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마법수련 (4)
* * *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아침 해가 완전히 뜨기 전, 세상이 군청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쯤, 잠에서 일어나 문을 연 가게를 찾아 간단한 아침거리를 사 오며 시작하는 하루였다.
강현이 선택한 것은 꿀에 절인 과일들이 사이에 끼워져 있는 간단한 샌드위치와 신선한 우유였다.
“뭔가 달라졌구나. 간밤에 답을 찾은 모양이야.”
식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푸스탄트가 말했다.
“응?”
달콤한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고 씹어 삼킨 뒤, 시원한 우유를 한 모금 마신 강현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달라지지 않았다.
어제와 똑같다.
답은 무엇을 의미한다는 건가.
푸스탄트 특유의 추상적인 화법에 강현은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으나, 답을 얻진 못했다.
“답을 찾긴 뭘 찾아. 그냥 자고 일어났는데.”
잔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산책 중 있었던 일은 빼고 말했다.
“아니, 분명히 어제와 다르다.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푸스탄트는 단언했다.
“... 그래?”
강현은 알고 있다.
푸스탄트는 헛소리라는 걸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단언할 정도라면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는 게 분명하다.
비록 본인이 느끼진 못한 상태이기에 얼떨떨한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서둘러 먹어라. 오늘은 평소보다 빨리 수련을 시작하자꾸나.”
“알겠어.”
그런 강현과 달리, 푸스탄트는 상당히 들떠있었다.
∴
“바로 명상을 시작하자꾸나. 너의 내면에서 순환하는 마나를 관조하는 거다.”
항상 오던 수도, 페론 근처에 위치한 숲으로 온 푸스탄트는 도착하기 무섭게 강현에게 명상을 시켰다.
“알겠어.”
적당한 바위 위에 앉아, 명상을 시작한 강현은 곧장 자신의 서클에 저장된 마나부터 체내를 순환하는 마나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전날과 달라졌다는 푸스탄트의 단언과는 달리, 강현이 느낀 것은 평소와 똑같은 마나였다.
서클에서부터 흘러나와 온몸 곳곳을 순환한 다음, 다시 서클로 되돌아가는 마나의 흐름.
혹시 마나 흡수를 말하는 건가 싶어서 자연의 마나를 끌어들여 흡수하는 일련의 과정을 밟았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마나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지.’
명상을 시작하여, 마나를 관조해라.
그 말은 즉, 마나에 관련된 변화를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무엇일까.
아무리 마나를 관조해도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강현은 푸스탄트를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완전히 신용한다.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스승이자 부모의 역할을 해준 그였기에.
그렇기에 강현은 더욱 집중했다.
모든 잡념을 털어놓은 채, 오로지 마나를 느끼겠다는 순수한 목적만을 지니고.
점차 다섯 개의 감각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 여긴.’
그렇게 강현은 2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검은 공간 속, 붉은 생력의 드래곤과 푸른 마나의 드래곤이 존재하는 내면세계로.
‘드디어 왔다.’
기뻐 날뛸 거라 생각했다.
만감이 교차하고 새로운 감회를 느낄 거라 생각했다.
‘...’
하지만 아니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성취감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히 냉정한 상태.
강현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그렇게 생각했으니.
강현을 마중 나오듯, 저 멀리서 붉은빛과 푸른빛이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저건... 고블린?’
그제야 강현은 푸스탄트가 말한 변화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내면세계에 원래 있던 3마리의 드래곤 뿐만이 아닌, 짜리 몽땅하고 기분 나쁜 외형의 고블린도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내 새로운 마나.’
생력과 마나를 느꼈을 때처럼, 강현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저 고블린이 자신의 새로운 마나임을.
강현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생력과 마나의 드래곤들이 그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
옆에 서 있던 고블린또한 마찬가지.
‘얘가 나의 새로운 마나야?’
푸른색의 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제 새벽에 잡은 고블린... 맞지?’
푸른색의 고블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강현은 깨달았다.
자신이 잡은 몬스터가 자신의 마나가 된다는 사실을.
‘대답해봐. 왜 다른 마나들을 거부한 거야.’
푸른 마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묵묵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거대한 머리 위로 아름다운 푸른빛을 내뿜는 마나가 뭉치기 시작했다.
‘자연의 마나네. 내가 2년 동안 죽어라 모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죽어라 모은 마나의 양은 고블린의 손가락 한마디보다도 작았다.
자연의 마나는 푸른 마나의 드래곤의 명령에 따르고 있었다.
명령을 내리는 것이 전부 느껴졌다.
자연의 마나는 서서히 푸른 드래곤과 가까워지더니 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이제 알겠어. 그만해도 돼.’
자연의 마나와 융합한 드래곤의 몸은 기형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마치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자연의 마나는 푸른 마나의 드래곤의 명령은 따르고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섞일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고블린은?’
고블린을 처치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흡수된 고블린의 마나와는 섞일 수 있는 것일까.
강현은 물었다.
그리고 고블린은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푸른빛을 일렁이던 두 존재는 끝내 하나로 융합되었고 푸른 마나의 드래곤의 육체가 더욱 비대해졌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결국 자신의 마나.
강현은 전부 알 수 있었다.
‘... 앞으로 몬스터 사냥을 열심히 해야겠네.’
내면세계에 들어왔지만 자연의 마나를 흡수할 방법은 찾지 못했다.
아예 불가능하다고 쐐기 박힌 수준.
하지만 괜찮다.
마나를 쌓을 새로운 방법을 찾았으니.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고 깨달음을 얻었다.
더 이상의 볼일은 없다.
‘다음에 보자.’
강현은 3마리의 드래곤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내면세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잊어버렸던 오감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눈을 떴다.
세상을 밝게 비추던 아침의 햇살은 어느새 시간이 흘러 황혼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땠느냐.”
“할배, 나 앞으로 평생 동안 마나 흡수는 못할 운명인가 봐.”
“그러냐.”
2년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 것도 모자라서. 마법사로서는 절망적인 사실까지 깨달아버린 것이다.
제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절망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제자가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거지만 푸스탄트는 평온하게 대답했다.
“일단 몬스터 좀 잡으러 가고 싶은데.”
“그래, 그러자꾸나.”
강현은 웃고 있었다.
그렇기에 푸스탄트는 오히려 기대했다.
이번엔 그가 어떻게 자신을 놀라게 해 줄지.
∴
“고생 많으셨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인증서에 사인해서 드리겠습니다.”
한스는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 미리 받아두었던 인증서를 찾기 시작했다.
“너 왜 그러냐? 아침부터 계속 멍 때리고? 그 이강현 때문에 그래?”
친형, 요한 윌의 부탁을 받고 레이와 팀을 맺은 요루 윌이 레이에게 물었다.
항상 무표정하고 무뚝뚝하던 그녀였지만 멍하니 있는 모습은 낯설었기에.
“하긴, 이런 곳에서 우연히 만나면 그럴 만도 하지.”
레이의 침묵은 대부분 2가지의 의미다.
대답할 가치가 없어서 무시하는 것과 긍정.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요루는 후자라고 확신한 채 말했다.
음음, 스스로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요루를 무시하기로 한 레이였지만 그의 말대로였다.
설마 이런 곳에서 그를 만나게 될 줄이야.
여전히 멋진 사람이었다.
‘엄청 귀여웠지...’
지난 새벽에 재회한 그를 떠올린 레이가 생각했다.
“매일같이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놈이니까. 크크.”
“제가 언제 노래를 불렀단 거죠?”
“아니야?”
“...”
결국 그의 말에 부정하지 못한 레이가 침묵했다.
얘도 참 고생이네.
요루는 생각했다.
푸스탄트님의 제자인 이강현은 상당한 미남이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성인군자라고 칭송받는 푸스탄트의 제자.
경쟁률이 만만치 않을 텐데.
“뭐, 어쨌든.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왕자님도 찾았으니까, 여기서 조금 머물다가 돌아갈까?”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아직 그의 앞에 서도 떳떳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없었지만, 그저 멀리서만 바라봐도 충분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고민한 레이는 끝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일이 끝나자마자 가야 할 곳이 있어요.”
“그 고아원?”
“네.”
모험가일을 시작한 뒤로, 돈을 벌기 시작한 레이는 자신의 수익 대부분을 고아원과 뒷골목의 거지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자신 또한 도망 노예에 뒷골목 거지 출신이라서 그런 걸까.
그렇다 하더라도 8살 어린이가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일이었을 텐데.
‘마음씨는 참 착하단 말이야.’
무뚝뚝하고 냉정하며, 어떨 때는 어른인 자신이 봐도 섬뜩했지만 기본적으로 심성이 고운 아이였다.
그렇기에 요루는 레이를 좋아했다.
힘든 과거를 이겨내고 이전의 자신과 같은 고통을 받고 있을 사람들을 돕는다.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니던가.
“그래, 그럼 빨리 돌아가자. 나도 집에서 기다리는 딸내미가 보고 싶거든.”
“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레이는 인내심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한스에게 인증서를 받은 레이는 자신의 집, 모험가 길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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