구나.”
“응. 다 자라는 데 무슨 5년이나 걸린다냐.”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애지중지 키웠던 흑적초의 개화.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보상은 달콤했다.
“할배도 느껴지지?”
“그래, 엄청나구나.”
흑적초에서부터 강력한 생력이 느껴진다.
아무리 못해도 100장은 넘어 보이는 꽃잎 한 장 한 장이 생력의 응축체였다.
“한동안은 흑적초 연구만 해야 할 거 같아.”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미 네게 가르쳐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줬으니.”
작년 겨울이었다.
강현은 착실하게 몬스터를 잡아 마나를 쌓으며 푸스탄트에게 마법을 배웠다.
그리고 작년 겨울, 새하얀 순백의 계절에 푸스탄트는 더 이상 강현에게 가르쳐줄 마법이 없음을 선언했다.
검술을 알려주겠다 하였지만 강현은 아직 자신의 마법이 부족하다며 마법 수련을 지속해왔다.
강현도 어느 정도 마법적인 성취에 만족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배움을 빨랐지만 만족스러운 실전성을 얻지 못했다.
결국 강해지기 위해서 배우는 마법.
전투에 응용해야 했기에 강현은 마법 수련에 더욱 매진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상태, 강현은 드디어 마법에 두었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알 수 없는 조합법이라.’
모든 약초들의 효능과 조합법을 알고 있던 강현이다.
그런 그의 앞에 처음으로 나타난 알 수 없는 조합법.
황실과 모든 귀족들이 원했던 약제술의 스페셜리스트인 강현의 심장을 떨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난 이것들 가지고 공방 좀 다녀올게.”
“그래, 아, 그러고 보니. 한 공작가에서 약을 판매한 약제사를 찾고 있다고 하더구나.”
푸스탄트의 말에 강현이 몸을 움찔 떨었다.
“아... 그래? 뭐하러 찾는다냐.”
“약의 성능이 다른 것들에 비해 월등하다고 했었지. 가문의 전용 약제사로 모시고 싶어 하더구나.”
능청스럽게 빠져나가려 했던 강현이었지만 푸스탄트는 이미 확신한 상태라는 걸 깨달아버렸다.
“그게, 흑적초의 성장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잖아? 그래서 연구비에 쓸 돈만 조금 번 거야.”
“그래, 알고 있다. 물론 너도 어엿한 성인이고 훌륭하게 성장한 어른이니.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푸스탄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강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도 알고 있다.
그가 왜 자신도 모르게 몰래 약을 판매했는지.
간단한 이유다.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거나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둘 다일 수도 있고.
자신의 첫 번째 제자를 떠올린 푸스탄트는 강현을 믿음에도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당연하지. 재물욕에 한번 중독되면 쉽게 타락하고 빠져나오기도 힘들단 거. 연구비로 쓸 돈이랑 생활비만 조금 번 거니까 걱정하지 마.”
강현도 푸스탄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제자에 대해 말하기를 극도로 꺼려했지만 대충 눈치챌 수는 있었다.
“그래, 이 스승은 언제난 너를 믿고 있다는 걸 알아주려무나.”
“아휴, 할배는 걱정이 많아서 탈이라니까? 그리고 머리 좀 그만 쓰다듬어. 내 나이가 몇인데.”
“끌끌... 그래, 그럼 어서 공방으로 가보거라.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선물도 거기에 두었으니.”
“선물? 그게 뭔데?”
“가보면 알게 될 거다.”
“으음... 알겠어.”
강현은 흑적초가 자라난 화분을 통째로 들고 집에서 나와 들뜬 마음으로 자신의 공방으로 향했다.
푸스탄트가 마련해준 공방.
그가 마련했다기 보단 황실의 의뢰를 완수한 보상으로 황제에게 약제술을 연구할 공방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한 거지만.
그 덕에 강현은 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고급 장비들과 수많은 재료들이 구비된 고급 공방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푸스탄트가 죽었던 전생에선 그가 계속 떠올랐던 바람에 아예 오지 않게 되었지만.
“읏차...”
공방에 도착하여 흑적초의 화분을 조심스럽게 내려둔 강현은 곧장 푸스탄트가 말한 선물을 찾기 시작했다.
“으음... 어디 보자.”
공방을 둘러보던 중, 가마솥 옆에 위치한 선반에 낯선 유리병이 하나 놓여있었다.
“이건...”
[최상급 성수]
[당대 교황, 우라루스 2세가 직접 제작한 성수입니다.]
[효능: 체력과 모든 질병, 상처를 치유해주며. 120시간 동안 신체능력을 대폭 상승시켜 줍니다.]
[보관 방법: 밀폐된 용기에 보관합니다]
[조합법: 알맞은 재료와 조합할 시, 포션과 영약이 됩니다.]
“오오...!”
오직 당대의 교황만이 만들 수 있다는, 이 세계의 존재하는 모든 성수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최상급 성수.
아무리 황제라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한 물건인데.
“으음... 아, 재작년에 받은 건가?”
푸스탄트가 어떻게 이런 선물을 주게 된 건지 잠시 고민해본 강현은 재작년, 교회를 도와 치료원에서 봉사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럼 미리 사둔 성수는 연구용으로 써야겠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성수들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성수인 중상급 성수 10병과 연구용 최하급 성수 20병을 구매해왔다.
최상급 성수의 등장으로 개당 금화 다섯 닢이나 하는 중상급의 성수가 연구용으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좋아 그럼.”
강현은 조심스럽게 흑적초 한송이를 흙에서 뽑아 고운 비단 위로 올렸다.
공방으로 오면서 흑적초 두 송이는 연구를 위해, 나머지 8송이는 새로운 씨앗을 얻기 위해 사용하기로 결정했었다.
한송이당, 꽃잎 100장 이상.
꽃잎 한 장마다 막대한 생력이 느껴지기에 여태껏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꽃잎이 주재료임을 확신했다.
강현은 대장간에 주문 제작한 작고 얇은 집게. 핀셋을 들고 조심스럽게 꽃잎 한 장을 뽑은 뒤, 알림창에 적혀있던 보관방법 대로 흑적초가 푹 잠기도록 물에 담가 두었다.
“뭐부터 시작해볼까.”
약초를 제련하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한정적이다.
꽃잎 약 200장.
모든 제련법을 한 번씩 시도해도 충분하다.
그리고 5분 뒤.
“꺼어억...! 끄윽, 커엌...!”
강현은 죽어가고 있었다.
∴
“하마터면 제자를 잃을 뻔했구나.”
“... 그, 그러게... 미안.”
“늘 말하지 않았더냐. 항상 조심하라고.”
“나는 내가 치유 마법으로도 충분할 줄 알았지.”
연구를 시작하자마자 푸스탄트에게 꾸중을 들은 강현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강현은 꽃잎을 그대로 먹어보기로 했다.
약초들 중 상당수는 날것 그대로 먹어야지 제대로 된 효능을 얻을 수 있었기에.
하지만 아직 흑적초의 독성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말 그대로 전설의 약초, 그 어떠한 문언을 살펴봐도 흑적초와 연관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강현은 가장 먼저 꽃잎과 자신의 타액을 섞어보기로 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독성을 가진 약초의 대부분은 타액과 섞이는 과정에서 녹아내려 독으로 변질되기에.
결과는 흑적초는 강현의 타액에 반응해서 녹아내렸다.
그리고 독으로 변질되었다.
여기까지는 간단히 예상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그 뒤는 그 전설의 약초의 독성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강현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강현은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타액과 섞여 변질된 흑적초의 독을 바로 폐기하려 했지만 그가 단 한번 호흡한 순간 공기 중에 퍼졌던 흑적초의 독이 강현을 중독시킨 것이었다.
전생의 20년과 현생의 5년, 무려 총 25년이라는 시간이다.
타액에 녹자마자 변질된 독이 곧바로 공기 중에 퍼지는 것만 해도 난생처음 보는 상황이었는데, 그 독의 위력은 더욱 엄청났다.
5초도 걸리지 않아서 전신에 마비가 왔고 마나 경직 또한 함께 찾아왔다.
간신히 사용한 강현의 치유 마법 또한 효과가 전혀 없었고.
다행히도 강현에게 건네준 펜던트를 통해 그가 위급상태라는 걸 깨달은 푸스탄트가 구해주었기에 겨우 살 수 있었다.
그가 텔레포트로 한 번에 달려온 게 아니라면 강현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겠지.
“이번 연구는 내가 곁에서 함께해야겠구나.”
“그럴 필요는... 응.”
푸스탄트는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듯이 강경한 말투로 말했다.
강현은 그의 눈빛에 결국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 차리자.”
강현은 자신의 양 볼을 두 차례 찰싹, 때리며 말했다.
죽을 뻔했지만 확실한 소득은 있었다.
첫째는 흑적초에 강력한 독성의 존재와 독성의 특성을 파악했다는 것.
둘째는 흑적초는 타액에 반응하여 변질되고 독성을 내뿜는다는 것.
이 사실 만으로 수많은 제련법이 한정된다.
‘그럼 다음은...’
물에 넣고 끓여볼까.
아니면 살짝 구워볼까.
고민하며 타액과 섞였던 흑적초를 폐기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강현.
“이건...!”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변질된 흑적초는 이전보다 더욱 강력하고, 순수한 생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니, 분명 변질돼서 효능을 잃어야 하는데?’
어차피 뒤에 푸스탄트도 있겠다.
강현은 과감해지기로 결심했다.
침과 섞여 녹아내린 붉은색의 액체를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찍었다.
푸스탄트의 정화 마법으로 독성을 완전히 잃은 흑적초액은 걸쭉한 요거트와 비슷한 질감으로 변해있었다.
“음.”
손가락으로 찍었던 흑적초액을 입에 문 강현의 목울대가 한차례, 움직였다.
“... 성공했어.”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올라와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힘이 솟아오르고 심장이 거칠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흑적초액을 삼킨 뒤, 생력이 마치 거대한 태풍처럼 요동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위협적인 감각은 아니었다.
생력 자체의 힘이 더욱 강해진 감각.
“음...?”
푸스탄트 또한 강현의 뒷모습에서 그 변화를 느꼈다.
“할배, 성공한 거 같은데...?”
강현은 죽음의 문턱을 넘음으로써 전혀 예상치도 못한 흑적초의 제련법을 터득했다.
∴
흑적초의 제련법.
흑적초는 타액에 반응하여 녹아내린 뒤, 독성을 내뿜는 걸쭉한 액체로 변질된다.
그렇게 완성된 흑적초액의 독성을 정화시키면 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화된 흑산초액이 완성된다.
하지만 강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약초는 여러 가지의 제련법이 공존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약초를 제련하고 약을 제작함에 따라서 효능은 달라지기 마련.
그렇기에 강현은 푸스탄트의 보조하에 알고 있는 모든 제련법을 흑적초에 응용해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전부 실패.
굽든, 태워서 재로 만들든, 고온의 물에 끓이든 차가운 물에 오랜 시간 동안 우려내든.
알고 있는 모든 제련법들을 응용했으나 흑적초는 원래 가지고 있던 생력을 잃어버리고 독성조차 배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흑적초는 오로지 강현의 침에만 반응하였다.
푸스탄트와 다른 사람들에게서 채취한 타액을 흑산초와 섞어봤다.
그렇게 변질된 흑적초액의 독성을 정화해도 순수한 흑적초액을 얻어낼 수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타액이라면 얼마든지 뱉어낼 수 있으니.
조금 더럽긴 했지만.
그렇게 강현은 1년이라는 시간을 흑적초의 연구에 투자했다.
어떤 약초와 합치면 어떤 효능이 나타날지, 포션과 영약으로 가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액체가 가장 적합한지를 찾기 위해. 아니면 단약으로 가공해야할지.
그 결과 13살이 된 강현은 드디어 푸스탄트와 마찬가지로 생력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약제사가 되었다.
드디어 자신이 동경하던 이에게 한발자국 다가간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